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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간공예 창시자 이상수

 

맥간공예 창시자 이상수
30년 고독이 빚어낸 보릿대의 금빛 환생
데스크승인 2013.03.06     

   
 
맥간(麥稈·보릿대)공예는 아직은 일반인에게 낯설다. 목칠공예와 모자이크 기법을 접목해 보리 줄기가 가진 결을 빛과 어우러지도록 표현했다지만 가까이 대하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맥간공예의 본산, 맥간공예연구원을 찾았다. 수원시 권선동 권선시장 인근 2층 건물의 지하, 맥간공예연구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에 자리 잡은 작품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뽑내며 시선을 압도했다. 금방이라도 튀어날올 것만 같은 황금빛 용과 호랑이…. 맥간공예 창시자 백송(白松) 이상수(55)씨가 반갑게 맞았다.

▶‘맥간공예 기법’ 스스로 고안

반백의 머리를 짧게 자른 그의 차림새는 평범했지만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맥간공예는 보리의 줄기를 이용한 공예입니다. 보릿대를 쪼개 편 후 도안에 맞게 접착해 오려내거나 잘라서 모자이크처럼 순서대로 조각조각 붙입니다. 그리고 그 표면에 투명한 칠을 입히죠.”

맥간공예 작업은 크게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작품의 도안과 보릿대가 가진 결의 방향까지 고려한 ‘도안작업’, 보릿대를 펴고 알맞게 오려 붙이는 ‘세공작업’, 마지막으로 보릿대의 변색을 막고 황금빛깔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게 하는 ‘칠작업’ 등이다. 보릿대는 ‘겉보리’가 아닌 남부지방에서 재배하는 ‘쌀보리’의 속잎을 사용한다. 쌀보리의 줄기는 부드럽고 탄력적이며 광택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먼저 보리의 줄기를 뜨거운 물에 삶아 끈적끈적한 진물을 빼내야 합니다. 이후 하루 정도 그늘에 말렸다가 사용하죠. 전문적인 작품이라면 옻칠까지 해줍니다. 이 때 하루에 한 번씩 일곱 번 덧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고급스러운 효과를 얻을 수 있죠.”

보릿대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데다 비를 맞아도 썩지 않아 고유의 빚깔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맥간공예 기법은 그가 스스로 고안해 낸 것이다. 1980년 맥간공예 기법을 이용한 첫 실용신안 특허를 출원하기까지 그는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화가 꿈꾸던 부농의 둘째 아들

그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한 번 본 풍경이나 사물을 그대로 도화지에 옮겨 그릴 수 있었고 조형물로도 세울 수 있었다. 상도 많이 탔다. 하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꿈과도 멀어졌다. 이 때문에 방황도 많이 했다.

“언젠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방법으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은 버리지 못했어요. 결국 그 꿈을 보릿대가 이루게 해 줬습니다.”

경남 밀양에서 부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친이 돌아가신 후 상황이 바뀌었다. 집안의 반대에도 가족들과 함께 작은아버지가 살고 있는 수원으로 이사했지만 쉽지 않은 타향살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졌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던 형도 집을 나가버렸다.

“경제적인 형편은 물론 생활이 안정되지 않았아요.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했지만 이도 쉽지 않았습니다.”

방황이 되풀이되던 어느날, 형이 돌아왔다. 이미 출가한 형은 그에게 경북 청도 동문사로 들어가 탱화를 그리며 새 삶을 살 것을 권유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싶었던 그는 주저하지 않고 형을 따라 동문사로 향했다.

“절로 들어가기에 앞서 마음을 비웠습니다. 하지만 절에서 생활하면서도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요. 탱화를 그릴려면 스님이 돼야 하는데….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이 보릿단이었습니다.”

▶보릿대 종이 만들기에 3년간 매진

비와 눈을 맞아도 썩지 않는 보릿대, 그는 동문사 인근 주민들이 보리 줄기로 밀짚모자와 반짇고리, 베게 문양 등을 만드는 것에 착안했다. 그 날부터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릿대 종이를 만드는 기법 연구에만 매진했다. 이후 그는 보릿대 잇기 등 맥간공예 기술에 관한 실용신안 특허를 5개 보유한 맥간공예 ‘장인’이 됐다. 최근에는 무지갯빛 필름지(레인보우)를 이용한 장식판과 결을 갖는 박지(금박, 은박 등)를 이용한 장식판 등의 기술에 관한 실용신안 특허도 등록했다. 레인보우 아트는 필름이 덧대어진 종이 뒷면에 여러 차례 칠을 먹여 특수한 효과를 내는 공예 기법이다. 특수재료인 레인보우 필름은 원단으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되고,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처음 맥간공예를 연구할 때 금박을 이용한 기법도 연구를 했지만 당시에는 워낙 금이 귀했던 시절이었어요. 금박은 손으로 아주 얇은 결을 내는 게 비법인데요, 결은 음영효과를 낼 수 있는 데다 제품을 붙일 때 밀착성을 높여줍니다.”

금박공예 역시 맥간공예와 마찬가지로 도안에 접착해 만든다. 맥간공예의 특징은 재료에 난 결에 따라 빛이 반사돼 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효과를 얻으려면 금박에 줄을 그어 결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A4용지 크기의 얇은 금박에 1천200번 송곳으로 일일이 줄을 그어 촘촘한 결을 만들어 냈다.

“금박공예와 맥간공예는 재료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아요. 문양이 금박이냐, 보릿대이냐의 차인데, 둘 다 황금빛이지만 금박이 한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면 보릿대는 볼수록 스며드는 은근함이 있죠.”

그는 보릿대보다 좀 더 익숙한 레인보우 필름과 금박으로 맥간공예의 대중화를 꾀하고 있다.

▶첫 전시회 끝나기도 전 모든 작품 팔려

1986년, 그는 수원에서 첫 전시회를 열어 맥간공예를 세상에 알렸다. 전시회가 끝나기 전 작품 모두가 팔렸다는 진기록은 아직도 회자되는 일화다. 이후 맥간공예는 맥간공예 강사 모임인 ‘예맥회’를 통해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1991년 창단된 예맥회는 그의 수제자이자 맥간공예 작가로 활동 중인 이수진(40)씨가 이끌고 있다. 50여명의 예맥회 회원들은 본산인 수원을 중심으로 서울, 부산, 대구 등 22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다. 전남 영광의 경우 맥간공예를 특화 사업으로 추진, 20여명의 강사가 활동 중이다. 제자의 제자까지 합치면 전국 각지의 맥간공예 전수생은 수만명에 이른다.

“전시회를 눈여겨본 삼성전자 관계자로부터 맥간공예 강의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 때부터 전수자 양성에 나섰지요. 지금도 많은 수강생들이 전수자들로부터 맥간공예를 배우고 있습니다. 가끔 마음이 급한 사람들이 돈벌이에 연연해 상품화를 요구해오기도 하죠. 하하하.”

2003년 국제서화예술명인과 경기도 으뜸이, 2011년 아세아미술초대전 대상, 제30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경기도 으뜸이 선정 등 그는 맥간공예 창시자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아세아미술초대전을 통해 해외작가들과 교류하고 있고, 한국 국제문화협회 주선으로 열리는 중국, 일본, 싱가폴, 대만, 홍콩 등의 전시회에는 단골 작가로 초대받고 있다. 특히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일본에서는 맥간공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대중에게 맥간공예는 여전히 낯선 예술이다.

▶“개설 강좌도, 체험 공간도 없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면 모두 자개를 사용했다고 오해합니다. 서운하기로는 수원시도 마찬가지죠. 맥간공예의 본산이지만 정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마땅히 강좌가 개설된 것도 아니거든요.”

그의 눈빛에 날이 섰다. 외길 30여년, 지난 모든 시간은 눈 덮인 겨울 산에 길을 내는 고독과 고통, 고생의 연속이었다. 지난 세월 그는 이유 없이 손을 놀린 적이 없다. 1년에 단 이틀, 설과 추석만 연구원 문을 닫았다.

“이달 외동아들이 예비역으로 전역을 하는데, 맥간공예를 잇겠다고 해도 제가 직접 가르치는 ‘특혜’를 베풀 수는 없죠. 하하하. 수제자를 비롯해 제 뒤를 잇는 제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맥간공예를 펼칠 수 있도록 맥간공예의 세계화를 이루겠습니다.”

그의 바람은 ‘맥간공예 아카데미’를 열어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다. 또 대학에 ‘맥간공예학과’가 신설돼 학문으로 정착되길 소망한다.

“보석함, 찻상 등의 생활용품은 물론 액자, 병풍, 테이블 등도 가능한 맥간공예는 심미적인 완성도와 실용성까지 갖춘 예술작품입니다.”

이금미기자/lgm@joongboo.com

사진 강제원

tip 맥간공예란?

“결과 빛의 만남입니다. 보리 줄기의 조각과 조각이 서로 결을 달리하면서 빛에 따라, 각도에 따라 다른 빛깔을 만들어 내죠. 한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이 아니라 오래 봐도 실증이 나지 않는, 은은하고 담백한 예술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