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아시타비'(我是他非) -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연말이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
윤인수
발행일 2020-12-21 제18면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연말이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 해의 한국 사회상을 압축해 보여주는 '거울'이다. 사회의 길흉화복이 대체로 국정의 결과인 만큼, 정권을 향한 촌철살인에 대중은 무릎을 쳤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집권 내내 박근혜 정권의 뼈를 때렸다. 집권 첫해인 2013년엔 '도행역시'(倒行逆施)로 아버지 박정희 시대와 단절하지 못한 인사와 정책을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이 터진 2014년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2015년은 연초부터 메르스 사태가 터졌고 대응은 부실했다. 집권여당(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이 보수혁신 깃발을 들자,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는 한마디로 내쳤다. 그해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의 도리가 혼란해졌다는 얘기다.
2016년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박근혜 정권이 국정농단 게이트로 분노한 민심에 엎어진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박근혜가 '도행역시'나 '지록위마'쯤에서 정신 차렸다면 '군주민수' 만큼은 면했지 싶지만, 허망한 상상이다.
전 정권에 실망한 교수들은 문재인 정권 첫해인 2017년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박근혜 정권 적폐 청산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2018년엔 격려에 경고를 담아,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고 했다. 정권은 지방권력을 싹 쓸어 담았지만, 일자리가 줄면서 민심을 건드렸다. 국민지지와 국정능력의 키 높이가 다른 상황을 경고하며, 분발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더니 조국 사태로 나라가 두 동강 난 지난해엔 '공명지조'(共命之鳥)라 했다. 서로 싸우다 모두 망한다는 뜻인데, 그래도 진보와 보수를 향한 양비론으로 애써 균형을 유지했다.
그런데 올해는 출처도 없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그대로 한자로 옮겼다. 내로남불은 지난해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조적조(曺敵曺) 버전'으로 회자됐다. 올해 들어선 전 정권의 윤석열 좌천을 비난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찍어내기, 여당 단체장들의 성추행 스캔들로 무수히 반복됐다. '파사현정'에서 시작해 '아시타비'라면 급전직하(急轉直下)다. 집단지성인 교수사회가 울린 경종이다. 문재인 정권이 '아시타비'를 지워버릴 사자성어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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