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가가 본 이천 참사, 자영업자 피눈물과 노동자의 목숨 값 -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이천 물류센터 화재로 보는 부동산 이야기
조정흔 감정평가사 | 기사입력 2020.05.06. 10:43:04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의 화재 사고는 38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이천 화재사고에는 건설현장의 계약 관행, 하도급 문제, 사고 발생 시 안전을 위하여 지출하는 비용보다 더 낮은 수위의 책임비용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간단히 말해서 돈이다. 건축주는 자기자본과 타인자본, 즉 대출로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비용을 조달한다. 따라서 최대한 적은 공사비를 투입하여 짧은 기간에 공사를 끝마치는 것이 가장 이익이 된다. 그러다보니 시공업체는 가능한 한 낮은 비용으로 입찰해야 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지불되어야하는 안전 비용은 무시되기 일쑤다. 건축 분야는 워낙 공종(工种)이 세분화되어 있고, 투입되는 자재와 시공 분야가 많기 때문에 건축주와 시공사간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공사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추가로 비용이 지출된 경우에는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두고 건축주와 시공사간 다툼이 된다.
이렇게 안전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건설노동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건설 현장에서 빨리, 싸게 지은 물류창고들은 얼마의 가치를 갖게 될까?
기업 수익 극대화 위해 희생된 노동자 목숨값
최근 소비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시장으로 급격하게 이전되면서 온라인 쇼핑의 비중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3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은 온라인 부문에서 16.9% 성장하였으나, 오프라인 부문에서는 17.6% 감소하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이 반영된 탓이겠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하여 온라인 중심의 생활 패턴은 점차 가속화하리라 보인다.
온라인 중심의 유통 시장이 커져갈수록 함께 성장하는 시장이 바로 부동산에서는 물류 창고다. 물류 창고는 보통 물류수요가 집중되는 서울 수도권 인접 지역인 용인, 광주, 이천, 김포, 안산 등지에서 전답 등의 농경지나, 임야 등을 부지로 전용하여 건설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토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쿠팡과 같은 e커머스 기업은 인천과 이천 덕평에 10만㎡ 규모의 물류창고를 이미 건설하여 가동 중이다.
부동산 투자 정보업체 메이트플러스에 따르면, 서울 수도권 소재 물류창고의 수익률은 6~8%정도라고 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상당수 물류기업이 직접 물류창고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다. 물류창고는 국내 자산운용사뿐만 아니라 외국계자산운용사들의 투자 수단이 된지도 오래다. 이번에 화재사고가 발생한 이천의 물류창고 또한 한화 계열사였다가 분리된 물류회사로서, 한화 계열사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한익스프레스의 소유다.
오프라인 시장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거나,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여 어려움에 빠진 많은 자영업자들이 있는 반면에, 또 누군가는 온라인 시장이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장밋빛 전망에 가득 찬 유망 투자 대상으로 꼽히는 물류창고 부동산임에도 정작 건설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명 안전장치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물류업계의 성장 전망과 물류창고 부동산의 가치 상승은 물류창고 건설노동자에게는 남의 일일 뿐이다. 연간 수십억 원의 임대료 수입을 올리는 물류창고 건설을 위하여 수천만 원의 안전비용도 지출하지 않은 결과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지난 달 30일 오전 경찰과 소방당국,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규제 사각에서 자영업자 피눈물로 돈 버는 이들
그것뿐만이 아니다.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물류센터의 개발, 건설, 운용을 통하여 자본이득과 운용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보유세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는 실제 거래 가능한 가격, 임대료 수준을 반영한 수익가치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대기업 일가가 회사영업목적의 물류창고 부동산을 건설하면서 일대의 부동산을 모두 매입하기도 한다. 물류창고 등으로 개발되고 나면 주변의 땅값이 덩달아 오르기 때문에, 자본이득을 덤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 단독주택에 대한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을 단계적으로 높이고자 노력하지만, 물류창고를 포함한 상업용, 업무용 부동산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으로 가치를 평가할지, 공시가격에 시세를 반영할지에 관한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도 짚어야 한다.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물류 창고의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점차 대규모, 첨단 설비를 갖춘 물류창고들이 선호되며, 물류창고 부지로 개발할 수 있는 토지 및 물류창고 부동산의 가격 또한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추고 있으며, 물류창고의 주요 고객, 즉 우량한 화주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 물류 유통 기업들에게 유리한 시장 환경이다. 이들은 점차 중소규모의 동네 상권들을 모조리 초토화시킬 것이다.
동네 상권이란 자영업자들의 터전이다. 자영업자들은 어디서 장사를 하나? 동네의 꼬마빌딩, 상가건물이 그들의 터전이다. 자영업자와 상가부동산은 공존, 공생의 관계,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자영업자가 돈을 벌어야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고, 임대료가 높아져야 상가의 가치가 높아진다. 온라인 시장의 확대와 치열한 경쟁으로 자영업자들은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부동산이 최고의 투자처라며 꼬마빌딩이나 상가에 투자하라는 사람들이 많다.
입주 후 1년이 지났으나 송파구 가락동 95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헬리오시티 아파트의 단지 내 상가 617개 중 40%가 현재 공실상태라고 한다. 세종시의 경우에도 상가공실문제가 심각해 4.15총선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을 정도다. 행복도시 상업시설 모니터링 연구용역에 따르면 지난해 행복도시 상가공실률은 32.1%다. 웬만한 신도시, 대단지의 상가들은 모두 사정이 비슷할 것이다. 바로 턱없이 높은 분양가와 그에 맞추어서 형성된 높은 임대료 때문이다.
부동산에 대한 환상에 턱없이 높은 가격에 상가를 분양받은 수많은 사람들, 높은 분양가를 기준으로 형성된 임대료로 계약해서 들어온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매출이 임대료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꼼짝없이 계약기간 동안에는 임대료와 관리비 등의 고정비용을 부담해야한다. 건물주라 하더라도 공실상태에서는 대출이자와 관리비를 고스란히 감당해야한다. 서울시내의 웬만한 분양 상가는 평당 1억 원에 육박하는 높은 분양가를 자랑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주거용에 비하여 시공비도 훨씬 적게 들어가는데, 분양가상한제 대상도 아니면서, 아파트 몇 배의 분양가를 받을 수 있으니 최대한 많은 상가를 높은 가격에 분양하는 것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박근혜 정부가 상가건립 규제 완화를 통하여 건설사들이 분양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건설사는 최대한 많은 상가를 뽑아 분양으로 먹튀했고, 멋모르고 상가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와 임차인들이 고스란히 모든 피해를 감당하고 있다.
▲ MBC <PD수첩> '연예인과 갓물주편'의 한 장면. ⓒMBC
부동산은 인간 삶의 터전
MBC <PD수첩> '연예인과 갓물주편' (2020.4.21.방송)은 유명 연예인들이 막대한 대출을 일으키고, 제도의 맹점을 이용하여 법망을 피해 가장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동산법인을 세워 각종 세제 혜택을 누리면서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을 누리고 있는 실태를 고발했다. 방송 이후에도 연예인들의 부동산 투자로 인한 시세차익 기사는 단골 메뉴로 나온다. 스스럼없이 방송에 나와서 자랑하듯 자신의 부동산 투자 경험담을 늘어놓고 투자수익을 이야기하는 연예인도 많다.
그들도 처절한 무명시절을 거치고, 피눈물을 삼키며 혹독한 노력을 통해서 그 대단한 자리까지 올랐을 것이다. 언제 추락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만한 부동산 하나 갖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먹고사는 데는 더 이상 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이미 많은 돈과 신용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은행은 더 싼값으로 쉽게 더 많은 돈을 빌려준다. 떼일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싼 이자로 큰돈을 빌린 그들은 그 돈으로 최고의 투자전문가들을 옆에 끼고 더 큰돈을 벌고, 더 부자가 된다. 자본주의란 원래 그런 것이다. 투자전문가들은 유명 프랜차이즈와 유명 임차인을 적절히 섞고, 연예인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최고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낼 수 있도록 컨설팅해 준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연예인들의 부동산 투자 성공 사례는 계속적으로 부풀려지고 가십거리가 되면서, 부동산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 연예인의 부동산 투자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허황된 환상과 광고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다. 이를 지켜본 이들은 무의식중에 부동산과 상가를 최고의 투자수단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슬프다. 그가 수십억 원을 벌기 위해서 누군가가 수년 동안 쌓아올린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생존의 동아줄 같은 투자금을 모두 날린 채 길거리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그가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나도 얼마라도 좀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분석도 없이 쌈짓돈 탈탈 털어 사기꾼들에게 갖다 바치고, 쓸모없는 또는 애물단지인 땅을 사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긴 불로소득은 몇 푼에 안전비용을 아끼려다 유독가스에 쓰러져간 건설노동자의 목숨값이며, 멋모르고 상가투자에 뛰어들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상가투자자, 높은 임대료에 허덕이는 자영업자의 피눈물값이다.
부동산이란 인간 삶의 터전이다. 주거와 휴식을 위한 공간이며, 생산 수단이자 일터이다. 부동산이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 편취 수단이 아니라, 원래의 기능과 목표에 맞게 쓰여질 수 있도록 보다 촘촘한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준 국민들의 뜻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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