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華城) 건설은 서구와 일본의 시장 팽창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싹트고 있던 상품화폐경제의 결정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고 수원시에서 11년째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는 이달호(54.사학박사) 씨가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경제적 관점에서 새롭게 연구분석한 책 '18세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화성건설'(도서출판 혜안)을 최근 펴냈다.
그가 말하려는 18세기 정조시대의 경제는 한마디로 "시장에 팔기 위한 상품을 생산해 화폐를 주고받고 거래하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화성신도시 건설이었다"며 "화성 성역(城役)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신도시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이를 위해 물자들을 전국 각처의 시장에서 화폐를 지불하고 구입해 조달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특히 농촌 경제의 해체에 따른 유이민의 급증과 돈을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성과급제의 발생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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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화성건설'이라는 수원 화성 연구서를 펴낸 수원시 학예연구사 이달호(54)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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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건설인부의 임금지불에 도급제적 성과급제가 적용됐고 모든 물자는 돈을 지불하고 사온 상품이며 가옥과 전답에 대한 철거 보상도 돈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이런 자본주의 시장논리로 화성은 2년9개월의 짧은 기간에 축조될 수 있었고 토목 신기술을 동원한 과학성, 한.중.일 성제를 아우른 종합성, 건축물의 다양성 등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면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그는 이번 연구서에서 그동안 해명되지 않았던 통천미석(通穿眉石:성곽에 난 무기발사용 구멍)의 실체를 오랜 답사를 통해 밝혀내 화성 복원에 보탬을 줬다.
경기도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향토사 편찬에 참여해온 그는 1997년 경기도가 채용한 지방학예연구사 1호.
2003년 박사학위 논문인 '화성연구'를 비롯해 '화성 축성방략과 성제', '화성건설', '화성건설의 물자조달' 등 여러 화성 연구논문을 펴내며 화성 연구에 몰두해 왔다.
거대담론이 사라진 요즘 학계 풍토에서 화성 건설의 노동력 동원과 물자 조달 분야를 조망한 딱딱한 주제로 책을 펴낸 것 자체가 무모한 것은 아닐까.
그는 "화성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산 정조'이고 정조가 이룩하려던 '개혁정치의 근거지', '효의 도시', '계획된 신도시' 등이었다"며 "이런 분석들이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18세기를 지나치게 정조 개인에게만 주목한 오류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 사회와 국가를 분석하려면 큰 줄기를 먼저 살피고 작은 가지들을 분석하는 것이 역사 공부의 기본이나 최근의 경향은 미시사와 생활사 연구에 치중하거나 또 다른 대안으로 문화주의에 치우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김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