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 기증은 생명을 나누는 것, 법적 근거 마련하라`
`아이디어 얻으면 즉각 실행` 박근혜가 법 만드는 법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그는 18대 국회에서 지금까지 여덟 가지 법안을 냈다. 이 중 지난해 11월 제출한 ‘문화재보호기금법안’은 4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부수법안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이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기금 창설은 늦어지게 됐다. 6월 국회엔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안’ 등 4개를 냈으나 어느 것도 심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박 전 대표가 법안을 만드는 방식엔 원칙이 있다고 한다. 착안을 하면 바로 행동(입법 작업)을 하고, 법안 마련 과정에선 의견수렴을 중시하며, 진행 상황을 관계자들에게 수시로 알려준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그의 법안 만드는 법을 살펴본다.
18대 국회서 8개 법안 제출
지난해 5월 17대 국회가 막을 내릴 즈음 박 전 대표는 의사인 안명옥(차의과대학 교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장) 전 의원을 만났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했으나 18대 국회엔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한 안 전 의원은 제대혈에 대한 얘기를 했다. 제대혈은 산모가 신생아를 분만할 때 나오는 탯줄과 태반에 포함돼 있는 혈액이다. 여기엔 혈액세포를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와 연골·근육을 생성하는 간엽줄기세포가 들어 있다.
조혈모세포는 백혈병·소아암 등 악성 혈액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며, 간엽줄기세포는 뇌졸중·치매 등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원천이다. 제대혈을 활용하면 여러 질병을 치료할 수 있고, 좋은 신약도 개발할 수 있는 만큼 바이오 산업이 발전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제대혈은 배아줄기세포와 다른 성체줄기세포이므로 생명윤리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제대혈을 기증하는 건 곧 생명을 나누는 것이란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박 전 대표는 이 점에 주목했다. 안 전 의원과 만나고 난 그는 이재만 보좌관에게 제대혈 문제를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제대혈은 생명나눔과 직결되는 것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만큼 법 제정안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라”고 했다. 이 보좌관은 안 전 의원, 한양대 의대 이영호(소아과) 교수 등과 접촉했다. 현재 민간기업이나 대학 등에서 제대혈 은행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대혈에 대해선 관련법이 없고, 보건복지가족부의 표준업무지침만 있으므로 제대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등의 문제점을 이 보좌관은 깊이 알게 됐다.
제대혈 기증과 위탁, 제대혈 은행의 허가, 제대혈 은행이 보관 중인 제대혈의 안전성 보장 문제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그는 조혈모세포이식학회 관계자 등 여러 명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그리고 복지부 쪽도 접촉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인 박 전 대표가 제대혈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안 복지부는 협조적 태도를 취했다.
박 전 대표는 법안 마련 과정에서 의견수렴과 신중한 검토를 강조했다. 이 보좌관이 “제대혈 은행 허가와 관련된 문제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다”고 보고했을 때 박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은 분의 의견을 들으면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의견차를 최대한 좁힐 수 있을 테니 너무 서두르지 말라. 졸속입법을 하면 안 되므로 모든 문제를 철저하게 검토하라.”
안 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경우 법안 착안력이 좋고, 행동이 빠르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도 “박 전 대표 측이 매우 의욕적으로, 그리고 아주 꼼꼼하게 일처리를 했다”며 “이번에 제출된 법안은 참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98년 국내에선 제대혈을 이용해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의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국회 파행으로 1개만 통과
2007년 6월 장지현 진각복지재단 사무총장은 전화를 받고 잠시 놀랐다. 상대방이 “저 박근혜입니다”고 했기 때문이다. 시인인 장 총장은 박 전 대표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해했다. 박 전 대표는 “폐허가 된 사찰에 대해 쓴 책('잊혀진 가람 탐험')을 읽고서 전화하는 것”이라며 “폐사지(廢寺地)가 너무 많이 훼손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에 좋은 책을 읽었다. 우리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좋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장 총장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자 박 전 대표는 “보좌관을 보내 자세한 말씀을 듣겠다”고 말했다고 장 총장은 전했다.
장 총장은 “박 전 대표가 폐사지 여러 곳을 직접 다녀보지 않고서는 결코 지적할 수 없는 것들을 얘기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와 통화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정호성 비서관이 왔다”며 “정치인들이 빈말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는데 정 비서관이 온 걸 보고 좀 놀랐다”고 했다.
장 총장의 얘기를 들은 박 전 대표는 ‘폐사지 보호 특별법안’을 제출하는 걸 검토하다 문화재별로 법안을 내면 법적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문화재보호기금법 제정안’을 만들기로 했다. 보호해야 할 문화재가 많고, 문화재 관련 예산이 작기 때문에 기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가 기금을 통폐합하는 추세지만 문화재에 관한 한 유네스코도 특별기금 조성을 통한 보호를 각국에 권고해 왔고 미국·영국 등도 기금을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 전 대표는 문화재 보호문제 전문가인 연세대 하연섭(행정학과) 교수에게 법안 연구 용역을 줬다. 그 결과가 나오자 박 전 대표는 장 총장 등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었고, 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청 등과도 협의했다. 정부 측이 기금 신설에 반대하자 박 전 대표는 유네스코 권고 등을 상기시키며 적극 설득했다. 장 총장은 “박 전 대표가 중간중간 진행상황을 잘 설명해 줬다”며 “2008년 봄엔 ‘정부의 반대가 커서 쉽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그의 다짐대로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남대문처럼 문화재를 잃고 나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만큼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혈 기울인 법, 꼭 통과시킨다” 목표
박 전 대표는 이 밖에 국가의 지원으로 개발된 핵심 기술이 해당 기관·기업의 인수합병 등으로 외국으로 넘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법률 개정안’ 등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박 전 대표실 이춘상 보좌관은 “모든 법안이 여러 관계자들의 견해를 듣고, 정부 측과도 협의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므로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호 교수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을 의식한 탓인지 정부 측에서도 비교적 협조를 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제대혈 법안도 잘 처리될 걸로 본다”고 했다. 장지연 총장은 “박 전 대표가 아니었다면 문화재보호기금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박 전 대표의 경우 아이디어를 얻으면 곧바로 실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어떤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시해 놓고도 행동하지 않는 의원이 적지 않은데 그런 분들이 박 전 대표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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