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경제.부동산의 칸 ../*부동산 관련,기고 칼럼 등

‘20만 반지하’ 없앤다는데… 공공임대는 年 2만가구뿐

‘20만 반지하’ 없앤다는데… 공공임대는 年 2만가구뿐

서울시 “반지하 주택 금지”… 전문가들 “정교한 이주대책 필요”

공공임대주택 공급 턱없이 부족

반지하 없애는 것에만 집중하면 옥탑방·고시원으로 밀려날 우려

신수지 기자

입력 2022.08.13 03:00

서울시가 최근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참사를 계기로 집중호우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 건축을 금지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도 10~20년 안에 차례로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에만 반지하 주택이 20만 가구가 넘는데 공공 임대주택 공급은 연 2만 가구에 그치는 상황에서 정교한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반지하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주택 정비를 돕고, 장기적으로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양질 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 반지하 20만 가구...10년 치 공공 임대보다 많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의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은 32만7320가구로, 서울에만 20만849가구(61.4%)가 몰려있다. 지난해 기준 서울의 평균 가구원 수가 2.2명임을 고려하면, 서울에서만 약 44만명이 반지하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반지하 가구의 이주 수요를 공공 임대주택으로 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0~2020년 서울의 공공 임대주택 증가분은 19만1136가구로, 연평균 2만 가구도 안 된다. 과거 10년 치 공공 임대주택을 모두 동원해도 20만이 넘는 서울의 반지하 가구를 모두 이주시키기 어려운 셈이다. 서울은 빈 땅이 없어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기부채납이나 기존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의 공공 임대주택만 가능하기 때문에 신규 공급이 크게 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는 이주가 시급한 반지하 가구를 위해 ‘취약 계층 주거 상향 지원 사업’을 우선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고시원, 쪽방, 지하·반지하 등에 거주하는 시민에게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에서 이 사업을 통해 공급된 공공 임대주택은 1669가구에 불과하다. 지하·반지하에 거주하다 임대주택으로 옮긴 집은 247가구로 전체 반지하 거주 가구의 0.1%에 그쳤다. 공급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20만 가구가 넘는 반지하 가구와 취약 계층의 주거 문제를 공공 임대주택으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취약 계층 주거 상향 지원 사업은 무주택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반지하 자가 거주를 선택한 저소득층이 제외되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이번에 참변을 당한 신림동 일가족도 7년 전 반지하 주택을 매입한 자가 가구였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주거정책연구센터장은 “자녀가 있어 넓은 공간이 필요해 반지하 주택을 매수하는 경우도 적잖다”며 “이들을 지상으로 이끌어내려면 공공 임대주택 지원 요건을 완화하고, 입주 시 주거 수당을 지원하는 등 유인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저렴한 반지하 수요 여전 “옥탑방·고시원으로 밀려날 우려도”

저렴한 반지하 주택에 대한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원래 전시(戰時)에 대비한 방공호로 설계된 반지하는 1980년대 수도권 과밀화와 함께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주거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재해에 취약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비교적 넓은 공간에 살고자 하는 저소득 도시민이나 대학 자취생 등이 반지하를 선택했다.

반지하가 몰려있는 신림동은 반지하 대부분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50만원이다. 신림동의 한 공인 중개사는 “같은 크기의 지상층과 비교하면 월세가 10만~20만원 저렴하고, 보증금도 싸다”며 “반지하를 찾는 이들에게 월 10만~20만원 차이면 꽤 큰 부담”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데에만 집중하면 고시원, 옥탑 등 다른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취약 계층이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무리하게 반지하를 없애면 고시원이나 옥탑 등으로 수요가 몰려 임대료가 오르면서 주거 취약 계층 전반에 연쇄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주거 안전에 초점을 두고 차수벽 설치 등을 지원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