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덕-이상돈과 함께하는 영광
편집국장 고 하 승
한나라당 친박 좌장격인 홍사덕 의원과 비판적 보수논객 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 그리고 필자가 오는 18일 한 자리에서 나란히 특강을 하게 됐다.

<시민일보> 자유토론방 논객 모임인 <시민포럼> 회원들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여러 단체들과 돌아가면서 상견례 겸 유익한 강의를 듣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 첫 만남으로 <시민포럼>은 <근혜동산>이라는 모임을 선택했다.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식목일에 호남 지역에 내려가서 나무심기 봉사활동을 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모습이 높게 평가 된 것 같다.

마침 모임 장소가 문경시 소재 천주사이고, 근혜동산 김주복 회장의 고향이 문경이라는 요인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 같다.

<시민포럼>은 앞으로 박사모, 호박넷, 근혜사랑과 같은 친박 단체들과도 함께 이런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각설하고, 홍 의원, 이 교수, 필자,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자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민포럼> 출범 당시에도 홍 의원과 이 교수가 함께 자리해 논객들을 격려한 일이 있다.

그러나 사실 세 사람은 그 어떤 인연의 고리가 있는 게 아니다.

살아온 길이 다르고, 직업도 제각이다.

우선 홍 의원은 6선 경력의 대단한 정치인이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당선된 홍 의원은 신민당 대변인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바 있다.

이후 1986년 민정당의 내각제와 신민당의 직선제 개헌안이 충돌할 때, 신민당 총재인 이민우는 "민주화조치가 선행되면 내각제도 수용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들고 나왔다. 물론 이민우 구상은 홍사덕 의원의 작품이다.

하지만 당내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가 이를 수용할리 없었다.

결국 당은 깨지고 말았다.

양김씨가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것이다.

이에 홍사덕 의원은 무소속으로 남아 있다가 13대 총선에서 낙선, 원외로 있던 중 1990년 삼당합당을 거부한 이기택이 주도하는 소위 ‘꼬마민주당’에 노무현, 박찬종 등과 함께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1991년 꼬마민주당은 김대중이 이끄는 신민당과 합당하여 통합 민주당을 창당하게 되고 홍 의원은 자연스럽게 이에 합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다.

그러나 1995년 지방선거 이후 DJ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통합민주당 소속의원들을 탈당시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홍사덕은 이에 반발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기를 거부하고, 또 다시 무소속으로 남게 된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이후 홍 의원은 2000년 1월 19일 장기표와 함께 '1인 보스정치와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가칭 ‘무지개연합’ 창당을 선언하였으나, 8일만에 무지개연합이 해체되고 만다.

결국 홍 의원은 1월 27일 한나라당에 입당,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와 함께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 2000년 6월 5일 국회 부의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경기도 광주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한나라당이 탄핵의 역풍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진섭을 전략공천하자, 이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여전히 탈당한 상태라 선거 운동 자격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7월에 복당 신청을 하였으나 이명박 후보측의 반대로 무산된다.

이후 2008년 3월, '친박연대'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고,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 서구에 출마, 한나라당 이종현 후보를 6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누르고 당선, 당당하게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이상돈 교수 역시 대단한 보수논객이다.

‘합리적 보수’라는 필자의 호칭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그는 스스로를 ‘비판적 보수’라고 칭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를 향한 그의 비판은 살을 도려내는 듯 매우 날카롭다.

최근 이수가 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위해서라도 형님(이상득 의원)은 나서지 말아야 한다”거나 “보수의 MB 묻지 마 지지가 오히려 이해 안간다”는 발언 등은 모두 이 교수에게서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MB 실패 확신했고, ‘보수의 무덤’ 될 수도 있다”는 발언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교수 역시 홍 의원이나 필자와의 연결 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세 사람은 종종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만남은 지속될 것 같다.

왜 일까?

우리나라 정치를 염려하는 마음, 2012년 대선에서 반드시 올바른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쪼록 필자로 하여금 이렇게 쟁쟁한 두 분과 나란히 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영광을 안겨준 <시민포럼> 회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