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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 수원시연화장 웰다잉 투어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 수원시연화장 웰다잉 투어

 

 
삼베 수의 입고 관속에 누워… 어둠속 가족들 얼굴 떠올라 ‘울컥’
박성훈 기자  |  pshoon@kyeonggi.com

   
▲ 강현숙 기자가 수의를 입고 입관체험을 하고 있는 가운데 후배 박성훈 기자(왼쪽 세번째)가 관 뚜껑을 닫고 있다. 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우리는 타자의 죽음에 대해 꽤나 호의적이고, 관대하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조문을 하고 주머니 사정 생각하지 않고 부의금을 낸다. 이러한 태도는 막상 내 일이 되면 상황은 180도로 달라진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꽤나 인색하고, 어려워한다. 지난한 삶 또는 고된 삶 속에서 ‘죽음’이라는 불청객이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일까. 더 솔직하겐 피치 못할 사고로 지금 당장 죽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누가 죽음을 좋아하겠는가. 당연히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게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다.

이젠 생각을 바꿔야 한다. 피하는 게 상책이 아니다. 100세 시대엔 죽음과 정면으로 인사해야 한다.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것은 죽음을 제대로 알고,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다. 잘 살기 위해 머리로 삶을 달달달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가슴으로 죽음을 맞대고 삶을 달달달 달래야 한다.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죽음은 잘 먹고, 오래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해서 안 오는 게 아니다. 언젠가는 딱 한번씩은 오게 마련이다. 이게 바로 죽음의 특성이다. 이러한 죽음의 특성을 잘 알고 좀더 죽음에 대해 진지해지고 싶었다.  

지난 1일, 삼일절에 기자를 포함한 문화부 선후배가 같이 수원시연화장을 찾았다. 가족, 지인의 조문차 방문한 것이 아니라 죽음과 대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솔직히 쉽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종합장사시설을 둘러보고 유서를 쓰고 입관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감행의 이유는 단 하나, 죽음에서 삶의 답을 찾아보자는 것.

이날 죽음과의 첫 미팅은 수원시연화장 이창원 운영팀장이 주선했다. 우선 연화장의 승화원(화장장), 추모의집(봉안당), 유택동산 등 경내를 2시간 동안 돌아보았다. 고인의 이름과 생·졸년이 새겨진 자연장지의 명패 앞에 놓인 커피캔, 고인의 유품이 담긴 채 차곡차곡 쌓인 락앤락통에서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절절히 묻어났다.

이창원 운영팀장은 “연화장에 오는 이유는 딱 두가지다. 주변 사람이 죽었을 때 아니면 내가 죽었을 때”라며 “수원시연화장 웰다잉 투어는 그냥 종합장사시설을 둘러보는 견학프로그램이 아니라 인생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인생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웰다잉 투어의 하이라이트 유서쓰기와 입관체험은 송행자 한국웰다잉협회장이 진행했다. 송행자 회장은 유서쓰기 교육에 앞서 “아기가 세상에 날 때에는 주먹을 쥐고 태어나지만 사람이 죽을 때에는 손을 펴고 죽는다”며 “인생을 시작할 때에는 쟁취의 욕구를 갖지만, 죽을 땐 잡은 것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라고 나름의 해석을 들려줬다.

그리고는 ‘하루 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기자 셋은 답이 없었다. 이어 시작된 유서쓰기 시간. 일기도 안 쓰는 기자들에게 유서쓰기는 큰 산이었다. 하얀 종이 위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까지는 작성했다. 송행자 회장은 보고 싶은 가족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라 조언했다. 20분 동안 정적이 흘렀다.

   
▲ ‘굴비화가’로 유명한 박요아 한국화가가 그린 수원시연화장 ‘귀천로’를 지나고 있는 관. 귀천로는 그림과 음악, 향기가 어우러져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인도한다. 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각자 작성한 유서를 들고 입관체험실로 향했다. 그야말로 죽음이 눈앞에 있었다. 길이 195㎝, 넓이 55㎝의 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공간이었다. 한국웰다잉협회 회원들이 기자들에게 수의를 입혀주었다. 기성복보다 2~3배는 넉넉한 삼베 수의가 살갗에 닿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가슴띠를 묶는데 숨이 가빠왔다. 유서를 읽기 시작했다.

 

이름도 다르고 살아온 방식도 다른 기자 세명의 유서에는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고’ 등 살면서 놓치고 지냈던 말들이 공통적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흔해서 흘러보낸 단어들이 인생 끝자락에 다 모여 있었다.

안대를 쓰고 관속에 몸을 뉘였다. 관 뚜껑이 닫히고 관에 못을 박듯 주먹으로 관 뚜껑을 탕탕 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후배기자의 짤막한 애도사가 들려왔다. 관 밖의 일들과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아득하게 느껴졌다. 관은 ‘귀천로(歸天路)’를 지나 승화원 화장장으로 향했다.

“이제 관 뚜껑이 열리면 당신은 부활합니다.” 곧이어 관 뚜껑이 열리고 옆에 있던 회원들과 선후배 기자들이 기자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안대를 벗었다. 형광불빛이 눈부셨다. 그렇게 죽음과의 짧은 미팅은 끝이 났다.

수원시연화장에 들어온 고인은 무조건 50m의 ‘귀천로(歸天路)’를 통과해야 한다. 이름처럼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다. 원래는 시체통로길이었다. 이 길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이요, 어둠의 길이다.

이 곳을 ‘굴비화가’로 유명한 박요아 한국화가가 지난해 여름 두달 동안 세상에 단 하나뿐인 죽음의 갤러리로 변신시켰다. 귀천로 한쪽 벽면엔 수원화성(華城)의 화홍문, 동북공심돈, 방화수류정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같이 한다. 반대편 벽면엔 꽃상여를 메고 장지로 향하는 장면이 연출돼 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맨 앞에서 상두소리를 메기는 소리꾼의 상여 소리가 진짜처럼, 애잔하게 들려왔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호박꽃향초가 켜져 있는 귀천로. 우리는 모두 귀천로를 향해 똑같이 달려가고 있다. 죽음, 절대 피한다고 상책이 아니다. 죽음, 이젠 죽음에 대해 호의적으로 대해야 한다.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죽음 속에 삶의 답이 있기 때문이다.

강현숙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유서(遺言)가 법적 효력을 인정받으려면…
자필증서(自筆證書)에 의한 유서는 유언자가 유서의 내용과 날짜, 주소와 성명을 모두 적고 날인(捺印·도장이나 지장을 찍음)까지 해야 효력이 인정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빠지면, 나중에 필적감정 등을 통해 사망자가 쓴 유언장이라는 점이 확인되더라도 효력이 없다.

자필증서는 5가지 유언 방식(자필증서(自筆證書), 녹음, 공정증서(公正證書), 구수증서(口授證書), 비밀증서) 중 증인이 필요 없는 유일한 방식이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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