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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연합뉴스) ⓒ2013 CNB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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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정치를 20년 동안 함께 한 선후배와 동료 의원들이 자주 만나 정담도 나누고, 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의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모임을 마련했다.”
지난 12월 17일 새누리당과 민주당 5선(選) 이상 중진들이 여의도 중식당에서 만났다. 여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정치복원 의지를 다지며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 중진협의체(가칭)’를 결성한 자리에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이 같이 인사말을 건넸다.
이 자리에는 7선 새누리당 서청원·정몽준 의원을 비롯해 6선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 5선 새누리당 김무성·남경필·정의화·황우여 의원과 민주당 문희상·이미경·이석현·정세균 의원, 4선 민주당 박병석 의원 등 12명이 참석했다.
새누리당 이재오, 민주당 이해찬·한명숙 의원은 일정관계로 불참했으나 중진협의체의 중량감은 상당했다.
이날 상견례 시작 전 부터 화합과 소통이 강조되는 분위기였다. 정의화 의원이 “사진 찍을 때 여야·야여 이렇게 번갈아 서서 찍자”라고 말하자 이인제 의원이 “손 꽉 잡고 찍자”라고 화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만나기만 하면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던 여야 지도부의 만남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어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특검 도입 등을 둘러싸고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해소할 방안에 대해 격의없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평소 수시로 만나 대화하고 물밑 중재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이날 논의 내용을 여야 지도부에 전달하는 동시에 조만간 모임에 여야 지도부를 초청, 식사를 함께하면서 지도부의 애로사항을 듣고 중진들의 견해도 가감 없이 전달하기로 했다.
서청원 의원의 인사말에 이어 문희상 의원은 “이하동문”이라며 맞장구를 쳤고, 이석현 의원은 “여야 대립은 있고 소통은 너무 적은 시기에 의원들이 함께 자리한 것 자체가 의미있다”면서 “격의 없이 대화하고 평소에도 서로 소통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여야는 갑을관계 아니다” 정치복원 언급 국정원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특위에서 여야 합의가 잘 안 되고 있는데 4자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만이라도 꼭 이행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를 오래하고 여야를 번갈아 가며 정치를 해 본 중진 원로들이기 때문에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며 대화했다”며 “꽉 막힌 여야 관계를 잘 풀어보기 위해 앞으로도 자주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도 “오늘은 여야 중진들이 서로 정답게 교감하는 자리였다. 우리 만남의 목적은 소통과 교감”이라며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당 지도부에 전달하고 여야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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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청원 의원은 당선직후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던 겸손 모드가 무색할 정도로 초선부터 당내 최고 중진까지 조찬·오찬·만찬 가리지 않고 만나는 것은 물론 공·사석 없이 현안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서 의원. (사진 = 연합뉴스) ⓒ2013 CNB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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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임은 10·30 경기 화성시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7선으로 국회 최다선으로 등원한 서청원 의원이 여야를 넘나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다운 행보로 마련한 자리로 알려져 있다.
서 의원은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직후인 지난 11월 4일 당시 여야가 국정원 댓글 사건과 NLL 논란으로 파국으로 치닫자 “우리도 야당 해봤다. 여야는 갑을관계가 아니다”라며 여야 정치복원을 국회 복귀 일성으로 언급 했을 때부터 이러한 분위기를 예상했다.
서 의원은 새누리당 전신인 신한국당 원내총무(원내대표) 시절인 1996년 국민회의 박상천, 자민련 이정무 총무와 한 달 여 동안 30여 차례나 만나 국회 개원협상을 하면서 타고난 대화론자라는 평가를 얻은 인물이다.
서 의원은 당선직후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던 겸손 모드에 걸맞게 초선부터 최고 중진들까지 조찬·오찬·만찬 가리지 않고 만나는 것은 물론 공사석 구분없이 현안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러한 서 의원을 두고 “여야 대치 정국에서 당 내부, 야권 반대 의견을 모두 잠재울 수 있다” “야권 중진과 언제든 소통이 가능하다” “박심(朴心)과 가장 가까이 있다” “서심(徐心)은 곧 청심(淸心)” 등 여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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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지난 12월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시티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3주년 기념 특별강연 및 만찬에서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2013 CNB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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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서 의원을 두고 지금은 폐지된 ‘특임장관+정무수석’ 개념인 ‘청와대 정무특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여야가 합의해 만든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될 공천제 폐지 문제나, 선거구 재확정 문제, 개헌, 전당대회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만이 야권의 상황까지 곁들여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실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실세중의 한명 서 의원이 당권 도전 가능성을 내비쳐 당내에서는 조기 전당 대회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당내 역학구도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서 의원은 지난 12월 13일 새누리당 울산 중구 당원협의회에 참석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언급하면서 “당내 능력 있는 초·재선 의원들이 많아서 울타리 역할에 머물고 싶지만 당이 부르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힘으로서 알려졌다.
서 의원의 이 같은 기류 변화는 그동안 당 대표와 국회의장 등이 언급될 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정치 상황이 변함에 따라 자신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서 의원의 한 측근은 “주변에서 국회의장을 권유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당내 사정 뿐 아니라 청와대나 야당과의 관계를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다”고 전했다.
다른 한 측근도 “야당도 야당이지만 청와대와 논의가 필요할 때 지금 누가 청와대와 상대가 되겠느냐”면서 “서 의원 밖에 적임자가 없다”며 당 대표직 도전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 1981년 국회의원 배지를 처음으로 단 서 의원은 30여년간 한국 정치사를 목도한 노정객이지만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치적 부침을 겪으면서 ‘풍운아’라는 별칭이 붙었다.
중앙대 총학생회장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회담 반대 6·3 사태 당시 시위를 주도해 투옥됐다. 졸업 후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1981년 11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에서 민한당 소속으로 첫 당선됐으나 12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를 정치적으로 성장시킨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12대 총선에서 야권 정치인 중심으로 창당된 신민당 돌풍을 목격한 서 의원은 1985년 김영삼계와 김대중계의 야당 인사들이 연합해 구성한 재야정치단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들어갔다. YS키즈로 상도동계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후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선봉에 섰다.
김영삼 정부에서 정무제1장관과 신한국당 원내총무를 맡으며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지금의 원내대표에 해당하는 원내총무 시절 여야 대화와 타협을 끌어내는 협상력을 과시했으나 김영삼 정부의 레임덕을 재촉한 것으로 평가되는 1996년 12월말 노동법안 기습처리는 오점으로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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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의 5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17일 낮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여야간 소통을 통해 경색된 정국을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새누리당 정몽준, 서청원, 민주당 문희상, 새누리당 이인제, 정의화, 김무성, 민주당 박병석,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사진 = 연합뉴스) ⓒ2013 CNB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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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서 ‘친박연대’ 창당해 14석 얻어 그러나 그의 정치행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등장과 더불어 변곡점을 맞는다. 1996∼1997년 당시 여권의 권력지형이 이 전 총재의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그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반(反) 이회창’ 전선에 서기도 했으나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당대표로서 이 전 총재의 대선선대위원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다.
서 의원의 정치적 험로는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만들기와 관련이 깊다. 이 전 총재가 2002년 대선에 패배한 후 2004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가운데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했다. 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캠프의 상임고문을 맡아 당시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논란을 점화시키는 등 치열했던 경선전을 지휘했다. 박 전 대표가 패하면서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친이명박)계에 밀려 친박(친박근혜)계가 줄줄이 공천에 탈락했을 때 탈당한 후 친박연대를 창당했다. 급조된 정당이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자신을 포함해 14석을 얻어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공천헌금 수수혐의로 2009년 다시 수감되는 처지가 됐고 수형과 행집행 정지를 반복하다 2010년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당시 정계복귀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국회의원직 재도전 가능성이 희박함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권재창출의 일등공신으로 정치적 재기를 도모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고, 현실로 이어졌다. 그의 컴백으로 당내 역학구도의 재편은 불가피한 흐름이 될 전망된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5선에 성공한 친박 좌장 출신의 김무성 의원이 그와 경쟁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서 의원은 7선으로 정몽준 의원과 함께 19대 국회 최다선 반열에 서게 됐다. 범여권에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강창희 국회의장과 함께 ‘3두마차’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회자된다. 그 만큼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다.
- 심원섭 기자
심원섭 기자
[ 제358호(송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