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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기존_ 자료3(수원관련)종합

수원풍물(2) - 수원장치기

수원풍물(2) - 수원장치기

전국대회로 연 전조선 얼레공대회



1931년 2월 1일 서탄면 황구지천에는 왜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을까? 당시를 살다간 어르신들의 증언으로는 눈이 발목까지 쌓였는데, 용소리 앞 냇가는 온통 까맣다고 하였다. 당시는 일제치하에서 흰옷을 못 입게 하였기 때문에, 검은 물감을 들인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2004년 경기도 청소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수원장치기'를 연습하는 학생들

1931년 2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서탄면 황구지천에서 전국의 32개 남여 팀이 참가한, 우리 경기 부흥의 봉화라는 제목으로 '전 조선 얼레공대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또 <동아일보> 사보 1월 24일자부터 30일자까지에는 수원군 양감면 용소리 앞 냇가에서 얼레공대회를 개최한다는 예고가 실렸으며, 참가할 각 팀의 선수는 5명이라고 하였다. 즉 처음에는 수원군 양감면 용소리 앞 냇가에서 열기로 한 ‘전조선 얼레공대회’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는 바람에 서탄면 황구지천으로 옮겨서 경기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전국적으로 연희가 된 장치기

'장치기' 또는 '얼레공치기', '짱치기' ‘장구’ ‘봉희’ 등으로 부른 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193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연희가 되어왔던 놀이니, 중단된 지가 그리 오래지 않다. 이 장치기를 시합으로 할 때는 '장치기'라 하고, 놀이로 할 때는 '장채놀이'로 부르기도 한다.

▲ 장치기는 장채와 얼레공을 이용해 하는 승부성민속이다

이는 장이라는 채를 갖고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짚으로 만든 공을 ‘얼레공’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얼레공치기라’고도 불렀다. 장치기는 놀이방법이나, 놀이를 할 때 사용하는 기구 등이 간단하다. 놀이를 하기 위해선 짚이나 나무공이를 이용해 만든 '공'과, '장'이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채만 있으면 된다.

공은 짚을 엮어서 만드는 방법을 택했으며, 장은 물푸레나무 등을 이용해 길이가 3~4 자 정도에, 끝이 45도 앞으로 휘어져 10~15cm 정도 되는 것을 사용한다. 장치기는 1950년대만 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놀이였다고 한다. 어른들은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넓은 논바닥에서 마을끼리 대항을 하기도 했단다. 장치기 놀이에는 특별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몇 명이라도 모이면 편을 갈라 하는 놀이였기 때문이다.

▲ 장과 얼레공

▲ 장의 끝이 휘어진 부분을 이용해 얼레공을 쳐낸다

모두가 즐겨하던 전통 공놀이

장치기가 꼭 놀이로서만 전승되어 온 것은 아니다. 장치기는 겨울에 운동량이 부족할 때, 몸을 움직여 원활한 신진대사를 돕기 위해 하는 '운동'이 되기도 한다. 또 일부 마을에서는 얼레공을 자신의 마을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마을로 복을 끌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즉 얼레공을 짚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것이 풍농과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장치기의 언제부터 민속놀이로 전해졌을까? 장치기의 시원은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격구'로 본다. 「고려태조 원년 9월 갑오에 상주의 적사 아자개가 사자를 보내어 귀순하려 하매, 왕이 명하여 그를 맞이하는 의식을 구정(毬庭)에서 하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 태조 1년인 937년 기록에 격구장이 있었다는 것은, 격구는 그 이전부터 성행한 놀이임을 알 수 있다. 고려 때는 여자들이 말을 타면서 하는 마상격구를 할 때, 그 치장의 화려함이 지나쳐 한 때 금지시키기도 했다.

▲ 2010년 여주 남한강 둔치에서 열린 장치기 시연

조선조에 들어서는 태조와 정종이 격구를 즐겼으며, 세종 7년인 1425년엔 무예연습의 필수과목으로 격구를 선택하기도 했다. 세종 때는 봉희(=장치기)를 하느라 경신일에 밤을 새우기도 하였는데, 경신일이란 섣달 그믐을 말하는 것이다. 즉 밤을 새워 장치기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조 역시 관례라 하여 겨울에는 장치기를 하였음을 적거있다.

정조는 격구를 이십사반 무예의 한 종목으로 택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안에 수록하였다. 이러한 반가의 대표적 놀이인 격구가, 언제부터 민간으로 전해져 장치기가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조선조 중기 이후에 급격히 쇠퇴한 반가의 놀이인 격구가 이때를 전후해 민간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 얼레공을 처내는 모습

▲ 장치기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승놀이이다

‘수원장치기’의 부흥을 기대하며

수원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치기를 가르쳐 재현시켜, 경기도민속경연대회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까지 참가를 시키기도 했다. 2004년에는 고등학생들이 용인에서 열린 경기도 청소년민속예술경연대회에도 참가를 하였다. 이렇듯 수원의 장치기는 딴 곳에 비해 미미하게나마 그 전승이 이어져 온 곳이기도 하다.

장치기는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가 있어서, 청소년들의 놀이로 장착을 시켜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드하키와 비슷한 놀이인 장치기는 장이라는 나무막대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때로는 격한 몸싸움으로 부상을 입기도 한다. 그러니 그런 부상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만 보완한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우리 전통의 놀이다.

▲ 장치기에서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해 벌을 서는 모습

연세가 80세 이상이신 분들 중에는 아직도 장치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장치기 놀이에는 별도의 골문이나 골키퍼가 있진 않다. 그저 넓은 공터 양편에 돌을 놓아 문을 만들고, 편을 갈라 얼레공을 몰고 가 그 문 안으로 들여보내면 된다. 사라지는 우리 전통놀이인 장치기.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아이들의 체력을 위할 수 있는 우리 전통놀이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좀 더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주성 국장(sw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