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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광교칼럼] 북쪽 암실마을에서 남쪽 애기봉을 바라보고 싶다-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김우영 광교칼럼] 북쪽 암실마을에서 남쪽 애기봉을 바라보고 싶다-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 김우영 논설위원
  • 승인 2022.10.18 10:04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42년만이다. 김포 최전방 애기봉에 다시 오기까지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동안에 나는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으며 신문·잡지사 기자, 막노동, 공무원, 회사원, 자유기고가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개인 시집 등 책도 몇 권 냈고, 수원시문화상과 몇몇 문학상 등 이런 저런 상도 받았다. 중국과 일본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 여행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캐나다, 미국, 러시아, 호주, 이탈리아, 그리스, 오스트리아, 우즈베키스탄 등 실크로드 지역 여행도 해봤다.

애기봉에서 바라본 북녘 땅. (사진=김우영 필자)

(사)경기민예총(이사장 이덕규)이 주최한 2022 제21회 경기민족예술제 ‘안전한 생명 차별 없는 평화’ 야외 시화전에 내걸 시를 보내달라는 연락을 홍순영 시인으로부터 받았을 때만해도 애기봉에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버스를 임대해서 함께 간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의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오랜 ‘여자사람친구’이자 문학의 도반인 정수자 시인과,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김해자 (사)화성연구회 회원도 동행했다.

애기봉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입장이 자유롭지 않다. 가끔씩 그곳이 궁금했음에도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뚜벅이’라서 교통편의 제약도 작용했다.

아침 일찍 화성박물관 앞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시인들의 얼굴이 반가웠다. 이덕규 시인과 우대식 시인, 인은주 시인, 홍순영 시인, 박설희 시인, 윤한택 시인 등과 인사를 나눈 뒤 출발했는데 예상 밖으로 일찍 도착해 애기봉 인근을 둘러봤다.

애기봉에서 북녘 땅을 배경으로 선 시인들. 가운데 모자 쓴 인물이 필자다. (사진=홍순영 시인)

감회가 새로웠다. 42년 전 나는 애기봉 아래 한 부대에서 6개월 남짓 파견근무를 하다가 제대했다. 중대 규모의 독립된 부대인 데다가 파견 병력이라서 별 통제를 받지 않았지만 워낙 최전방 지역이라서 부대를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사정이 달랐다.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조성휘'라는 시 쓰는 후배가 졸업한 뒤 군 입대를 앞두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있던 것이다.

걸어서 30분 정도만 가면 북한 땅이 보이는 곳에 성휘의 집이 있었다.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말년 병장 시절이라 일과가 끝나고 심심하면 그의 집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가끔씩은 동기들과도 함께 했다.

인근 산엔 뱀이 많았다. 비온 후 돌무더기가 있는 곳으로 가면 뱀들이 몸을 말리느라 나와 있었다. 유난히 뱀을 잘 잡고 탕까지 끓이는 후임이 있었다. 산속에 감춰둔 냄비를 꺼내 싸리나무로 불을 지펴 끓인 탕을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보았다. 맛은 그냥 흙냄새 조금 나는 닭고기 국물 같았다고 내 뇌는 기억한다.

한번은 서해안 군자에 사는 동기가 외출을 나갔다가 삶은 맛 조개를 한 말이나 갖고 돌아왔다. 부랴부랴 막걸리를 받아와 회식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나중에는 장이 꼬인 듯이 고통스러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부대원들이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단체 식중독에 걸린 것이다.

지금 같으면 큰일이 났겠지만 그때만 해도 내부에서 쉬쉬하면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을 때라 그냥 없던 일처럼 지나갔다.

다만 더 이상 회식은 허용되지 않았고 나는 보름 후 제대했다.

그리고 다시 와본 애기봉의 가을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강 건너편 북한 땅은 1.4km 거리 밖에 되지 않아 쌍마고지, 암실, 위장마을이라는 해물선전마을, 북한군 GP 시설이 있는 한터산, 그리고 개성 송악산까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였다.

오리인지 기러기인지 새들이 떼를 지어 남과 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강의 뻘이 드러난 곳이 많은 썰물 때여서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건널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그리고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조강(祖江)이라고 불린다. 남측으로 유도란 섬이 있는데 1996년 7월 홍수 때 북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되는 황소 한 마리가 이곳에서 발견됐다. 부상을 입은데다 굶주린 상태여서 1997년 1월 김포시와 해병대가 대대적으로 구출작전을 펼쳤으며 제주 우도의 암소를 짝으로 맞이했단다.

애기봉은 병자호란 때 생이별한 평양감사를 그리다 죽은 기생 애기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걸 애틋한 사랑이라고 여겨야 할까? 아니면 처자식을 놔두고 바람을 핀 불륜이라고 봐야 할까?” 한 시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김포 민예총에서 노트 한권씩을 나눠준다. 소감을 써 주면 두고두고 기록으로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북녘산하. 맨 뒤에 있는 산이 개성 송악산이다. (사진=김우영 필자)

“깨달음의 피안(彼岸)도 아닌데

건너기가 그리 어려운가

저 강 너머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싶다

삼팔따라지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의 영혼과 함께”

이렇게 썼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영혼은 보나마나 고향 땅 북한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 죽는 날까지 통일은 안 되더라도 자유왕래라도 됐으면 좋겠다. 내 아버지의 고향 평안북도 선천 땅도 밟아보고, 중국 땅이 아닌 한반도 길을 따라 백두산에도 올라보고 싶다. 개성 송악산과 평양성도 가보고 싶다. 애기봉 강 건너 북한 땅 암실마을에서 남쪽 김포 땅을 보며 가을걷이한 후 염소들과 들판에 나왔던 그곳 사람들과 부침개를 안주로 막걸리도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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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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