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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기존_ 자료3(수원관련)종합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④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④

전력의 극대화를 노린 구조물, 암문



화성은 축성하고 난 당시에는 전쟁을 치루지 않았다. 그러나 화성을 ‘시뮬레이션’으로 전쟁 장면을 제작한다고 하면, 정말 장관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화성 안에 주둔하고 있는 장용위의 군사들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할 것이다. 화성은 그만큼 수성(守城)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수많은 적이 화성으로 밀려왔다. 4대문을 아무리 깨려고 공성무기를 총 동원했지만, 정작성문 앞으로는 다가서지도 못한다. 겨우 옹성 안으로 들어갔지만 공성무기를 움직일 공간이 없다.

옹성 안에 들어 온 적병들이 전멸을 당한다. 그것이 바로 화성이다. 적들은 이번에는 공격방법을 바꾸었다. 피해를 입더라도 성벽을 타고 오르기로 한 것이다.

앞뒤에서 공격하는 화성의 병사들

긴 사다리를 이용해 성벽을 오르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성벽을 오르기도 수월치가 않다. 여장에 걸친 사다리는 긴 창을 이용한 성안의 병사들에 의해 제거가 되고, 뒤에서도 화살이 날아온다.

성벽이 밖으로 돌출된 치성에서 쏘아대는 화살이다. 앞뒤로 협공을 당하는 적은 성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만다. ‘난공불락의 요새’, 화성에 가장 걸맞는 별명이다.

적은 골똘히 생각을 모았다. 넓은 공간이 없는 후미진 곳으로 공격을 하고자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성 가까이 조금씩 지형지물을 이용해 다가들었다. 성벽에 줄을 던지고 사다리를 걸치고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뒤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적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한 무리의 군사들이 배후에서 나타난다, 도망을 갈 길조차 막혀버렸다. 당황한 적병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오합지졸로 변하고 만다.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성 밖은 자신의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딴 곳에서 지원군이 올만한 길도 모두 차단을 했다. 그런데 어디서 저 많은 군사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은밀한 곳에 자리한 암문

화성에는 암문이 있다. 현재는 네 곳의 암문이 남아있다. 이 암문들은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적의 눈에 잘 띠질 않는다.

암문은 전쟁이 나면 무기를 공수하거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통로이다. 거기다가 몰래 성을 빠져나간 군사들의 적의 배후를 공격하게 된다. 성으로 접근을 했던 적들은 혼비백산을 할 수 밖에.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저 군사들은 어디서 나타났단 말이냐?”

벽돌로 쌓은 아름다운 암문

현재 용도가 나 있는 팔달산의 능선으로 나가는 서남암문 외에도, 서장대의 남쪽에 서암문이 있다. 밖에서 보면 이 암문을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암문이 연결되는 곳은 가파른 비탈로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암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병사들이 뒤를 공격하고 난 후, 바람처럼 다시 어디로인가 사라져버린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이 군사들의 움직임에 모골이 송연하지 않겠는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옆에도 암문이 있다. 북암문은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7일에 완성이 된 암문으로, 화성 전체구간 중에서 유일하게 좌우의 성벽을 벽돌로 쌓은 곳이다.

이 북암문 앞에는 연지가 있다. 요즈음 연지는 한창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만일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면, 여지는 적의 시신으로 메워질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동장대 가까이 또 하나의 암문이 있다. 바로 동암문이다. 동암문은 북암문보다 이틀 빠른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5일에 완성이 되었다.

만일에 대비해 4대문 외에도 후미지고 적당한 곳에 마련한 암문. 이 암문이 있어 적들을 물리치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이러한 많은 구조물들이 성과 주변의 지형 등과 어우러지며 자리를 하고 있다. 화성이 자연과 더불어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런 구조물로 인해 최고의 성이란 찬사를 받는가보다.

하주성(sw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