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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기존_자료2 종합(박근혜 前 대통령관련)

GH새정치틀 주문한 진보들 공부좀해라

GH새정치틀 주문한 진보들 공부좀해라


요즘 장안의 으뜸 화제꺼리 압권으로 등장한

MBC TV 정치드라마 선덕여왕에 대하여

진보계 오마이뉴스가 드라마 연출배경을

현대정치 감각으로 각색하고 나름으로 풀이한 기사가 있다.


MBC TV나 이 작품작가가 신라 27대 선덕여왕

(즉위 서기 632년부터 16년간 재위한) 당초 드라마를

기획할 때부터 단순히 상업적인 수지타산 시각에서만

작품화하겠다고 접근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진보성향인 MBC TV의 기획 의도나

주문기사를 쓴 오마이뉴스나

차기대권에 가장 유력한 새 정치인 박근혜를 의식한

대목이 드라마와 보도기사 곳곳에서 엿보인다.


10/05 방송한 대목이 흉년으로 야기된 폭동사건이다.

현대정치와 접목해도 상당히 음미할만한 대목들이 눈을 끈다.

등장인물들 정치시각과 대화도 현대정치에서

충분히 연출될만한 상상이 가능한 것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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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인용한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선덕여왕의 드라마 행적을 그리며 간접적으로

박근혜에게 정치적으로 상당히 큰 주문들을 隱喩한다.

기득권 보수정치 틀을 털고 개혁적 진보시각을 주문한다.


개혁적 진보정치 말이 났으니 이참에 꼭 집고가자.

양손에 안보와 경제란 2대 국가명제를 목표로 설정한

박정희 대통령이 18년집권 滅私奉公 민족중흥의 기틀을 튼튼하게

잘 닥은 그 큰 蔭德으로 국민들이 [오늘의 풍요]를 恩惠받고 있다.


박근혜의 할아버지는 전봉준 東學軍 구미선산지역 接主였다고 한다.

박근혜의 아버지는 현대한국을 中興시킨 위대한 불세출의 형명가이다.

박근혜의 정치노선은 [中道保守] 따뜻한 보수를 지향한다.

祖孫 3대 모두가 개인적 부귀영화가 아닌 滅私愛國한 행적을 보게 된다.


그 할아버지는 봉건왕조에 개혁의 횃불을 들었던 혁명지도자이다.

그 아버지는 잠재력을 일깨워 국가를 중흥시킨 개혁지도자였다.

박근혜는 10년여 중도보수. 합리적 개혁정치. 오직 멸사애국뿐

[나를 위한 정치]는 결코 없다고 한다. 압도적인 국민지지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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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경선 때 청문회에서 MB측이 GH 명예를 추락시키려고

스캔들 자료라고 공개한 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극찬을 받았던 일화 한 토막 재론해 보자.


청와대 떠날 때 생활자금으로 쓰라고 땡전 하사금 거금 6억원을

소득세 탈루. 사용처 불분명 등등. 강남아파트 시세로 환산하면

수천억짜리 거금이라며 온갖 중상모략 악선전한 사실이 있었다.

역시 토목건설 부동산 만지는 사람들다운 웃을 수도 없는 망발이었다.


불의의 청천벽력 같은 조실부모 천애고아로 어린나이에 험한 세상에

내동댕이처진 3남매가 경황이 없을 그 시절에 청와대 떠난 후까지

무려 8년간이나 현재 광운대학교가 인수 운영중인 무료자선병원을

서민건강을 보살피는데 몽땅 희사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신동아 잡지에 오래전에 이미 인터뷰 보도된바 있는

박근혜의 그 하사금 사용처가 만천하에 박근혜 3남매의

아름다운 서민사랑을 알게 된 국민여론이 급전직하

오히려 MB캠프 맹비난으로 역전된 해프닝도 있었다.


진보성향 언론들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문한

정치적 요구는 이미 박근혜 자신이 개혁형명가 후손으로서 또 사회명사

지도층 가족으로서 또 현역 정치인으로서 몸소 솔선수범 이미 실행하고

있음을 간과한 것으로 보여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다.


진보언론들은 독재자의 딸. 수첩공주. 등등. 색안경. 선입감정을 버리고

진정한 개혁. 진보. 혁명이 무엇인가를 똑바로 공부해야 하며

중립적 형평성의 정치적 시각으로 살만한 세상. 인간다운 삶.

보편성 도덕성부터 제대로 보는 공부를 좀 해라.


감사합니다.

혜통자

shmkmc


2009.10.0615시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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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실제로도 서민을 아꼈을까?

오마이뉴스 | 입력 2009.10.05 12:13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제27대 신라 국왕에 도전하는 MBC 드라마 < 선덕여왕 > 덕만공주(이요원 분)의 '진보적' 색채가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이라는 것은 그 이전의 역대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에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뜻이다.

지난 9월 29일 방송된 드라마 < 선덕여왕 > 제38부에서는 그 같은 덕만의 색깔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서민경제의 위기 앞에서 덕만이 기존의 보수적 해법이 아닌 새로운 진보적 해법을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귀족들의 매점매석으로 시장의 곡물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음에 따라 서민경제가 '바닥'을 쿵 치고, 이로 인해 많은 소농(小農)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여 귀족들에게 예속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거금을 주고도 곡식을 살 수 없는 기막힌 현실에 분노한 어느 백성이 곡물상점 주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여 신라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 같은 위기 앞에서 진평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덕만은 '말로만 서민을 위할 뿐, 실상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여느 보수 정치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비축해둔 구휼미를 과감히 방출하여 시장의 곡물가격을 하락시킴으로써 서민경제의 숨통을 틔어주는 한편, '곡물 투기'로 이익을 꾀하는 귀족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다 주었다.


드라마 속에 나타난 덕만의 태도는 단순히 '애민정신'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경제적 자원을 기득권층이 아닌 서민층을 위해 사용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득권층을 견제하기 위해 시장에 과감히 개입하겠다는 덕만의 '진보적 색채'가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덕만은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국가의 시장 개입을 통해 계층 간의 균형을 도모하려 한 셈이다.


서민경제를 크게 배려한 군주, 선덕여왕


물론 위의 줄거리는 드라마 속 내용이다. 그래서 제38부에 묘사된 경제현상들 중에는 실제 역사에서 벗어나는 내용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상품경제의 발달 정도가 미흡한 7세기 전반의 신라에서 시장의 수요공급법칙에 의해 곡물가격이 그처럼 완벽하게 급반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작가적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 선덕여왕 > 제38부는 진보적 색채를 '선덕여왕의 필수조건'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의 덕만공주 아니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은 어떠했을까? 실제의 선덕여왕도 드라마 속의 덕만처럼 진보적 색채를 띤 정치가였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이라는 것은 역대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에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의미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 삼국사기 > 와 필사본 < 화랑세기 > 를 종합해보면,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이 이전의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진보적인 정치가였다는 판단을 갖게 된다. 세 가지 측면에서 선덕여왕의 진보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선덕여왕은 서민경제를 크게 배려한 군주였다. < 삼국사기 > 권5 '선덕여왕 본기'에 따르면, 즉위 8개월 만인 선덕여왕 1년(632) 10월에 선덕여왕은 홀아비·홀어미·고아·외톨이로서 경제적 자활능력이 없는 서민들에게 무상으로 곡식을 분배했다.

어느 통치자이건 어느 집권세력이건 간에, 누구나 다 말로는 서민경제를 위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선덕여왕처럼 그것을 몸소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밥 굶는 사람에게 "밥을 제때 챙겨 먹으라"고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갑에서 만원권 지폐를 꺼내주면서 식당 쪽으로 등을 떠미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는 선덕여왕이 취한 복지정책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밀히 말하면, 선덕여왕은 아버지인 진평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게 아니라 국인(國人)으로 표현되는 귀족세력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 '약간 불안정한' 군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즉위 직후의 선덕여왕은 자신을 옹립해준 귀족세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즉위 8개월 만에 귀족들이 아닌 서민들을 위해 국고를 활짝 열었다는 것은 선덕여왕이 평소 서민경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신념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그 문제에 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귀족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우리는 선덕여왕 1년의 구휼정책이 자활능력이 '없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활능력이 '있는' 농민들이 구휼미를 먹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내년에 세금을 더 많이 내줄 것을 기대하고 그런 구휼정책을 편 것이 아니었다. 이는 선덕여왕이 본질적으로 서민지향적인 경제관(觀)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