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박근혜는 역시 힘이 세다 |
지금의 정치판에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능력을 가진 대표적 인사라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꼽는 데 크게 이의가 없을 것 같다.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논평하여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총선 때는 박근혜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 탈락한 것과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에게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한 말도 인구에 회자됐었다. 그의 촌철살인 능력은 이번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다시 한 번 발휘됐다. 친박계로 한나라당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 출마 예정인 정수성씨가 이상득 의원 측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하여 "사실이라면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한 코멘트가 그것이다. 정씨 폭로의 진위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박 전 대표의 코멘트는 이상득 의원의 사퇴 압력을 기정사실화하는 효과를 갖게 됐다. 물론 박 전 대표는 코멘트에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사실이 아닐 경우에도 대비했으나, 많은 사람들은 "정치의 수치"라는 부분에 주목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들이 기사 제목을 "박 전 대표, 이상득에 직격탄" 등으로 단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또 당 공천 후보를 제쳐두고 친박계이지만 무소속인 후보를 도울 수 없었던 박 전 대표는 의도했든 아니했든 이 코멘트로 친박계 무소속 후보를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누구를 지원하자는 게 아니고 원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적어도 경주 유권자들은 박 전 대표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고 그가 왜 그렇게 발끈했을까를 짐작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박 전 대표의 이 코멘트가 있은 직후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하여 거명되던 친박계의 김무성 의원 등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검찰이 무혐의 사실을 언론에 흘린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그 시점이 참 공교롭다. 박 전 대표의 촌철살인이 거둔 일석이조는 아닐는지. 물 밑과 경주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상득 의원과 박 전 대표 사이에 사퇴 압력 문제를 놓고 표면상 논란이 더 확대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이계로선 더 떠들어 봐야 이미지나 경주 선거에 도움이 안 될 것으로 판단할 것이고, 박 전 대표 역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데다 더 떠들면 무소속 후보를 돕는 해당(害黨)행위를 한다는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당 공천자 지지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양쪽의 갈등 구조가 축소되거나 해소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과정에서, 또는 그 결과를 놓고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친이계의 좌장 격으로 친박계가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여 발톱을 웅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도 당 대표와 전 대통령 후보가 갈등하는 민주당을 보고 즐길 수만은 없는 처지다. 비주류 수장의 한마디에 국회에서의 현안 처리 등 국정 흐름과 당의 진로가 바뀌고 있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정치판에서 계파 간의 갈등이야 자연스런 일이다. 다만 그것이 건전한 토론으로 국정 운영에 순기능을 하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가끔은 발목을 잡는 역기능을 하는 것도 같아 미상불 걱정이다. 지금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건 야당이 아니라 여당내 비주류인 친박계라고 한다. 그만큼 막강한 그들의 수장 박근혜의 큰 정치에 대한 기대와 책임이 강조되는 이유다.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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