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서울 = 도기천 기자] 여야를 망라해 독보적인 대선후보 1위 자리를 지켜오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빨간불’이 켜졌다. 박 전 대표는 ‘안철수 바람’을 전후해 잇달아 터져 나오는 악재에 휘청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 전 대표가 내밀 마지막 카드는 결국 ‘신당 창당’이라는 얘기가 여의도 정가를 나돌고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할 경우 박 전 대표 측이 창당의 명분을 거머쥐게 된다는 것. <시사서울>이 또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보수신당 창당론’의 실체를 파헤쳐봤다.
폭풍전야 여권…“서울시장 선거후 지각변동”
위기감 고조되는 친박, MB와 선긋기 나서
친이, ‘나경원-이재오 카드’로 친박계 압박
국민경선제, 영남권 친박계 공천 물갈이 예고
범여권후보로 나섰던 이석연 변호사의 서울시장 후보 사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안철수-박원순 바람, 친이(MB)계 서울시장 후보인 나경원 최고위원의 독주, MB최측근인 이재오 특임장관의 당복귀...
불과 1개월여 동안의 일들이다.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박근혜 대세론’은 벌써 ‘한때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동안 말을 아껴온 박 전 대표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만큼은 태도가 완연히 달라졌다.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의원들은 18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경제, 복지, 외교 등 MB(이명박)정부의 주요 정책들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입장 표명을 자제했던 박 전 대표가 국정감사를 계기로 자신의 정책 구상을 밝히기 시작하면서, 현 정부와 선긋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으며, 이와 함께 ‘신당 창당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석연 사퇴…궁지 몰린 박근혜
‘창당설’은 이미 4.27보궐선거 직후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공항백지화, 저축은행 사태 등 잇단 정책실패가 4.27참패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영남 공천학살론(친박계 공천배제)까지 흘러나오면서 친박계의 불만은 당시 최고조에 이르렀다.
실제로 친박 계열의 산악회원 1만여명은 보궐선거 3일 뒤인 4월30일 충남 공주 계룡산에 총집결해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친박계의 전위부대격인 미래희망연대(대표 노철래 의원)의 전국 조직으로 알려진 ‘청산회’의 이날 행사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격앙됐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와 강창희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미래희망연대 소속 정영희, 윤상일, 정하균 김혜성 의원, 김노식, 양정례 전 의원, 청산회 전국 16개 지부 회원 등 모두 1만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친박계 수장격인 서 전 대표는 현 정부에 대해 야권 인사들보다 더한 비난을 쏟아냈다.
서 전 대표는 “선거 참패는 예고된 것이고 국민의 마음은 정권으로부터 돌아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좌장'으로, 18대 총선을 앞두고선 친박계가 대거 낙천하자 한나라당을 탈당 친박연대를 만든 뒤 '박풍'을 일으켜 14석을 획득하는 저력을 보여준 인물.
며칠 뒤에는 이들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비대위를 맡으며 최일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쏟아졌다. 또 일부에서는 분당론까지 제기하는 등 그동안쌓인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당시 이한구 의원은 “박 전 대표라는 정치적 자산을 활용해야 하고 어떻게든 추대를 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구원투수론’을 폈다. 홍사덕 의원은 “친이계와 친박계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면 (분당 외에) 달리 길이 없다”며 주류(MB)측을 압박했다.
쇄신공천 속내는 친박 물갈이?
이들이 일으킨 일명 ‘친박의 난’은 한나라당이 전당대회 체제로 돌입하면서 잠시 주춤해지는 듯했다. 더구나 7.4전당대회가 사실상 친이(MB)계의 참패로 귀결되면서 친박계는 목소리를 낮추고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경원, 원희룡 최고위원 등 친이계 성향의 신임지도부가 ‘공천쇄신’을 주장하며 반격에 나서면서 친박계 중진들과 다시 충돌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참신한 인사 영입’을 주장했지만, 이면에는 ‘친박계 물갈이’ 정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물갈이 ‘0순위’ 대상은 영남권 중진들.
나경원 최고위원은 아예 대놓고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나 최고위원이 대표 발의했으며, 친이계, 소장파, 중도성향의 142명이 발의 서명에 참여했다.
지난 5월9일 발의된 이 법안은 지난 6월 16일, 20일, 24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선거법소위에서 상정돼 논의됐으나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나 의원 등이 최고위원에 당선된 이후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의원들은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소장파도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소장파는 초·재선 의원 20∼30명을 주축으로 ‘공천개혁실행준비위원회’(가칭)를 구성했다. 이들은 국민경선제 도입과 전략공천비율 제한을 골자로 한 공천개혁안을 주장하고 있다.
쇄신파 대표주자인 남경필 최고위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인재를 끌어들이되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낮춰서 함께 경쟁하도록 한 뒤 국민이 선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경원․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과 소장파의 최근 도발적인 행보는 당쇄신이라는 큰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면에는 영남권 중진들의 기득권 포기를 압박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대부분 중진의원들이 영남권에 포진해 있는 친박계로서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흐름이다.
영남권에서 3선 이상 친박계 의원이 13명이고 3선 이상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이 6명이다. 수도권은 3선 이상 친이계가 13명, 3선 이상 친박계가 2명이다.
친박계는 친이계와 안철수 간의 ‘교감설’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 과거 친MB기업으로 알려진 P사의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안 원장과 함께 ‘청춘콘서트 투어’를 해오며 안 원장이 현실 정치에 눈 뜨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한때 친이계 수장격인 이재오 전 특임장관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다 최근 여론조사의 향방도 ‘안철수-MB교감설’의 묘한(?) 근거가 되고 있다. 9월초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과정에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로 단일화했을 경우, 박원순으로의 단일화보다 15%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곧 일부 여권지지층이 안 원장 측으로 이탈했음을 의미한다는 것. 친이계 지지층의 일부가 ‘박근혜’가 아닌 ‘안철수’를 택했다는 해석이다.
친이(MB)계 수장격인 이재오 전 특임장관의 이달 초 당 복귀도 친박계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특히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때라 친이계(MB)가 유력 시장후보로 지목하고 있는 나경원 최고위원과 이 장관의 연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이 장관과 나 최고위원이 같은 친이계로 분류되는데다, 이 장관은 대권 후보로, 나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한 배를 탈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나 최고위원은 여권에서 박원순 변호사와 맞설 ‘유일한 카드’라는 평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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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와 박원순 후보가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뉴시스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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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가 ‘정점’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자리가 점점 좁아져 가는 모양새다. 이석연 변호사가 서울시장 후보를 사퇴하면서 여권 전체가 나경원 최고위원 중심으로 급속히 결집하는 가운데, 친박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친이계인 나 최고위원의 유세 지원에 나서봤자 얻을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보수신당 창당론’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 박 전 대표는 결국 10.26서울시장 선거 직후에 ‘신당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시장 선거에 패할 경우, 박 전 대표 측으로서는 창당 또는 당
혁신의 명분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비록 이석연 변호사가 사퇴하긴 했지만 그의 출현으로 인해 한나라당 뿐 아니라 보수
진영 전체에 근본적인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박 전 대표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 변호사를 추대한 보수진영
시민단체들은 한나라당의 복지정책 등을 비판하며 색깔을 분명히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나 최고위원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친박계의 창당 명분은 퇴색될 것이며 박 전 대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영남권 친박계의 한 핵심인사는 “박 전 대표는 과거 대표시절에
영등포 천막 당사 운영으로 당을 (위기에서) 구한
경험이 있다”며 “7.4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친박계가 자리를 잡은 현재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움직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여권의 쇄신 요구가 거세질 경우 창당에 버금가는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