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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기존_자료2 종합(박근혜 前 대통령관련)

육영수의 손

육영수의 손

|자유게시판 (+ 공지)

숫골사랑 | 조회 180 |추천 1 |2011.11.20. 14:45 http://cafe.daum.net/parkgunhye/U8YZ/448951

2009-12-26

청와대 대접견실.
수십명의 예방객이 긴장된 표정으로 줄을 맞춰 서 있다.
비서관이 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영부인께서 곧 나오십니다. 악수를 하실 때는 손을 꽉 잡지 말고 살짝 대기만 하세요.”
비서관은 악수할 때의 유의사항을 거듭 강조한다.

드디어 모습을 나타낸 육영수 여사가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웃으며 손을 내미니까 덥석 잡은 손을 꼭 쥐게 된다. 살짝 대기만 하라는 비서관의 말은 순식간에 뇌리에서 사라지고, 반갑고 기쁘고 떨리기도 하는 복합감정으로 가슴이 퉁탕거려 온정신이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꽉 잡게 된다.

악수할 때의 물리적 압박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수백번 수천번을 반복해서 축적될 경우엔 엄청난 통증을 가져오게 된다. 육영수 여사가 많은 사람들을 만난 날이면 손의 통증 때문에 식사할 때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실례를 보면, 1969년 정초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하루동안 약 2천3백명의 신년하례객을 맞이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악수하는 손에 힘을 빼라는 비서관의 말은, 물론 대통령 부인의 권위 때문도 아니요, 상대방에게 조신한 처신을 당부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손은 만남의 접점이다. 거기엔 신분의 차이도 있고, 거드름도 있다.
1961년 겨울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맞이한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양복 윗주머니에 한손을 찔러넣었었다. 대체로 구미의 저명인사들은 가난한 나라에 오면 으레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어 거드름을 피웠다. 손을 함부로 내밀지 않고 아무나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신분상의 우월감, 상대방을 은근히 얕잡아보는 일종의 귀족주의 같은 행태였다.
전직 대통령 윤보선도 영국 유학 출신이라선지 청와대에서 내방객을 접견할 때 항상 윗주머니에 두손을 집어넣었으며, 일반대중과 악수하게 될 경우에는 여름에도 유들유들하게 무두질을 한 가죽장갑을 끼고 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런가 하면 말끔히 권위를 씻어버린 손이 있다.
낙도의 코흘리게 꼬마들도, 한센씨병 환자들도, 산업현장의 근로자들도,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무시로 잡아보는 손이 있다.
육영수 여사의 손이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박정희 후보의 춘천 유세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설이 한창 진행 중인데 청중 속에서 누군가 돌연 연단 쪽으로 걸어나와 단상의 사람들과 경호원들을 잠시 당황케 했다. 할머니 한 분이 두 팔을 치켜들고 연단 아래로 다가와 까치발을 세우고 육영수 여사의 손을 잡아 보자는 것이었다.
연설은 중단되고, 단상의 육 여사는 허리를 굽혀 할머니의 두손을 잡아주었다. 할머니는 보고 싶은 육 여사의 손을 잡아 보았으니 이제 원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단상의 사람들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고, 할머니 뒤에 있던 경호원 한 사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육 여사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했을까.
사람들에게 육 여사는 청와대 안방의 고귀한 마님이 아니다. 특히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주저앉은 사람, 막막해서 헤어날 길이 안보이는 사람들에게 인간 육영수는 그 눈물을 닦아주고 그를 부축해서 고난의 언덕길을 훠이훠이 함께 넘어가는 어깨동무 동반자였다.


▲(좌)1971년 4월 15일 춘천에서 육영수 여사가 허리 굽혀 할머니의 두손을 잡아주고 있다. (우)그곳에서 아기 업은 젊은 주부가 육 여사를 찾아와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국가기록원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김남조 시인의 이 시를 송창식이 불렀고, 조수미도 불렀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용솟음쳐 가슴이 따뜻해지는 노래다.

‘육영수의 손’이 그리운 것은 이 겨울에 삶의 대열에서 내동댕이쳐진 휑뎅그렁한 마음이 더 춥기 때문이요, 호소할 곳이 없고 울음을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약을 먹고 투신을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동시대인들의 냉정함이 더 소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육영수의 손’은 그리움만이 아니다. 기다림이다.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잡아보고 싶은 손을 기다리는 모질게 질기고 질긴 희망이며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