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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오늘의 안철수와 어제의 민주당

[정동칼럼]오늘의 안철수와 어제의 민주당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오늘의 안철수는 어제의 민주당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당을 폐지하고, 완전국민경선제를 하자는 등의 정치 쇄신안은 사실 민주당의 과거 모습과 다르지 않다. 기득권을 축소하자며 의원 수를 273명으로 줄인 것은 1998년 집권 민주당이었다. 중앙당 폐지 역시 열린우리당 때부터 늘 들었던 주장이다. 국민경선제를 확대하고, 여론조사와 모바일 투표를 불러들이는 문제에서 민주당만큼 적극적인 정당도 없었다. 민주당이 무소속 대통령은 안 된다며 정당을 강조하는데, 이 문제에서도 기록을 세운 것은 재임 중 295일간 무소속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595일간 무소속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물론 안철수의 등장을 계기로 두드러진 현상도 있다. 그것은 군주정의 언어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고 통치자가 국민과 소통을 잘하고 신문고든 만민공동회든 국민의 소리를 귀 담아 들어 국민을 위한 선한 통치를 하겠다는 담론이 정치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모두들 이런 저런 정책 공약을 쏟아내지만 정작 그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이상한 현상도 문제다. 누구나 인정하듯, 민주정치의 핵심은 참여에 있다. 한데 민주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참여의 가치는, 이익과 열정이 있는 곳에 조직화를 가능케 하고 목소리 없던 집단들에게 목소리를 갖게 함으로써 공적 논의의 장을 풍부하게 하는 데 있다. 안철수의 정치관에는 그런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조직과 정당을 싫어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조직 대신 네트워크를 말하고 정당과 정부 대신 협치를 말하는데,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정치가 아닌 행정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정치적인 접근은, 한편으로는 조직화된 대중과 집단이 역할을 할 공간을 없애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과 정부의 책임성만 약화시킬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아마도 최고 통치자가 국민의 일반이익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그런 대중의 조직과 대표의 체계 없이도 국민 일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흥미롭게도 안철수는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 같다. 그 백미는 그의 “직접 민주주의 강화론”에서 볼 수 있다. 대의제를 축소하고 의원 수를 줄이고 지방자치 선거에서 정당공천을 없애고 그것도 모자라 국회의원 공천에서도 사실상 정당 공천을 없애겠다고 하면서 그가 늘 대안으로 말하는 것은 국민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 정치를 비생산적인 싸움 내지 기득권 다툼으로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기에 자신을 “정당 후보”와 맞서는 “국민 후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른다.

물론 대중 참여와 정당 대표의 원리 없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통치관이 안철수 후보에게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이 그간 계속해 온 정치개혁들이 이미 그 길을 충분히 개척해 놓았기도 했거니와, 그 결과 심화되어 온 여론동원 정치가 이를 부추긴 측면도 크다. 정치가 일반 시민들의 삶의 세계와는 유리되어 미디어 친화적인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는 양상이 심화되면서, 여론시장 이외의 곳에서 정치를 느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정치의 공간은 마을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체계적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일반 대중의 조직으로 기능하지 않게 된 정당은 여론동원체 이상이 아니게 되었는데, 그 결과 캠프 내에서 조직 담당의 역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여론조사 전문가 내지 정치 마케팅 전문가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런 민주주의의 길을 누가 열었을까. 결국 안철수 현상을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민주당 자신이 아닐까. 어느 후보로 단일화되든, 문재인이 승리하려면 안철수와 싸울 일이 아니라 민주당의 과거와 싸워야 하지 않나 싶다. 마찬가지로 안철수가 승리하려면 민주당의 과거로 갈 일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민주정치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문과 안의 힘이 결합되고 나란히 성장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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