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총리 욕심’있다?… 이 나이에 뭐 답답해 권력 다툼 하나”
“나는 ‘재벌 개혁’ 말한 적 없어 현실에서 안 될 것 떠들면 안 돼 탐욕이 본능? 생존 본능도 있어”
“박근혜가 내 말 다 듣는지 몰라 사당화? 추종하는 의원들 문제 정운찬은 사람 변한 것 같더라”
"나보고 '총리 욕심이 어떻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총리설이 있었다. 난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다. 내 나이가 일흔둘인데 이 나이에 누구 밑에 가서 무슨 일을 하겠나."
대선에서 승리하면 무엇을 맡고 싶으냐고 묻자, 김종인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은 좀 흥분했다. 비가 뿌려 후텁지근한 개인 사무실이었다.
―그러면 비상대책위원에 이어 박근혜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은 어떻게 맡았나?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진 뒤 '당신이 내년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희망이 없다. 대선행(行)도 쉽지 않다. 전력을 다해 제1당을 만들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만들어라'고 조언했다. 우연히 내가 말한 대로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박근혜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졌다. 나도 말한 게 있어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총선에서 이기고 당을 장악한 데는 박 후보가 리더십을 발휘한 거다."
―당 장악은 좋은데 사당화(私黨化)까지 갔다. '경제 민주화'를 말하기 전에 당내 민주화부터 이뤄져야 하지 않나?
"당내 민주화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 파동 때 박근혜 후보가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았다. 더욱 문제는 그 한마디에 의원들이 추종하는 데 있다. 자질이 안 되는 국회의원이 뽑힌 게 문제지."
―얼마 전 김 위원장이 "친박(親朴)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경제 민주화를 자꾸 왜곡되게 떠든다"고 말했을 때 드디어 내부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고 보도됐다.
"내가 그럴 이유가 있나. 언론이 만들어놓은 거지. 뭐 답답해서 내가 권력 싸움 하겠어."
―그게 아니라면 왜 그런 발언을 했나?
"경제 민주화 취지를 이해 못하고, 그쪽(친박)에서 이를 마치 '재벌 개혁' '해체'니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모한 짓을 하는 것처럼 해버리면 결국 새누리당은 경제 민주화를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그래서 '누구는 재벌기업에 오래 일해서 그쪽 이해를 많이 대변한다'고 강하게 표현한 거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 민주화'는 재벌 개혁과는 관계없다는 뜻인가?
"내 입으로 재벌 개혁이니 해체를 말한 적이 없다."
―순환출자 금지나 출자총액제한 등으로 재벌의 소유 지배구조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입장인가?
"누가 무슨 힘으로 할 수가 있나. 과거에 다 해봤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이상적인 모형(模型)대로 뚝딱 될 수 있는 게 없다. 괜히 마찰만 생길 뿐이다.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를 해야지."
―김 위원장을 '재벌개혁론자'로 알고 있었는데.
"다들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나는 가능하지 않은 걸 가능한 것처럼 가식을 부리지 않아."
―재벌에 대한 생각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특정인에게 자원을 배분해줘 재벌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정치 권력으로도 제어하기에 힘들어졌다. 정부가 뭔가 조치를 취하려면 '그건 위헌'이라는 식으로 소송을 제기한다. 스스로 시대 흐름에 맞게 바뀌면 가장 좋은데, 변하려고 하지 않아. 그러니 제도를 통해 경제 민주화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장에 대한 일종의 정부 개입으로 봐도 되나?
"개입이 아니라 정부가 제도를 만들어놓고 지키도록 하는 거지."
―'재벌 개혁'도 아닌 경제 민주화는 대체 어떤 것인가?
"암탉이 마당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아무거나 먹어치운다고 목을 비틀면 어떻게 되나. 알도 못 낳고 나눠 먹을 게 없어진다. 비유를 들면 일정한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모이를 먹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현행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적용해도 가능하지 않나?
"현행법 조항에 모순이 많다. 엄격하게 적용하면 대기업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삼성이 헌법재판소에 제소를 한 적이 있다. 뒤에 취소했지만. 이런 경우가 자꾸 생겨나게 돼 있다. 가령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가 들어가자, 제일 큰 정유사가 '담합했다'고 자진 신고했다. 자진 신고 감면제도에 의해 그 업체는 10년간 가격을 담합하고도 벌을 안 받았다. 이런 걸 고칠 수밖에 없다."
―법을 보완하는 것으로 과연 재벌의 탐욕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까?
"의식이 따라오도록 제도가 끌고 가야지. 사실은 경제 민주화에 대한 지도자 의지가 중요하다. 공정거래위가 불법적 사안을 조사하고도 조치를 안 하는 걸 보고, 내가 '당신들 왜 고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발해봐야 검찰이 기소 안 한다. 기소를 안 하는데 우리만 인심을 잃으려고 고발하느냐'고 했다. 설령 기소를 해도 법원에서 상식과 다른 판결이 나온다. 상당수 언론, 지식인, 법률시장이 그 사람들 지배하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요즘 재계는 '기업은 부모 양쪽(여야 정당)으로부터 버림받은 신세'라고 반응한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그건 푸념하는 사람의 얘기고. 지금처럼 자본에 의해 갈 데까지 간 사회 균열은 막아줘야 한다. 이게 터져버리면 이런 해법 저런 해법 내놔봐야 소용이 없다."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 자체는 경제학에 쓰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경제학을 이론만 공부한 사람은 알 수가 없지."
―김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7년 개헌 당시 '경제 민주화' 조항인 헌법 119조 2항을 만들었다. 당시 그 용어를 어디서 착안했나?
"독일 유학을 하면서 가장 안정된 시장경제를 봤다. 독일은 기업 경영에서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노사 공동 결정제'를 한다. 경제민주주의 같은 것이다.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되면서 경제 효율에도 지장이 없다. 당시 내가 '경제 민주화' 조항을 넣으려니까 정주영 전경련 회장이 경제학자들을 데려다 놓고 나와 토론하자고 했다. 내가 '아무런 틀도 없이 제멋대로 하는 게 자본주의가 아니다'고 설명하자, 정 회장이 '괜히 오해를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경쟁에 따른 차별이 있는 것인데, '민주화'라면 좀 모순이 아닌가?
"시장경제의 효율은 인간의 속성인 탐욕에 의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탐욕 경쟁이 제어 안 되면 시장경제는 결국 무너진다. '보이지 않는 손'(아담 스미스)이 끝없는 탐욕으로 가면 보이는 손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개인의 탐욕만으로 시장이 결정되는 것을 막으려면 '민주주의'의 평등으로 조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그런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계층 간의 힘 대(對) 힘의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탐욕도 타고난 본능이지만, 사람에게는 생존의 본능도 있다. 같이 부딪치면 결과가 어떨까."
―김 위원장은 이런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킹메이커'를 하고 싶은 건가?
"나라가 정상적으로 가기 위해 이런 것들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좋은 대통령을 한 번 만들어봤으면 하는 거다. 내 욕심을 차리기 위한 것이라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나쁜 사람이지."
―그전에는 정운찬·안철수씨 등과 접촉했다.
"정운찬은 20년 이상 만났다. 잘 커서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서울대 총장 출마도 권했다. 2007년에는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적극성을 안 보여 포기했다. 그 뒤로 사람이 변한 것 같더라. 안철수는 법륜 스님과 윤여준 전 장관이 권해서 두어 번 만났다. 대통령감으로 생각해 만난 적은 없다. 국회에 들어가는 과정까지 도와줄 수 있지 않겠나 했다."
―박근혜 후보와의 첫 만남은?
"2006년 독일 초청을 받은 박근혜 의원이 '독일 상황에 관해 설명해달라'고 찾아왔다. 내가 17대 국회에서 한독협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당신은 큰 꿈을 꾸고 있으니 동독 출신의 메르켈이 어떻게 해서 16년 만에 총리가 됐는지 벤치마킹을 하라'며 40분쯤 얘기했다. 그 뒤 한나라당 경선에서 졌을 때 패자로서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전까지 '박정희의 딸' 박근혜였는데, '정치인' 박근혜로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위로 겸 해서 만난 뒤로 관계가 지속됐다. 그동안 박 후보가 많이 바뀌었다. 현실 파악 능력도 높아졌다."
―결정적으로 왜 박근혜 후보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나?
"나는 '좀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 그 주변이 심플한 사람,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한 번쯤 대통령이 되면 나라 기강이 세워지지 않겠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소신이 강하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정책이라면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소신은 알겠는데, '콘텐츠'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른 후보라고 해서 콘텐츠가 많은 것도 아니다.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각 포스트에 한두 사람을 당신 머릿속에 갖고서 골라라. 일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까'라고 늘 조언해왔다. 대통령은 좀 바보스러워도 좋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콘텐츠가 없는 사람인데도 사람을 잘 써서 훌륭한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후보는 말을 귀담아듣는 편인가?
"내 말을 잘 듣는지, 다 수용했는지 아직 판단할 수가 없다."
―보수 진영에서 김 위원장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아나?
"새누리당으로 개명하면서 내가 '보수' 용어를 정강정책에서 빼자고 하니 반응이 대단하더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준수하면 그만이지, 꼭 '보수'가 있어야 하느냐가 내 생각이었다. 복지 분배문제에 대해 너무 이념적으로 접근한다. '선(先)성장·후복지'를 1960년대부터 해왔으나 실상 복지 분배가 안 됐다. 지금 자영업자 415만명의 한 달 수입이 100만원 이하다. 비정규직이 850만명이다. 이 두 그룹이 성인 근로자의 절반을 육박한다. 사회적으로 불안하지 않겠나."
―김 위원장에게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수석 시절 동화은행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개인적인 뇌물로 받은 것이 아니다. 당시 선거 출마자들에게 자금 지원을 해줘야 하는 역할이 됐다. 노 대통령에게 동의를 받고서 했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5공·6공에서 잘나가다가 어느 날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간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데, 나는 한 번도 자리를 먼저 부탁해본 적이 없다.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조순형 대표가 '정책정당을 해보려고 한다'고 해서 전국구를 맡은 것이다. 나는 자리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다."
―권력을 좇는 것은 아니다?
"내가 들어가서 일할 수 있느냐를 먼저 생각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경제수석'을 제안했을 때도 내가 조건을 제시했다. 그걸 받아줘서 들어갔다. 김대중 정부 때도 '재경부 장관' 오퍼를 받았다. 그때도 조건을 말했다. '미친 사람이지. 한자리 주면 고맙다고 받아야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없던 일이 됐다."
―김 위원장은 말이 직설적이라 캠프 안에서 오해와 배척을 받지 않겠나?
"캠프에서 말을 제대로 안 해서, 아직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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