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과학과 사회]박근혜 특강 감상문
박근혜가 급했나보다. 모든 사안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지율 1위의 여유를 만끽하던 그가 갑자기 특강에 나섰으니까. 안철수의 지지율이 자신을 추월한 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참패한 게 그를 밖으로 불러낸 이유일 거다. 특히 20대의 70%가 박원순을 지지했다는 건 박근혜에게 충격이었을 텐데, 굳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도 20대를 잡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 특강은 유력 대선후보이면서 전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박근혜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대전대 특강을 보면서 느낀 점을 적어본다. 애국심에 있어서 박근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 공업발전을 위해 여자로서는 드물게 전자공학과를 갔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가 정치를 하게 된 이유도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나라”가 외환위기로 망가지는 걸 보기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연 중에도 국가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가 그토록 추앙하는 국가의 구성요소엔 ‘국민’이 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박근혜가 기꺼이 한 표를 행사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반대하는 것도 애국심의 한 발로일 수 있다. 둘째, 자기중심성. “국회의원과 코털의 공통점은?” 강연 중 박근혜가 던진 질문이다.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자 스스로 답을 했는데, “신중하게, 조심해서 뽑아야 한다는 겁니다”란다. 웃겨 보고자 한 의도였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코털을 뽑는 이유는 콧구멍 밖으로 삐져나왔을 때인데, 삼십년 넘게 코털을 뽑은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코털은 과감하게 뽑아야지 살살 뽑으려다간 더 아프다는 거다. 근데 그걸 국회의원 선거와 비교해 놨으니 황당할 수밖에. 이런 개그를 웃기다고 집어넣은 보좌진은 당연히 문책해야겠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분이 나빠진 박근혜가 “여러분들 많이 안 웃으시는 거 보니까 이 질문의 답의 뜻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라고 해버린 것.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구사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해 놓고선 그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해 버리다니, 여기서 그의 자기중심성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나였다면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요”라며 내 탓을 했을 텐데 말이다. 셋째, 보수신문 중독. 한·미 FTA가 체결되면 약값이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박근혜는 이렇게 답한다. “요금이 오르려면 민영화가 되고 정부가 관여를 못해야 하는데, FTA는 민영화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협회가 괜히 한·미 FTA를 환영한 건 아닐 것이다. 예컨대 고혈압약인 노바스크의 경우 국내의 한 제약회사가 복제약을 만들어 약값이 30% 이상 싸졌지만, 앞으로는 특허권자인 화이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복제약 생산을 그만둬야 한다.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 우석균은 이렇게 단언한다. “값싼 복제약품을 사먹을 수 없어서 환자들의 부담,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늘게 되는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박근혜의 저 대답은 약값 상승 우려를 ‘괴담’으로 일축하는 보수신문만 본 결과일 텐데,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비판적인 언론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소통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강연이 끝난 후 문답 시간에 박근혜는 미리 선정된 질문에 대한 답변만을 했고, 그나마도 보고 읽었다. 원래 질문이란 건 강연을 듣다 생긴 의문점을 묻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런 방식은 “박근혜는 아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오해를 증폭시킨다. 이런 점들을 유념해서 다음부터는 좀 더 유익한 강연을 해주길 기대한다.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 bbbenji@naver.com>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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