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건 기다림 뿐"... 실종 수십 년 지나도 이사 못가고 자식 기다리는 부모들
정성욱
기사입력 2020.05.24 21:55
최종수정 2020.05.24 23:08
5·25 실종아동의 날, 아가 돌아올까 수십년째 이사 못가..."정부가 힘 써줬으면"
지난 22일 한억조(64)씨가 안산 건건동 자택 안방에 걸린 아들 한광희 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광희는 1996년 7월2일 자택 인근 교회에서 사라진 뒤 아직까지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성욱기자
한억조(64)씨 집 안방에는 유일하게 아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누나 졸업식에 갔다가 우연히 찍힌 사진과 첫 돌 사진이다. 첫째 딸 결혼식 사진, 한씨 부부 사진 등 다른 가족 사진은 모두 거실에 있었다. 한씨는 주로 안방에서 생활했다. 거실은 빨래건조대와 옷걸이 차지였다. 주방 식탁에는 각종 가재도구가 쌓여 있었다. 한씨는 식사도, TV시청도 안방에서 했다. TV위로 광희 사진이 보였다.
한씨의 아들 한광희(당시 9세)군은 24년 전 실종됐다. 1996년 7월2일, 광희는 둘째 누나와 함께 안산 자택 근처 교회에 갔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교회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먹던 게 광희의 마지막 모습이다. 교회 사람도, 가족도 그 이후 광희를 보지 못했다.
한씨에게 광희는 특히 귀했다. 두 딸을 낳고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그런 광희가 사라지자 마음에 구멍이 난 아내는 아들을 입양하자고도 했다. 광희가 사라진 후 한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흔적을 찾았다. 인근 산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듣고 한밤 중에 산을 오르기도 했다.
광희가 스무살이 됐을 무렵에는 관공서 직원들이 입대영장을 들고 찾아왔다. 행정상 광희가 사망한 것은 아니다 보니 매해 입대영장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한씨는 마음 속으로 울었다. 한씨는 광희 물건을 버린 지 오래다. 볼수록 생각이 나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20년 넘게 안산 건건동을 떠나지 않고 있다. 혹시나 광희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야기 내내 얼굴이 일그러지던 한씨가 취재진을 안방으로 불렀다. 그는 벽에 걸려있는 광희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아가 잘 생기긴 잘 생겼제." 처음 본 한씨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한씨의 바람과 달리 그가 직접 광희를 찾아나서기는 어렵다. 오랜 공장 생활로 청각장애가 왔다. 허리가 좋지 않아 거동도 불편하다. 생활도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어 다른 비용은 엄두가 안 난다.
전재두(88)씨는 죽기 전에 50여 년 전 사라진 딸 소식을 듣는 게 소원이다. 1973년 7월1일 성남 태평동 자택 마당에서 뛰놀던 전은희(당시 5세)양이 갑자기 사라졌다. 잠에서 깼을 때 이미 마당 문은 열려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던 은희였기에 다른 사람을 따라갈리는 없었다. 전씨는 은희가 유괴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에는 매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삼남매를 키우던 전씨에게 마을 사람들이 ‘한 명은 입양을 보내라’고 할 정도였다.
은희가 사라진 후 전씨는 지역 경찰서는 모조리 돌았다. 언론사에 직접 광고도 내봤다. 지난해에는 경찰과 함께 용인과 성남, 광주 보호시설, 요양원 등을 돌며 딸을 찾았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전씨는 "아침에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은희 생각이 난다"며 "나는 많이 늙었고 돈도 없지만 정부에서 실종아이들을 찾는 데 힘을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년 5월 25일은 실종아동의 날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해 5천119건의 실종아동 신고를 접수해 5천99건을 해결했다. 다만, 아직까지 1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은 78명으로 확인된다.
정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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