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2-11-08 오전 8:20:59
조명을 받았던 출판기념회 행사가 있었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세 명의 대선 후보와 전현직 광역자치단체장 등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고, 현장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이 운집했다. <생명의 정치>라는 책을 낸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강 전 장관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1층 강의실에서 진행된 '열린 인터뷰'에서 이 책의 메시지는 "권력정치를 생명 중심 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데에 있다고 강조했다. 강 전 장관은 생명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치에 대해 접근하려는 시도를 했다면서, 자신이 보는 이번 대선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변화의 시대에 여성을 다시 묻는다'는 부제와 관련해, 최근 이슈가 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논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야권의 두 주요 대선주자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이날 인터뷰의 주요내용을 흐름에 따라 재정리했다. 이날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여성 대통령 박근혜, 안 되나?' 질문에 "안 된다!"
프레시안 : 우리 정치가 '생명의 정치'가 되려면 새누리당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여당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하는데, 안 되나?
강금실 : 안 되죠.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생명의 정치에서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젠더'(gender. 생물학적 성과 대비되는 사회·문화적 성 : 편집자)다. 1995년 세계여성대회에서도 여성을 젠더로 규정했다. 여자로 태어난 여성이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적 존재로서의 여성이다. 차별은 거기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자 남자를 놔두고 얘기하면 뭐가 차별이 있는지 알기 어렵지만, 사회경제체제로 들어왔을 때 차별이 있다.
박근혜 후보는 젠더로서의 여성의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 박 후보의 정체성은 '여성 정치인'이 아니라 '2세 정치인'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2세 정치인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철저히 아버지 모델, 어머니 이미지를 인용하고 있는 박 후보는 독립된 여성 정치인이 아니다.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과거.
더구나 박 후보가 모델로 삼는 그 아버지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권력 패러다임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쓰는데, 대개 성장 패러다임이라는 뜻이지만 저는 권력 패러다임으로서 이 말을 썼다. 성장 패러다임은 이미 폐기한 것이고 그러니 새누리당도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는데, 권력 패러다임으로서의 '박정희 패러다임'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여성이 대통령 할 때가 됐다'는 말에 대해 박 후보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4.11 총선이다.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공천을 받은 223명 가운데 여성이 10.8%다. 새누리당은 231명 가운데 16명, 7%다. 박 후보가 여성 대표성을 갖고 있다면 이런 수치는 나올 수 없다.
지금 새누리당 정치인들 중에 여성 현역의원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나? (공천헌금 파동 사태의) 현영희 의원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웃음) 조윤선 대변인도 공천 못 받았고, 이혜훈 최고위원도 국회의원 아니다. 수치가 말해준다.
박 후보에 대해 한 가지 더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제가 법을 전공해서 예민한지 모르지만, 인혁당 사건을 민혁당이라고 했다든지,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했다든지, 정수장학회 기자회견과 관련해 판결을 읽지 않고 나왔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공부를 전혀 안 하는 지성이 부족한 지도자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21세기 정치가 복잡해지고 융합, 통합이란 말이 나올 정도인데 '두 개의 판결' 얘기를 보고 헌법 인식이 없는 게 아니냐, 불안하고 위험한 분이라는 생각이 있다.
청중 : 혹시 여성 정치인 가운데 눈에 띄는 분이 있나?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차기 여성 대통령 감이다 싶은?
강금실 : 두 가지가 있다. 한국이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 발표 성 격차 순위에서 135개국 가운데 108등을 했다. 40년 새누리당 정권에서 쌓인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했는데도 아예 여성은 사람 취급 못 받는 삶을 살아왔다. 격차가 너무 심해 전체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하나는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다.
또 하나는 최초로 벽을 깨는 여성들, 소수자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여성 정치인이 15%도 안 될 정도지만, 시장 선거에도 대통령 선거에도 나오는 것이 의미는 있다. 그러나 박 후보가 그런 '최초'(라는 의미)를 가질 만한 여성의 대표성이 있냐는 건 분명히 해야 한다.
전체적인 기반에서 지역 구도도 바뀌고 동등하게 올라와야 한다고 보고, 그러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문제가 안 되는 사회가 올 거다. 지난 번 총선 속에서도 크게 성장할 여성 정치인들이 나오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얘기하는 건 좀…. 다 거론할 수도 없다. (웃음)
순수한 문재인, 강한 안철수에 바란다
프레시안 : 야권에서 다시 후보 단일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상식적으로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왜 해야 하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후보 지지층에서는 못 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강금실 : 정치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모두가 겪는 어려움인데, '왜 사는지' 소신과 철학이 담긴 답을 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다. 개인 문제이기도 하고 여성, 청소년 문제이기도 하고, 세대·정치 문제기도 하다. 중학생만 돼도 아침부터 밤까지 과외하고 성적에 시달린다. 왜인가? 전체적으로 물량주의에 너무 압도당해 있다. 이명박 정부 책임도 있지만 시대흐름에서 놓치고 압도당한 부분이 있다.
정치 용어를 쓸 때 용어에 개념이 담겨야 한다. 오늘 오면서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가치가 굉장히 강조돼야 한다. 2007년 대선 때 '경제 살리기'라는 물량적 가치를 선택했는데 배반당한 거다. 이번 선거에서는 공존해야 하고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고 함께 사는 삶과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왜 해야 하느냐, 권력 패러다임(으로서의),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해야만 다른 삶을 추구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정권교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선거는 수평적 권력교체가 아니다. 지역구도에 기반해 사실상 비민주적인 권력정치가 돼왔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정상적 보수정당으로 바뀌기 위해서라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
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권력정치의 방법은 2가지가 가장 큰 수단인데 첫째가 지역주의 공고화다. 선거구제를 통해서 영남 67석 대 호남 30석으로 시작한다. 지금 우리는 정치권이 보혁논란을 벌이면서 동등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착시를 일으키는데, 기반과 여건에서 새누리당이 유리한 채 고착된 상태로 가고 있다. 민주당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여건도 있다. 둘째는 언론과 권력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수시기관, 정보기관 등이 집권자를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방식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권교체'라는 말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원탁회의 등 원로 분들이 '이기는 단일화'라는 말씀을 했는데 '뭔가 의미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뜻이신 것 같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복지, 여성까지 갖다 쓰면서 정책 차이가 안 나게 됐는데 (예를 들어) '생명의 정권교체' 같은 말을 썼으면 좋겠다.
저는 단일화라는 말, 용어 자체에 좀 부정적이다. 지난 언론 인터뷰에서도 단일화란 말이 불편하다고 했다. '단일화'는 통합이 아니라 배제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최근 학자들이나 원로들이 가치연합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처음부터 조심해서 새로운 가치를 담은 말을 만들어내고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혁신, 쇄신, 정권교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얼마나 절박한가에 대해서는 과연 정치권이 절박한가 하는 지점에서 좀 실망스럽다.
프레시안 : 야권에서는 대선 후보로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나왔다. 강 전 장관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치에 비춰, 두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강금실 : 그래도 저런 분들이 정치에 나온 건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낙관을 하게 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보면, 그가 이상으로 꼽은 정치가 철인정치다. 이는 제일 정치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불러다 맡기는 것인데, 권력의지가 있으면 위험하다는 말이다. 문 후보도 총선 때 티베트까지 '도망'가신 걸로 유명하다. (웃음) 안 후보도 1년 가까이 '책임 있는 정치 할 수 있는가' 고민했다. 권력 욕심이 있었으면 '잘 됐네'하고 나왔을 텐데.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헌법을 생각하는, 제가 말씀드린 위험한 권력의지가 아니라 헌법수호 의지와 공동선의 의지가 있는 분들이 야권 후보라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두 분이 이겨서 나라를 이끌어 나가면, 당장 많은 문제가 해결이야 되겠냐마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힘을 합쳐 나가면서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두 후보의 공통점이 있는데, 기존 정치인이 아니면서 신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진정성과 능력이 있는 지성인이라는 점에서 좋은 후보인 것 같다.
프레시안 : 출판기념회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강 전 장관이 단일화의 배후다, 장외 세력이다, 심지어 안철수 편이다, 이런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하시는 역할이 있나?
강금실 :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제가 이번 대선에 얼마만큼이든 미력이나마 기여하는 게 저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정권 동안 새누리당이 40년 집권했고 야당이 10년 했다. 그 10년 동안 겨우 여성을 끌어올린 거다. 김대중 정권 때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하고, 여성부 신설하고, 참여정부 초기 법무장관이 저였다. 그 역할을 하고 혜택을 누린 사람으로서, 이번 대선은 제가 원하는 권력 패러다임 극복을 위해 할 만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단일화 역할은 제가 원하는 역할은 아니고, 무슨 장외세력이나 중재역할, 이런 것은 제가 비판하는 권력 패러다임이다. 사실을 가치관이나 의미로 접근하지 않고 권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굉장히 안 좋은 발상이다. '출판기념회에 문재인도 오고, 안철수도 오고. 강금실 막강하네. 그 영향력이 어디로?' 이런 거 아닌가.
대선에서는 국민이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고 있으니 두 후보가 최고의 권력이다. 단일화는 집권을 위한 과정이고, 후보들이 고도의 정치협상을 해내는 전문성과 노련함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지 제3자가 중재역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제3자가 장외세력으로 끼어드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두 후보에게 책을 주시면서 덕담을 다르게 적어 주셨더라. 문 후보에게는 '꼭 승리하소서', 안 후보에게는 '아름다운 승리'라고 했는데 한편에서는 '아름답다'는 게 이상하다, 양보하라는 뜻 아니냐 그런 해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웃음)
강금실 : 그건 아니다. 각자 가까운 분을 통해 책을 보냈는데 같은 날이 아니라 문 후보에게 좀 뒤에 보냈다. 문 후보에게 보냈을 때가 아마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오를 때고 야권이 단일화해도 진다는 분석이 나와서, 승리가 간절해서 그랬나 보다. (웃음)
프레시안 : 트위터에 올라온 강 전 장관에 대한 질문 가운데, 강 전 장관이 보는 두 후보의 매력이 뭐냐는 내용이 많다. 강 전 장관의 눈을 통해 두 대선후보를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강금실 : 안철수 후보와는 밥 한 번 먹고, 초상집에서 인사 한 번 하고, 이번에 출판기념회에서 인사하고, 그게 다다. 문 후보님은 제가 같이 일했는데, 두 분 다 순수한 분이시다. 문 후보는 성품이 보는 그대로다. 문 후보가 민정수석, 제가 법무장관일 때 법무부 검찰국의 검사장 등 검찰 간부들과 회식을 한 적이 있는데, 검찰 간부들이 '문학소년 같다'며 놀라더라.
안 후보는 1시간 이상 마주앉은 게 딱 한 번인데, 굉장히 강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강하고 많이 듣는 분이다. 제가 한 시간을 떠들었는데 딱 두 마디인가, 세 마디밖에 안했다. 그렇다고 안 듣느냐, 그게 아니라 유심히 듣는다. 안 후보에 대해 제가 높이 평가하는 건, 벤처 1세대로 그렇게 비즈니스를 한국사회에서 했다는 점에서 투명성에 대한 대단한 의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보면 야권의 두 후보는 선거운동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은지?
강금실 : 야권의 승리를 기대하는 국민이 더 많다고 본다. 두 후보 중에 어느 후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두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의 마음을 합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대선을 치러야 하고, 누가 후보가 되느냐는 국민이 선택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과정이 왜 중요하냐면, 의미와 가치는 '스토리'(이야기) 속에 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으면 삶이 메마르고 가치가 없어진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요즘 왜 여론조사가 매일매일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좀 위험할 수 있다. 거기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 속에서 충분히 얘기하다 보면 저절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얘기가 뭔지 결론이 나지 않나. 그게 다수결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반대 실컷 하고 결론이 선택돼야 평화로운 공동체가 된다.
프레시안 : 6일 두 후보가 단독 회동을 하기로 오늘(5일) 결정됐다. 기사가 발행될 때쯤이면 이미 회동이 끝난 후일 테지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강금실 : (웃음) 외람되게 제가 무슨 말을 하겠나. 제 입장은 하여간 새누리당 집권을 막아야지만 우리 정치도 바뀔 수 있고 사회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분 마음만 합치되는 게 아니라 국민 마음 전체를 '으쌰으쌰'해서 축제처럼 선거가 이뤄지도록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
청중 :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국민들 의식이 향성되면 지도자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정치도 정치지만, 국민들의 정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한 것 같다.
강금실 : 물론 권력자인 국민의 의지나 민도가 중요하지만, 국민 탓이라기보다 정치인들의 책임인 게 사실이다. 25년 전(87년 대선)에 이미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놓쳤다. 놓친 다음에는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3당 합당을 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됐다. 그걸 국민 탓이라 하긴 어렵다.
청중 : 안철수 후보가 강조하는 정당 혁신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강금실 : 그건 민주당이나 안철수 캠프의 정치인들이 고민할 문제지 제가 답할 문제가 아니긴 한데, (웃음) 4.11 총선에서 기대 이하로 패배했잖나. 그런데 패배한 과정과 원인에 대해 충분한 평가가 없었던 것 같다. 국민들이 뭔가를 기대했는데 왜 나빴는지 분석하고 평가해야 대안이 나온다. 그런 과정을 잘 보여주지 않은 것이 부정적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촛불집회, 희망버스…생명정치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프레시안 : 최근 출간된 강 전 장관의 저서 <생명의 정치>는 반응이 어떤가?
강금실 : 책을 좀 홍보하려고 기자간담회도 하고 매스컴에 열심히 나갔다. 그런데 오늘이 당분간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다. (인터뷰를 하면) 처음에는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하다가 다 정치 현안, 단일화로 넘어가서…. (웃음) 제가 대선 현안에 대해 거론하고 그럴 입장이 아니다.
하면서 좋았던 건 여성들이 많이 공감해 주셨고, 여성운동·환경운동 하시는 분들이 반가워해 주시더라. 두물머리 미사를 3년째 하고 계신 윤종일 신부님께서 여러 번 메시지로 격려해 주셨고,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에서도 여성 이슈를 제기한 것에 굉장히 공감하면서 '북파티'를 지역 순회로 하자고 해주셔서 같이 하게 될 것 같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하다.
프레시안 : 출판기념회에서 안철수 후보가 책 내용을 잠깐 언급하던데, 현직 정치인들로부터 반향이 좀 있었나?
강금실 :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출판기념회에 초대하느라 통화할 때 굉장히 공감하신다고 하더라. 길게 통화는 못 했지만, 생명정치라는 주제를 꺼낸 것 자체가 잘 한 것 같다, 공감한다고 말하셨다.
프레시안 : 아직 못 읽은 독자들을 위해 책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강금실 : 여성, 생명, 생태, 권력을 다뤘다. 생명에 대해 과학적, 철학적으로 통합적인 접근을 하려 했다. 대선 시기에서는 생명과 권력의 대립적 측면, 권력정치를 생명 중심 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금씩 배운 공부인데 책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생명의 관점에서 역사를 정리하면 일관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문명 속에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권력이 있고 그에 저항하는 힘이 있어 민주주의로 역사가 발전하는데, 그 저항하는 힘의 원천이 생명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이런 부분이 와 닿았다. 김주열 열사가 돌아가시고 4.19가 일어났고, YH노동자 김경숙 씨가 사망한 이후 부마항쟁이 터져 박정희 정권이 몰락했다. 이한열 열사 이후 6월항쟁이 생겼고, 광우병 촛불시위도 생명과 연관된 부분이다.
강금실 : 저의 첫 발견인지는 모르지만 여성과 생명으로 (근대사를) 돌아보며 저도 느꼈다. 생명이 직접 희생당하는 상징적 사건이 기폭제가 돼서 저항이 시작되더라. 학교 급식을 통해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모차부대, 여중생, 여고생들이 나왔다. 학생들 가운데 80%가 여학생이었다.
본능적으로 생명에 대한 자각에서 여성이 빨랐던 게 아닌가 싶고 그 흐름이 희망버스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한다. YH 노조 사태 때는 여성 노동자가 떨어져 죽었지만, 희망버스에서는 다 몰려가 축제를 벌이며 여성 노동자(김진숙 지도위원)를 살려냈다.
그 흐름이 (10.26 보궐선거에서) 무상급식으로 이어지는데, 무상급식은 10년 전부터 어머니들이 '무상급식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하다가 정치 아젠다가 됐고 서울시장이 바뀌었다. 또 원전 문제도 그렇고 이미 우리는 생명이 이슈가 되고 주제가 되는 사회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아직 정치가 그 준비를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꼭 바뀌어야 한다. 중요한 시기다.
프레시안 : 촛불집회, 무상급식이 긍정적으로 보면 생명정치의 씨앗이지만, 아직 '정치'라고 하면 누가 권력을 잡느냐 하는 권력투쟁이라는 인식이 깊다. 쉽게 바뀔 수 있을까?
강금실 : 우리 시대와 사회가 이미 생명이 아젠다가 될 정도이고 생명의 원리와 닮은 네트워크 사회가 시작됐는데, 정치가 지나치게 과거에 매여 있으면 사회가 굉장한 혼란과 지체를 겪을 것이다. 5년의 퇴행을 겪었는데 5년을 또 겪으면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권력 패러다임 정치를 종식시켜야 한다. 새누리당이 패배해야만 새누리당 중심으로 진행돼 온 권력중심 정치가 바뀔 수 있다.
프레시안 : 생명이 중심이 돼야 하고 전통적인 권력의지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민주통합당은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나?
강금실 : 저도 박정희 패러다임의 시대에 성장하고 세계관이 형성된 세대다. 통합진보당 사태나 여러 가지를 보면 우리 스스로도 그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똑같냐, 그렇지는 않다. 민주당은 개혁정당의 정통성을 가진, 생명을 해치는 억압에 저항한 명실상부한 정통 야당이기 때문에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 뭐가 문제냐, 과거의 권력 패러다임이라는 관점에서는 정통 야당이지만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 안철수 후보 출마 선언에 대한 20대들의 반응을 보고 뭘 느꼈나 하면, 20~30대는 정당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당의 미래다. 민주당이 미래세력이 되려면 미래세대의 가치에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아직 전환이 안 됐달까?
또 하나 이번 대선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 권력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공존·소통하는 정치로 넘어가는 가치의 문제다. 우리 사회 전체가 무한경쟁,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다 힘들다. 정치권도 자유롭지 않다. 왜 민주당이 총선에서 평가를 못 받고 지금도 지적받을까?
대통합은 했으나 가치를 부각시키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물량주의 접근으로 흐른 게 아닌가 한다. 야권연대도 그랬고, 합치는 건 되는데 '무엇을 왜 합치냐'라는 가치의 얘기를 안 하면 나중에 효과가 없어져 버리는 딜레마가 있다. 의미를 묻고, 가치를 담고, 그런 용어를 써야 한다.
프레시안 : 네트워크 사회와 관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생명 같다고 책에 쓰셨다. SNS가 생명정치로 바꾸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강금실 : 이미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세상이 바뀌는 체험을 나누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뿐 아니라 월드컵 때, 효선이 미순이 사태 때를 겪으면서 이미 그때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모이고 축제를 벌이는 게 가능해졌다.
그 힘은 4.19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저항이 축제의 형식으로 전환되는 것은 1987년 이애주 선생의 '시국춤'이다. 추모이면서 저항이면서 승리의 축제를 벌였고 그게 2002년 월드컵으로 넘어왔다. 이미 우리 사회는 바뀌었는데 권력 중심 패러다임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
'강금실, 정치 다시 하나?' 질문에 "내년부터 적극 활동"
프레시안 : 책에 좋은 말씀을 많이 쓰셨는데, 정치판이 '아싸리판'인데 이게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느낌이 있다. 강 전 장관도 국무위원 외에 서울시장 선거 출마도 하셨고 2008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내셨다. 지금은 정치와 한 발 떨어져 계신데, 정치에서는 손을 떼신 건가?
강금실 : 민주당 최고위원 잠시 한 후에 대학원 가서 공부하고 변호사 하면서 생활해 왔고, 지금도 그 활동 계속해 왔다. 현역 정치인으로 복귀 의사는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책 내면서 내년부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은 있다. 책에서 드린 말씀을 많이 나누고 심화·발전시키는 독서모임이나 포럼 등을 생각하고 있다.
프레시안 : 직접 정치는 아니라도 영향을 미치는 사회활동을 하시겠다는 말인가?
강금실 : 사회활동이라도 할 수 있고, 정치하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웃음) 좀 유연하게 생각해 달라. 너무 이분법적인 것 같다.
프레시안 : 강 전 장관이 보는 이번 대선의 의미는?
강금실 : 저는 권력중심의 정치 패러다임이 극복돼야 한다, 소통과 네트워크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대학 강연에 가서 강조한 것은 권력과 생명의 관계 부분이다. 헌법에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돼 있지만, 많은 분들의 무의식·내면에는 권력은 집권세력의 것이라는 게 각인돼 있다. 권력은 국민의 것이고,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권력은 국민의 힘인데, 그것은 국민 존재 자체가 지구로부터 우주를 통해 받은 생명의 힘이다. 새싹도 언 땅을 뚫는 힘이 있다. 그게 권력이고, 내가 권력이다. 그런데 너무 거꾸로 생각한다.
"검찰개혁? 검찰 권력의 근본은 정경유착 사회에 있다"
청중 : 생명의 정치로의 권력 패러다임 변화라는 면에서 주로 정치권력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셨을 만큼 시장의 힘이 세졌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강금실 :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유산이 한국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떤 분이 기업도 군사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 우리 경제와 기업은 국가권력과 결합해 성장했다. 군사문화가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 시장권력이라는 요소 중에도 가장 밑바닥에 남아 있다 본다. 제왕적인 CEO 등을 보면 정치조직 문화가 전 사회의 모델이 됐다는 것이다.
경제의 힘이 강해도 저는 근본적으로 정경유착 사회라고 본다. 검찰의 힘이 세다고 비판하지만 그걸 받쳐주는 게 정경유착이 해결 안 되는 후진국형 권력구조다. 뇌물 문제가 터지니 (정치인과 기업인을 수사하는) 검찰의 권력이 셀 수밖에 없다. 그런 후진국형 구조를 청산한다면, 최소한 정치와 경제가 단절되고 자체적으로 투명하다면, 검찰의 힘이 세질 수가 없다.
경제와 시장 권력의 밑바닥에는 그렇게 형성된 힘이 발휘되고 있다. 정치권력이 공정거래를 철저히 보장해서 정말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본다. 방치하다가는 권위주의 정치가 국가기관을 사유화해서 이용하려 든다. 실제로 불법사찰, 문화방송 문제가 일어났지 않나? 정치집단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본다. 근원에서 투명해지고 공평해지면 다는 안 되겠지만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라 본다.
청중 : 검찰개혁 얘기가 나온 김에, 참여정부에서 검찰개혁을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강금실 : 아주 직접적인 건 대선자금 수사다. 검찰의 수사 중립을 지켜주면서 인사권으로 검찰도 개혁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선자금 수사야말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연결고리인데 그게 검찰개혁과 맞물린 거다.
대선자금 수사는 역사상 처음 일어난 거다.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결단을 내린 것이고, 사회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칼을 뽑아서 실험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대선자금 수사는 됐지만 검찰개혁은 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그 큰 개혁을 하고 싶었다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까지 당했고 미완으로 그만둔 것인데, 이번 정권은 그 미완의 개혁을 해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 정부) 10년이 재평가돼야 한다. 잘한 것도 많고 잘못한 것도 많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특검도 하고 있는데 그 특검을 언제 처음 했나? 김대중 정부 당시가 첫 번째였다. 생각해 보면 거의 모든 권력 견제 장치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만든 것이다. 생각 밖으로 많은 일을 했는데 저평가된 측면 있다.
지난달 29일, 정치권과 언론의 집중 강 전 장관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1층 강의실에서 진행된 '열린 인터뷰'에서 이 책의 메시지는 "권력정치를 생명 중심 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데에 있다고 강조했다. 강 전 장관은 생명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치에 대해 접근하려는 시도를 했다면서, 자신이 보는 이번 대선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변화의 시대에 여성을 다시 묻는다'는 부제와 관련해, 최근 이슈가 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논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야권의 두 주요 대선주자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이날 인터뷰의 주요내용을 흐름에 따라 재정리했다. 이날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5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열린 '열린 인터뷰'에서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여성 대통령 박근혜, 안 되나?' 질문에 "안 된다!"
프레시안 : 우리 정치가 '생명의 정치'가 되려면 새누리당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여당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하는데, 안 되나?
강금실 : 안 되죠.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생명의 정치에서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젠더'(gender. 생물학적 성과 대비되는 사회·문화적 성 : 편집자)다. 1995년 세계여성대회에서도 여성을 젠더로 규정했다. 여자로 태어난 여성이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적 존재로서의 여성이다. 차별은 거기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자 남자를 놔두고 얘기하면 뭐가 차별이 있는지 알기 어렵지만, 사회경제체제로 들어왔을 때 차별이 있다.
박근혜 후보는 젠더로서의 여성의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 박 후보의 정체성은 '여성 정치인'이 아니라 '2세 정치인'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2세 정치인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철저히 아버지 모델, 어머니 이미지를 인용하고 있는 박 후보는 독립된 여성 정치인이 아니다.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과거.
더구나 박 후보가 모델로 삼는 그 아버지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권력 패러다임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쓰는데, 대개 성장 패러다임이라는 뜻이지만 저는 권력 패러다임으로서 이 말을 썼다. 성장 패러다임은 이미 폐기한 것이고 그러니 새누리당도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는데, 권력 패러다임으로서의 '박정희 패러다임'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여성이 대통령 할 때가 됐다'는 말에 대해 박 후보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4.11 총선이다.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공천을 받은 223명 가운데 여성이 10.8%다. 새누리당은 231명 가운데 16명, 7%다. 박 후보가 여성 대표성을 갖고 있다면 이런 수치는 나올 수 없다.
지금 새누리당 정치인들 중에 여성 현역의원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나? (공천헌금 파동 사태의) 현영희 의원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웃음) 조윤선 대변인도 공천 못 받았고, 이혜훈 최고위원도 국회의원 아니다. 수치가 말해준다.
박 후보에 대해 한 가지 더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제가 법을 전공해서 예민한지 모르지만, 인혁당 사건을 민혁당이라고 했다든지,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했다든지, 정수장학회 기자회견과 관련해 판결을 읽지 않고 나왔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공부를 전혀 안 하는 지성이 부족한 지도자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21세기 정치가 복잡해지고 융합, 통합이란 말이 나올 정도인데 '두 개의 판결' 얘기를 보고 헌법 인식이 없는 게 아니냐, 불안하고 위험한 분이라는 생각이 있다.
청중 : 혹시 여성 정치인 가운데 눈에 띄는 분이 있나?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차기 여성 대통령 감이다 싶은?
강금실 : 두 가지가 있다. 한국이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 발표 성 격차 순위에서 135개국 가운데 108등을 했다. 40년 새누리당 정권에서 쌓인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했는데도 아예 여성은 사람 취급 못 받는 삶을 살아왔다. 격차가 너무 심해 전체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하나는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다.
또 하나는 최초로 벽을 깨는 여성들, 소수자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여성 정치인이 15%도 안 될 정도지만, 시장 선거에도 대통령 선거에도 나오는 것이 의미는 있다. 그러나 박 후보가 그런 '최초'(라는 의미)를 가질 만한 여성의 대표성이 있냐는 건 분명히 해야 한다.
전체적인 기반에서 지역 구도도 바뀌고 동등하게 올라와야 한다고 보고, 그러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문제가 안 되는 사회가 올 거다. 지난 번 총선 속에서도 크게 성장할 여성 정치인들이 나오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얘기하는 건 좀…. 다 거론할 수도 없다. (웃음)
▲강금실 전 법무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순수한 문재인, 강한 안철수에 바란다
프레시안 : 야권에서 다시 후보 단일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상식적으로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왜 해야 하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후보 지지층에서는 못 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강금실 : 정치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모두가 겪는 어려움인데, '왜 사는지' 소신과 철학이 담긴 답을 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다. 개인 문제이기도 하고 여성, 청소년 문제이기도 하고, 세대·정치 문제기도 하다. 중학생만 돼도 아침부터 밤까지 과외하고 성적에 시달린다. 왜인가? 전체적으로 물량주의에 너무 압도당해 있다. 이명박 정부 책임도 있지만 시대흐름에서 놓치고 압도당한 부분이 있다.
정치 용어를 쓸 때 용어에 개념이 담겨야 한다. 오늘 오면서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가치가 굉장히 강조돼야 한다. 2007년 대선 때 '경제 살리기'라는 물량적 가치를 선택했는데 배반당한 거다. 이번 선거에서는 공존해야 하고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고 함께 사는 삶과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왜 해야 하느냐, 권력 패러다임(으로서의),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해야만 다른 삶을 추구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정권교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선거는 수평적 권력교체가 아니다. 지역구도에 기반해 사실상 비민주적인 권력정치가 돼왔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정상적 보수정당으로 바뀌기 위해서라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
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권력정치의 방법은 2가지가 가장 큰 수단인데 첫째가 지역주의 공고화다. 선거구제를 통해서 영남 67석 대 호남 30석으로 시작한다. 지금 우리는 정치권이 보혁논란을 벌이면서 동등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착시를 일으키는데, 기반과 여건에서 새누리당이 유리한 채 고착된 상태로 가고 있다. 민주당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여건도 있다. 둘째는 언론과 권력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수시기관, 정보기관 등이 집권자를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방식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권교체'라는 말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원탁회의 등 원로 분들이 '이기는 단일화'라는 말씀을 했는데 '뭔가 의미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뜻이신 것 같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복지, 여성까지 갖다 쓰면서 정책 차이가 안 나게 됐는데 (예를 들어) '생명의 정권교체' 같은 말을 썼으면 좋겠다.
저는 단일화라는 말, 용어 자체에 좀 부정적이다. 지난 언론 인터뷰에서도 단일화란 말이 불편하다고 했다. '단일화'는 통합이 아니라 배제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최근 학자들이나 원로들이 가치연합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처음부터 조심해서 새로운 가치를 담은 말을 만들어내고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혁신, 쇄신, 정권교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얼마나 절박한가에 대해서는 과연 정치권이 절박한가 하는 지점에서 좀 실망스럽다.
프레시안 : 야권에서는 대선 후보로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나왔다. 강 전 장관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치에 비춰, 두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강금실 : 그래도 저런 분들이 정치에 나온 건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낙관을 하게 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보면, 그가 이상으로 꼽은 정치가 철인정치다. 이는 제일 정치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불러다 맡기는 것인데, 권력의지가 있으면 위험하다는 말이다. 문 후보도 총선 때 티베트까지 '도망'가신 걸로 유명하다. (웃음) 안 후보도 1년 가까이 '책임 있는 정치 할 수 있는가' 고민했다. 권력 욕심이 있었으면 '잘 됐네'하고 나왔을 텐데.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헌법을 생각하는, 제가 말씀드린 위험한 권력의지가 아니라 헌법수호 의지와 공동선의 의지가 있는 분들이 야권 후보라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두 분이 이겨서 나라를 이끌어 나가면, 당장 많은 문제가 해결이야 되겠냐마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힘을 합쳐 나가면서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두 후보의 공통점이 있는데, 기존 정치인이 아니면서 신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진정성과 능력이 있는 지성인이라는 점에서 좋은 후보인 것 같다.
프레시안 : 출판기념회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강 전 장관이 단일화의 배후다, 장외 세력이다, 심지어 안철수 편이다, 이런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하시는 역할이 있나?
강금실 :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제가 이번 대선에 얼마만큼이든 미력이나마 기여하는 게 저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정권 동안 새누리당이 40년 집권했고 야당이 10년 했다. 그 10년 동안 겨우 여성을 끌어올린 거다. 김대중 정권 때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하고, 여성부 신설하고, 참여정부 초기 법무장관이 저였다. 그 역할을 하고 혜택을 누린 사람으로서, 이번 대선은 제가 원하는 권력 패러다임 극복을 위해 할 만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단일화 역할은 제가 원하는 역할은 아니고, 무슨 장외세력이나 중재역할, 이런 것은 제가 비판하는 권력 패러다임이다. 사실을 가치관이나 의미로 접근하지 않고 권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굉장히 안 좋은 발상이다. '출판기념회에 문재인도 오고, 안철수도 오고. 강금실 막강하네. 그 영향력이 어디로?' 이런 거 아닌가.
대선에서는 국민이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고 있으니 두 후보가 최고의 권력이다. 단일화는 집권을 위한 과정이고, 후보들이 고도의 정치협상을 해내는 전문성과 노련함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지 제3자가 중재역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제3자가 장외세력으로 끼어드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두 후보에게 책을 주시면서 덕담을 다르게 적어 주셨더라. 문 후보에게는 '꼭 승리하소서', 안 후보에게는 '아름다운 승리'라고 했는데 한편에서는 '아름답다'는 게 이상하다, 양보하라는 뜻 아니냐 그런 해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웃음)
강금실 : 그건 아니다. 각자 가까운 분을 통해 책을 보냈는데 같은 날이 아니라 문 후보에게 좀 뒤에 보냈다. 문 후보에게 보냈을 때가 아마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오를 때고 야권이 단일화해도 진다는 분석이 나와서, 승리가 간절해서 그랬나 보다. (웃음)
프레시안 : 트위터에 올라온 강 전 장관에 대한 질문 가운데, 강 전 장관이 보는 두 후보의 매력이 뭐냐는 내용이 많다. 강 전 장관의 눈을 통해 두 대선후보를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 후보는 1시간 이상 마주앉은 게 딱 한 번인데, 굉장히 강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강하고 많이 듣는 분이다. 제가 한 시간을 떠들었는데 딱 두 마디인가, 세 마디밖에 안했다. 그렇다고 안 듣느냐, 그게 아니라 유심히 듣는다. 안 후보에 대해 제가 높이 평가하는 건, 벤처 1세대로 그렇게 비즈니스를 한국사회에서 했다는 점에서 투명성에 대한 대단한 의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보면 야권의 두 후보는 선거운동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은지?
강금실 : 야권의 승리를 기대하는 국민이 더 많다고 본다. 두 후보 중에 어느 후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두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의 마음을 합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대선을 치러야 하고, 누가 후보가 되느냐는 국민이 선택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과정이 왜 중요하냐면, 의미와 가치는 '스토리'(이야기) 속에 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으면 삶이 메마르고 가치가 없어진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요즘 왜 여론조사가 매일매일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좀 위험할 수 있다. 거기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 속에서 충분히 얘기하다 보면 저절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얘기가 뭔지 결론이 나지 않나. 그게 다수결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반대 실컷 하고 결론이 선택돼야 평화로운 공동체가 된다.
프레시안 : 6일 두 후보가 단독 회동을 하기로 오늘(5일) 결정됐다. 기사가 발행될 때쯤이면 이미 회동이 끝난 후일 테지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강금실 : (웃음) 외람되게 제가 무슨 말을 하겠나. 제 입장은 하여간 새누리당 집권을 막아야지만 우리 정치도 바뀔 수 있고 사회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분 마음만 합치되는 게 아니라 국민 마음 전체를 '으쌰으쌰'해서 축제처럼 선거가 이뤄지도록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
청중 :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국민들 의식이 향성되면 지도자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정치도 정치지만, 국민들의 정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한 것 같다.
강금실 : 물론 권력자인 국민의 의지나 민도가 중요하지만, 국민 탓이라기보다 정치인들의 책임인 게 사실이다. 25년 전(87년 대선)에 이미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놓쳤다. 놓친 다음에는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3당 합당을 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됐다. 그걸 국민 탓이라 하긴 어렵다.
청중 : 안철수 후보가 강조하는 정당 혁신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강금실 : 그건 민주당이나 안철수 캠프의 정치인들이 고민할 문제지 제가 답할 문제가 아니긴 한데, (웃음) 4.11 총선에서 기대 이하로 패배했잖나. 그런데 패배한 과정과 원인에 대해 충분한 평가가 없었던 것 같다. 국민들이 뭔가를 기대했는데 왜 나빴는지 분석하고 평가해야 대안이 나온다. 그런 과정을 잘 보여주지 않은 것이 부정적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촛불집회, 희망버스…생명정치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프레시안 : 최근 출간된 강 전 장관의 저서 <생명의 정치>는 반응이 어떤가?
강금실 : 책을 좀 홍보하려고 기자간담회도 하고 매스컴에 열심히 나갔다. 그런데 오늘이 당분간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다. (인터뷰를 하면) 처음에는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하다가 다 정치 현안, 단일화로 넘어가서…. (웃음) 제가 대선 현안에 대해 거론하고 그럴 입장이 아니다.
하면서 좋았던 건 여성들이 많이 공감해 주셨고, 여성운동·환경운동 하시는 분들이 반가워해 주시더라. 두물머리 미사를 3년째 하고 계신 윤종일 신부님께서 여러 번 메시지로 격려해 주셨고,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에서도 여성 이슈를 제기한 것에 굉장히 공감하면서 '북파티'를 지역 순회로 하자고 해주셔서 같이 하게 될 것 같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하다.
프레시안 : 출판기념회에서 안철수 후보가 책 내용을 잠깐 언급하던데, 현직 정치인들로부터 반향이 좀 있었나?
강금실 :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출판기념회에 초대하느라 통화할 때 굉장히 공감하신다고 하더라. 길게 통화는 못 했지만, 생명정치라는 주제를 꺼낸 것 자체가 잘 한 것 같다, 공감한다고 말하셨다.
프레시안 : 아직 못 읽은 독자들을 위해 책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강금실 : 여성, 생명, 생태, 권력을 다뤘다. 생명에 대해 과학적, 철학적으로 통합적인 접근을 하려 했다. 대선 시기에서는 생명과 권력의 대립적 측면, 권력정치를 생명 중심 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금씩 배운 공부인데 책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생명의 관점에서 역사를 정리하면 일관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문명 속에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권력이 있고 그에 저항하는 힘이 있어 민주주의로 역사가 발전하는데, 그 저항하는 힘의 원천이 생명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이런 부분이 와 닿았다. 김주열 열사가 돌아가시고 4.19가 일어났고, YH노동자 김경숙 씨가 사망한 이후 부마항쟁이 터져 박정희 정권이 몰락했다. 이한열 열사 이후 6월항쟁이 생겼고, 광우병 촛불시위도 생명과 연관된 부분이다.
강금실 : 저의 첫 발견인지는 모르지만 여성과 생명으로 (근대사를) 돌아보며 저도 느꼈다. 생명이 직접 희생당하는 상징적 사건이 기폭제가 돼서 저항이 시작되더라. 학교 급식을 통해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모차부대, 여중생, 여고생들이 나왔다. 학생들 가운데 80%가 여학생이었다.
본능적으로 생명에 대한 자각에서 여성이 빨랐던 게 아닌가 싶고 그 흐름이 희망버스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한다. YH 노조 사태 때는 여성 노동자가 떨어져 죽었지만, 희망버스에서는 다 몰려가 축제를 벌이며 여성 노동자(김진숙 지도위원)를 살려냈다.
그 흐름이 (10.26 보궐선거에서) 무상급식으로 이어지는데, 무상급식은 10년 전부터 어머니들이 '무상급식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하다가 정치 아젠다가 됐고 서울시장이 바뀌었다. 또 원전 문제도 그렇고 이미 우리는 생명이 이슈가 되고 주제가 되는 사회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아직 정치가 그 준비를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꼭 바뀌어야 한다. 중요한 시기다.
프레시안 : 촛불집회, 무상급식이 긍정적으로 보면 생명정치의 씨앗이지만, 아직 '정치'라고 하면 누가 권력을 잡느냐 하는 권력투쟁이라는 인식이 깊다. 쉽게 바뀔 수 있을까?
강금실 : 우리 시대와 사회가 이미 생명이 아젠다가 될 정도이고 생명의 원리와 닮은 네트워크 사회가 시작됐는데, 정치가 지나치게 과거에 매여 있으면 사회가 굉장한 혼란과 지체를 겪을 것이다. 5년의 퇴행을 겪었는데 5년을 또 겪으면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권력 패러다임 정치를 종식시켜야 한다. 새누리당이 패배해야만 새누리당 중심으로 진행돼 온 권력중심 정치가 바뀔 수 있다.
프레시안 : 생명이 중심이 돼야 하고 전통적인 권력의지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민주통합당은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나?
강금실 : 저도 박정희 패러다임의 시대에 성장하고 세계관이 형성된 세대다. 통합진보당 사태나 여러 가지를 보면 우리 스스로도 그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똑같냐, 그렇지는 않다. 민주당은 개혁정당의 정통성을 가진, 생명을 해치는 억압에 저항한 명실상부한 정통 야당이기 때문에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 뭐가 문제냐, 과거의 권력 패러다임이라는 관점에서는 정통 야당이지만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 안철수 후보 출마 선언에 대한 20대들의 반응을 보고 뭘 느꼈나 하면, 20~30대는 정당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당의 미래다. 민주당이 미래세력이 되려면 미래세대의 가치에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아직 전환이 안 됐달까?
또 하나 이번 대선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 권력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공존·소통하는 정치로 넘어가는 가치의 문제다. 우리 사회 전체가 무한경쟁,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다 힘들다. 정치권도 자유롭지 않다. 왜 민주당이 총선에서 평가를 못 받고 지금도 지적받을까?
대통합은 했으나 가치를 부각시키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물량주의 접근으로 흐른 게 아닌가 한다. 야권연대도 그랬고, 합치는 건 되는데 '무엇을 왜 합치냐'라는 가치의 얘기를 안 하면 나중에 효과가 없어져 버리는 딜레마가 있다. 의미를 묻고, 가치를 담고, 그런 용어를 써야 한다.
프레시안 : 네트워크 사회와 관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생명 같다고 책에 쓰셨다. SNS가 생명정치로 바꾸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강금실 : 이미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세상이 바뀌는 체험을 나누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뿐 아니라 월드컵 때, 효선이 미순이 사태 때를 겪으면서 이미 그때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모이고 축제를 벌이는 게 가능해졌다.
그 힘은 4.19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저항이 축제의 형식으로 전환되는 것은 1987년 이애주 선생의 '시국춤'이다. 추모이면서 저항이면서 승리의 축제를 벌였고 그게 2002년 월드컵으로 넘어왔다. 이미 우리 사회는 바뀌었는데 권력 중심 패러다임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강금실, 정치 다시 하나?' 질문에 "내년부터 적극 활동"
프레시안 : 책에 좋은 말씀을 많이 쓰셨는데, 정치판이 '아싸리판'인데 이게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느낌이 있다. 강 전 장관도 국무위원 외에 서울시장 선거 출마도 하셨고 2008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내셨다. 지금은 정치와 한 발 떨어져 계신데, 정치에서는 손을 떼신 건가?
강금실 : 민주당 최고위원 잠시 한 후에 대학원 가서 공부하고 변호사 하면서 생활해 왔고, 지금도 그 활동 계속해 왔다. 현역 정치인으로 복귀 의사는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책 내면서 내년부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은 있다. 책에서 드린 말씀을 많이 나누고 심화·발전시키는 독서모임이나 포럼 등을 생각하고 있다.
프레시안 : 직접 정치는 아니라도 영향을 미치는 사회활동을 하시겠다는 말인가?
강금실 : 사회활동이라도 할 수 있고, 정치하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웃음) 좀 유연하게 생각해 달라. 너무 이분법적인 것 같다.
프레시안 : 강 전 장관이 보는 이번 대선의 의미는?
강금실 : 저는 권력중심의 정치 패러다임이 극복돼야 한다, 소통과 네트워크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대학 강연에 가서 강조한 것은 권력과 생명의 관계 부분이다. 헌법에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돼 있지만, 많은 분들의 무의식·내면에는 권력은 집권세력의 것이라는 게 각인돼 있다. 권력은 국민의 것이고,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권력은 국민의 힘인데, 그것은 국민 존재 자체가 지구로부터 우주를 통해 받은 생명의 힘이다. 새싹도 언 땅을 뚫는 힘이 있다. 그게 권력이고, 내가 권력이다. 그런데 너무 거꾸로 생각한다.
▲5일 '열린인터뷰' 행사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
"검찰개혁? 검찰 권력의 근본은 정경유착 사회에 있다"
청중 : 생명의 정치로의 권력 패러다임 변화라는 면에서 주로 정치권력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셨을 만큼 시장의 힘이 세졌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강금실 :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유산이 한국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떤 분이 기업도 군사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 우리 경제와 기업은 국가권력과 결합해 성장했다. 군사문화가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 시장권력이라는 요소 중에도 가장 밑바닥에 남아 있다 본다. 제왕적인 CEO 등을 보면 정치조직 문화가 전 사회의 모델이 됐다는 것이다.
경제의 힘이 강해도 저는 근본적으로 정경유착 사회라고 본다. 검찰의 힘이 세다고 비판하지만 그걸 받쳐주는 게 정경유착이 해결 안 되는 후진국형 권력구조다. 뇌물 문제가 터지니 (정치인과 기업인을 수사하는) 검찰의 권력이 셀 수밖에 없다. 그런 후진국형 구조를 청산한다면, 최소한 정치와 경제가 단절되고 자체적으로 투명하다면, 검찰의 힘이 세질 수가 없다.
경제와 시장 권력의 밑바닥에는 그렇게 형성된 힘이 발휘되고 있다. 정치권력이 공정거래를 철저히 보장해서 정말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본다. 방치하다가는 권위주의 정치가 국가기관을 사유화해서 이용하려 든다. 실제로 불법사찰, 문화방송 문제가 일어났지 않나? 정치집단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본다. 근원에서 투명해지고 공평해지면 다는 안 되겠지만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라 본다.
청중 : 검찰개혁 얘기가 나온 김에, 참여정부에서 검찰개혁을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강금실 : 아주 직접적인 건 대선자금 수사다. 검찰의 수사 중립을 지켜주면서 인사권으로 검찰도 개혁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선자금 수사야말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연결고리인데 그게 검찰개혁과 맞물린 거다.
대선자금 수사는 역사상 처음 일어난 거다.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결단을 내린 것이고, 사회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칼을 뽑아서 실험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대선자금 수사는 됐지만 검찰개혁은 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그 큰 개혁을 하고 싶었다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까지 당했고 미완으로 그만둔 것인데, 이번 정권은 그 미완의 개혁을 해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 정부) 10년이 재평가돼야 한다. 잘한 것도 많고 잘못한 것도 많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특검도 하고 있는데 그 특검을 언제 처음 했나? 김대중 정부 당시가 첫 번째였다. 생각해 보면 거의 모든 권력 견제 장치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만든 것이다. 생각 밖으로 많은 일을 했는데 저평가된 측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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