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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철환칼럼] "딸 버린 엄마가 딸 재산을 상속 받겠다고?" -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위철환칼럼] "딸 버린 엄마가 딸 재산을 상속 받겠다고?" -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위철환

기사입력 2020.05.13 20:45

최종수정 2020.05.13 20:45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9살 무렵 엄마가 가출하는 바람에 약 20년 동안 엄마 없는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애쓰는 동안 할머니가 그녀를 돌보았다. 그녀는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유명한 가수로 성장했으며 상당한 재산을 얻었다. 하지만 매서운 세파에 시달리다가 결국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문제는 그녀가 세상과 결별한다고 해서 세상사가 모두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남긴 재산을 둘러싸고 새로운 논란이 벌어졌다. 20년 전 딸을 버리고 나간 엄마가 나타나서 딸 재산의 절반을 달라고 한 것이다. 물론 민법 제1000조에 의하면 배우자와 자식이 없는 사람의 재산상속은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인 부모에게 공동상속권이 있고, 이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법적 소유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는 참척(慘慽)의 슬픔 속에서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해 딸에게 미안하다면서 자신의 상속재산을 그녀의 오빠에게 양도했지만, 가출했던 어머니는 그 재산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 사건 뿐만이 아니다. 2010년 3월 천안함침몰사고로 희생된 군인들의 부모 사이에서도 군인 사망보험금과 군인보험금을 놓고 유사한 분쟁이 발생했고,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자식이 변을 당한 후 그 상속금을 놓고 비슷한 분쟁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비정한 엄마에게 재산상속권을 제한하는 방법이 없을까? 민법제1004조에는 상속인의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거기에는 상속인이 피상속인 등에 대한 살해나 상해치사와 같은 범죄 행위, 사기·강박 등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의 유언을 방해하는 행위 등 5가지가 상속인의 결격사유로 규정돼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격 사유에 직계존속이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는 들어 있지 않는 실정이다. 생각건대, 상속은 망인과 함께 생활기초를 형성한 자들에게 망인의 사후에도 그 생활을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동생활에 기여한 자들에게 재산상속이 한정돼야 하고 이에 참여하지 않은 자는 재산상속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하고, 그것이 피상속인의 의사에도 부합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관해 종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경우도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1004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속인의 상속권을 보호하고 상속결격 여부를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부양의무의 개념은 상대적인데 이를 상속결격사유로 본다면 오히려 법적 분쟁이 빈번해 질 수 있다 직계존속이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이를 중대한 범법행위나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민법규정은 1958년 제정된 내용이 대부분 그대로인데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양상임에도 민법이 그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속인 결격 사유에 관한 규정’도 피상속인의 의사와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차라리 입법론적으로 민법에 ‘직계존속이 상속받는 경우 상속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3년 이상 이행하지 않은 경우 가정 법원은 공동상속인의 청구에 의하여 상속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감액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위와 같은 사건과 관련해 ‘민법상 상속 결격사유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해태한 자를 추가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어, 현재 국회에 ‘양육이나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를 상속인 결격사유에 추가하는 내용을 담은 민법개정안이 계류 중인 상황이다. 외국의 입법례에서도 ‘상속권 박탈제도’를 인정하면서 그 사유 중의 하나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아동 유기·학대와 존속 유기· 학대의 경우 등 피상속인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상속결격사유에 포함시키는 입법을 고려해 볼 만하다.

20여 년 동안 연락 두절된 엄마가 딸이 사망하자 갑자기 나타나 딸의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그 재산·보상금·보험금을 챙겨가는 것은 누가 보아도 보통사람의 법 감정에 어긋나고 공정성에도 문제가 있다. 요컨대, ‘재산상속 결격사유’에 관한 민법상 규정을 반드시 손 봐야 할 것이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