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비행장 이전 후보지, 화성 간척지 선정에 반발
수원시, 경기남부권 민간 국제공항 유치로 승부수
화성시, 간척지 일대 습지보호구역 지정으로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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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비행장 이전 예비후보지로 선정된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화성호 간척지 화옹지구 전경. 이정하 기자
지난달 24일 오전에 찾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 있는 ‘매향리 평화역사관’.
녹슬고 찢긴 포탄 수백개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1951년부터 2005년까지 미 공군이 기총사격과 연습용 폭탄 투하를 하는 사격훈련장으로 사용하던 매향리 농섬과 주변 갯벌에서 수거한 폭탄 잔재들이었다.
전만규 매향리평화마을건립추진위원장은 “당시 오폭으로 숨진 이들보다 폭음 고통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주민들이 더 많았다.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 주민 40여명이 고통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며 “54년 동안 폭음과 오발탄의 공포에 시달린 주민들이 농섬에 들어가 온몸으로 폭탄 투하를 막으며 투쟁해 평화를 되찾았는데, 그 일대에 다시 전투기 비행장을 만든다니 무자비하고 야만적이다”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이 무자비하고 야만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곳 매향리에서 직선거리로 5㎞가량 떨어져 있는 화옹지구가 수원 공군 비행장 이전 예정지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화성방조제(길이 9.8㎞) 건설로 만들어진 간척지인 화옹지구(14.5㎢)는 드넓은 습지와 갈대숲이 펼쳐져 있어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방조제 인근에서 낚시용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허아무개씨는 “수원비행장 인근 수원 세류동에서 살다가 15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는데, 또 비행장이 온다고 한다”며 “바다로 활주로가 나서 주변에 소음이 없다고 하는데, 소음이 없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웃사촌인 수원시와 화성시가 군공항 이전을 두고 수년간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급속한 팽창으로 비행장 주변이 도심화한 수원에서는 소음 피해와 고도제한 등으로 이전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이고, 2017년 수원 군공항 이전 단일후보지로 선정된 화성(화옹지구)에서는 ‘매향리의 상처’를 떠올리며 절대 받을 수 없다는 반대 여론이 비등한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공론화하면서, 두 기초단체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화옹지구 인근에 있는 매향리 평화역사관. 54년 동안 미 공군 사격장으로 인한 폭음과 오폭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이 사격장 주변에서 수거한 폭탄 잔해물이 역사관 주변에 쌓여 있다. 이정하 기자
■ 군비행장 이전 갈등의 서막
수원시 권선구 장지동과 화성시 황계동에 걸쳐 있는 수원비행장(5.2㎢)은 1954년부터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 주둔 중이다. 비행장 때문에 수원시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인 58.44㎢가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화성시 일부(40.35㎢)도 수원비행장과 오산비행장 영향으로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수원시 서둔동 주민 김아무개(60대)씨는 “수십년 비행기 굉음에 정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다. 이제는 주택단지가 없는 도시 외곽으로 비행장을 옮겨야 하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군공항 소음 피해에 시달리는 수원·화성시민은 약 25만명으로 추산된다.
수원비행장 이전 후보지인 화옹지구 주변 소음영향도. 수원시 제공
도심에 군공항이 있는 수원·대구·광주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군공항 이전과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고, 이는 2013년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에 수원시는 2014년 국방부에 군공항 이전을 건의했다. 비행장 일대 6.3㎢를 주거복합 첨단산업 공간으로 개발해 그 수익으로 군공항 이전 비용을 충당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이 제안됐다. 도심 속 군공항 운용으로 어려움을 겪던 국방부는 건의를 받아들여 2017년 2월 화성 화옹지구를 단독 후보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화성시는 예비 이전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화옹지구만 ‘콕’ 집어 선정해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전 논의는 답보 상태다. 지난해 1월 화성시 의뢰로 화성시민 1500명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77.4%가 군공항 화성 이전을 반대했다.
■ 수원 ‘경기남부 민간공항’ 대안 카드
화성시 반대로 이전 논의가 지지부진해지자, 수원시는 군공항과 민간공항이 함께하는 경기남부권 민간공항 건설로 전략을 수정했다. 경기주택도시공사의 ‘수원 군공항 활성화 방안 사전 검토 용역’(2017년)에서 제시된 아이디어다. 수원시가 지난해 진행한 ‘경기남부권 민간공항 건설 연구 용역’ 결과 2030년엔 항공수요가 874만명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민간공항 건설에 따른 추가 비용은 3500억원으로 추정했다. 이 보고서 등을 토대로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9월 경기남부권 민간공항 건설 계획을 제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반영했다.
수원비행장 이전 예정지인 화성 화옹지구에 군공항과 함께 민간 국제공항 건설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수원시 홍보 영상. 수원시 제공
수원시는 공항 잠재 수요층인 경기남부권 지자체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통합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중이다. 공항 건설로 이득을 볼 주변 도시를 포섭해 군공항 이전 여론을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김태관 공항이전과장은 “수원시청이 현재 수원비행장에서 3㎞ 떨어져 있는데, 이착륙 방향이 아닌 측면이어서 소음 영향이 거의 없다”며 “화옹지구는 매향리 보건소 기준으로 5.8㎞ 떨어져 있고, 활주로가 바다 방향으로 조성돼 매향리나 측면 지역은 소음영향권에 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화성시, 습지보호구역 지정으로 맞불
하지만 화성시는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5월 화옹지구 일대 갯벌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환경부에 신청하며 맞불을 놨다. 궁평항과 매향리 사이 방조제 바깥쪽 갯벌 14.08㎢는 지난해 7월 이미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환경부 조사 결과, 화옹지구가 포함된 화성호 안쪽 갯벌은 동아시아에서부터 대양주에 이르는 철새들의 주요 이동 경로로, 멸종위기 철새들의 중간기착지 및 휴식처로 생태적 보전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됐다. 매와 저어새 등 1급 멸종위기종 6종을 포함해 멸종위기 야생생물 24종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옹지구가 포함된 화성호 안쪽 갯벌에는 매와 저어새 등 1급 멸종위기종 6종을 포함해 멸종위기 야생생물 24종 등이 서식하고 있다. 이정하 기자
화성시는 병점 등 동부권이 소음 피해 지역인데, 같은 피해를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부권으로 전가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도 편다. 홍진선 ‘수원전투비행장 화성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은 “화성시민도 수원비행장이 이전되길 바란다. 다만, 군공항 유치를 원하는 곳이 있으면 공모해서 하면 되는데, 원하지도 않는 화성을 이전 후보지로 찍었다. 원점에서 새 후보지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지방선거 최대 이슈…갈등만 부추겨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이어 오는 6·1 지방선거에서도 수원비행장 이전 문제는 두 지역 최대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수원시장 예비후보들은 일제히 ‘군공항 이전 및 종전 용지 활용’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기남부국제공항 조성’, ‘경부선 수원~화성 구간 지하화’, ‘수원·화성시민 협의기구 마련’ 등 당근책도 내놓았다.
서철모 화성시장을 비롯해 화성시장 후보군도 대다수 군공항 이전에 반대하는 가운데, 배강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이 ‘국제공항 유치’를 공약하는 등 일부 기류변화도 엿보인다. 일부 후보들은 공약집에 공개적으로 군공항 이전 반대 공약을 넣을지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소음 피해 지역인 동부권 여론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수원 군공항을 아예 폐쇄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수원과 화성 지역 86개 종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수원전투비행장 폐쇄를 위한 생명평화회의’ 장동빈 운영위원(전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수원비행장은 군사기지로서 효율성을 상실했다”며 “국방부는 갈등만 부추기는 이전 대신 점진적으로 전국 군공항에 분산 배치하거나 폐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도심 속 군공항’ 이전은 대구와 광주에서도 숙원 사업이다.
광주에서는 주민 반발로 수년째 후보 지역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광주시는 이듬해 10월 국방부에 1966년부터 운용되고 있는 군공항을 이전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고, 국방부는 2016년 8월 타당성 평가 결과 ‘적정’을 통보하면서 이전 논의가 본격화됐다. 국방부는 2018년 전남지역 12곳을 군사작전이 가능한 지역으로 선정했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소음을 우려한 주민 반발이 나왔다.
주민 반발로 이전 논의가 사실상 중단되자, 광주시와 전남도는 2019년 11월 상생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자치단체의 ‘기부 대 양여’ 방식이 아닌 정부 주도 사업으로 진행해달라고 촉구했다.
현행 특별법은 군공항이 있는 자치단체가 선정한 사업시행자가 새로운 군공항을 건설해 국방부에 기부하고 대신 기존 군공항 터를 개발해 이익을 얻어가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갈등 봉합이나 사업자 선정이 어려운 만큼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달라는 주문이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지난해 12월 2년 만에 다시 상생발전위원회를 열어 국가가 추진해야 한다고 재합의했고, 최근 국정과제로 채택해달라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요청했다.
대구에서는 군공항과 민간공항(대구공항)을 경북 군위 소보면, 의성 비안면으로 통합 이전하는 안이 확정된 상황이다.
2028년 이전을 목표로 이전사업비, 시설배치도, 이전 규모 등을 담은 기본계획 수립 용역 중이지만, 주한미군 쪽이 군공항 내 미군시설 이전과 관련해 미 국방부 답변(위임)을 받지 못하면서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가 2020년 10월 시작한 민간공항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도 중단됐다. 또 군위군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이전을 받아들이는 대신 대구시로 편입하기로 대구시·경북도 등과 약속했지만, 관련 법안이 지난 2월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경북 안동·예천)의 반대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구지역에서도 기부 대 양여 대신, 중앙정부가 국비를 투입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소속 대구지역 국회의원들과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군공항 이전과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정부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도 대선 후보 시절 공항이전사업비가 양여하는 재산보다 많을 때 국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대구경북신공항건설특별법 제정을 공약한 바 있다. 홍준표 의원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국비로 건설해야 한다고 공약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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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군공항 이전 및 경기통합국제공항(내용 수정=하위로 옮김 예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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