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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기존_자료2 종합(박근혜 前 대통령관련)

무역 1조 달러의 최고 공로자 박정희

무역 1조 달러의 최고 공로자 박정희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기념도서관 공사 현장에 지난 주말 다녀왔다. 11월 개관을 앞두고 3층짜리 건물은 완성된 상태였고 주변 조경공사가 한창이었다. 기념관의 총면적은 1600평 정도로 너무 좁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12년 걸려 외진 곳에 짓는 기념관

박정희 전 대통령은 2008년 건국 60주년 때 K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업적을 많이 남긴 대통령’으로 꼽혔다. 그를 뽑은 응답자는 전체의 73.4%에 달했다. 우리 현대사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기념하는 공간이 꼭 웅장해야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고, 그들의 기여에 고마워하는 후세의 마음이 깃들어 있으면 규모는 그 다음 문제다.

하지만 기념관은 너무 외진 곳에 있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20분이 넘게 걸렸다. 관람객이 찾기에는 교통이 너무 불편했다. 기념관 바로 앞에 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이 있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 기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9년 ‘역사적 화해’ 차원에서 건립을 약속하면서 추진됐다. 어딘가에 짓기는 해야겠는데 마지못해 자리를 내준 인상이 역력했다. 그나마도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정부 지원금 회수에 따른 법정 소송 등으로 문을 열기까지 12년이 걸렸다.

▲고독한 사색. ⓒ 정형모 유화(油畵). 국가경영을 지휘하면서 숱한 반대를 물리쳐야 했던 그의 진짜 적(敵)은 ‘고독’이었는지 모른다. 부인을 잃었던 그날 그 순간 “국민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던 그를 괴롭힌 것은 ‘땅거미 지는 초저녁’었다고 한다. 그때가 “가장 가슴 아파 견디기 힘들더라”고 한 노시인(老詩人)에게 토로한 바 있다. 청와대에서 그를 모셨던 한 비서관은 “그분의 기념사업은 우리 후손의 도리이긴 하지만, 그분의 개인 성품으로 봐서는 기념관도 동상도 필요없는 분”이라며 ‘인간 박정희’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올해 12월쯤 되면 마침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한국 경제의 새 이정표가 세워진다. 수출액과 수입액을 합친 연간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돌파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 무역은 수출 4664억 달러, 수입 4252억 달러를 합쳐 8916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무역 규모는 8월 말 현재 작년 동기에 비해 25%가량 늘어난 7186억 달러로 집계됐다. 빠르면 11월 말, 늦어도 12월 초까지는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액도 처음으로 5000억 달러를 넘게 된다. 우리보다 앞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나라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등 8개국이다.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한국보다 훨씬 덩치가 큰 나라들이어서 우리는 국민적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지금은 누구나 수출이 국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1960년대 초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당시 북한의 수출액은 연간 2억 달러에 이르렀으나 남한은 1960년 3280만 달러에 불과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1961년 집권 초기에는 ‘수출 입국(立國)’에 뚜렷한 의지가 없었다. 그가 수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정권이 안정기에 들어선 직후인 1964년이었다. 그해 우리 수출액이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박 전 대통령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게 된다. 이듬해부터 박 전 대통령은 수출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수출 지원 정책에 대한 불만이 기업한테서 나오면 즉각 개선을 지시했다. 모든 국정은 수출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왜 당당하게 동상 건립 못하나

1977년 마침내 한국은 연간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그해 12월 22일 장충체육관에서는 축하행사가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일기에 ‘1970년에 10억 달러, 7년 후인 금년에 100억 달러 목표를 달성했다. 1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가 되는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이 걸렸다. 우리 한국은 불과 7년이 걸렸다. 100억 달러,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자’고 적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KWTC) 단지 안에 있는 트레이드타워 1층 한 귀퉁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1988년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서 KWTC를 건립할 때 언젠가 박 전 대통령의 흉상을 세우기 위해 비워 놓은 자리다. 구순을 바라보는 남 전 총리는 “한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것은 수출이었고 수출의 기관차 역할을 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박정희 대통령”이라면서 “수출 업무를 관리해온 한국무역협회 건물 주변에 그를 기념하는 전신 동상을 세우고 싶었으나 쉽지 않을 것 같아 흉상으로 목표를 낮췄다”고 회고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올해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트레이드타워 근처에 세울 계획이다. 조형물도 있어야겠지만 나는 한국 수출의 상징적 인물인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길은 분명해졌다. 우리에게 수출과 교역이 정체되거나 위축된다면 지속적인 부를 창출하는 길이 막히게 된다.

박정희기념관을 시민들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곳에 세운 것은 그의 과(過)를 고려하더라도 합당한 대우가 아니다. KWTC 일대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동상을 세운다면 그의 공(功)을 기릴 수 있는 동시에 젊은 세대에게 무역과 수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정신을 북돋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출처 : 동아일보 2011-09-27 /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박 대통령 구미 생가에 ‘외국인 러시’

글로벌시대의 한국 현대사 탐방 명소로 자리매김…10월 26일 추모제,

11월 14일 탄신제 앞두고 숭모 열기 더욱

2011-09-30

3개국어 능통 미녀 해설사 ‘인기짱’

“퍄오정시(朴正熙)!”
박정희 대통령의 구미 생가(경북 구미시 상모동 186번지)에 중국말 소리가 높다. 생가가 자리잡은 금오산 효자봉 기슭으로 떼지어 올라오는 중국인들의 두런두런 말소리가 끊이질 않고 산허리에 맴돌아든다.
최근 부쩍 많아진 국내의 중국인 관광객 러시가 구미 생가에도 파급되고 있는 것.

따라서 생가보존회(회장 전병억) 요원들의 업무도 분주해졌다. 생가 입구에서부터 가장 바쁜 사람은 안내실의 두 여성 문화유산 해설사. 윤현경씨(28)와 백수연씨(26)가 그들이다. 생가 근무 4년차의 노하우를 지닌 윤현경씨는 생가의 유래와 박 대통령의 자취, 업적 등에 관해 원숙한 해설로 방문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3개국어에 능통한 백수연씨는 외국인들, 특히 가장 많이 찾는 중국인들에게 언어 소통의 불편 없이 친절히 안내, 해설해 주므로 인기가 높다.


▲구미를 찾은 외국인들. 2009년 9월 구미시에서 열린 새마을박람회에 참석한 새마을 관련 인사들이다.

너무 작고 초라한 사랑채…“정말 여기서 태어나셨느냐”

사랑채ㆍ추모관(분향소)ㆍ생가보존회 사무실이 대나무와 탱자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오손도손 자리잡고 있는 생가 경내에 방문객들이 들어서면 가장 눈여겨보는 곳이 초가 사랑채다. 생가보존회 사무실로 개조된 안채와 달리, 박 대통령의 자취가 선명한 초가 사랑채는 거의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돼 있기 때문.

박 대통령은 1900년경 지었던 이 초가의 큰방에서 1917년에 태어나 작은방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구미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에 다닐 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으므로 소년 박정희는 메주 냄새가 물씬나고 서까래가 보이는 천장에 파리똥이 새까맣게 앉았던 작은 토방에서 먹고 자고 공부를 했던 것. 지금 그 방에는 소년시절의 체취가 묻은 앉은뱅이 책상, 책꽂이, 호롱불, 시렁이 놓여 있다.

생가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이 사랑채가 너무 작고 초라할 만큼 갖춤새가 단순해 “정말 여기서 태어나셨냐”고 물으면서 애잔한 정감과 함께 ‘그곳에서 한강의 기적이 태어났다’는 사실에 탄성을 연발하곤 한다.


▲구미 생가 초가 사랑채에 몰리는 인파. 박 대통령이 태어나고 소년시절을 보낸 이곳이 특히 방문객의 눈길을 모은다.

“참배객의 지극정성에 감동, 보람”

생가보존회 사무실 앞 포토존에도 방문객들이 몰린다. 박 대통령 내외의 입상사진 조형물이 있는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상냥하게 안내해주는 문화유산해설사 두 미녀들과 사진찍기를 청하는 방문객들도 적지 않은데 그럴 때면 기꺼이 동반 모델이 돼주곤 한다고.
생가보존회 엄무용 사무국장은 구미시에서 지급하는 문화유산해설사 두 여성의 급료가 최근 인상됐다고 귀띔.

엄 사무국장은 본회 편집국 담당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추모관 참배객들의 모습에서 “박 대통령 내외분에 대한 숭모의 정이 나날이 깊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으로 시국이 불안할 때 참배 행렬이 더욱 늘어났으며 간절한 기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큰절을 올리고 엎드려 흐느끼는 모습을 보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면서 참배객 두 사람의 경우를 덧붙여 소개했다.

한 사람은 대구에 사는 60대의 남성. 몸이 불편한 부인을 동반해 매달 버스 편으로 와서는 추모관에 과일과 술을 올린다는 것. 매달 한차례씩 1년 열두차례 참배를 하고 있다고.
또 한 사람은 경기 안산의 금융인. 그는 추모관에 조화(造花)가 놓인 것이 눈에 밟힌다며 생화를 가져오더니 아예 구미시내의 꽃집과 거래를 맺고 추모관에 지속적으로 생화를 보내 한달에 80~90만원이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한다.

엄 사무국장은 “이런 분들의 지극정성이 우리 생가 근무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또 큰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시대의 한국 현대사 탐방 명소로


▲한국 근대화의 아이콘 새마을운동. 방문객들은 구미 생가 입구에 있는 새마을운동 조형물을 감상하면서 박 대통령의 역사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숭모의 열기가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박 대통령의 위상과 이미지를 한층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

글로벌시대를 실감케 할 만큼 구미 생가에 외국인 방문객이 몰리는 것은 구미시와 경북도의 적극적인 해외사업에 따른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

전국 수출의 1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대규모 산업단지를 갖고 있는 구미시가 투자유치 홍보를 위해 주한 외교사절을 초청하는가 하면, 해외 협력사업에 적극 나서 외국인 산업시찰단을 불러들이고 있다.

경북도는 새마을사업을 대표 브랜드로 아시아ㆍ아프리카 지역의 새마을운동 연수자들을 불러오는 한편, 특히 중국과 다양한 분야의 산업협력에 따른 교류가 활발해 중국 주요도시의 공무원 등 관련 인사 및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

이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 구미 생가. 금오산 기슭의 작은 초가를 중심으로 고난의 옛시절 자취를 간직한 박정희 대통령 생가가 외국인들에게 한국 현대사의 필수 탐방 명소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구미 생가는 박 대통령의 10월 26일 추모제, 그리고 11월 14일 탄신제를 앞두고 있어 방문ㆍ추모객의 행렬이 더욱 잇따를 것은 기정 사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서 숭모의 열기가 한층 높아지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