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수원예총 회장 | 활력이 넘치는 계절이다. 지난주 야외음악당에서 열세 번째 ‘시와 음악이 있는 밤’이 펼쳐졌다. 올해는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온 고은 시인이 함께한 자리여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6월 초에 노르웨이 문학 페스티벌에 세계적인 문인 31명과 함께 초청받아 자신의 대표작을 20여 분 낭독했다.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한국의 대표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날카롭고 간명하다.이날 수원에서도 두 차례나 무대에 올라 그의 대표작 여러 편을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낭독해, 시민들의 열화 같은 박수를 받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날 낭독한 그의 작은 시의 하나다. 올라가는 행위의 목적 지향은 과정의 여러 빛나는 순간들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하강(下降)이라는 후기의 삶을 통해서 놓쳐버린 것들을 찾아낼 수 있기도 하다. 군소리를 붙여봐야 시를 더 어렵게 만들지 모른다는 게 짧은 시작(詩作)의 변이다. 인간이 담아내고자 하는 모든 소리를 『만인보』를 통해서 만들어냈다. 그의 시 세계는 삶의 현장 속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언어는 삶의 한복판을 떠나는 법이 없고 현실의 삶에 집착을 드러낸다. 고은 시인은 ‘살다 보니 시를 쓰게 되고, 시를 쓰다 보니 현실을 담게 됐다.’고 했다. 이처럼 시인들은 ‘시와 삶’을 동일시한다. 시 속엔 다양한 삶의 편린이 녹아 있다. 『만인보』는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라 일컫는 시집이다. 더 나은 삶을 이끄는 문학이란 인간의 삶이다. 그의 문학이 그의 삶이고, 그의 삶이 곧 그의 문학이다. 언어를 부리는 힘을 느낄 수 있는 그가 특별무대 손님으로 참여함으로써 ‘시와 음악의 밤’은 예년보다 빛을 더했다. KBS성우극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의 백미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성우들의 캐릭터 쇼였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화면에 나타날 적마다 관객석은 ‘아하!’ 하는 감탄사가 연이어 쏟아졌다. 성우협회가 나서서 개최하는 행사는 수원이 유일하다. 다른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자리다. 본래 성우는 목소리만 나타날 뿐 실제 얼굴을 들어내는 경우는 별로 없기에 그렇다. 그들의 독특한 음색의 시 낭독은 초여름 밤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삶이 팍팍한 시민들에게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시간이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었을 것이다. 시는 어렵다. 시에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의 깊이와 정신의 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일상에서 즐기는 소설, 영화, 음악, 드라마 등의 다른 예술장르와 달리 여전히 낯선 것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취향이 남다른 소수자를 제외한 많은 시민들의 생활 밖으로 밀려나 있기에 그렇다. 시에 대한 강렬한 매혹을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이 없는 것도 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음악이 있는 밤’은 뜻깊은 행사다. 시에 다가서기 꺼리는 청소년이나 일반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던져줘야 한다. 수원은 인문학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시는 인문학의 정수(精髓)다. 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매개다. 인간의 깊은 심성으로부터 빚어지는 게 바로 시다. 삶의 척박함을 견디게 하는 정신적, 심미적 힘을 그 안에 간직한 예술 장르다. 아무리 훌륭한 시일지라도 읽어주는 이가 없다면 화석에 불과하다. 훌륭한 시를 진정한 작품으로 만드는 이는 그것을 읽고 감탄하는 시민들이다. 시는 그것을 찾아 읽는 이들에게만 충만한 기쁨을 안겨준다. 난감해하지 말고, 부담을 떨쳐버리고 시를 읽고, 또다시 읽어서 시와 친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연륜을 쌓아가는 ‘시와 음악이 있는 밤’을 통해 시민들이 시는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재미와 교양을 가미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시민들의 삶은 각박하다. 시는 오로지 시인들만의 몫이고, 일상의 시민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되어버리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들 삶 자체가 정서적 파탄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경보음이다. 향기로운 ‘시와 음악이 흐르는 수원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