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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시인 정조가 수원시장을 위하여-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with+] 시인 정조가 수원시장을 위하여-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발행일 2022-05-06 제14면

수원 화성을 축성한 정조(조선 22대 왕)는 시인이었다. 정조는 시인으로서 고갈되지 않는 상상력의 샘물을 언어의 두레박으로 공급하며 인간 정신을 우위에 두었다. 평소 책 읽기와 글쓰기를 즐겨 했던 정조가 추구했던 인간 정신은 저서 '홍재전서'를 비롯한 문집을 통해 인문학의 정수를 펼쳤다. 여기에 19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했던 정조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50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한시로 그 심상을 드러냈다. 개혁 군주로서 이상적 정치를 실현하는데 그의 시편들은 근본적 철학과 시적 상상력이 고도로 함축된 문화유산으로 남았던 것.

정조가 시인이 되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찾을 수 있다. 11살 때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영조와 노론 세력은 정조의 애원을 싸늘하게 외면했다.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사망한 후 정조는 왕 위에 오를 때까지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비극적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파생된 외로움과 고독은 그에게 시를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외로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고독의 정원에서 시심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 이로써 정조가 극복한 트라우마는 강력한 군왕으로 성장시킨 모토가 되었고, 콤플렉스는 고뇌에 찬 강인한 인간관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정조가 물려준 세계유산 '수원화성'

'남문 언덕' 수원을 넘어 'K-문화'

역사·실제성 갖춘 '무공해 스토리'

이 가운데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는 넘지 못하는 언덕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어린 정조에게 자기 키만 했을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가로막고 있는 언덕을 경계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밖에…. 넘을 수 없었던 이 언덕은 정조 재임 시절 최고 업적으로 평가받는 수원 화성 축조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성으로 이장한 후 1796년 수원에 동서남북 사대문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시대의 성곽 도시를 열 수 있었던 것. 한국 근대건축의 시작이 되는 수원화성은 정조의 개혁정치와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분명 시인의 감성이 투사되어 있다. 이처럼 수원화성은 정조의 일기에 얽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콤플렉스를 승화시킨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세계 유산을 담고 있는 '유네스코 등재의 언덕'이 될 수 있었다.

얼마 전 최동호 시인의 '수원 남문 언덕의 노래'가 출간되었다. 1948년 수원 인계동에서 출생하여 수원 남창동에서 성장한 최동호는 이 책에서 정조가 축조한 '수원 남문 언덕'을 연작 시편으로 기록했다. 수원 지역 유일의 예술원 회원이자 국제 문학상 수상자이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인 그는 고향을 운명적인 사유의 원천으로 한 긍정적인 삶의 노정을 펼쳐왔다. 이를테면 1988년 모교인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정년을 1년 남겨 놓고 고향에 돌아온 그는 고향의 지명을 내건 '수원 남창동 최동호 시창작 교실'을 열었다. 물론 자비를 들여 시에 목마른 수원시민을 우선 대상으로 무료 창작 교실을 5년간 운영했다. 또한 '화성행궁 수원시인학교'를 남창초등학교에서 개최했고, 한국시인협회 회장 시절 전국시인대회를 비롯하여 수원화성 문학기행, 국제시낭송대회 등을 직접 주관해 왔다. 시창작 교실에서 배출된 500여명의 수강생 중에는 신춘문예와 문예지 등단자들이 시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수원이 인문학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는 데 직간접으로 동력을 부여했다.

이번 최동호 시인의 '수원 남문 언덕의 노래'는 시인 정조로부터 발굴된 시의식이다. 정조가 축조한 수원 화성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어 수원시민의 자존감과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나아가 수원 화성은 누대를 이어오면서 한류와 함께 세계인의 문화유산이다. '수원 남문 언덕'을 오가는 사람들은 정조가 넘지 못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의 언덕을 밟고 있듯이 최동호 시인의 시편들 또한 외롭고 고독한 인간의 근원적 정서를 파고들게 한다.

'K-S 컬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의 역할 크며 정조 바람이기도

이제 정조가 물려준 '수원 남문 언덕'은 독일 라인 강변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의 시 노래와 같이 수원을 넘어 세계로 돌려줘야 할 K―문화다. 이는 한류 열풍의 무한 확장을 가능케 하는 K―S(Korea-Suwon) 컬트의 파급을 충분히 가져다줄 수 있다. 이만큼 역사성과 실제성이 완전한 '무공해 스토리'는 가공할 만한 문화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이 'K―S 컬트 수원 화성'으로 성장할 수원에서 수원시장의 역할이 커 보이는 대목이며 21세기 세계적인 르네상스 도시로 도약하는, 수원을 기대하는 시인 정조의 바람이기도 하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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