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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박근혜 前 대통령_내용들

[고정애의 시시각각] 박근혜는 여성 정치인이다

[고정애의 시시각각] 박근혜는 여성 정치인이다

고정애정치국제부문 차장 인간은 망각한다.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인데도 말이다. 근래 여성 대통령 논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어두운 밤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 오가는 술잔, 결국 “우리가 남이가”로 끝나는 밀담들…, 정치는 온전히 남성만의 세계였다. 여성이 리더였던 건 건국 초기에나 가능했던 신화였다.

 그런 때에 여성 대통령, 다섯 글자를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 이도, 그래서 냉소부터 받은 이도,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반복한 이도, 결국 대통령 후보까지 된 이도 모두 한 사람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다.

 그, 아니 그녀가 어울리겠다. 그녀가 2000년 지명직 부총재를 마다하고 경선에 나섰을 때 남성들은 뜨악했다. 여성이라면 의당 남성 지도자가 준 자리에 안주해야 하던 때였다. 도전? 용납되지 않았다. 남성에겐 권력 의지지만 여성에겐 권력욕이었다. 한나라당-새누리당도 다를 거 없다-은 여성을 부속물로 여기곤 했다. 그런 속에서도 그녀는 1위를 위협하는 2위가 됐다. 그때 “이젠 여성 대통령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 이가 그녀다. 이듬해 대선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하자 남성들은 경악했다. 그녀는 “여성이 대통령을 하면 장점은 있어도 단점은 하나도 없다고 본다”고 했다.

 2004년엔 39년 만에 여성 당 대표가 됐고,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부터 당을 건사해 냈다. 다시 2년 뒤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 한명숙 전 총리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나이는 제가 많지만 정치적으론 박 대표가 선배다.

 ▶박=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안아 성공한 총리로 평가받길 바란다.

 ▶한=어려운 한국의 정치 구도 속에서 박 대표가 앞서서 개척자 역할을 했기에 많은 여성이 일할 기회를 갖게 됐다.

 여성 운동의 대모인 한 전 총리가 그녀를 ‘개척자’로 칭한 거다. 실로 개척자였다. 그녀가 당을 이끄는 동안 정치와 정책이 보다 성평등적이 됐다. 그녀가 의도했건 아니건 그녀로 인한 변화였다. 반대 당들도 차용하곤 했다. 한 전 총리가 그 예다. 선거 또는 위기 때 여성이 당의 얼굴이 된다는 법칙 아닌 법칙도 생겼다. 심상정·이정희의 역할이었다.

 정치인뿐이 아니었다. ‘여성 취재는 여성이 한다’는 이유 - 그땐 그랬다-에서 젊은 여기자들이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던 정치 취재에 발을 들여놓았고 상당수가 지금껏 남았다. 그녀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도 벌어졌을 변화일 거다. 그러나 분명 더뎠을 거다. 그녀가 양친 덕에 수월하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그녀 역시 고난과 차별을 겪었다. 뭇 여성 정치인들이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가 스러져갈 때도 그녀는 자리를 지켰다. 그녀란 존재로 인해 정치 분야에서만큼은 성평등 수준이 세계 135개국 중 108위인 게 가려질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가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자 정치쇄신”이라고 했을 때 “여성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야당, 특히 여성운동을 했다는 의원들이 비판한 건 온당치 못하다. 이런 역사를 몰랐다면 무지한 거고, 알았는데도 그랬다면 여성운동가로서의 근본을 잃은 거다.

 반면에 그녀의 권위적 리더십은 비판할 수 있고 또 비판해야 한다. 강한 여성 지도자는 지난 세기의 도그마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여성성이 없다”거나 “여성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고 비난한 건 미욱한 거다. 야당의 기준대로라면 남성적 리더십을 구사한 마거릿 대처와 골다 메이어, 직접 출산·보육을 경험하지 않은 앙겔라 메르켈과 줄리아 길라드도 여성 총리가 아닌 게다.

 더군다나 야당은 얼마 전 ‘대한민국 남자’를 대통령 슬로건으로 내걸려고 했다.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는 잠재의식의 발로였다. 그런 당이 이제 와 여성 대통령 덕목 운운하니 우습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고정애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ockham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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