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발달장애인 가정의 현주소 '복지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세상이 손잡아 주지 않아도… 엄마와 아들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입력 2022-03-17 21:18:02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 김도현(25)씨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는 표현으로 리모컨을 들어 보이자 엄마 정미경(52)씨가 "리모컨 주세요"를 또박또박 다섯 번 반복하며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2022.3.17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지난 16일 오후 6시20분 고양시 일산동구 아파트 현관에서 25살 청년 김도현씨를 만났다. 도현씨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과를 마치고 막 집에 돌아온 참이다.
"도현이 왔어?" 아들의 손을 잡은 정미경(52)씨가 익숙하게 계단을 오른다. 도어락 앞에서 엄마는 아들의 손가락을 붙잡고 숫자를 천천히 되뇌며 비밀번호를 누른다.
"도현이가 맨날 마지막 번호를 잊어버려요"라고 말하며 정씨가 멋쩍게 웃었다. 도현씨는 1급 발달장애인이다.
집 안에서 도현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관찰자가 누구일까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귀가 후 엄마는 아들을 먹일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엄마가 주방에 있는 사이 도현씨는 집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집을 비운 동안 달라진 게 있는지 확인하는 '루틴'이라고 한다.
식사 준비로 한창 바쁜 엄마 옆에서 도현씨가 무언가를 요구한다. 요구사항은 목소리의 높낮이로만 파악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인 도현씨가 말을 하지 못해서다. 단어도, 문장도 없지만 엄마는 대번 아들의 요구를 알아 맞힌다. "텔레비전 보고 싶어? 밥 먼저 먹고 보자."
미경씨는 아들의 손가락을 집어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 "도현이 좋아하는 '뽀로로' 보려면 이렇게 하면 돼."
정미경 씨가 식사 중 아들 김도현씨에게 반찬을 혼자 뜰 수 있게 가르쳐 주고 있다. 2022.3.17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25살 도현씨 돌보는 52살 엄마 미경씨
"보호센터·특수학교·집 한정된 생활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
절망 견뎌낸 모자, 용기내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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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씨는 종종 아들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고 느낀다. "발달장애인은 특수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요. 결국 집, 보호센터, 특수학교에 한정되죠. 우리 주변에서 발달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에요."
이날 만남을 통해 보이지 않는 '특수한 공간'에서 살아온 엄마와 아들이 세상 밖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런 용기를 낸 이유는 지역사회와 이웃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생후 28개월에서야 뒤늦게 인지한 장애, 감정 표출이 시작된 사춘기 무렵부터 시작된 어두운 터널, 함께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싶었던 끝모를 절망을 지나 모자가 도달한 곳은 다시 지역사회고 또 이웃이다. 모자는 이웃의 따뜻한 눈길, '평범하게 바라봐 주는 시선'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장애인 '다름' 인정하는 태도… 가족이 원하는 '국가책임제'
미경씨는 '멋지고 착한 청년 도현이'를 그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미경씨와 도현씨처럼 우리 주위엔 많은 수의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산다. 전국의 발달장애인은 모두 25만5천207명(2021년 기준)으로, 발달장애인 5명 중 1명이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 소식을 비극으로 접한다. 최근 수원시와 시흥시에서 같은 날 엄마의 손에 발달장애인 자녀가 숨졌다. 두 사건을 접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비정한 범행을 저지른 엄마들을 나무라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말은 부모가 짊어지는 돌봄 부담을 줄여 이런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해달라는 절규에 가깝다.
발달장애인 자녀와 살아간다는 것은 '어두운 터널' 같다
정미경 씨가 호흡이 고르지 못해 양치를 혼자 할 수 없는 아들에게 양치를 시켜주고 있다. 2022.3.17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발달장애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의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선 발달장애인의 기본적인 특성과 돌봄 현황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절대 다수의 발달장애인은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2020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는 비율은 14.6%, 자폐성장애인은 6.6%에 불과했다. 전체 장애인 평균이 47.8%인 점을 고려하면 극히 낮은 수치다.
결국 발달장애인 중 상당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돌봄 책임은 대체로 부모에게 있다. 복지부가 장애인들을 주로 지원해주는 사람의 유형을 파악한 결과 지적장애인의 66.4%, 자폐성장애인의 76.3%는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전체 장애인의 20% 정도만이 부모의 조력을 주로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돌봄 부담이 크다는 사실이 엿보인다.
아들과 부산으로 진료 받으러 떠났던 미경씨
한참 터널을 헤매다 온전한 '인정'
"우리 아이가…" 습관이 된 양해
"자유롭게 길거리 돌아다닐 동선 만들어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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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씨도 아들 도현씨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아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진단 받은 건 생후 28개월 정도가 지나고 난 뒤였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자신의 잘못 같아 자책했다고 한다. 이후엔 아들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고, 그다음엔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에 신통한 의사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초등학생 도현이를 데리고 내려갔어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이었죠. 고작 30분 진료를 받으려고, 근처에 오피스텔을 잡고 100일 동안 부산에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치료란 치료는 다 해봤는데, 결국 도현이가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엄마인 저도 그제야 도현이는 도현이 그대로 온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해주게 되었죠."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미경씨 가족은 오랜 기간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도현씨가 사춘기 시절에 접어들 무렵에는 소리를 지르거나 과잉된 행동을 자주 보였다고 한다. 미경씨 부부는 아들에게 약물의 도움이 필요한지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도현씨를 주로 돌보는 탓에 고3이 된 둘째 아들에겐 많은 관심을 주지 못한 미안함도 미경씨 마음 안에 부채감으로 깊게 남아있다.
'특별한 보호'와 '격리', 그 미묘한 차이
그렇다면 미경씨 가족 사례처럼 발달장애인 가정이 홀로 고군분투할 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2019년 한국발달장애학회 학회지에 수록된 '발달장애인 부모의 삶의 질 영향 요인' 논문을 보면 '사회적 지지의 정도가 낮다고 느끼는 부모에 비해 보통인 부모가, 보통인 부모에 비해 높다고 느낀 부모의 삶의 질'이 더 높았다. 발달장애인 가정에 우리 사회의 관심이 늘어날수록 그 부모와 자녀의 삶의 만족도는 높아질 수 있는 셈이다.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부모 대부분은 여전히 아이와 자유롭게 바깥을 돌아다니기가 어렵다. 주변의 낯선 시선과 아이들이 활동하기에 불편한 환경은 발달장애인 가정을 더욱 고립시키는 요인이다. 미경씨도 아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장소는 보통 정해져 있다. 동네 주변에서 반려견 산책을 하거나 마트에 가는 게 전부다.
'자립생활 가능' 지적 14.6%·자폐성 6.6% 불과
대부분 부모의 도움 받는 상태
지난 10년간 당사자·가족 사망 26건 달해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필요 목소리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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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 휴대폰 소리가 울리니까 휴대폰 쪽으로 손을 뻗었어요. 아이가 말을 잘 못하는데, 갖고 싶어서 그런 거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애는 멀쩡한데'라고 하면서 욕을 하는 거예요. 그때 엘리베이터 안에 남겨진 사람들과 저희 가족 사이에 싸늘한 공기가 아직도 느껴져요."
그래서 미경씨는 아들과 나들이를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가…"라며 양해부터 먼저 구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한다. 혹여 아이가 타인에게 실수를 할까 눈치를 보는 법도 늘었다.
정미경 씨가 침대에 누운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있다. 2022.3.17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발달장애인들이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동선을 만들어주고 활동범위를 늘려야 해요
그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제도적 보호 장치들이 그 목적에서 벗어나 격리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도현씨의 경우에도 아침에 아파트 단지에서 버스를 타고 주간보호센터에 간 뒤, 저녁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특수한 공간만 정적으로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저는 이 특별한 보호가 싫을 때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격리에 가깝거든요. 정부가 지역사회에 정착해 살라고 여러 가지 활동 지원을 해주지만, 결국 한정된 공간에서 이뤄지거든요. 발달장애인들이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동선을 만들어주고, 활동범위를 늘려야 해요. 그래야 발달장애 가정이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을 수 있죠."
동네 사람들이 눈 한 번 맞춰주면 고맙다고들 하는데
우리 애들도 그런 거 같아요
미경씨는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느낀 시절을 잠시 회상했다. 그리곤 떨리는 목소리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도현이랑 부산에 갔을 때요. 그때 막 광안대교가 개통됐거든요. 차를 운전해서 도현이랑 지나가는데, 다리 밑으로 그냥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저도 한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인분들은 동네 사람들이 눈 한 번 맞춰주면 고맙다고들 하는데, 우리 애들도 그런 거 같아요. 저 사람도 어디 가는구나, 저 사람도 기분이 좋구나라고 평범하게 봐주는 시선이 되게 소중하거든요. 사실은 그런 시선이 모두 에너지잖아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어, 사연이 알려진 사건만 26건에 달한다. 미경씨와 같은 부모들은 지금도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라는 구호 아래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등을 정부와 경기도에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를 받아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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