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6월5일 국회에서 열린 여의포럼 1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사회자의 소개에 맞춰 내빈들에게 인사한 뒤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한나라당 ‘쇄신’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쇄신위원회와 주류 그룹은 박 전 대표가 당을 맡아주기를 바라는 눈치이다. 박희태 대표도 그런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친박근혜’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박근혜 대표’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노무현 서거’와 ‘한나라당 쇄신’ 국면은 박 전 대표의 지지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족탈불급(足脫不及). 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능력 따위가 도드라져 도저히 다른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에 비유적으로 쓰인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주자 지지율이 이렇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대중적인 호감도는 불가사의에 가까울 정도이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MB)에게 졌다. 영남권과 충청권에서 앞섰으면서도 수도권에서 밀린 것이 패인이었다. 경선 12일 전인 그해 8월19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가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충청권, 대구·경북, 부산·경남에서 MB에 비해 각각 11.6%, 31.6%, 5.9% 앞섰다. 그러나 서울, 경기·인천에서 각각 29.7%, 14.9% 뒤졌다. 화이트칼라, 30대, 고소득층에서 크게 밀렸다.
지금은 어떨까. 박 전 대표는 이제 지역, 학력, 소득, 나이에 상관없이 고르게 지지를 받고 있다. 충청권과 영남권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6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지역, 연령, 교육 수준 등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60대 이상, 대구·경북, 월 소득 100만원 이하 계층에서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인심이다. 온갖 일이 분주하게 일어나는 곳이 정치이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의 힘, 즉 ‘근혜불패’는 요지부동이다. 지난 5월 KSOI가 국민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다음 중 어떤 사람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상대로 박 전 대표가 1위였다. 그 다음이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순이었다.
예상 밖이었던 것은 박 전 대표의 지지도였다. 무려 47.4%였다. 2위 정몽준 의원은 8.4%, 3위 오세훈 시장은 7.5%였다. 박 전 대표의 지지도는 2위의 거의 여섯 배였다. 이 조사에서 ‘모름·무응답’은 26.7%로 나타났다. 2위·3위 후보의 지지도와 ‘모름·무응답’ 비율을 다 합쳐도 박 전 대표의 지지도에 못 미쳤다. 이 정도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바로, 족탈불급이다.
박 전 대표의 압도적 우위는 다른 정당 후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리얼미터 조사에 의하면, 지난 6개월 동안 박 전 대표의 평균 지지율은 40.1%였다. 2위를 차지한 정동영 의원은 11.0%였다. 현격한 차이이다. 미디어리서치의 지난 2월 조사도 다르지 않다.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더니 33.4%가 이렇게 대답했다. ‘박근혜!’ 그 뒤를 이회창 총재(8.2%), 정동영 의원(5.4%), 정몽준 의원(5.0%) 등이 이었다. 박 전 대표는 전 연령대에서,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였다.
박 전 대표의 강세는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KM조사연구소가 지난 2월 이명박 정부 1년 국민의식 조사를 실시했다. 박 전 대표는 정치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인에 대한 질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 전달인 1월에 비해 1.3% 상승한 34.1%였다. 지난해 12월 비전코리아의 지지도 조사도 같은 맥락이었다. 박 전 대표는 35.2%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21.2%, 이회창 총재 6.2%였다. 한길리서치의 지난해 12월 조사 역시 같은 흐름을 말해준다. 박근혜 26.3%, 반기문 6.9%, 정동영 3.9%였다. 이처럼 박 전 대표의 지지도 독주는 모든 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확실한 흐름이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박 전 대표의 경쟁력이 더욱 확고하다. 5월 KSOI 조사에서는 58.5%의 지지를 얻었다. 일반 국민 지지율보다 11% 높다. 2위 정몽준 의원은 겨우 12%였다. 민심, 당심(黨心) 할 것 없이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간 갈등을 보면, 현재로서는 이심(李心)만이 이심(異心)이다. 이심(李心)은 그나마 당 지도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당심과 민심에 대해서는 유의미한 영향 변수가 이미 못되고 있다.
정당 일체감이 매우 낮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감안하더라도, 박 전 대표에게 표출되는 호감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후 한나라당 내에서는 원내대표 문제가 불거졌다. 친이가 양보해서 친박의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자는 카드를 제시했다. 박 전 대표가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화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당내 여론이 박 전 대표에게 좋지 않게 흘러갔다.
그런데 일반 여론은 영 딴판이었다. 김무성 카드를 거부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평가가 54.1%였다. 잘못한 것이라는 평가는 24.0%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친이·친박 간 갈등의 책임 소재를 물었더니, 63.8%가 친이를 거명했다. 19.3%만이 친박을 지목했다. 이렇듯 여론은 어떤 문제가 터져도 박 전 대표에게 책임을 거의 묻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감싸주고 있다. 불가사의한, 그러나 데이터가 말해주는 분명한 사실이다.
‘1등 100번 넘게 했던’ 박찬종 전 의원을 반면교사 삼아야
그렇다면 정말 박 전 대표의 지지도나 호감도는 난공불락일까? 누구도 가타부타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다만, 변화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는 눈에 띈다. 먼저, 지난 6월3일에 실시된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이다. 이 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다소 내려앉았다. 그 전주 조사에 비해 5.2% 빠진 30%였다. 2위는 16.1%를 차지한 유시민 전 의원이었다. 이른바 ‘노무현 현상’에 의해 박 전 대표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익숙한 변수 외에 다른 요인이 등장할 경우 박 전 대표의 지지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 경선 때 시종일관 확보하고 있던 25% 내외의 고정 지지층이 크게 확장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 민주당 지지층 중 20.6%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당은 민주당을 지지하나 대선 후보로는 박 전 대표를 지지하거나 찍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박 전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고 읽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 더. 박 전 대표는 진보 성향이라는 응답자 중에서 21%의 지지를 얻었다. 미디어리서치 조사 결과이다. 이들의 진보 성향이 박 전 대표의 강한 보수 성향과 충돌할 경우, 이들이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결국, 박 전 대표의 압도적 우세는 아직 경기 전의 예상 전력 평가일 뿐이라고 해야겠다.
18대 대선이 ‘futurity race’(출전하는 말이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는 경마)가 된다면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wow factor’(사람을 흥분시키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요소)를 가진 새 인물이 등장한다면 뜻밖의 반전 요소들이 숱하게 등장할 것이다. 서울시장, 대통령 모두 놓친 박찬종 전 의원이 말했다. “여론조사 1등, 100번도 넘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