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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 _ ⓒ 폴리뉴스의 기사 모음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 _ ⓒ 폴리뉴스의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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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기사 내용

[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 / 이명식 편집주간 기자
[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박근혜와 MB,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승부 / 박혜경 기자
[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박근혜 대세론엔 수도권이 없다 / 박혜경 기자
[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야권단일화, 박근혜 대세론의 최대위협 / 박혜경 기자
[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1) / 정치부 기자
[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2) / 정치부 기자

[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3) / 정치부 기자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 동영상] 박근혜 좌담회 (4)

[폴리-한백]박근혜, 대통령 적합도 65.1% vs ‘부적합’ 29.5% / 조기성 기자
[폴리-한백]차기대선 박근혜 51.6% 〉 野단일후보 37.6% / 고동석 기자
[폴리-한백] MB 지지도 39.1%…10.1%p 대폭락 /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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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기사 내용

[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 / 이명식 편집주간 기자

[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
성장기·10.26 이후 절망의 시간부터 정치인 박근혜로 거듭나기까지
[폴리뉴스 이명식 편집주간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4 17:24:24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5월호(22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박근혜는 2001년 외신기자들과 회견 과정에서 자신의 영어 이니셜인 GH를 ‘GREAT HARMONY’(대화합)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박근혜가 생각하는 대화합은 지역간, 계층간 갈등의 해소,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증진 등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차기는 박근혜(?)

3김 씨가 정치일선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를 지나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박근혜를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는 1998년 4.2 대구 달성군 재보선에서 승리하여 15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다소간의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고정 지지층을 가진 유력 대권주자의 지위를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계에 몸담은 이후 역대 선거에서 박근혜 만큼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을 찾기는 힘들다. 1997년 대선에서 실패한 충격을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진 1998년 4.2재보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두어 한나라당을 침몰의 위기에서 구원했다. 2002년 한나라당이 대선에 실패한 이후에도 박근혜는 ‘차떼기 당’이란 오명으로 좌초의 위기에 직면한 당을 진두지휘, 2004년 총선에서 대패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고 이후 4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면서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획득했다.

3김 씨의 경우 자신의 근거지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일으켰던 반면에 박근혜의 경우는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이 발휘했다는 점에서 가히 경이적이라 할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깨끗이 승복했고 이후 18대 총선에서 친박계 공천 학살이라는 시련과 친이계의 집중 견제를 견뎌내며 확실한 차기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2년 대선까지 아직 짧지 않는 시간이 남아 있고 예측하기 어려운 여러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12년 대선은 박근혜인가 아닌가로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미 정치권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다수도 차기 대통령으로 박근혜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고 ‘대세론’이라 불릴 만큼 여타 후보와의 경쟁에서 멀찌감치 앞서가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박근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1952년 생으로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이면 환갑을 맞이하는 인간 박근혜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 힘의 근원을 짚어보고 정치인 박근혜의 행적을 통해 앞날을 점쳐보려 한다.

인간 박근혜의 성장기

(ⓒ폴리뉴스)
박근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대구에서 출생했다. 영관급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은 현모양처형의 어머니 밑에서 평범하게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직업이 군인이었기에 이사를 자주했고 전쟁 직후의 생활도 일반적인 가정과 마찬가지로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서전에 남긴 성장기 기록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교육과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에 대한 기억만을 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인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킨 시기가 박근혜가 10살 무렵인 것을 감안한다면 맏딸로 조숙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5.16쿠데타 하루 전날인 1961년 5월 15일 밤 10시경, 박정희 장군은 거사를 위해 작업복에 점퍼차림으로 집을 나서면서 육영수 여사에게 “여보, 그 가방에 권총 있지. 꺼내줘요. 다녀올게” 육 여사는 순간 “근혜 숙제 좀 봐주고 나가세요”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안방으로 가서 그때까지 책상 앞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던 근혜를 보고 나서 집을 나섰다고 한다.

성심여중에 진학하고부터 청와대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비교적 활달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공부도 잘하는 편에 속했다고 한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아버지와 영부인으로서의 어머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스스로 인생관과 가치관을 확립해 나갔으리라 짐작된다. 애국심과 투철한 국가관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가치관이라면 의연한 기품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자질이라 할 것이다.

박근혜가 대학을 진학하는 과정에서 육 여사는 인문계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산업역군이 되어 나라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아버지에게 밝히고 서강대 전자공학과입학했다. 대학생활 과정에서는 홍일점으로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지만 어머니를 대신해 해외 무대에 나서는 일이 잦았으며 그 과정에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 어학공부를 열심히 했고 후일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1972년에 유신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대학을 다녔던 박근혜가 대학사회의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남자 동기생이 ‘근혜 씨, 나 데모하러 갑니다’하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부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밝히고 있지 않다.

대학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동료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열심히 공부했던 추억들은 드러나 있지만 치열하게 정치? 사회적 문제고민했던 기록은 볼 수가 없었다. 가슴 속에 갈등이 있었다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학에 수석으로 졸업하여 기쁘게 해드린 것에 대해 어머니 생전에 마지막으로 한 효도라고 기억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박근혜는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랐다. 짧았던 유학생활은 박근혜에게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아름다운 도전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과 퍼스트레이디 생활

박근혜는 프랑스 유학생활 중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장례를 치르고 슬픔에 잠길 시간도 없이 스물두 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인간 박근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4년부터 1979년 10.26에 이르기까지의 퍼스트레이디 생활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순히 대통령의 딸이었던 것과 퍼스트레이디로 역할을 경험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를 뿐 아니라 퍼스트레이디 경험이 박근혜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지 불과 엿새 뒤에 개최된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에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하여 장내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지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여러분들은 어머니가 계실 때보다 더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십시오’ 라며 끝까지 울음을 참고 의연하게 인사말을 했다고 한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듣고 그 후 모든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한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근혜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열심히 생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를 수행하는 ‘승용차 대화’를 통해서도 틈틈이 수업을 받았고 아버지의 식사를 돕는 ‘식탁 대화’에서도 중요한 정치수업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아침식사 시간에는 신문을 읽어드리면서 각종 국정현안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을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는 우리 현대사에서 제왕적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고 퍼스트레이디 대행으로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박근혜에게는 아버지가 엄청난 신화적 존재로 각인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70년대 후반 유신통치 하에서는 퍼스트레이디가 ‘국모’라 불리던 시절이었고 그 위세 또한 대단했다. 박근혜는 걸스카우트 명예총재와 새마음 봉사단 총재를 지냈는데 특히 새마음 봉사단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버지가 펼친 새마을운동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새마음운동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육영수 여사가 했던 양지회 활동이 소극적인 자선 구호모임이었던데 반해 새마음 봉사단은 전국의 직장인과 중고생들까지 조직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시도 단위에서 모임을 한번 개최하면 수천 명이 참석해서 그 열기가 대단했다고 하는데 그런 모임을 수없이 주재했으니 25∼26살의 나이에 대단한 경험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외교무대에서도 퍼스트레이디로 역할하면서 각국의 국가원수세계적인 정치지도자들과 교류하는 경험도 가졌는데 이는 후일 정치인 박근혜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백악관 시절을 회상하면서 “퍼스트레이디는 환상적 경험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근혜는 22살에서 27살에 이르기까지 많지 않은 나이에 참으로 환상적인 경험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어머니의 죽음은 박근혜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지만 어머니의 삶을 따라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10.26 이후의 절망의 시간

(ⓒ폴리뉴스)
1979년 10월26일은 박근혜의 운명을 또 다시 송두리째 바꾸는 날이었다. 비서실장으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듣는 순간 박근혜는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라고 하지만 퍼스트레이디로 지내면서 받았던 훈련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어머니를 잃고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 이면에 이때의 슬픔에 대해 자서전에서는 ‘한분도 아니고 부모님 모두 총탄에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가혹한 이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핏물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더 가혹한 시간은 그 다음에 찾아왔다. 박정희대통령을 계승한 신군부 인사들이 정권을 잡았지만 박정희에 대한 매도가 이어졌고 가까운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가면서 박근혜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이후 6년간 아버지에 대해 공개적인 추도식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동생들과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아무도 찾지 않는 유폐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느낀 심정이 어떠했을까. 박근혜는 자서전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번 배신하면 그 다음은 배신은 더 쉬워지며,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퍼스트레이디대행으로 있는 동안 나는 나라 전체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지만, 아버지 사후에는 밑바닥까지 경험했다. 수많은 매도 속에 몇 년의 시간을 버티며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고 쓰고 있다.

박근혜를 따라다니는 ‘고독한 얼음공주’ 등의 차가운 이미지와 사람을 쉽게 가까이 하지 않는 특성은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리라.

아픔과 분노의 시간이 지나면서 박근혜는 아버지 추모 사업을 통해 서서히 활동을 재개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아버지에게 덧 씌워진 오명을 벗겨드리겠다는 목표언론과의 인터뷰도 하고 추모사업도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박정희시대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육영재단 등을 둘러싸고 잡음이 생기고 박근혜는 자신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아버지에 대한 추모사업 조차 집안 친척들과의 알력이 생기자 일체 두문불출하고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으며 깊이 자기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일에서 손을 놓고 얻은 휴식의 시간을 통해 여행과 사색 그리고 국선도 등의 운동을 통해 한결 사려 깊고 여유 있는 중년의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27살이었던 박근혜는 1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국민들 앞에 돌아왔다.

그 시간의 의미에 대해 박근혜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걸어온 18년이라는 세월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쓴 웃음이 나온다. 그때도 나는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살고 있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대신했던 5년간의 퍼스트레이디 시절이 외적인 실력을 쌓은 시절이었다면 아버지의 죽음으로 맞이한 18년간의 칩거는 스스로 내공을 다지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를 그렇게 보내면서 형성된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각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박근혜를 이해하는데 너무도 중요하다.

정치인 박근혜로 거듭 나다

(ⓒ폴리뉴스)
박근혜는 자신이 정치에 뛰어든 계기를 IMF 위기에서 찾고 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처럼 어이없이 무너지나 하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고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나 혼자만 편하게 산다면 훗날 죽어서 부모님을 떳떳이 뵐 수 있을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치권에서는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결심했다고 보고 있다. IMF로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커지자 대선 패배 위기에 직면한 한나라당이 박근혜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박근혜 자신도 절묘한 타이밍에 결심했다.

1997년 12월 10일 대선을 8일 앞둔 시점에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하고 TV를 통해 지원연설도 했는데 국민들 반응은 뜨거웠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큰 힘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승패를 뒤집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나라당은 최초로 야당이 되어 큰 충격에 휩싸였는데 1998년 4월 2일 재보궐 선거는 한나라당 운명에 중요한 고비가 되었다.

과거 아버지가 젊은 시절 교편을 잡았던 문경 예천에서의 출마를 생각했던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대구 달성군에서 당시 여당후보에게 크게 뒤진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달성 출마를 권유하는 당 지도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어려움이클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결과는 대승을 거두었다. 존립의 위기에 흔들리던 한나라당도 다시 힘을 얻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0년 4.13 총선 이후에는 당 지도부 선출과정에서 여성 당연직 부총재직을 거부하고 경선에 출마하여 자력으로 부총재에 당선되었다. 당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는 1위로 꼽혔지만 박근혜의 부상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이회창 총재 측의 견제로 2위에 그쳤다.

이때부터 박근혜 부총재는 당내 비주류로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주장하며 이회창 총재 측과 맞서기 시작했다. 결국 2002년 2월 27일 중앙위원회에서 자신이 주장한 당헌개정안를 관철하지 못하자 이튿날 박근혜는 탈당을 단행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통해 잃어버린 정권을 되찾기를 바라는 보수진영에서는 박근혜의 탈당에 대해 보수의 분열로 받아들여 마뜩찮은 시선을 보냈고 이때가 박근혜로서는 정치인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고 기회를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자 박근혜는 한나라당이 자신이 내세운 정당개혁을 받아들인 것을 명분으로 다시 합류하여 이회창의 두 번째 대선 도전을 돕는다. 그 무렵 2002년 5월 11일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고 금강산댐 공동조사,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 등의 합의를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정몽준 후보 측으로부터 연합을 제의 받았으나 그 측근에 김재규를 변호했던 강신옥 전 의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회동 자체를 거부했던 것도 박근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수사로 크나큰 위기에 봉착했고 박근혜는 대표경선에 출마하여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할 선장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했던 연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저는 오늘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부모님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당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이후 천막당사로 옮겨 배수진을 치고 2004년 4.15 총선에서 전국을 도는 강행군으로 121석을 얻는데 성공하여 한나라당을 다시 위기에서 구했다. 2년 3개월 동안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면서 4번의 재보선을 치르고 4번 모두 승리하여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고 집권당에 맞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학법 개정을 막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지나치게 수구 보수적인 이미지로 각인되기도 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반면 한나라당 의원 다수가 반대하던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주도로 법안을 통과시켰던 만큼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박근혜가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 할 것이다.

2007년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 이후 깨끗이 승복하고 대선을 도왔고 이후 한나라당 내에서 다시 비주류의 길을 걸어 왔지만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고수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격돌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는 2010년 8월 21일 회동 이후 잠정적으로 타협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렇지만 2012년으로 가는 동안 여권 내부에서도 어떤 변수들이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려우며 야권 또한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정치인 박근혜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주목하게 된다.

대화합(GREAT HARMONY)의 정치 가능할까

(ⓒ폴리뉴스)
이제 박근혜는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이다. 신뢰와 원칙, 애국심, 봉사정신, 절제된 언어, 바른 행동양식 등의 덕목들을 이미 갖추었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지층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공주병, 보수적 권위와 국가주의 이미지, 소통과 포용력 부족, 대안 부재의 리더십, 개혁성 부족 등의 부정적 인식도 만만치 않다. 또한 그로 인해 지지층의 확장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자신이 내건 바 있는 대화합의 정치가 가능할 것인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박근혜는 2001년 외신기자들과 회견 과정에서 자신의 영어 이니셜인 GH를 ‘GREAT HARMONY’(대화합)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박근혜가 생각하는 대화합은 지역간, 계층간 갈등의 해소,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증진 등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이 그대로 주장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는 한정된 면면들을 볼 때, 과연 대화합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것이 2012년을 바라보는 박근혜가 풀어 나가야 할 첫 번째 과제라 할 것이다. 또한 정치에 몸담은 이후 내놓은 정책들이 앞에서 말한 대화합의 방향과 일치하는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지나치게 재벌 등 소수 특권층에게 관대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고 야당 시절 국가정체성을 내세우는 과정에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을 내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복지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개진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구체성을 가질지 지켜볼 대목이다. 차기 대통령 감으로 국민들로부터 가장 큰 선호를 받고 있는 정치지도자로서 진정으로 대화합의 정치를 펼치고자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개진하고 국민들과 소통해야 할 것이다. 소통이 없이는 결코 화합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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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박근혜와 MB,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승부 / 박혜경 기자

[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박근혜와 MB,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승부
[박근혜 대세론 분석①] 사활을 건 여권내 권력투쟁 전개 예상
[폴리뉴스 박혜경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5 19:23:15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5월호(22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20년 만에 찾아왔다는 총선과 대선이 꼭 일치하는 2012년 대선에서 상수는 박근혜다.

‘박근혜 대세론’이 허구냐 아니냐의 논란을 조롱하듯 그의 고공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갈 뿐 멈추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고 레임덕이 오면 올수록 ‘박근혜 대세론’은 ‘박근혜 집권’에 마침표를 찍는 9부능선을 조만간 넘어설지도 모른다.

굳건한 대세론 위에 우뚝 선 박근혜의 위세는 낡아지고 있는 MB의 집을 부숴버리기 일보직전이다. 거대공룡 ‘박근혜’에, 마땅히 ‘대항마’라고 하기도 멋쩍은 고만고만한 다른 여야 주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대선판을 볼 때, 이미 ‘대선은 끝났다’고 선언해도 될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여유만만해야 할 여권이 오히려 야권보다 더 초조하다. 태생적으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종이 다른 씨’를 배고 탄생한 이명박 정권 본류들의 초조함은 5년짜리 시한부가 끝나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탄생부터 씨가 다른 미래권력을 품안에 안고 탄생한 독특한 권력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의 한계이자, 박근혜 대선의 경계선이다. MB는 이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넘을 것인지, 박 전 대표는 이 경계선을 누구와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그것이 과제다.

야당 같기도 하고 여당 같기도 한 박근혜의 이중성은 ‘MB 정권교체’가 될 것인지 ‘MB 정권재창출’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것이 현재권력의 완전한 신뢰를 받지도 못하지만, 완전히 ‘독자적 힘’만으로 정권을 잡을 수도 없는 박근혜의 딜레마다.

현재 권력은 힘이 강하다. 역대 대선을 보면, 집권말기 각종 비리로 레임덕이 왔어도 현재 권력의 힘은 셌다. 힘이 아무리 빠져도 ‘여권후보를 당선되게 하지는 못해도, 당선을 막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힘은 있다고 한다.

특히 대선 후보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경선제도’는 ‘현재 권력의 힘’이 여과 없이 발현되는 아주 유효한 마당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이 반영되지만 여당의 대선경선은 ‘청와대의 힘과 여권의 조직표’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권력게임’의 장이다.

‘민심과 당심, 靑心’의 비율이 ‘1 대 1 대 1’ 은 될 수 있다. 여권의 대선전은 예선전인 경선도, 본선도 모두 ‘3박자 정치’다. 민심이 아무리 높아도 청와대의 지원이 없고, 당심을 얻지 못한다면 여권의 대선후보의 자리에는 오르기 어렵다. 역대 대선서 ‘3박자’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여권주자들은 한순간 포말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친여성향 유권자의 절반인 50%선에 육박한 압도적 ‘민심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경우도 검찰, 국정원 등 권력을 쥐고 있는 ‘청와대’와 당조직을 움켜쥔 ‘친이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 대세론’이 허수인가 실수인가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 MB표와 결합해야 위력적이나
‘반MB정서’ 부담


‘박근혜 대세론’이 대선 승리까지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 청와대에서조차 ‘확률 50%’로 보고 있다. ‘야권단일후보’와 TV토론에서 맞붙었을 때, 박근혜 경쟁력이 한순간에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는 ‘MB와 박의 통합’만이 이처럼 불안한 ‘朴 대세론’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요체로 본다. ‘MB-박의 통합’으로 선진당(대표 이회창), 선진통일연합(이사장 박세일) 등 기타 제반 보수세력이 총결집해야만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세론은 예상치 못한 ‘복병’에 의해 무너질 수 있기에 ‘세력’으로 묶어야 한다는 판단인 것이다.

2007년 박근혜-이명박 경선 당시 순수 박근혜 지지율은 25%선이었고, 이것이 고정적인 ‘박근혜 지지층’이다. 그러나 지금 40%대를 오르내리는 표심은 ‘MB 지지층과 야권이탈층’이 합쳐진 것이다. 야권단일 세력이 확고해지면 박근혜로 이탈되었던 야권 지지층이 다시 회귀할 것이고, 여기에 MB와 갈라선다면 박근혜에게 갔던 MB 지지층도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靑心’과 함께하지 못하면 ‘박근혜 집권’은 장담할 수 없다고 본다. 때문에 대세론이 허수가 아닌 실수가 되려면 당심보다는 ‘靑心’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간 경쟁으로 당심은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靑心은 하나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MB와 손잡을 경우 ‘반MB전선’의 흐름을 탔던 野성향 박근혜 지지층이 확연히 이탈할 것이고, 대선 본선에서 야권의 ‘반MB’ 화살을 정면으로 맞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4년차로 접어들면서 광범위한 반MB정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분명히 드러났고 이번 4.27재보선에서도 다시 나타났다. 박근혜로선 靑心과 통합한다는 의미는 반MB정서의 직격탄을 정면으로 맞아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근혜로선 ‘현 정권에 대한 차별화’ 수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관건이다. 즉 ‘MB계승’이냐 ‘MB차별화’냐의 문제다. 박근혜 대선 전략의 향배가 ‘집권의 방향’이 현 정권과 차기정권의 관계 설정(정권재창출-정권교체)에 따라 대세론의 향방도 변화를 맞이할 뿐 아니라 박근혜 대권고지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YS와 맞선 이회창의 길이냐?
노태우에 맞선 YS의 길이냐?


정권재창출과 정권교체의 문제를 짚으려면 ‘대선 역사’를 알아야 한다. 특히 집권여당의 대선 역사 속에 그 해답이 있다. 1992년 대선과 1997년 대선이 반면교사이다.

1992년 노태우에서 YS정권으로의 권력교체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여권내 ‘정권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의 근본적 문제를 보였다.

1990년 3당 합당 후 민자당 차기 대선주자 중 ‘굴러온 돌’ YS가 대선지지도 1위였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도, 당에서도 YS에게 차기 권력을 이양해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대세론’이 강했어도 노태우는 권력을 내줄 의지가 없었다.

민심은 앞섰으나 당심이 턱없이 부족하고 靑心도 변심해버리자 YS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십분 발휘, ‘투쟁’을 통해 대권후보를 따냈다. 김윤환계를 흡수해 ‘新 민주계’를 만들어 ‘힘’(당조직)을 키워 정통 민정계인 이종찬 후보를 꺾고 민자당 대선후보가 되었다.

또한 YS는 노태우 대통령 임기가 1년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차별화에 들어가 조기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조기 대선경선’ 구도를 조성해 사실상 ‘노태우’에게 도움 받기보다는 자력으로 권력을 잡아가는 파괴력을 과시했다.

이에 분노한 노태우 대통령은 선거 막판에 민자당을 전격 탈당하고 선거중립내각을 구성하기까지 이르렀다. 자신에게 화살을 겨눈 집권당 대선 후보를 돕지 않겠다는 ‘중립’ 선언이다. YS의 적수 DJ의 집권도 받아들이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야당투사’ 출신 YS는 ‘현재권력 노태우’와 정면승부를 벌여 대선 승리를 쟁취한다. 이러한 피투성이 내전 끝에 이룬 YS의 집권은 정권재창출이라기보다는 여권 내에서의 정권교체에 가까웠다.

물론 과거 민정당 조직을 상층부만 제거한 채 하부는 그대로 끌어안은 정권이어서 ‘절반의 정권교체’다. 그런 다음 YS는 ‘역사바로세우기’를 단행,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쌍끌이로 구속’시켜버렸다. 아마 집권과정에서 품었던 ‘민정계에 대한 배신감’ 도 작용했을 것이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DJ는 완전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내 국민의 정부를 수립했다. 여기서 DJ의 집권을 사실상 용인한 것은 YS였다. 다름 아닌 여권 내 정권재창출을 선언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낙선을 방조한 것이다. 그 결과 잘 나가던 이회창 후보가 단 1.3%p(39만 표)차이로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신한국당 대선경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당시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였다. 게다가 민정계가 YS때 당한 수모와 배신을 갚기 위해 총결집했고 여기에 민정계와 손을 잡은 중도민주계가 합세, 모두 이회창 후보를 강력히 밀면서 여유 있게 신한국당 대선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세론’에 경도되고 힘 빠진 YS보다 차기의 힘이 될 ‘민정계’의 세력을 지나치게 믿었던 이회창 후보는 ‘YS차별화’카드를 너무 빨리, 너무 급하게 썼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후보 경선의 중립을 위해 YS탈당을 요구했다. 그러자 YS는 노태우와 똑같이 탈당하고 선거중립내각을 구성했다. 노태우처럼 DJ가 돼도 상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昌은 YS가 탈당하자마자,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꾸었다. YS의 신한국당을 잇지 않겠다는 의지다. 다시 과거 민정당의 원뿌리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YS가 노태우를 배신했듯, 昌도 YS를 그대로 배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YS의 직계인 이인제가 탈당하여 독자출마를 선언했고 이것은 이회창 후보에게 직격탄이 되었다. 이 ‘이인제 500만 표’는 결국 ‘이회창 죽이기’의 결정타였다. 이인제 후보의 500만 표는 이회창이 YS와 조기결별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카드라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에 ‘DJ가 노태우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도 막았다. DJ를 보호해준 것이다. 게다가 昌의 최대 아킬레스건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커져만 가도 이를 방조했다. YS는 적극적인 수사지시를 하지 않았다. 방관함으로써 의혹을 키운 것이다. 아들 병역비리는 昌의 ‘대쪽 이미지’를 무너뜨렸다.

집권말기 레임덕에 허덕이고, 한보비리에, 노동법 파동으로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쳤던 YS였지만 ‘살아있는 권력’은 역시 무섭다는 사실이 역력히 드러난 경우다. 이러한 대선역사에 근거해 지금 ‘친이계’는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당 속 야당’ 반MB투사 박근혜
또 다른 대세론의 성격


(ⓒ폴리뉴스)
박근혜 대세론에는 ‘반MB투사’로서의 박근혜가 일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박근혜 대세론’의 또 다른 성격이다. 야당도 못하는 현재 권력과의 투쟁이 ‘박근혜’를 부동의 1위로 올려놓은 데 한몫했다. 즉 ‘여당 내의 야당’ 박근혜란 특성이 극대화된 것이 ‘대세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여당의 틀’을 넘어 ‘야당투사’로 나아갈 땐 지지도가 급락한다. 비판을 하더라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MB를 놓고 야당과 손잡는 ‘배신’이 아니라 여권 내에서 ‘MB 비판적 지지’ 입장을 취하는 ‘한계 있는 비판’ 수준을 원하는 것이다. 보수층 지지자들은 MB의 국정수행을 일정 정도 견제하는 수준을 바란다는 것이다.

이는 2009년 상반기 40%를 넘던 박근혜 지지율이 MB와 세종시 갈등이 치열했던 2009년 말에서 2010년 초에 25% 수준까지 하락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2010년 8월 21일 MB와의 회동 이후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박근혜 지지율은 35%으로 다시 치솟았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는 ‘여당 속 야당’이다. 이 점이 현재 박 전 대표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이는 곧 MB가 방해하면 여권지지층 결속에 문제가 발생해 대권고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박 전 대표는 경계선에 서 있다. 특히 집권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레임덕은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MB와의 차별화’의 필요성은 더 부각된다. 박 전 대표가 여당이면서도 여당일 수 없는, MB정권이면서도 MB와 같이 갈 수 없는 존재의 딜레마다. 그러나 ‘경선’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는 MB에게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친이와 청와대는 朴에게 분열보다는 ‘통합과 분권’을 요구하고 있다. ‘함께 그리고 따로’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서로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없어서는 존재가 불가능한 관계가 바로 ‘MB와 朴’의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박근혜는 2007년 대선 경선과 2008년 공천때 서로 물고 뜯은 전쟁을 치른 후유증이 꽤나 깊다. 그리고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무참히 무너졌던 야당을 대신해 ‘홀로’ MB정권을 견제해 왔다. 때문에 ‘야권표’가 상당부분 원조보수인 ‘박근혜지지’로 넘어왔고, 호남과 20~30대에도 박근혜 지지층이 상당층 포진해 있다.

이것 또한 ‘박근혜 대세론’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다. MB와 싸우면서 크고 싸우면서 굳건해진 것이 바로 ‘박근혜 대세론’인 것이다. 때문에 박근혜를 지탱하고 있는 층은 ‘한나라당의 원조 보수층’도 있지만 ‘반MB 비민주당 중도층’도 상당히 포진해 있다.

같은 당이면서 동지일 수 없는 ‘박근혜와 MB’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즉, ‘친이-친박’이 최악의 경우 ‘분당’까지 감행하는 ‘독자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한배를 타는 ‘한나라당의 파트너십’으로 유지될 것인가가 2012년 대선판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다.

두 개의 친이, 이상득-이재오
박근혜, 이상득과 손잡나?


박 전 대표가 ‘야당투사’의 이미지로 대세론을 형성했다 해도 그는 여권인사다. 그렇기 때문에 마냥 ‘투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예 갈라서지 않을 것이라면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화해의 모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작년 8월 21일에는 이 대통령과 전격 회동하여 ‘MB정권 성공과 차기 정권재창출’에 서로 힘을 합치자고 약속했다. 이른바 8.21 대회동에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깨지지 말 것을 ‘약속’한 것이다.

친이 그룹은 영남 보수층을 기반으로 한 ‘영포라인’의 좌장인 MB친형 이상득 의원과 수도권을 기반으로 상대적 개혁성을 띤 ‘함께 내일로’의 이재오 특임장관 그룹이 있다. 이 중 아직 ‘박근혜’를 전폭적으로 믿지 못하는 세력이 있다. ‘이재오계’ 또는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박 전 대표와 대립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정치권에서는 ‘박근혜-이재오의 화해’는 어렵지 않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만일 현 정권에서 미래 권력 박 전 대표가 손을 잡는다면 ‘이상득 라인’을 통한 박근혜와 MB 간 화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로선 ‘친이가 한 그룹이 아니라 두 개의 친이가 있다’는 것은 유리한 국면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친이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분명 다르다. 영남권 친이인 이상득계의 경우 박근혜와의 화학적 결합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 진단이다.

이에 종종 ‘박근혜-이상득 연대설’이 거론되었고, ‘두 사람의 회동’ 기사도 나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물론 양측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실무근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박 전 대표가 ‘MB친형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장관’과 차별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관측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집권초기 18대 총선에서 이재오에게 함께 공천학살 당했던 ‘친박과 이상득 의원’이 ‘反이재오’의 동변상련의 처지에서 공감대가 통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박-SD 모두 정통 TK’라는 점에서 수도권 정서와 다른 TK의 동지적 정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1992년 대선서 ‘신민주계’를 만든 허주 김윤환의 역할을 이상득 의원이 맡는 밑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영남권 친이세력과 함께 일부 비영남권 친이세력의 투항을 통해 범친박계를 형성해 당내 경선을 헤쳐나갈 경우 승산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걸림돌은 이재오가 대표하는 수도권 친이계다. 박근혜는 이재오 특임장관과는 만났다는 일말의 이야기조차 거론되지 않는다. 그만큼 거리가 멀다. 이 장관과 수도권 의원들은 MB의 정치기반이었다.

‘수도권 분할반대’로 세종시를 반대했고,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영남은 MB와 박 전 대표로 분열되었지만, 수도권은 오로지 이 대통령 기반이었다.

친이계가 갖고 있는 ‘수도권 지지층’이 박 전 대표를 과연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냐는 ‘박근혜 집권’에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은 野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MB와 투쟁하는 박근혜’를 일정 정도 지지했지만 ‘MB와 손잡은 박근혜’를 보았을 때, 과연 지지할 것이냐는 미지수다.

게다가 이재오 장관을 위시한 수도권 ‘친이계’의 상당수는 이른바 박정희 유신시대,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박정희 독재의 연장’이 될 수 있는 박근혜 시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이들은 YS를 그 뿌리로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박정희 TK세력에 대항한 YS PK세력과 수도권 YS세력으로 권력을 잡았던 신여권 세력이 이들의 뿌리다.

그러나 박근혜 세력은 그렇지 않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이른바 ‘원조 보수’다. 지금도 YS는 박근혜를 인정치 않는다. 이것이 공천에서의 친박학살과 독재자의 딸이라는 칼로 박근혜와 친박세력과의 전면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고 역사가 다른 친이그룹에서는 영남TK와 원조보수를 기반으로 하는 ‘박근혜와의 화해’는 좀처럼 힘들 수도 있다. 오히려 이들 친이계는 ‘박근혜 대항마’를 내놓는 데 여전히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이에서 ‘박근혜 대항마’가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입장은 특히 ‘수도권 친이’그룹이 가진 공통점이다. ‘영남 친이’는 누구라도 박근혜에게 한 발을 걸쳐놓은 것과는 다르다.

박근혜 대세론,
여권내 ‘뚜렷한 대항마’가 없다


(ⓒ폴리뉴스)
‘박근혜 대항마’ 만들기를 수도권 친이계가 주도하지만, 여야를 통틀어 여전히 독보적인 박근혜에 맞설 만한 인물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바로 이점이 여권내 대권 투쟁에서 박근혜의 승리가능성을 높여주는 최대요인이다.

지금 이 대통령과 친이세력은 안절부절이다. 박근혜 대항마로 내세운 인물마다 낙마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한때 대선지지율 10%대까지 치고 올랐으나 곧바로 추락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또한 국민들에게 대선주자감으로 선을 보였으나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총리 지명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 4.27 재보선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함으로써 ‘대항마’로서 가능성의 불씨는 겨우 되살렸다.

친이계가 박근혜를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를 가지지 못한 것이 지금 ‘대세론’ 형성의 한 축이다. 이러한 상황이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경우 여권은 급속히 ‘박근혜를 향한 줄서기’를 피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친이계는 올해 중으로 일정한 수준의 대항마를 국민에게 반드시 내보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지금 현재까지 친이계에서 떠오른 대권주자군은 김문수 경기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전 대표 등이다. 이와 별도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거론된다. 결국 친이계는 이들 중에서 ‘대항마’를 찾아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들 중 여론조사상 가장 앞서 있는 인물이 김문수 지사와 오세훈 시장이다. 그리고 그 뒤에 정몽준 전 대표가 있다. 김 지사와 오 시장은 서울, 경기의 ‘수도권’이 기반이다. 박 전 대표가 취약한 ‘수도권’을 결집시킬 수 있는 좋은 후보감이다. 김문수-오세훈 두 수도권 단체장 중 한 명이 나선다면 ‘영남 보수 대 수도권 중도파’의 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

박근혜로선 이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으나 아직은 이들의 대중지지도가 위력적이지 않다는 점이 큰 이점이다. 그러나 친이계가 이들 중 한 명으로 결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기에 MB의 공식적인 지지까지 곁들여질 경우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최근 김문수 지사가 MB에게 자신을 밀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 대통령이 몸을 낮추지 않으면 불행한 종말을 고할 것이다. 이 대통령도 퇴임 후 피격, 옥살이, 자살한 역대 대통령처럼 행복할 것 같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박근혜가 아닌 자신을 밀어달라는 요구다. 그러고는 지난 4월 19일에는 “내년에는 나라를 구하러 나서겠다”며 공개적으로 대선출마 의지까지 밝혔다.

‘전면 무상급식=포퓰리즘’이라며 주민투표까지 준비하며 배수진을 친 오세훈 시장도 수도권 친이계의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대선과 관련한 발언을 크게 하지 않았으나 최근 공개적 출마의사도 피력했다. 이는 곧 박근혜를 잡을 ‘카드’로 MB와 친이계가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제스처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현대와 옛 지역구인 울산을 근거지로 하고 있으면서 서울 동작구를 새 지역구로 갖고 있어 영남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서울에서도 지지를 기대할 수 있다. 정 전 대표는 최근 방미 중에 “대통령이 되어서 다시 올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대선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방미 후 한미의원외교협회장 자격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70분간 독대, 내년 총선 대선 등 국정운영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대표 또한 MB가 친이계의 대표주자로서 자신을 밀어주길 희망하고 있다.

여기에 경남이란 지역기반을 지닌 김태호 전 경남지사도 중앙정치권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언제든지 ‘박근혜 대항마’로 자신의 가치를 드높일 기회를 노리게 됐다. 결국 이재오를 중심으로 한 친이계는 이들 중 1명을 ‘박근혜 대항마’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로선 2012년 당내경선에서 MB를 대리한 친이계 대권주자 탄생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당내경선에서 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4년 이상 지속된 ‘대세론’은 자칫 대선 국면에서는 오히려 효력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쟁 주자가 나오더라도 친이계의 대표성을 지니지 않도록 해야만 그 결속력을 약화시켜 당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 ‘대세론’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역할은 바로 이상득계에 핵심 열쇠가 있는 셈이다.

박근혜, MB와의 타협 없이는 내상 입을 가능성 커

MB와 친이계로선 대항마가 절실하다. 대항마가 있어야 MB로선 최소한 박근혜와의 ‘사후 보장’에 대한 거래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MB로서는 박근혜에게 미래 권력을 무기력하게 헌납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안고 있다.

친이계로선 ‘대항마’를 통한 박근혜 낙마 시도를 1차 목표로 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실패할 경우 MB는 ‘사후 보장’이란 거래를 도모할 것이다. 여기에 문제는 ‘대항마’가 마땅찮은 MB를 상대로 박근혜가 과연 타협할 것인가이다.

친이계와 MB로선 임기말이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박근혜의 당내경선 승리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박근혜에게 보험들기’란 거래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근혜가 MB와의 타협을 거부할 경우 MB는 극단적으로 1997년 대선시 YS가 선택한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박근혜에게 존재하는 여권내 권력투쟁에서의 마지막 관문이다. 이 경우 MB는 타협하지 않는 박근혜를 대상으로 당내경선에서 내상을 입히려고 할 것이고 본선에서도 여권분열 구도를 만들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노태우나 YS처럼 反박근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는 박근혜 대권고지 등정을 막는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게다가 야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처럼 타협 가능한 대선주자가 전면에 나설 경우 MB는 까다로운 박근혜보다 무난한 손학규와 거래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YS가 DJ의 집권을 용인한 것과 비슷하다. 지금 박근혜는 태생적으로 MB와는 물과 기름이어서 ‘MB 손잡고 권력만들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적’으로 만들 수도 없는 처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저물어가는 해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방해할 힘은 충분히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로선 MB의 방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길을 택할지 아니면 MB와의 타협을 모색할 지는 향후 정치상황에 따라 격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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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박근혜 대세론엔 수도권이 없다 / 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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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박근혜 대세론엔 수도권이 없다
[박근혜 대세론 분석②] 돌아선 ‘수도권 민심’, 되돌릴 카드는?
[폴리뉴스 박혜경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6 17:53:23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5월호(22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대구경북(TK)이 기반인 원조보수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수도권이 비어있다. 아직까진 여론조사상 야성향이 강한 수도권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미 수도권에서 빨간 경보등이 켜진 상황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 유권자의 60%는 젊은 부동층인 20~40대이다. 박 전 대표는 민심의 바로미터인 이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할 뿐더러, 이들에 전략, 그리고 정치, 행정, 경제의 중심인 수도권에 대한 전략이 없다. 수도권 유권자를 잡을 정책도 없지만 박근혜를 끝까지 지지하고 박근혜를 위해 일해 줄 그의 ‘조직’이 수도권에서는 약하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수도권 전략은 다름 아닌 수도권의 기반이 강한 MB와 친이계와의 관계개선에 의존했다. 그러나 친이와 갈등이 쉽게 풀어지지 않고 특히 친이 주자인 오세훈, 김문수가 버티고 있어 친이와 관계 개선만을 통한 수도권 장악은 어려워지고 있다.

대선경선을 치러야 하는 마당에 두 친이주자가 수도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오 시장과 김 지사는 한 술 더 떠 자신들이 ‘박근혜 대항마’로 대권을 꿈꾸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4.27 재보선 참패 후 한나라당에 대한 수도권 민심이 싸늘해졌다. 특히 ‘분당 패배’는 등 돌린 수도권 민심, 그 자체다. ‘하늘아래 천당’이라는 분당 패배는 MB기반이었던 수도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는 증거다.

분당의 이반은 ‘전세값 대란’, ‘뉴타운 실패’ 등 MB의 경제정책과 서민정책 실패와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집’을 재산의 중심에 놓고 사는 중산층이 이반한 것이다. MB기반인 수도권이 와해되고 있는 상황에 이제 박 전 대표로선 수도권 공략이 더 어려워질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친이계와의 화해만으로도 수도권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MB, ‘수도권 지역주의’ 만들면서 집권

이명박 정부 집권은 ‘영남과 수도권’의 연대 또는 결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전의 영충연대의 틀을 과감히 깬 것이다. 세종시, 수도분할 반대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수도권의 기득권을 약화시키고 충청권만 잘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비쳐진 세종시 건설 반대는 영남과 수도권 보수층의 공통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실패했지만 집권하자마자 ‘세종시 백지화’를 추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골간은 ‘지역주의’다. 벗어나려해도 벗어나지지 않는 지역주의를 이리 짜고 저리 짜서 유리한 판짜기를 끝내면 ‘민심’이 따라왔다. 짜놓은 판에서 민심이 떠나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것이 이른바 우리식 ‘선거운동’이다.

그만큼 지역주의는 강고여 여야를 막논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거전략을 짜왔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수도권은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탈지역주의 중립지대’로 야 성향이 강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은 ‘수도권 지역주의’라는 해괴한 별칭을 얻으며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킴으로써 여당이 우세한 지형으로 변화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충청이전 세종시에 반대하는 ‘수도분할반대운동’을 열렬히 전개하면서부터다. MB와 친이가 주도했던 이 운동은 집값, 땅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수도권 보수세력들을 결집시키는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했다. 여기에 집값, 땅값을 높이겠다는 ‘뉴타운 정책’은 중산층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로 가장 취약했던 ‘야도’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을 장악하며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뉴타운’이 실패하고 ‘세종시’는 충청으로 버젓이 이전하고 물가는 턱없이 오르자 수도권이 이반된 것이다. 수도권은 자신들의 이익과 접목된 부분에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치 ‘핌비’, ‘님비’ 현상을 보는 듯하다. MB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도권이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로서의 지위를 상실해버리고 ‘수도권 지역주의화’를 노골화했다.

경북 포항이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기업인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왔던 MB는 상대적으로 영남기반이 취약했다. 충청은 세종시 문제불안했다. 그런 MB가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맞아 역대 대선역사상 가장 큰 표차로 승리할 수 있었던 동력은 다름 아닌 수도권 지지 덕분이다. 물론 영남은 박근혜 덕분에, 충청은 세종시 원안대로 공약을 바꾸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압도적 득표를 했지만, 수도권이 결정적 승인이었다. 수도권에서 2배 이상을 이겨버린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48.7%를 얻어 26.1%를 얻은 정동영 후보를 22.6%p차로 압도해버렸다. 무려 530만표의 차이다.

서울, 인천, 경기의 수도권은 거의 더블스코어로 이겼다. 서울은 MB 53.2%, DY 24.5% 득표로 28.7%p차(145만표차)로 전국 평균보다 더 벌어졌다. 인천은 MB 49.2%, DY 23.8% 득표로 25.4%p차(30만여표차)로 역시 평균보다 더 큰 격차가 벌어졌다. 경기는 MB 51.9%, DY 23.6% 득표로 28.3%p차(14만여표차)로 30%p가까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에서만 190만표 이상의 표를 더 얻었다. 수도권의 이 어마한 표차는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앞선 것에 4~5배 수치다. 당시 서울에서 노무현 후보는 51.3%, 이회창 후보는 45.0%로 득표율 격차는 불과 6.3%p밖에 안 되었고 득표수 차이는 불과 34만5천여표 차였다. 인천, 경기도 서울과 비슷하게 박빙의 한자릿수 차에 그쳤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민심, 청계천 사업으로 상징되는 서울시장이었던 경제성공의 화신 MB에 대한 지지, 행정수도 반대의 수도권 민심이 결합된 것이다.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서울을 여당 표밭으로 완전히 인수한 것이다.

친이는 이후 18대총선에서도 이 여세를 몰아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걸어 수도권 대승을 거두었다. 더 이상 수도권이, 서울이 ‘야도’가 아니었다. 이렇게 18대 총선 때 수도권에서 당선된 새로운 신진그룹이 ‘친이’이며, 이들이 통칭 ‘명박돌이’, ‘타운돌이’이다.

박근혜 대세론에는 수도권이 없고,
수도권은 더 이상 MB기반이 아니다


문제는 ‘박근혜 대세론’에는 확실한 수도권 지지층이 없다. 게다가 수도권은 더 이상 MB기반도 아니다. ‘분당 참패’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집권후반기로 가면서 ‘수도권 민심’이 나날이 이탈하고 있고 ‘친이’에게 불리해지고 있다. ‘뉴타운’이 실패하고, 전세난, 물가대란, 기름값 등등 경제정책, 서민정책이 실패하면서 수도권 민심은 가파르게 MB로부터 등돌리고 있다. ‘친이’그룹인 수도권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내년 19대총선에서 ‘전멸위기’의식이 팽배하다.

19대 총선의 ‘타운돌이’들은 노무현 정권 때인 18대 총선의 ‘탄핵돌이’들이 전멸했던 길을 갈 것이란 위기감이 높다.

2004년 탄핵돌이로 대승을 거두었던 수도권 ‘친노’들이 4년 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살아남고 초토화되어 버렸다. 실제 MB중간평가에 해당하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쓰디쓴 수도권 대참패는 2012년 총선의 전주곡으로 비춰진다.

대선을 앞둔 2012년 4월 총선은 6.2지선과 4.27 재보선처럼 ‘MB 총체적 심판장’이 될 것이며 MB심판을 내건 야권연대가 승리한 6.2 지선 민심이 결정적인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수도권 민심’은 한순간에 180도 뒤집혔고, 또 한순간에 또다시 뒤집혔다.

4월 26일자 <폴리-한백> 2012년 총선 가상대결에서 수도권에서는 한나라당 39.2%, 야권단일 46.0%로 나타났다. 대선 가상대결에서 수도권은 박근혜 49.2%, 야권단일 40.2%로 평균인 박근혜 51.6%, 야권단일 37.6%보다 박 전 대표가 낮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서도 수도권에서는 ‘내년 대선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응답이 41.6%로 평균 45.8%보다 낮았고, ‘한나라당 변화로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23.3%로 평균 22.9%보다 높았으며, ‘야권단일화로 지속되지 못할 것’이 15.5%로 평균 14.7%보다 높았다.
이러한 여론조사가 아니더라도 6.2지방선거와 4.27선거 분당결과는 ‘수도권 압승’을 했던 MB정권이 집권한 지 4년 만에 ‘수도권 완패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MB와 친이 텃밭인 수도권은 이제 한나라당에게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수도권 친이의 힘’이 필요하다기보다 수도권을 빼앗긴 ‘친이 책임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집권 4년 만에 180도 민심이 바뀐 것이다.

6.2, 4.27선거 거치면서 다시 ‘야도’ 된 수도권,
朴 수도권 잡을 준비되었나


지금은 박 전 대표가 수도권 친이가 필요하기보다는 역으로 수도권 친이가 총선에서 당선을 위해 ‘박근혜’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역전지세’가 된 것이다. 때문에 4.27 참패 이후 ‘박근혜 역할론’이 당에서 전면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영남이 아닌 수도권에서 내년 총선 대참패에 대한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수도권 민심’을 다독이고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는 ‘영남보수 대표’ 이미지만 더 강화하고 있다. 이전에 세종시 수정안을 저지한 이력 또한 수도권 민심을 모으는데 취약점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문제로 이 대통령과 정면충돌을 감행해가면서 영남민심에 손을 들어주었다. 정부에서 국익을 위해 ‘백지화’ 하겠다고 발표했는데도, ‘약속을 지켜라’ ‘동남권 신공항은 필요하다’ 는 등의 논리를 펴며 ‘대선공약으로 할 것’이라고 영남민심에 편승했다. 이를 두고 MB와 똑같은 ‘票퓰리즘’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충청 세종시 문제 때도 정부와 대립각을 펴며 충청민심에 순응했듯이 이번에도 영남민심에 순응하고 있다. 그동안 ‘친이-친박’ 갈등과 세종시 이전 추진 입장을 보면서 영남에서도 ‘박근혜 회의론’이 일기도 했지만, 이번 동남권 신공항 ‘한마디’로 영남민심은 박근혜에게 기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에 어느 한 쪽도 손을 들어 줄 수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뉴타운에 환호하면서 여당을 지지했으나 3년이 지난 현재 뉴타운 실패로 배신감이 들끓는 수도권 민심을 박근혜 전 대표가 온전히 헤아리는 지는 못하고 있다. 친이-친박 갈등 해소 덕으로 ‘얻어걸리 듯’ 수도권 민심을 얻을 수는 없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이 수도권에서도 안착하려면 친이계와의 화해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최대한 동원해 수도권을 헤쳐나가야 할 판이다. 수도권이 돌아서면 ‘영남’만으로 대권을 잡을 수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내 수도권 지지를 모을 수 있는 친이계와 오세훈, 김문수는 지금 박근혜 낙마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다른 한편 이번 4.27선거 참패는 다른 면에서는 박근혜에게 당내 투쟁에는 유리한 환경조성될 수 있어 주목된다. 이번 선거 패배로 친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나리오를 당분간 중지하고 전면적 궤도수정 작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안방이자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인 ‘분당을’을 빼앗긴 것은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친이 전체’의 비상상황이며 ‘친이주자’들의 비상상황이기도 하다. 여권은 지금 ‘친이 책임론’에 입각한 여권전체의 재편 작업이 한창이다.

내년 총선을 대선 앞에 치룬다는 것은 곧 총선이 ‘MB심판론’ 전면화를 통한 ‘대선주자의 세력확장의 장’이라는 의미다. ‘수도권 공천권’을 둘러싼 ‘친이-친박의 혈투’가 예상되었으나, 6.2지방선거에 이어 4.27선거까지 수도권에서 전패하면서 친이는 더 이상 ‘朴’을 상대로 피흘리는 전면전을 할 기력이 없다.

친이가 박 전 대표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 가능성이 더 커졌다. 4.27선거 이후 당 움직임이 그렇다. 재보선 이후 조기전대에서 ‘당권’은 아마도 ‘친이-친박의 화해구도’로 갈 것이고 수도권 공천권도 화해모드로 가면서 박근혜로의 대권후보 조기가시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오세훈·김문수 경선 불리할 경우 朴과 손잡을 수도...
‘범 친박계’로 재편가능성도


수도권이 무너지면서 ‘친이주자’들도 입지가 약해지고 있어 고민이 많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 들어갈수록 수도권의 ‘반與=반 친이’ 정서가 더욱 강화될 것이고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나설 ‘친이주자’들의 계산도 복잡해진다.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는 당내 경선에서 거대공룡 박근혜를 꺾기가 지금도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4.27선거에서 드러난 ‘수도권 민심’은 자신들의 대권 가능성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을 잘아는 오-김 두 단체장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직을 내놓고 경선에 뛰어 들지는 알 수 없고 박근혜와 손을 잡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또한 경선에 참여하더라도 ‘경선승복’의 명분으로 박 전 대표와 같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 기반이 강한 오 시장은 MB와 거리를 두면서 ‘선택적 복지’를 들고 나섰다. 박 전 대표의 코드에 맞는다. 또 경기 기반이 강한 김 지사는 오 시장보다 더 강하게 MB를 비판하여 ‘반MB’ 대열에 들어섰고 여기에 ‘안보론’을 강조하며 보수성향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 역시 박 전 대표와 만날 수 있는 포인트다.

이처럼 박 전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수도권의 민심이반을 계기로 오 시장과 김 지사를 견인해 협력관계를 구축할 경우 수도권에 대한 강력한 교두보를 구축할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를 통해 2012년 대선과정에서 야권지지로 급격히 이동한 수도권 민심을 되돌리는 노력을 공동으로 펼치면서 영남과 수도권의 결합을 이뤄 대권고지로 향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 번 이반한 민심이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갈 지는 미지수다. 이른바 MB가 뉴타운과 재개발로 불러일으킨 ‘욕망의 정치’의 불꽃은 이미 꺼졌다. 그 분노의 표현이 천당 아래 분당의 반란이다.

박근혜가 수도권 한나라당 세력과 결합한다 해서 야당으로 돌아서고 있는 ‘수도권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 지는 박근혜가 향후 대선경쟁과정에서 어떻게 ‘수도권 민심’에 어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박근혜 대세론’에는 수도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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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야권단일화, 박근혜 대세론의 최대위협 / 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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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검증② 박근혜] 야권단일화, 박근혜 대세론의 최대위협
[박근혜 대세론 분석③] 총선의 야권단일화 돌풍이 ‘박근혜 대세론’ 잠재울 수도
[폴리뉴스 박혜경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7 14:40:50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5월호(22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내부에서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여권의 대표주자가 된다 하더라도 본선에서 야권의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어떻게 될까?

아직은 어떤 야권주자를 단일후보로 내세우더라도 여론조사 상으로는 박근혜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손학규, 유시민, 정동영, 정세균, 한명숙 등 야권주자들 그 누구도 공룡 ‘박근혜’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역대 대선, 6.2 지방선거, 4.27 재보선 등을 볼 때 야권단일화의 위력은 상당 했다.
‘대세론’이 있어도 ‘연합’후보가 나서면 반드시 이겼다는 것이 역대대선의 역사적 교훈이다. 그동안 집권한 대통령들은 대부분 ‘적과의 동침’을 연합이란 방식으로 성사시켰다.

YS의 3당 합당, DJ의 DJP연대, 盧의 노-정 단일화가 그것이다. 민주화 진영 출신으로 굴러온 돌이었던 YS는 민주계라는 약한 세로는 집권이 어렵자 군정 종식의 대상이었으며 보수 본류인‘민정계’와 전격 연합해 집권에 성공했다.

DJ는 YS를 벤치마킹해 ‘유신’의 원죄가 있는 JP와 피말리는 ‘적과의 동침’을 성사시켜 ‘昌대세론’을 단 1.3%p차로 누르고 집권에 성공했다. 盧는 ‘비주류 중 비주류’로 지지 의원 한사람 없는 최약체 후보인데다, ‘호남을 기반으로 얼굴만 영남’이라는 한계를 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국민경선이라는 주말드라마로 민주당 후보가 된 극적 드라마 1탄을 성공시킨 후, 중도층의 지지를 얻었던 MJ와 ‘러브샷 단일화’를 성사시켰고 행정 수도 공약으로‘충청’을 끌어들이는 극적인 드라마 2탄을 성공, ‘昌대세론’을 무너뜨리고 집권에 성공했다.

모두 힘이 턱없이 모자랐던 ‘야권주자’의 드라마 같은 집권성공기다.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시멘트표 쯤으로 알았던 ‘昌대세론’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야권단일후보’와 최종 대결을 벌여야 할 박근혜 전 대표는 역대 대선이 보여주는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4.27 승리로 탄력받은 손학규…
20%대 진입하면 朴 대세론 위협


사실 지금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여권은 ‘대세론’에 MB와 밀월을 통해 권력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지만 야권은 대세도 없고, 조직도, 자금도 턱없이 부족하다. 오로지 ‘정권심판’이라는 모토 아래 ‘무조건 합쳐야 한다’는 당위론 하나밖에 없다.

지금 ‘박근혜 대세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야권단일화가 성사된다면 6.2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처럼 역전승이 재현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4.27에서도 야권단일화 결과, 여권의 대참패는 ‘박근혜 대세론’도 난공불락일 수 없다는 신호다.

‘정권심판론’이 먹히고 여권 전체가 위기에 빠진 이상 여권주자 인 ‘박근혜 대세론’에도 경계령이 울렸다. 특히 분당 참패로 수도권이 흔들리고, 한나라당 지지 기반인 중산층 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다.

박근혜 간접지원에도 불구하고 강원지사 선거 참패는 박 전 대표 대선가도에 상당히 악재가 될 것이다. 강원도는 충청만큼이나 박 전 대표에게 ‘제2의 기반’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4.27의 최대 수혜자 ‘손학규의 부상’은 박근혜에게 비상이다. 손 대표는 분당에서 당선되자마자 ‘야권연대의 힘’이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야권연대의 힘으로 분당과 강원에서 이기고, 순천을 민주노동당에 내주면서 이제 어엿한 ‘야권 단일대선주자’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손 대표가 재보선에서 탄력 받아 현재 지지도인 10%대를 넘어서 20%대로 진입한다면 박근혜와 양강구도가 형성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30%대 내외의 박 전 대표와 10%p차로 좁혀들게 된다. ‘MB없는 순수 박근혜표’는 25%선이 된다는 것이 조사전문가들의 얘기다. 집권말기에 들어서면서 여권 내홍은 깊어지고 난기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손 대표가 20%대로 진입한다면 박근혜 대세론은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이다. 급기야 朴 대세론과 ‘백중지세’를 이룰 수도 있다.

야권단일화, 野 자치단체와 결합한 ‘범 지역연합’

2012년 야권단일화를 논할 때는 6.2 지방선거 결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 6.2 지방선거로 수도권과 충청, 강원, 그리고 경남까지 야권으로 넘어갔고 부산도 흔들렸다. 물론 바닥은 아직까지 한나라당이 강하지만 이제 야권이 넘지 못할 벽은 없어 보인다.

2012년 야권단일화는 단지 후보의 단일화만이 아니라 호남 이외의 범야권 지역표를 결집시켜낼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까지 뒤집어졌고, 강원도는 여권으로 뒤집으려다 다시 뒤집혔다. 야권세가 점차 강해지고 넓어지고 있다. ‘호남’과 ‘진보’라는 좁은 틀 안에 머물러있지 않다.

2012년 야권연대는 ‘호충연대’ 방식은 아닐 것이다. 야권주자 중 충청에 기반을 갖고 있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탈지역 또는 범지역 연합’ 형태가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지역표’는 2년째로 접어들어 기반을 다진 전국에 포진해 있는 야권 출신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의 힘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도 물론 ‘영남’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박 전 대표를 ‘국민통합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친박에서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야권주자도 그가 누가 되든 ‘지역통합, 국민통합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야권단일화’의 가장 근본 취지는 다름 아닌 ‘탈지역주의’에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야권단일화와 박근혜 대세론

4.27 재보선 하루 전인 26일 실시한 <폴리뉴스-한백리서치> 공동여론조사에 의하면, ‘박근혜 대세론’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세론’에는 ‘반MB 非민주’의 야성향 지지층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이번 조사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39.0%로 지난달 41.9%에서 2.9%p 떨어졌다. 野성향이 강한 30대가 28.8%로 지난 달 36.6% 대비 7.8%p 빠져나갔다. 그리고 민주당 지지층과 호남에서도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 야권 단일주자가 확실히 섰을 때, 박근혜를 지지했던 野성향층과 중도층이 박근혜로부터 등 돌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사에서 ‘박근혜 대세론’이 ‘야권단일후보 출현으로 흔들릴 것’이라는 응답이 14.7%였고 응답자들은 주로 ‘野성향층과 중도층’이었다. 연령별로는 20~40대가 가장 크게 동요했고 지역적으론 수도권과 호남권에서 동요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수도권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월 26일자 <폴리-한백> 공동조사에서 2012년 대선 가상대결에서 ‘박근혜 후보와 야권단일후보’의 양자대결이 될 경우, 박근혜 51.6%, 야권후보 37.6%로 14.0%p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야권단일주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결과는 박근혜 대선가도에 적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근혜 대 야권단일후보 양자대결 조사에서 야권주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野 단일주자 지지는 30대가 53.8%로 가장 높고, 20대 43.0%, 40대 40.1%로 20~40대 젊은층이 평균보다 높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40.2%, 호남권 66.1%였다.

야권단일주자가 가시화될 경우 기존의 박근혜 지지층 중 수도권과 호남권을 중심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부동층의 일부까지 야권단일주자 지지로 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사실상 14%p 우세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반MB(국정수행 매우 잘못)층 71.7%, 진보층(중도 62.5%, 진보 76.4%)도 단일후보로의 표 결집력이 높다. 야권후보가 확정되면 이러한 흐름은 더 강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박근혜에게 위험신호는 내년 대선을 앞둔 ‘예비대선전’이 될 총선 풍향계이다. 총선에서 야권이 단일화를 이룰 경우 싹쓸이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여야 양자대결 시, 야권단일후보 47.2%, 한나라당 후보 37.1%의 지지율로 10%p의 커다란 차이를 벌리며 야권후보가 유리하다고 조사되었다.(<폴리-한백> 4월 26일 조사)

‘박근혜 대세론’이 야권단일화 바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명한 지표이다. 총선, 대선을 망라해 20~40대 젊은층, 수도권, 강원도, 호남, 충청, 반MB, 진보층에서 야권단일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단일화 바람’이 몰아칠 경우 표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 박근혜 대선가도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다.

총선의 ‘반MB 야권단일화’ 돌풍은 태풍이 되어 ‘박근혜 대세론’까지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다. 총선의 野돌풍이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박근혜 대세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마지막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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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1) / 정치부 기자

[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1)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5월호(22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폴리뉴스 정치부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3 10:29:23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폴리뉴스·월간 <폴리피플>이 시도하고 있는 후보검증 토론회의 두 번째 순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 1위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다른 주자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뚜렷한 경쟁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이라 할 만큼 부동의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아직도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는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월 22일 개최된 좌담에는 고성국 정치학 박사, 신율 명지대 교수,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김능구 e윈컴 대표가 참석했으며 본지 이명식 편집주간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서는 박 전 대표가 살아온 삶과 국민에게 비치는 모습 그리고 정치책과 철학, 비전에 대해 조명했고 향후 정치일정에서 예상되는 변수들과 과연 ‘대세론’이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짚어 보았다.

사회: <폴리피플> 22호(5월호) 특집 좌담은 대선후보 시리즈 ② 박근혜 편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차기 대선 주자 중에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오늘 좌담을 통해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의미 있는 분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우선 박 전대표의 살아온 과정부터 되돌아보면 좋겠다.
박 전 대표는 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 97년까지 약 18년간 정치적 은둔기가 있었다. 97년에 한나라당 입당 후 97년, 2002년, 2007년까지 3번의 대선을 거쳐 2012년을 맞고 있는데, 그간의 과정을 회고하면서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다.

이택수: 2007년 7월 대선과정에서 저는 참여는 못했지만 자서전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그때 동영상을 상영했는데, 그 내용의 첫 번째가 성심여고 시절 전철을 타고 통학했던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에 입문했던 시절, 세 번째가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와이셔츠를 빨면서 우는 장면이었는데 그 세 가지 주요 콘셉트가 우리 국민에게 대표적인 고정관념으로 새겨졌다. 그 이후 최근 들어 구축된 이미지는 2007년 대선 이후 세종시 수정안 논란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 약속을 지키는 원칙의 이미지인데, 나쁘게 보면 타협을 모르는 고집불통의 이미지이다. 당시 40%대 지지율을 보이다가 세종시 논란 이후 20%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들어 30%대로 지지율을 회복했다. 계보 관련해서 친박 좌장인 김무성 원내대표와 갈등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 때문에 현재 지지율을 40%대까지 회복하지 못하는 듯하다. 곧 다가올 재보궐선거 이후 당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고 포용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좌우될 듯하다.

신 율: 제가 볼 때 박근혜 전 대표가 어떤 측면에서는 굉장히 학습효과가 뛰어난 정치인이고 어떤 면에서는 학습효과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는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첫째로 제가 박근혜 전 대표가 학습효과가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청와대 생활을 굉장히 오래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본인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굉장히 젊었을 때부터 권력이 한 순간에 어떻게 되는 것인지 쭉 봐왔다. 원칙주의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학습효과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없으면 실제 권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그래서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학습효과의 중요한 반증이다.
반대로 학습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은, 박 전 대표는 어떤 발언을 할 시기에 제때 발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정치라는 것이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을 때, 시기를 놓쳤을 때 오는 데미지가 크다. 이번 신공항 문제도 왜 이제 이야기하느냐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항상 시기를 놓쳐왔다. 그렇다면 대선과 점점 가까워져오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에 있어서의 학습효과를 되살린다면 시기를 놓치는 일은 더 이상 반복되면 안 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를 둘러싼 친박진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문제점일 수도 있고 학습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고성국: 저는 박근혜의 인간과 성격에 대해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52년생인데, 아버지가 쿠데타를 했던 61년에 우리 나이로 10살이다. 쿠데타는 목숨 걸고 하는 것이고 실패하는 죽는다고 봐야 한다. 10살이면 대체로 무슨 일인지 알 만한 나이이고 장녀로서 조숙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개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쿠데타를 성공했으니까 그때부터는 사실상 대통령 가족으로서 생활하고 지금까지 왔다. 박정희 서거 후 18년간 정치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감금 상태는 아니지만 전두환 정권 때는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간까지 포함해서 현재 59세인데 49년, 짧게 잡아서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시작한 75년부터 보더라도 40여 년 가까이 정치영역에서 뭔가 해왔기 때문에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겠다.
그 과정에서 산전수전 겪어볼 것 다 겪어봤다. 대통령의 딸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도 했겠지만 세계사에서도 아버지, 어머니 다 암살당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고,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 5년 이상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사람도 드물다. 유신체제는 굉장히 폐쇄적인 동원체제였기 때문에 내부의 권력투쟁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적 정치체제에서의 권력투쟁과는 유를 달리할 만큼 아주 치열했다. 서로 권총 뽑아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비사를 보면 박종규, 차지철, 김재규 등이 조금만 엇갈리면 집무실에서도 서로 권총 뽑아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권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한 사람이다.
그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아버지가 측근에 의해서 암살당한 후 나락으로 떨어진 직접적인 당사자이면서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권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도 학습이 잘 되어 있다. 이는 목숨 건 학습이고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으로 했던 학습이기 때문에 평생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이러한 특별하고 독특한 경험 속에서 지금 박근혜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고 평가는 할 수 있지만, 고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와서 이렇다 저렇다 분석은 할 수 있겠지만 ‘문제가 있으니 고치라’고 주문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분석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고 그것이 변화의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전제 하에서 ‘Reading 박근혜’를 해야 실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능구: 박근혜 전 대표에 있어 하나의 큰 특징이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소통하지 않는 것일까. 이전의 왕정시대의 제왕들처럼 본인과 신하들 관계 같다. 최근 동남권 신공항 발언에 대해서 ‘저게 무슨 뜻인가, 대통령과 정면대결 하자는 것인가 아닌가’라는 것을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표에게 감히 물어보지 못해서 본인들 나름대로 해석할 정도로 친박 내에서도 소통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캐릭터 형성과 관련해 첫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치체계로 애국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둘째 79년 이후 은둔의 18년간 부모를 앗아간 사람이 최측근이었고 그 이후에 평상시 본인을 그렇게 떠받들던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간 성장기가 있었다. 자서전을 보면 아버지 암살과 관련해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었고 자기가 정계에 들어온 계기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강한 배신감,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심리, 이를 좋게 말하면 계파를 형성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면서도, 누구와도 진솔된 나눔과 소통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자기의 인생스토리에서 나왔다고 보여진다.
현재 대세론 속에서 차기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국가지도자급인 박 전 대표가 자기 인생 속에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불통의 리더십’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그것은 큰 불행이라는 것이다.

신 율: 행태주의적 접근을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행태주의적 접근이 어떤 경우에는 맞고 어떤 경우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데 실제 굉장히 역경을 많이 겪은 사람이 왜 이러한 행태를 보일까라는 것은 실제 행태주의적 접근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서 박 전 대표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갖는다. 문제는 이것이 교정 가능한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기 때문에 교정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데, 김 대표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소통과 애국을 한꺼번에 말씀하셨는데 이 둘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김능구: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과정에서 본인이 추구하는 목표, 가치관은 한마디로 애국주의였다는 것이다. 79년도 10.26 난 뒤 가장 처음 이야기한 것이 북쪽(휴전선)은 안전한가 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나라의 안전을 이야기할 정도로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여러 가지 주장이나 가치를 하나로 묶어놓으면 한마디로 애국주의라 표현할 수 있지 않겠나? 불신과 배신 속에서 소통의 문제를 낳았다고 본다. 그래서 본인의 삶을 좋게 볼 때 애국주의와 소통의 문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 율: 제가 여쭤본 이유는 실제 우리가 애국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측면을 봤을 때, 물론 애국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애국이 표현되는 양태는 그 사회의 분화 정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고 박사께서 말씀하셨듯이 박 전 대표 본인에게 그러한 것들이 굳어진 시기와 지금의 시기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저는 애국과 소통에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분이 생각하는 애국주의는 자칫하면 이분법적 애국주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회는 굉장히 다원화돼 있는데, 이 다원화돼 있는 사회 속에서 이분법적 애국주의 사고를 갖고 있다면 제가 볼 때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크게 드러날 수 있다. 거기에 원칙주의와 합쳐져 버리면, 이때의 원칙주의는 예측 가능하지만 문제는 소통은 안 될 수 있다는 상황이 빠져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 여쭤본 것이다.

고성국: 가까이에서 모신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박근혜는 쇼가 없다’, ‘진정성 있다’,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직접 이야기한 것이, 자기를 별칭으로 ‘수첩공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고 국민을 만날 때마다 민원사항을 다 적어 꼼꼼하게 확인하고, 이를 비서관을 통해 어느 유관 상임위 위원들한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지시한 다음에 1, 2주 후에 문득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 순간 “여기까지 와있다”고 대답하지 못하면 야단을 맞지는 않지만 상당히 분위기가 무거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비서실이 기계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2007년 경선 당시에 비서실에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그런 것을 보면 없는 말을 한다거나 쇼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하는 이야기는 정말 진정성을 갖고 하는 이야기다. 앞서 애국주의 말도 나왔는데 자기 가치가 있고 자기 가치에 충실하면서 그 가치를 진정성을 갖고 실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소통이 안 되는 상태로 간다면 자칫 도덕주의에 빠질 수 있다. 굉장히 위험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대개 우려하는 것이 박근혜를 보면 정치감과 타이밍 등이 매우 탁월해서 대통령이 될 것 같기는 한데 국가경영을 국민과 더불어 함께해야 하는데 도덕주의적 국가경영으로 가면서 소통 부재의 문제가 발생하면 굉장히 심각한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 점을 걱정하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해명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앞으로 박근혜가 대선 과정에서 봉착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전 대표는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인 것 같다. 통상 가정교육은 어머니 몫이다. 육영수 여사가 박근혜를 가르칠 때 굉장히 엄격했는데, 육여사가 교육을 잘 한 것 같다. 육영수 생가인 충북 옥천에 거부 중 한 사람이 육영수 아버지인데, 재상이 3대가 나온 집을 사서 집을 새로 지었다. 그 집의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북향 맨 끝에 1.5평짜리 작은 방이 육영수 여사 시집 갈 때까지 살던 방이었데, 그 방 안에는 이불, 앉은뱅이책상 하나 있고 사람 한 명 앉으면 꽉 찰 정도의 크기였다. 실제 시집가기 전까지 육영수는 매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컸다. 그래서 육영수 여사 이미지가 조작된 게 아니라면 영부인인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나서도 계속 서민적으로 검소하게 살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려 한 것이 많은 부분 사실에 근거했으리라고 본다.
그러한 분위기와 정서, 마인드를 가지고 박근혜를 가르친 것 같다. 그것도 부모와 자식 간의 교육이 아니라 퍼스트레이디로 외국에 나가야 할 때 본인 대신 박근혜를 보냈다. 정상들끼리 만나면 선물 교환을 하는데, 고등학생인 박근혜에게 선물을 준비하게끔 해서 점수를 매기게 해서 지적도 했다. 이런 식의 교육이 만약 아들이었다면 제왕학이라 비판받을 텐데, 그런 범상치 않은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매우 철저하게 받았다. 그래서 간단히 무너지지 않는다.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저격당했을 때도 자세를 한치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것은 평생을 쌓아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박 전 대표가 커터 칼로 테러 당한 직후의 모습이 육여사가 죽어가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 이는 굉장히 무서운 대목이다. 대를 이은 엄격한 교육이 내면화돼 있다는 점들도 같이 봐야 한다.

사회: 현재까지 보여지는 박 전 대표의 이미지는 성장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인데 정치를 하면서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은 없나?

신 율: 저는 정치인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는 물론 공백기간은 있었지만 일반 국민들이 어릴 적부터 봐온 것 아닌가? 그 정도 긴 시간을 쌓아온 이미지이기 때문에 본인이 보여줘서 사람들이 소통한다고 느끼기도 힘들고, 본인 스스로 바꿔서 보여주기도 힘든 이중고가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박 전 대표가 썰렁개그를 한다고 하는데 이를 해서 정말 썰렁해지지 재미있지는 않다. 그래서 저는 그 점이 참 안타깝다.

김능구: 살아온 삶 중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박 전 대표가 52년생인데, 유신이 72년에 발생했다. 이때 박 전 대표는 대학생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분류되었다. 저도 전두환 딸과 대학을 다녀봐서 알지만 늘 경호원이 붙어있었는데 박 전 대표의 경우 제한된 공간에서도 동문들과 잘 어울렸다는 이야기를 들어 있는데 그 시대의 대학의 흐름에 크게 갈등하기 보다는 안주한 것 같다. 그 이후 자신이 쓴 책을 보면 아버지 측근들에 대한 분노가 나와 있는데, 암울했던 70년대의 유신시대에 박정희 딸로서 안고 있는 어두운 측면인 독재자 딸 부분이 본인의 여러 가지 자아형성에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이다.

고성국: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것은 본인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 한다.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길을 찾다가 그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업입국을 표방했기 때문에 과학자, 기술자가 돼서 나라에 아바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당시 공대에 여자가 없어서 홍일점으로 다녔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자서전에 그 대목이 잠깐 나오는데 학생들이 데모를 하러 가는데 본인은 같이 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시대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어둡게 지냈던 것 같지는 않고 대학 시절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경호원도 가급적이면 대학 정문 근처까지만 오게 하는 등 비교적 학내에서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러고 파리유학을 갔는데, 대학생이 사회문제에 막 눈을 뜰 때 동료들이 보여준 민주주의나 반정부운동에 대한 갈등은 있었던 것 같지만 애국주의라는 틀 속에서 해소되면서 크게 심적으로 갈등하지 않고 비교적 가볍게 앓고 갔다. 당시 육영수 여사가 딸을 어떻게 시집보낼지 고민을 했다고 하는데, 파리 유학을 다녀온 뒤 재원이 돼서 결혼을 시켰다면 굉장히 행복한 일생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유학 간 1년이 채 안 돼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씨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2007년 경선 때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에게 과거 아버지 시절 있었던 역사적 아픔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권했고, 장준하 쪽과 박근혜 쪽을 잘 아는 사람들이 역할을 하면서 박근혜가 ‘사과를 하러 오겠다’고 했다. 장호권 씨 말에 따르면 당시 본인은 사과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사과를 못 받겠다고 했고 대신 어머니가 사과를 받으셨다. 그의 어머니에게 박근혜가 와서 사과를 하고 간 뒤 어머니가 “걔도 불쌍한 애 아니냐. ‘앞으로 정치를 해도 사람 아프게 하지 말라’고 좋게 해서 보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보면 박근혜가 억지로 했는지 정말 진정성을 갖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비록 아버지와 관련된 사과라도 자기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면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본다. 자기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였기 때문에 가서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 사과 더하라고 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냐. 그것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신 율: 미래희망연대 서청원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서 대표는 과거에는 그 반대에 있었다. YS계 아닌가. 서 대표가 말하길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그 누구보다도 당을 민주적으로 이끌었다”면서 “‘아,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과거를 극복하려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친박 쪽 인사들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제가 보기에도 박 전 대표에게 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반면에 상대로부터 도전이 있으면 반드시 응징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예를 들어 이재오 장관이 예전에 ‘독재자의 딸’이라는 발언을 했을 때 박 전 대표가 보인 반응이나 그 이후 두 사람의 어긋난 행보를 봤을 때 사과를 안 한 것은 다른 문제이고, 그러한 이야기를 한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맞붙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도대체 사과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헷갈린다.

김능구: 이재오에게 “당을 떠나라”라고 했다. 2002년 한창 박근혜와 정몽준의 연합이 사람들의 관심사일 때 강신옥 변호사가 정몽준 캠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예 협상도 안 하려고 했다. 그런 데 있어서는 굉장히 단호하다.

고성국: 김 대표 말씀대로 박근혜 정치의 출발점이 아버지 명예회복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아비지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다. 자기 정치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개로 결과적으로 유신시대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이 있다는 생각을 박근혜라고 해서 왜 못하겠나. 당장 무죄판결 나고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본인이 역사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누군가가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욕하면 여전히 맞받아 싸울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죽인 김재규를 변호한 변호사가 자기의 정치협상 파트너로 테이블에 나오는 사실에 대해 정치를 안 했으면 안 했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정서가 있다.

김능구: 박근혜 대세론이 만약 무너진다면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젊은 층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2007년도 42.9%, 2009년도 30.2%, 2010년 22.6%로, 30대에서는 현재 13.8%다. 젊은 층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부분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아마 내년 대선 과정에서 지난 한나라당 경선 이상으로 ‘박정희 딸’에 대한 공격과 이에 대한 본인의 입장표명이 요구될 것이다. 이 부분은 본인과 한 몸이기 때문에 최대 위기관리 포인트인데,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 문제처럼 어느 누구와도 협의하거나 연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앞으로 큰 문젯거리가 될 것이다.

신 율: 김 대표는 한 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 같다. 우리가 지금 박 전 대표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도 지금에 있어서의 정치인 박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있는 독립된 정치적 주체인가, 벗어날 수 없는 주체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박근혜 대세론, 지지율을 예측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고성국: 저는 박근혜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한다. 출발은 아버지의 명예회복이었고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갖고 있지만 정치적 실체로서 박근혜는 이미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고 본다.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치판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박근혜가 만들어놓은 스토리가 많이 쌓여서 이제는 박정희의 딸로 설명하지 않고 박근혜의 아버지로 설명해도 무관할 정도로 자기 스토리가 쌓였다.
둘째 작년에 박정희를 규정하면서 “아버지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복지국가 건설이고 행복한 국가”라고 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근혜는 그동안 아버지를 자기 프레임으로 규정해본 적이 없다. 자기가 재규정할 수 없는 그 자체로서 아버지였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박근혜가 박정희를 규정하면서 복지를 주창하고 나선 것이다. 저는 긴급조치 세대이기 때문에 박정희가 복지국가를 건설하려 했다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박근혜는 아버지가 복지국가 건설을 원했다고 규정하고 아버지가 진정으로 원했을 복지국가 그림을 자기가 그려서 보여줬다. 여기서부터는 아버지를 넘어서서 박근혜 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느꼈다. 그것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국가를 낼 때였다. 그러한 사건적 계기를 통해서 박근혜가 박정희로부터 독립했다고 느꼈다.

김능구: 저는 박근혜가 박정희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박근혜는 박정희를 한 몸으로 가져가면서 좀 더 진화했다고 본다. 따라서 박근혜 대세론을 거품이라고 본다.

신 율: 거품 중에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계층이 많이 포함됐다는 것인가?

김능구: 그렇다. 지난 2007년 경선 때 박근혜 사과가 말만 나돌고 성사되지 않았다. 거기서 다수는 박정희와 관련된 지점들이다. 만약 박정희로부터 독립됐다면 분명한 자기 정리와 정립이 있었어야 했다. 사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DJ에게 한 사과도 애매모호하게 표현해서 물론 DJ는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게끔 잘 말하는 것 같다. 박정희로부터 독립된 정치인으로 봐야 한다는 데 반대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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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2) / 정치부 기자

[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2)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5월호(22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폴리뉴스 정치부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3 11:08:06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폴리뉴스·월간 <폴리피플>이 시도하고 있는 후보검증 토론회의 두 번째 순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4월 22일 개최된 좌담에는 고성국 정치학 박사, 신율 명지대 교수,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김능구 e윈컴 대표가 참석했으며 본지 이명식 편집주간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서는 박 전 대표가 살아온 삶과 국민에게 비치는 모습 그리고 정치책과 철학, 비전에 대해 조명했고 향후 정치일정에서 예상되는 변수들과 과연 ‘대세론’이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짚어 보았다.

고성국 정치학 박사/김능구 e윈컴 대표/신율 명지대 교수/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사회: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도에 대해서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김능구 대표는 대세론은 거품이고 앞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여론조사 전문가의 관점에서 이택수 대표는 앞으로 추이를 어떻게 보나?

이택수: 박 전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하는데, 18년간의 암흑시기 이후 97년 자기 이름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기업으로 치자면 상장시키기 위해 2007년 IPO를 했다가 실패했다. 2008년 공천 파동 후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지지율이 40%대로 고공행진 한다. 아버지 영향을 받던 97년 이전과 시대를 구분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계속 행보가 이어져오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으로 인해 지지율이 유지돼 오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기대선주자로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계속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소통의 부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내면 항상 그 반작용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식이었다. 아까 실기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편으로는 기회를 놓쳤다기보다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본인이 늦추는 전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세종시 때문에 빠졌던 지지율이 회복하는 단계다. 그렇다고 다시 40%대로 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김 대표께서 박근혜 대세론에 거품이 있다고 하셨는데 거품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신뢰도도 분명 떨어질 수 있겠지만 박정희, 육영수에 대한 향수가 여전하기 때문에 쉽게 꺼질 거품은 아니라고 본다.

고성국: 박근혜가 확실히 대세라고 본다. 그러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대세는 대세다. 어떤 대세론이든 본인이 실수하면 다 무너지게 마련이기 때문에 무너질 가능성은 분명 있다. 그런데 지금의 박근혜 대세는 단단한 대세라고 느낀다. 여러 조사에서 거의 비슷하게 나오는 것이 전 연령, 전 성별, 전 지역에서 다 1등이다. 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고르다. 단순히 지지도뿐만 아니라 친밀도, 신뢰도, 호감도도 다 1등이다. 지지도는 1등인데 친밀도는 좀 낮다면 허점이 보일 텐데 대부분이 맞물리면서 지지도를 구성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느낀다.
박 전 대표가 지지도를 유지하는 제일 큰 요소는 박근혜가 후보로서 갖고 있는 매력이다. 세가 조직적으로 받쳐주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국회의원 40~50명 정도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도 않다. 박사모 등 여러 팬클럽들이 있지만 과거 노사모와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정치인에 비해서 박근혜 지지도는 박근혜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바가 상대적으로 크다. 저는 이를 매력이라고 표현하는데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다. 이를테면 매력 없는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매력적으로 되기 힘들다. 지금도 대중을 접촉하면 대중흡수력이 드러나는데, 굉장히 적대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도 악수를 하고 나면 마음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제가 여럿 만난다. 저는 긴급조치 시대 사람이라 제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 대통령 때 감옥살이 하고 부당한 경험을 당했던 사람이 많다. 박정희에 대한 원한이 있고 독재자 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저런 우연한 기회에 박근혜와 만나 악수를 하는 30초간 마음이 푸근해지더라는 것이다. 시골장터에서 아주머니들이 박근혜에게 보이는 반응은 젊은이들이 탤런트와 사진 찍고 싶어 하는 정도의 열광이다. 이는 노사모의 열광과는 다르다. 노사모에게는 하나의 중심가치가 있고 어느 정도 체계화된 이념 등이 결합돼 있는데 박근혜에게 전혀 그렇지 않아도 열광하는 것은 후보로서 갖고 있는 매력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강력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꺼지지 않을 것이다. 점수를 많이 따고 있는 선수가 굳이 인파이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김능구: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만약 박정희가 지금 대중정치판에 나왔다면 그보다 더 열광적일 것이다. 박근혜에 열광적인 50~60대 아주머니, 할머니들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 “딸 같다. 남의 일이 아니다”고 하는데 그것이 먼저 출발했다. 이택수 대표의 말과 달리, 97년도에 박근혜가 보궐선거에 차출될 때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 딸이 차출된 것이다. 본인이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보수당 입장에서는 도저히 진보개혁세력의 공세를 막아낼 방법이 없던 중에 박정희 딸을 데려온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 정도, 여론조사 지지율이나 시골장터에서 몰려든 열광적인 아주머니 층을 저도 봤는데, 20년간 유명한 정치인에게 몰려오는 대중들의 차이가 조금씩 있다. 박근혜에 몰려든 대중도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중심은 ‘박정희’이고 기본은 ‘박정희+α’ 정도지 완전히 새로운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 보여준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시기별로 74년, 79년, 97년, 2002년, 2007년으로 구분했을 때 박근혜에게 그전부터 있어 왔던 견결성, 엄격한 교육 등의 이미지가 있지만 다변하는 시대에 본인이 뭔가 비전을 내놓고 서로 논쟁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여의포럼 가서 김무성 등 친박그룹에게 내가 “치마 밑에 숨어있지 마라”고 했더니 아무 소리 못했다. 이는 아주 위험한 리더십이다. 지난 2월부터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박근혜에 대해서 “소통하라. 왜 암흑의 침묵정치를 하려 하느냐”면서 공격했다. 진보언론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바뀌어야 하는데 도저히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정현 의원에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는데 “당연히 큰 정치인이든 작은 정치인이든 국정현안에 대해서 국민에게 자기 입장과 대안을 내놓는 것은 책무다. 그 책무를 게을리 하고 회피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듯 하는 리더십은 급변하는 지금의 시대에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조중동도 어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최근 부산의 단체장 분들을 만나고 왔는데 전부 하는 이야기가, 링 위에 한 명만 올라가 있으니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여론조사가 압도적인 것을 모두 명쾌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면서 개혁중도 후보가 링 위에 올라오면 대세는 뒤집힐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대세론을 지난 2007년 경선 때와 비교해봐야 한다. 그때를 보면 여론조사에서 수도권 30·40대, 화이트컬러 측에서 이명박에게 거의 55:15 정도로 졌다. 이후에도 계속 20%대로 뒤졌었는데 그 부분이 현재 외향적으로는 극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조사에 들어가면 박근혜 지지에 대한 근본적인 동기는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그 부분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신 율: 제가 생각할 때 대세론이 형성되기 위해서 먼저 가야 할 것, 우리나라 정치지형에 분명히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지역주의라고 생각한다. 3김시대의 3김은 다 특정지역의 맹주들이다. 이분들은 모두 기본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과연 특정지역의 맹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인가. 저는 개인적으로 맹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만약 맹주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 속에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맹주의 냄새를 풍길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박사께서 악수를 하면 사르르 녹는다고 했던 대목과 관련해, 과거에 박정희 이야기만 나와도 대단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지난 일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와 완전히 다른 여자가 내 눈 앞에서 악수를 하고 있으니 애증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황송해지는 것이다. 내가 드디어 인정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박 전 대표가 갖고 있는 카리스마다. 이 사람에게 분명히 카리스마가 있다. 고 박사님 말씀하셨듯이 노사모 없이 그 정도를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카리스마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세론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과거 고건 후보나 이회창 후보 때는 50%에 가까운 지지율이 나왔다. 그 정도면 대세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일정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30%±2~3%에서 왔다 갔다 한다. 물론 친박 쪽에서 양자구도가 되면 확 올라가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특히 야당은 바람선거를 많이 하는데 지금 야당에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바람이 불게 되도 그런 등식이 성립할지 굉장히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앞서 지역주의를 말씀드렸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지역맹주가 사라진 상태에서 대통령이 된 분들에게 공통적인 특징이 두 사람 다 당내 비주류였다. 이들이 성공한 이유는 첫째,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주류보다 상대적으로 신선감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은 모두 찢어지게 가난했다. 우리나라는 선거 때만 되면 누가누가 더 가난했나 갖고 경쟁한다. 하다못해 정몽준 전 대표도 6.25 사진 꺼내들고 “나도 전쟁 때 이렇게 가난했다”고 했다. 이렇게 ‘가난 경쟁’, ‘가난 마케팅’을 한다. 이를 흔히 정책에서 대응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양극화가 벌어질수록 ‘내가 가난한데 저 사람도 과거에 가난했으니까 저 사람은 나를 잘 이해해줄 것 같다’는 심리가 더 커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가 옛날에 해봐서 다 아는데…”라고 하지 않나. 둘째는 ‘가난 경쟁’이다.
셋째,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이명박 대통령도 좌우지간 학생 때나마 뭔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40대 이상 유권자들이 항상 생각하는 대한민국 사회 기여는 경제발전보다는 짓눌렸던 시대에 대학교 다니면서 뭔가 했다 하는 측면이다. 세 가지가 대세론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이다.
대세론이 성립하기 위해서 박근혜 전 대표가 특정지역의 맹주인 과거 3김보다 덜하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한 이 세 가지 중 몇 가지를 갖고 있느냐, 이를 생각하면 많이 달라진다. 과거에 민주화운동과 반대쪽에 있었고, 둘째 가난하기는커녕 청와대에 있는 공주 이미지였고, 비주류였느냐는 부분에 있어서 비주류지만 표면적인 비주류이고 실제는 주류같은 비주류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진정한 대세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바람이 필요한데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고 생각한다.

고성국: 박근혜는 아직까지 선거국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후보로서 전면에 나서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나 곧 그럴 때가 올 것이다. 방금 신 교수 말씀이나 김 대표 말씀에 대한 변수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설명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2007년 경선 때도 그렇고 박근혜에게 가장 많이 제기돼 왔던 것이 결혼도 안 해보고 살림도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고 아이 낳아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 박근혜는 부정하게 돈을 축적할 일이 없고 가족이 없기 때문에 도둑질할 일도 없고, 오로지 남은 인생을 국가에 헌납하고 죽을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박근혜에게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변명할 것인가, 아니면 그 문제제기를 인정하면서도 그 문제제기 이면을 가지고 Positive한 방식으로 설명할 것인가. 저는 박근혜 캐릭터상 Negative 공세에 Negative로 맞받아치기보다는 Negative 공세조차도 Positive한 자기 방식으로 설명하고 넘어가려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방식의 설명은 듣는 사람들, 특히 Negative 공세 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Negative 공세 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내 편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공방을 지켜보고 있는 유권자들을 끌어와 몇 표라도 나를 찍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찍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어법구사를 할 것이다. 그 부분은 앞으로 본인 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숙제로 남겨야 한다. 박근혜와 관련해서 많은 부분이 그렇다.
앞서 김 대표 말씀 중 대세론이 수도권 30, 40대 지지도가 외형상 보완된 것 같지만 여전히 취약하다고 하셨는데, 포인트 중 하나라고 본다. 결국 내년에도 1:1 대결구도로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 30, 40대 중간층이 대권의 향배를 가를 것이고 그 부분에서 박근혜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말씀인데, 그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가 최대 숙제다. 여기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박근혜가 수도권 30, 40대층에게 본인이 소구력 있도록 자기 자신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 실제 그렇게 안 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컨대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 안을 낸다거나 이명박 정부보다는 좀 더 유연한 대북정책을 낼 것 같은 분위기, 스탠포드대에서 강연한 ‘원칙 있는 자본주의’ 등은 30, 40대 수도권 중간층의 감성과 논리, 가치질서에 비교적 부합하는 프레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듯하다. 가설적인 이야기인데, 박근혜는 혼자 힘으로 대통령이 되기는 좀 힘든 사람이다. 그것은 야권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손학규, 유시민도 혼자 힘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들 같지는 않다. 따지고 보면 DJ도 노무현도 혼자 힘으로 된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박근혜 역시 혼자 힘으로 되기에 2%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보면, 수도권 중간층을 누군가와 손을 잡고 획득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이다. 손을 잡고 박근혜를 도와 수도권 30, 40대를 끌어당길 파트너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예컨대 이회창은 아닌 듯하다. 지금의 안상수 체제가 그렇게 해줄 것인가. 이재오, 이상득과 같은 舊정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해 줄 것인가. 메이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메이커 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박근혜가 정말 대선승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비우고 과감하게 승부를 하려 한다면 한나라당이 먼저 40대 기수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다. 그래야 얼마 안 있어서 이길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8월 21일 이명박과의 회동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그전까지의 박근혜와 8.21 전격회동 이후의 박근혜 행보는 외형상 다르다. 속마음까지 달라지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외형상 달라졌다. 지금까지 어쨌든 관리를 해내고 있다

사회: 2012년으로 가는 과정에서 박근혜가 콘텐츠가 부족하고 정책에 있어 실기를 잘하고 잘 소통하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과연 앞으로 비전 있는 내용을 준비하고 있는지,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는 맨파워, 국가경영을 책임질 집단이 형성되고 있는지도 함께 논의해보자.

신 율: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는데, 첫째 정책에 의해서 어떤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가 바뀌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이미지는 굉장히 오른쪽으로 가 있는 이미지이고 유시민 대표는 굉장히 왼쪽으로 가 있는 이미지이다. 설령 유시민 대표가 안보국방정책에 대해서 엄청나게 이야기하더라도 가운데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책을 가지고 이미지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는 단시간 안에 될 수 없다. 단시간에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쓰는 것이다. 따라서 맨파워를 써야 하는데 들여다보면 전부 예상된 사람들만 있다. 파워는 파워지만 박 전 대표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맨파워는 절대 아니다. 그 사람들은 백날 중도, 레디컬한 좌파정책을 생각하려 해도 이미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혀 의외에 있는 사람이 최소한 20명 이상은 가줘야 박 전 대표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한 느낌이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책과 맨파워를 말씀하셨는데, 맨파워 정책은 결국 지지율의 외연확대를 위해서 중요한 것인데, 지금 상태의 박 전 대표의 맨파워나 정책 가지고는 힘들다고 본다. 복지야 요새 박 전 대표뿐만 아니라 다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아주 의외의 인물들 다수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더불어 외연확대도 힘들다고 생각한다.

김능구: 박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를 내놓았을 때 ‘드디어 나오기 시작했구나. 2007년 이후 부족했던 콘텐츠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뼈대밖에 없었다. 예컨대 2007년 경선 때 사람들에게 선명히 각인돼 있는 줄푸세와의 모순과 차이에 대한 설명도 없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내놓았을 때 가장 중요한 재원조달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것이 거의 없다. 이는 서로 협의하고 연구해서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고 일단 큰 가닥은 잡아놓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고 박사께서 선거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선거가 시작돼야 내놓기 시작하는 것인가? 저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현 정부에서는 청와대가, 당 지도부가 해야 될 일이지 본인이 나설 일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래서 조중동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수첩공주, 콘텐츠의 부재 등 지금 국민에게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서 검증받아야 한다. 이번 동남권 신공항도 저런 식으로 발뺌하려 하고, 본인은 큰 피해 없이 가려는 모습이 별로 좋지 않다. 세종시도 시끄러울 때는 침묵하다가 막판 가서 한마디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언론이 대선후보 검증 과정에서 제대로 짚어야 한다.

고성국: 박근혜가 다른 주자들에 비해 탁월한 비전과 정책, 콘텐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으로 그렇다고 해서 다른 후보들보다 특별히 콘텐츠가 없다거나 역량이 떨어진다거나 비전, 정책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대통령을 택할 때 상대적인 것인데, 박근혜가 손학규보다 비전이 없으면 얼마나 없으며 유시민보다 정책이 없으면 얼마나 없겠나? 내가 보기에는 비슷비슷하다. 신 교수 말씀대로 정말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학규도 유시민도 박근혜도 김문수도 결국 사람과 더불어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지, 이미 다 만들어놓은 것을 갖고 뭔가 하려 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표명에 대해 오히려 저는 박근혜가 타이밍을 아주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세종시 문제도 동남권 신공항 문제도 박근혜 식으로 한다면 저렇게 타이밍을 잡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동남권 신공항 발표 후 박근혜가 이야기하기 훨씬 전부터 박근혜의 입장은 이럴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제가 박근혜를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보면 읽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알아듣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기 메시지를 던져온 것이다.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친이 쪽에서는 ‘왜 다 끝난 뒤에 그러느냐’고 하고 있지만 세종시 원안 약속 지키라는 것은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박근혜가 해왔던 이야기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문제이지, ‘뒷북치듯’, ‘야비하다’는 식으로 친이계가 주로 공격하는데 이는 좀 정략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국민 다수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종시에 대한 박근혜 입장이 뭔지에 대해 국민 다수가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남권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박근혜의 생각을 동남권 사람들이 몰랐을까, 그래서 정부가 백지화한 하루 다음 날 박근혜가 이야기하니까 그때서야 박근혜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동남권 사람들은 박근혜도 동남권에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물며 정부인들 몰랐겠냐는 것이다. 박근혜 방식을 정략적인 프레임 속에서 공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신 율: 대세론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친이계, 특히 이재오 장관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의 박근혜 흔들기가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대세론이 만일 있다면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겁나서 못한다. 그런데 계속 흔들고 있다. 제가 한번 신문에 ‘이번 4.27 재보선은 박근혜 대항마 콘테스트’라고 표현했다. 이는 아직도 친이계 속마음은 흔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박 전 대표가 모를 리 없다.
최근 제가 헤럴드경제에 소설식으로 쓴 칼럼이 있는데, 이번 재보선 끝난 뒤 결과에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간에 이재오 장관이 등장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 그냥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헌을 갖고 등장할 것이다. 사람들이 보수대연합, 야권연대를 말할 때 이재오 장관은 권력분산형 개헌을 들고 나와서 판 자체를 완전히 흔들어놓을 수 있다. 그랬을 때 박 전 대표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고 이는 진짜 대세론이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민주당 일부가 나오고 자유선진당, 친이계를 섞어버리는 상태가 돼도 박 전 대표가 멀쩡할 것인가. 만약 그런 사태가 도래하게 된다면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이 어느 정도인지 판가름 날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고성국: 연장선상에서, 박근혜가 이미 인의 장막에 쌓여 있는 것 아닌가, 국민과의 소통 이전에 충고를 들을 통로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 걱정들을 하는 것 같다. 그 부분도 박근혜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지금의 친박계는 2008년 공천학살을 거치고 살아남아 결집됐기 때문에 굉장히 방어적이다. 사선을 넘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리 박근혜는 대세였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비주류였다. 이성헌 의원 같은 친박의 핵심도 사찰 당하는 판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생존을 위해 똘똘 뭉쳐 있었던 것이 정황상 이해는 되지만 그것이 옳은 것인가, 또 그렇게 계속 가면 이길 수 있을 것인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황상 이해는 되지만 이제는 그럴 단계는 지났다. 또, 그런 방식으로 계속 가서는 이회창의 전처를 밟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그것은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기도 하고, 단발적인 정책 한두 개로 이미지 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신 교수 말씀대로 누가 봐도 ‘저 정도 사람들이 한다면’ 하고 느낄 만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줘서 주위에 놓을 정도는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박근혜의 결단이 필요하다. 또 박근혜가 결단하면 친박계 누구도 거기에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 문제는 내년 4월 공천혁명과 연관된다. 더 나아가 박근혜의 지금 심리상태는 본인은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꼭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본인이 대통령이 돼서 2013년 임기를 시작해 5년간 자기의 아버지가 하려고 했던, 또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선진화를 위해서 뭔가 하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수가 돼서 본인을 든든하게 받쳐줘야 하는데 내년 총선에서 만약 과반수가 안 되고 일당도 못 들면 여소야대에서 자기가 대통령 자리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박근혜는 12월 대선에서 이긴다는 확신을 갖고 정국을 보기 때문에 4월 총선은 자기 총선이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당이 과반수를 하느냐 못 하느냐의 선거로 볼 가능성이 크다. 또 대통령을 하겠다는 입장에서 그렇게 봐야 마땅하다. 그건 박근혜건 손학규건 유시민이건 김문수건 내년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총선을 자기 선거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총선 전면에 나서려 할 것이라고 본다.
전면에 나서서 지금과 같은 과반수 또는 일당을 목표로 하려면 지금과 같은 한나라당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은 이미 내렸을 것이고 두 가지 조치를 취할 것이다. 첫 번째는 공천혁명, 두 번째는 지도부의 완전한 쇄신이다. 공천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친이계를 학살하는 형식으로 갈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정치보복의 덫에 걸릴 수도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친박부터 먼저 정리하는 방식으로 친이계를 압박해서 전체적으로 공천혁명의 물고를 트는 방식이 불가피하리라고 본다. 지금 친박계가 많게는 50명 정도라고 볼 때 여기에는 4선 의원들이 많다. 이러한 노쇠한 이미지가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데 실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용퇴할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박근혜를 위해서 우리가 먼저 길을 터주자’고 하면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예컨대 친박계 절반 이상이 먼저 던져버리고 공천혁명 물꼬를 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재오가 지금 하듯이 친이계 몇 십 명 모아서 세 과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조족지혈(鳥足之血)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박근혜가 드라이브 걸면 총선을 승리할 수 있고 그 힘으로 대세론이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4.27 재보선 이후 정국구도를 봐야 한다.

이택수: 대세론에 양면성이 있다. 25~30% 사이의 굳건한 지지율만 보면 확장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 있다.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여론조사기관들이 RDD 방식으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화번호부에 등재돼지 않은 가구까지 포함시켜서 조사를 하게 됐을 때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p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굳건했다. 32% 정도의 변함없는 지지율을 볼 수 있었다. 지난 2월 한국경제신문에서 온라인조사를 했는데 박근혜 전 대표가 36% 지지도가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인터넷이나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한나라당 잠룡들은 인기가 없는데 박근혜 전 대표는 RDD로 하건 인터넷으로 하건 굳건한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대세론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저희가 매일 조사하는데, 20, 30대 지지율이 낮음에도 1등은 계속 유지하고 있고 40대, 50대와의 격차가 크지 않다. 트위터 이용자들에게도 5%밖에 안 빠진다. 현실적인 데이터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의 경쟁과정을 포함해 40% 이상의 확장성은 검증되지 않다는 취약성이 있었다. 본인 지분은 있을지언정 35% 이상을 넘어서서 40~50%의 자기 지지율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나 여의포럼, 친박 의원들이 봤을 때는 불안한 것이다. 밖에서 봤을 때는 대세론이고 굳건해 보이지만 자신들은 정말 불안한 것이다.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이슈만 던질 수밖에 없고 타이밍도 그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때를 보는 것 같다.
정책적인 부분은 아직 국민에게 많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3월 동아일보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본인의 지지율은 30%대 중반으로 나오는데 각 개별 정책과 관련해서는 국가비전, 안보위기, 국민통합, 남북관계, 경제살리기 5개 모든 항목에 있어서 본인의 평균 지지율보다 낮게 나왔다. 작년에 한국형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평가받은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한다. 다른 후보들보다 앞서서 복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진보든 보수든 평가 받는 과정은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일반 이미지나 호감도에 있어서도 굳건하지만 각 요소들에 있어서 여전히 박 전 대표가 정책에 있어서는 아직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 부분이 극복돼야 대세가 정말 대세가 될 것이다.

신 율: 유시민 대표도 15%에 묶여 있는 것이,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등 하는 공통점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 30%, 유시민 대표는 15%로 딱 묶여 있다. 따라서 고정지지층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볼 때 유시민 대표를 무시하고 대선을 치를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을 내보냈을 때 될 것 같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둘의 공통점이 묶여 있다는 점과 외연 확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선거뿐만 아니라 외국 선거에서도 정책을 갖고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바마의 경우 유색인종이 나와서 변화시키겠다는데 진짜 많이 변할 것 같으니까 찍은 것이고, 이탈리아에 변변치 않은 베를루스코니가 두 번씩이나 총리가 된 이유는 뭔가 할 것 같으니까 찍은 것이다. 콘텐츠를 보고 선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중앙일보가 저에게 전화 와서 “기초의원선거에서 후보자 15명이 전과자인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이는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후보자 공지하는데 누가 그거 들여다보고 투표하나? 나도 우리 지역 구의원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일반유권자들에게 그러한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똑같이 정책에 대해 언론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빙자한 이미지 구축 과정이지, 정책의 구체성은 사실 선거에서 중요하지 않다.

고성국: 결국 정책이 아니라 이슈다. 지난 6.2선거에서 지금까지 사람들 기억에 남은 것은 무상급식 하나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무상급식 이슈를 먼저 선점한 당이 민주당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긴 것이다. 2007년 선거의 이슈는 BBK였다. 끝까지 BBK로 가다가 대검에서 무혐의 처리해버리자 그 순간 선거가 끝나버렸다. 결국 2012년에도 그와 유사하게 핵심이슈 한두 개가 선거를 끌어갈 것이고, 정책이 있느냐 없느냐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김능구: 내년은 지난 92년 이후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있는데, 92년 당시는 YS 대세론이 있었다. YS는 비주류 소수였다. 그때 민정당 김윤환 의원이 총대를 메고 신주류를 형성해내면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표지에 보름 내내 친이, 친박 관련해서 나오고 있는데, 이재오, 청와대 쪽에서는 야당보다 박근혜를 막아야 한다, 막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손을 벌리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박근혜와 친박그룹의 해결 여하에 따라 대세론의 실체도 드러날 것이다.

고성국: 92년 상황에서 끝까지 YS에게 양보할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 박태준과 이종찬이다. 결국 이종찬은 탈당하면서 끝났고 박태준도 거기에서 더 이상 뭔가 하지 못하고 끝났다. 어쨌든 허주가 대세를 만들었는데 그때 허주가 허주일 수 있었던 이유는 YS가 총선 공천에서 민주계 몫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YS가 우리는 대권 잡으면 되니까 마음대로 하라면서 허주와 민정계에게 전권을 내줬다. 그렇게 전권을 쥐고도 민주계를 칠 수 없어서 실제 민주계가 많이 다치지 않았다. 2/3 정도는 그래도 민주계가 공천 받아서 됐다. 그래도 실제 그 총선 공천은 허주가 거의 주도적으로 했고 YS가 양해해 줬다.
박근혜가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꼭 승리해야 하고 대선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 가지고 친이와 싸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박계에서 총대 메고 ‘박근혜를 위해서 국회의원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라도 나와줘야 한다. 그럴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 이번에 이계진이 강원도지사 선거를 포기할 때 “내가 경선에 나서서 박근혜가 나를 도우면 박근혜가 친이계와 척을 지게 되는데 그것이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내 자리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최고의 명분을 내걸고 했다. 그렇게 한두 사람이 명분을 내걸면 실제 흐름으로 되는 것이다. 92년 사례가 박근혜 쪽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그런 정도로 큰 뜻을 위해서 눈앞의 이익을 먼저 던지는 이계진 같은 사람들이 여럿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홍사덕은 내년 총선에 무난히 통과하고 정권 잡으면 따놓은 국회의장 혹은 총리감이지만 그것을 먼저 던지면서 그 이상을 노릴 만한 배포가 있는 사람이다. 홍사덕이 본인부터 박근혜를 위해서 용퇴하겠다고 나서면 누가 거기서 아니라고 항거할 수 있겠나? 70년대의 40대기수론은 정말 40대가 했는데, 이번 경우는 나이든 사람들이 기수의 길을 터줄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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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3) / 정치부 기자

[폴리뉴스·폴리피플 특별기획: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박근혜 좌담회(3)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5월호(22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폴리뉴스 정치부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3 11:18:30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폴리뉴스·월간 <폴리피플>이 시도하고 있는 후보검증 토론회의 두 번째 순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4월 22일 개최된 좌담에는 고성국 정치학 박사, 신율 명지대 교수,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김능구 e윈컴 대표가 참석했으며 본지 이명식 편집주간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서는 박 전 대표가 살아온 삶과 국민에게 비치는 모습 그리고 정치책과 철학, 비전에 대해 조명했고 향후 정치일정에서 예상되는 변수들과 과연 ‘대세론’이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짚어 보았다.

고성국 정치학 박사, 김능구 e윈컴 대표(위)/신율 명지대 교수,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사회: 한나라당이 총선과 대선을 내다보면서 어떻게 갈지, 또 박근혜 전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개될 정치상황과 야권이 어떻게 대응해갈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이택수: 여권 내에서 친이, 친박과의 관계를 말씀하셨는데, ‘박근혜 VS 오세훈’ 혹은 ‘박근혜 VS 김문수’ 양자대결 조사를 했을 때 대략 두 사람 모두 55:30 정도로 약 2배 가까이 지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지층으로만 봤을 때는 ‘박근혜 VS 김문수’의 경우 50:40 정도로 격차가 줄었다. 이는 결국 당내 당원, 대의원 선거에서 친이계와 직면했을 때 당내 50% 투표에 있어서 할 만한 대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내에서의 친이, 친박 게임은 또 다른 측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당내에 그런 변수들이 남아 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야권단일화인데, 앞서 이번 재보궐선거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유시민 대표의 경우는 김해(을) 결과가 중요하고 손학규 대표는 분당(을) 결과가 중요한데 이번 재보궐에서 한나라당이 분당과 김해에서 진다면 전초전이 펼쳐질 것이고 박근혜 대항마의 구분이 명확하게 선다는 점에서 당내경선을 통과해야겠지만 본선에 있어서 야권단일화 과정이 정말 큰 복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신 율: 2012년은 92년 대선보다 97년 대선과 비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YS와 이회창 두 사람의 거리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두 사람의 거리가 유사할 정도로 먼 것인지, 이 부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두 사람 간에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갈등이 분명히 있다. 그 당시 YS가 ‘DJ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했다면 그런 상황이 이번에도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성국: 97년에 그랬는데 이번에 신공항 상황을 이명박, 박근혜가 처리하는 과정을 보니까 두 사람이 잘 비켜가더라. 신공항은 굉장한 폭발성을 갖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잘 스쳐가는 것을 봐서는 서로가 관리를 하려 한다는 점이 있다.
굉장히 중요한 변화는 지금까지 이명박이 박근혜를 관리했다면, 앞으로는 박근혜가 이명박을 관리하는 모습으로 관리의 주도권이 넘어갈 것이라고 본다.
이택수 대표 말씀 중 제가 추측을 하자면, 손학규가 분당(을)에서 이기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김해(을)에서 국참당이 이기는 것과 차원이 전혀 다르다. 대선에서 수도권 중간층을 공략해 정권탈활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 현장에서 입증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당(을)에서 손학규가 이기면 20%대를 치고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표가 정동영 표를 거의 대부분 흡수하고 유시민 표도 상당부분 흡수하면서 20%대 이상으로 올라가면 ‘박근혜 VS 손학규’ 양지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주자들이 더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박근혜 쪽에서는 김문수, 오세훈 표가 박근혜 표를 잠식할 것이냐, 아니면 김문수, 오세훈에 가있었던 느슨한 보수표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박근혜에 결집할 것이냐, 저는 후자 가능성이 더 있다고 본다. 따라서 조기에 양자대결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김능구: 97년 당시의 YS와 이회창, 지금의 MB와 박근혜를 대비해보면, 그때 당시의 YS는 이홍구, 이수성, 이인제 등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8.21 회동과는 별개로 MB도 끊임없이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재오 행보가 MB의 생각과 전혀 달리 움직인다고 보지 않는다. 김문수 지사나 오세훈 시장의 미국에서의 발언이나 정몽준과의 회동 등으로 끊임없이 친이 후보단일화에 있어 할 수 있는 최대한 다할 것이다. 이것이 총선에서 맞닥뜨려지고 그에 앞서 조기전대에서도 시도되리라 보여진다.
이번 재보선이 그런 선상에서 의미가 크다. 박근혜가 친박을 내세우기보다는 17대 2004년 총선에서 함께했던 소장파들을 세대교체 명분 속에서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이 선거 결과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어떤 식으로든 조기전대를 통한 지도부의 교체가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양면성이 있는 것이 공천혁명이다. 공천혁명을 상향식으로 했을 때 수도권에서 친박 사람 찾아봐야 있지도 않고, 상향식이라는 것이 현직에게 유리하다. 그런 면에서 소장피와의 결합은 더욱더 중요하고 필요하다. 따라서 상향식 공천혁명을 전면화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가 승리했을 경우 양강구도 형성되는 부분과, 한나라당 내에서의 새로운 대선후보들이 좀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부분이 단기적으로는 박 전 대표에게는 대세론이 유지돼 온 속에서 재보선 이후에 처음으로 위기상황이 전개되리라고 본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신 율: 재보선 중 강원도가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간접적이나마 박 전 대표가 강원도에 치중했는데 만약 강원도에서 한나라당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게 되면 친이계에서는 흔들기의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더불어 김해(을)에서 만약 김태호 후보가 당선된다면 친이계로서는 굉장한 호재다. 이에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도부 인적개편론은 친박 쪽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번 지도부는 내년 4월까지 갈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강원도에서 한나라당이 이기고 김해(을)이 패하면 오히려 친이계 쪽에서 지도부 개편을 이야기하면서 이재오 장관 같은 강성대표를 아예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랬을 때 내년 4월 총선에서 설령 공천혁명을 하려한다 해도 부딪히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고성국: 이미 친이, 친박 간 세 대결은 끝났다고 본다. 박근혜의 일방적 승리로 이미 끝난 것이고 단지 여진이 좀 있을 뿐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이나 ‘함께 내일로 모임’은 여진 정도로 본다. 박근혜도 그런 모임에 대해서 심각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별로 대응할 이유를 못 느끼고 가는 것이다. 이후 구도는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대주주인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이상득, 정두언 등 무시할 수 없는 소주주들과 박근혜가 다 엇갈려 있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소주주들은 대개 정리가 됐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관계인 이상득과 박근혜만 남은 것이다. 이재오 특임장관도 약간의 여진을 몇 번 더 일으킬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중요한 변수는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런 상태에서 범여권의 정국 기획 주도권 자체가 박근혜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흐름을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히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 흐름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 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표로부터 계속 지원 받는다는 뜻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남은 임기 동안 박근혜 전 대표의 암묵적 또는 명시적 지원을 바탕으로 본인은 국정운영을 잘하고 임기를 잘 마치면 그만이지, 박근혜와 별로 승산도 없는 게임에서 정치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면 실제 국정운영이 어려워진다. 국회에서 법안 통과나 예산처리가 제대로 되겠나? 이런 상태에서 서로가 상처 줄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이것이 8.21 이후 박근혜, 이명박 관계의 기본 틀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 관계에서의 주도권이 점차 이명박으로부터 박근혜로 오고 있거나 이미 왔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 과연 정국을 기획하고 운용하는 힘이 박근혜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면, 박근혜 쪽에서 역할을 할 사람들이 보이는지, 보인다면 누구인지 궁금하다. 이는 참모 혹은 맨파워와 관련 있는데, 그런 면에서 여전히 박근혜 혼자 한다고 본다면 갑갑한 것 아닌가?

고성국: 그런 정무기획, 예컨대 4.27 이후 당 지도체제 개편이나 총선 콘셉트 등등의 정무계획을 짤 때는 친이계보다는 친박계에 선수들이 더 많다. 친박계에 정치적으로 깊이가 있고 정치경험 풍부한 사람들이 더 많다.

신 율: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레임덕을 막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대선후보에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그것을 관리해가면서 자기 힘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너무 치고 올라오면 ‘도움 받는다’고 표현하셨는데 사실은 밑에 깔리는 것이다. 자기가 자존심상 그렇게 안 되기 위해서 계속 시도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떻게든 누군가를 키우든지 레버리지를 확보해야 한다. 계속 그러한 시도를 할 것이라 본다. 올 10월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흔들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고성국: 저도 대통령이 대항마를 키울 생각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김태호, 정운찬 실험으로 끝났고 지금 오세훈, 김문수는 대통령이 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단계다. 정몽준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연타를 맞은 상태다. 6.2선거 후 대표권 물러난 후 그 사람은 월드컵 유치 실패했고 FIFA 부회장 실패하면서 더 이상 정치적으로 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변수도 안 된다고 볼 것이다. 오세훈, 김문수는 이명박과 상관없이 자기 정치 프로그램 속에서 선언할지 말지 결정할 단계인데 내가 보기에 승산은 거의 없지만 도전하게 된다면 먼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던져내야 하는데, 법리적으로는 단체장인 서울시장, 경기도지사직을 갖고 경선 치를 수 있다고 하지만 말이 그런 것이고 실제 정말 제대로 하려면 캠프 차리고 올인 하듯이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시장, 경기도지사라는 엄청난 기득권을 먼저 버리고 승산이 거의 없는 게임에 올인 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따라서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신 율: 얼마 전에 김문수 지사의 쪼개기 후원금이 보도됐는데, 그것이 김문수 지사 입장에서는 데미지, 족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시기적으로 왜 그때 나왔는지 궁금하다

고성국: 제가 알기로 뒤에 정치적인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선관위가 선거 끝나고 나면 일정기간 동안 산정해서 고소고발 의뢰 조치를 한다. 그 중 하나다. 실제 김문수 지사에 대한 직접조사도 없었고 이미 없어졌다. 어쨌든 보도가 되니까 김문수 지사로서는 굉장한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 사건을 전후해서 지지도에서 의미 있는 추락은 없었다. 물론 그렇게 높지 않은 지지도였기 때문에 변화가 없었던 이유가 있지만 너무 그것을 갖고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 할 일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가면 박근혜가 경선도 안 하고 추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박근혜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미 2007년에 예방주사 많이 맞았다고는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김능구 대표가 제기했던 문제점들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오히려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한 경선붐업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고민 차원에서, 만약 경선 레이스를 위해서 현직 서울시장이나 현직 도지사를 투입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재보궐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국회의원 중 소장파의 누구, 영남 누구 식으로 만들어가는 기획적 고민은 앞으로 필요할 수 있다.

김능구: 대선주자 시리즈를 하면서 드는 느낌이 박근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차기 1순위 대통령 후보인데, 지난 2007년 경선에 나왔던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박근혜 자체에 대한 검증 칼날이(?) 너무 무디다. 가령 2월에 ‘소통의 길에 나서라’라는 사설도 서로 호흡을 맞춘 듯 일회성으로 내보내 생색내기용 같기도 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 같기도 하다. 박근혜의 침묵의 정치는 국민과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한 현대 정보화 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다. 친박그룹 사람들도 아예 정치인이 아닌 양 입을 다물어버리고, 박근혜 발언을 북한의 유훈통치 식으로 해석하기 급급한 모습은 국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지금과 같은 좌담을 통해 박근혜, 친박그룹의 국민과의 소통이 촉발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사회: 오랜 시간 진지하게 토론에 임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이미지가 특수한 성장과정과 육영수 여사의 교육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란 분석과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함께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그늘에 있다는 지적과 이미 자신의 정치를 시작했다는 입장도 제기되었다. 박 전 대표의 지지도에 대해서는 대세론으로 보기에는 일정한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고 상황 변화에 따라 무너질 수 있다는 분석과 상당히 견고한 지지도이며 굳어질 수 있다는 분석으로 나뉘었다. 이후 정치상황과 전망에 있어서도 박 전대표가 여권 내에서 정국주도력을 높이면서 내년 총선을 주도하고 그 힘으로 대선까지 밀어갈 것이란 분석과 여권 내에서도 여전히 흔들기가 계속될 것이며 야권 상황이 바뀌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란 분석이 맞섰다. 4.27 재보선 결과도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주목된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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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 동영상] 박근혜 좌담회 (4)

[대선후보를 검증한다② 동영상] 박근혜 좌담회 (4)
[폴리뉴스 이은재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9 18:47:41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폴리뉴스·월간 <폴리피플>이 시도하고 있는 후보검증 토론회의 두 번째 순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 1위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다른 주자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뚜렷한 경쟁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이라 할 만큼 부동의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아직도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는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월 22일 개최된 좌담에는 고성국 정치학 박사, 신율 명지대 교수,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김능구 e윈컴 대표가 참석했으며 본지 이명식 편집주간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서는 박 전 대표가 살아온 삶과 국민에게 비치는 모습 그리고 정치책과 철학, 비전에 대해 조명했고 향후 정치일정에서 예상되는 변수들과 과연 ‘대세론’이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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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한백]박근혜, 대통령 적합도 65.1% vs ‘부적합’ 29.5% / 조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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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한백]박근혜, 대통령 적합도 65.1% vs ‘부적합’ 29.5%
박근혜 이미지,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 31.8% - ‘박정희 딸’ 27.3%
[폴리뉴스 조기성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3 15:30:18
(폴리-한백 공동정기여론조사)
차기 대선주자 중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 대한 대통령 적합도가 65.1%로 조사됐다.

<폴리뉴스>와 <한백리서치>가 지난달 26일 정기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감으로 ‘매우 적합하다’는 응답이 29.4%, ‘적합한 편’이라는 의견이 35.7%로 각각 나타났다.

반면, 부정적 평가(매우 부적합 14.7%, 부적합한 편 14.8%)는 29.5%였다.

특이한 점은, 차기 총선 1대1 가상대결 시 야권단일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응답층(긍정 평가 47.7%, 부정 평가 47.3%)에서 긍정평가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차기 대통령으로 중도진보성향 대통령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층(긍정 평가 52.4%, 부정 평가 59.0%)에서도 긍정평가가 더 많았다.

박근혜 전 대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응답이 31.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응답이 27.3%로 뒤를 이었고, ‘여성 대통령’(19.2%), ‘공주 이미지’(4.9%), ‘수구보수 정치인’(4.8%), ‘소통부재의 리더십’(3.6%) 순으로 조사됐다.

(폴리-한백 공동정기여론조사)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신뢰와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있는 반면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 딸이라는 아버지 후광효과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고, 소통부재와 공주이미지 등 부정적 이미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주요 계층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이미지로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은 반면 여성층, 20대와 30대층, 수도권 거주층,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 선호층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딸’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답했다.

박근혜, ‘정책능력 부족’ 32.1% vs '정책능력 부족하지 않음‘ 47.5%

박근혜 전 대표의 대통령 자질과 관련해 ‘정책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긍정적 평가가 47.5%로 나타나 ‘정책능력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평가(32.1%)보다 15.4%p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잘 모르겠다’는 판단 유보층은 20.4%였다.

대부분 주요 계층에서 ‘정책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긍정적 평가가 높은 가운데, 30대층(정책능력 부족 45.8%, 정책 능력 부족하지 않음 39.3%), 호남권 거주층(정책능력 부족 38.1%, 정책능력 부족하지 않음 35.0%), 중도진보 성향 대통령 선호층(정책능력 부족 46.5%, 정책능력 부족하지 않음 33.0%)과 진보 성향 대통령 선호층(정책능력 부족 54.1%, 정책능력 부족하지 않음 26.9%) 등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더 높았다.

이번 조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65명을 대상으로 ARS전화설문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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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한백]차기대선 박근혜 51.6% 〉 野단일후보 37.6% / 고동석 기자

폴리-한백]차기대선 박근혜 51.6% 〉 野단일후보 37.6%
대선주자 지지도 39% 1위, ‘박근혜 대세론’ 내년 대선까지 지속 45.8%
[폴리뉴스 고동석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3 18:13:33
2012년 대선 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vs 야권 단일후보 가상대결 선호도(폴리-한백 정기여론조사)
2012년 차기 대선에서 여야 1대1 가상대결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51.6%로 야권 단일후보지지(37.6%) 보다 14%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폴리뉴스>와 <한백리서치>가 지난달 26일 정기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조사 때 44.6%였던 한나라당 후보 지지도 보다 7%p 상승한 것으로 연령별을 포함, 민주당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 지역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여론조사를 통해 볼 때 4.27 재보궐선거 이후 다른 언론 매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와 비교해 등락폭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반MB·반한나라당 심판론이 주효했던 재보선 결과가 박 전 대표의 지지도 변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연령별로는 20~40대는 오차 범위 안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높았다. 20대는 박 전 대표 46.5%, 야권 단일후보 43%, 30대는 박 전 대표 41.4%, 야권 단일후보 53.8%, 40대는 47.8%, 야권 단일후보 40.1%로 집계됐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압도적으로 높아 야권 단일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30%p 정도로 벌어졌다. 50대는 박 전 대표 57.9%, 야권 단일후보 28.4%, 60대 이상은 박 전 대표 66%, 야권 단일후보 20.3%였다.

지역별 박 전 대표 대 야권 단일후보 지지율은 수도권이 49.2% 대 40.2%로 9%p 격차였다면 강원, 충청, 경상권에서는 박 전 대표 지지율이 60%를 웃도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야권 단일후보는 유일하게 호남권에서만 66.1%로 박 전 대표(22.3%)를 33.9%p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박근혜 대세론’ 대선까지 지속 45.8%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평가(폴리-한백 4월 공동 정기여론조사)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고공행진을 이어온 ‘박근혜 대세론’과 관련해 내년 대선까지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응답은 45.8%로 조사됐다.

반대로 한나라당 내 변화(22.9%)와 야권 단일후보 출연(14.7%) 등으로 계속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은 37.6%였다.

잘 모름(16.6%)을 뺀 지속과 지속 못함의 격차는 8.2%p. 응답자들은 지속될 것이라는 측면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박근혜 대세론은 거품이 끼여 있다”는 야권 내부의 시각에 반해 대체로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방증인 셈.

연령별로는 20대 ‘지속될 것’ 46.9%, ‘지속 못할 것’(38%)을 시작으로 30대(지속 37.7%-지속 못할 것 45.7%), 40대 (지속 47.6%- 지속 못할 것 38.9%), 50대 (지속 47.4%- 지속 못할 것 35%), 60대 이상에서는 (지속 50.1%-지속 못할 것 33%)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호남권을 제외한 나머지 강원, 충청, 경상권 등 전 지역에서 ‘박근혜 대세론’이 내년 대선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주요 지역 단위를 선별적으로 살펴보면 서울(지속 41.3%-지속 못할 것 38%), 대전 (지속 69%-지속 못할 것 13.2%), 대구(지속 57%-지속 못할 것 42.3%), 부산(지속 41.5%-지속 못할 것 39.3%) 등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대세론이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지속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한나라당 내 변화로 계속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이 야권 단일후보 출연이라는 이유보다 높았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는 곧 박근혜 대세론을 가로 막을 변수가 한나라당 내부에 있고 계파 갈등과 다툼이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전망과 맞닿아 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박근혜 39% 1위

박근혜 대세론이 내년 대선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 속에 박 전 대표는 여야 전체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도 지난조사(3월 23일)보다 5.9%p 떨어진 39%로 1위를 지켰다.

연령별로는 20대(42.1%), 30대(28.8%), 40대(34.9%), 50대(42.4%), 60대 이상(48.4%) 등으로 전 연령층에서 골고루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지역별로는 호남권(19%)을 뺀 나머지 수도권(35.1%), 강원권(53.3%), 충청권(53.7%), 경상권(46.3%)에서 굳건한 대세론이 재확인됐다.

이번 조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65명을 대상으로 ARS전화설문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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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한백] MB 지지도 39.1%…10.1%p 대폭락 / 김미영 기자

[폴리-한백] MB 지지도 39.1%…10.1%p 대폭락
경남권,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여파로 급락, 20~40대 60%이상 ‘부정적’
[폴리뉴스 김미영 기자]기사입력시간 : 2011-05-02 19:16:00
이명박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4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0%p 이상 폭락했다.

<폴리뉴스>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백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달 26일 정기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전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는 39.1%, 부정적 평가는 54.4%로 조사됐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6%였다.

지난 3월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긍정 49.2%, 부정 45.9%였던 것에 비하면 대폭락 수준이다.

이 대통령 지지도가 이렇게 내려앉은 이유는 최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LH 지방 이전 등 대형 국책사업의 폐기 및 재검토 등으로 민심 이반 현상이 가속화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40대 60% 이상 부정평가…경남권 24.2%p 추락

연령별로는 20~40대에서 부정적 평가가 60%를 넘어섰다. 청년 실업과 전세난 등 생활고로 인한 민심 이반으로 해석된다.

20대는 긍정 29.4%, 부정 64.8%로 나타났다. 30대에서 긍정 평가는 28.0%, 부정 66.1%였고,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40대는 긍정 31.0%, 부정 62.4%로 조사됐다.

또한 지난 조사들에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확실히 우세했던 50대의 경우, 이례적으로 긍정 평가(49.4%)와 부정 평가(44.0%)의 격차가 오차 범위 내로 좁혀졌다.

반면 60대 이상은 긍정 평가(60.0%)가 부정 평가(32.0%)를 월등히 앞섰다.

권역별로는 과학비즈니스벨트 분산배치설로 민심이 요동치는 충청권에서 부정 평가가(60.5%)가 긍정 평가(35.1%)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지난 3월엔 긍정과 부정 평가가 48.3%로 동일하게 조사됐었다.

경상권의 경우 긍정 40.4%, 부정 52.2%였으나, 특히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무산된 경남지역은 긍정 37.0%, 부정 57.1%로 부정적 평가가 평균치(54.4%)보다도 높게 나타났다. 지난 3월 긍정 61.2%, 부정 33.3%를 보였던 경남 민심이 한 달 사이 격변한 셈이다.

정당 지지도를 살펴보면, 한나라당 지지도는 36.7%로 지난조사 43.3%에 비해 6.6%p나 추락했다. 이는 이 대통령 지지도 하락에 영향을 받아 동반하락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22.9%로 전달 15.9%에 비해 괄목할 만큼 약진했다. 이어 국민참여당 7.2%, 민주노동당 4.5%, 자유선진당 3.0% 진보신당 2.1% 순으로 집계됐다. 무당층은 지난조사 22.7%과 비슷한 21.0%에 머물렀다.

한편, 이번 조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65명을 대상으로 ARS전화설문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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