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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여백] 주인의식과 주인행세 - 유현덕 한국캘리그라피협회장​유현덕

[삶의여백] 주인의식과 주인행세 - 유현덕 한국캘리그라피협회장

유현덕

기사입력 2020.04.23 21:06

최종수정 2020.04.23 21:06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임기를 시작할 때 첫 약속하는 국회의원 선서의 내용이다. 물론 대통령이 취임하며 하는 선서처럼 법적 책임이 따르는 선서와는 다르게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성스러운 약속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그림과 유혹으로 유권자를 호도했어도, 신랄하게 상대방 깎아내기에 성공했어도 일단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니 승리한 자가 된 것이다. 어찌 되었든 민주주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단 한 표라도 이겼으면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동스럽고 행복하고 스스로 대견하겠는가. 어젯밤 12시까지 그렇게 읍소하며 약속하고 외쳤던 공약은 오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하얗게 잊어버리는 건 당연할 것이다.

4년간 우리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서로 다투고, 온갖 예쁜 짓을 하던 그들 중 승리자가 된 그들이 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5월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승리감에 도취된 그들은 처음부터 겸손함은 없던 존재들인 것 같다. 그렇게 모양내기로 어설픈 자세로 여기저기 다니며 방역 퍼포먼스를 하더니 당선된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똑같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혹시 그런 싹수 있는 사람이 나올까 했었던 일말의 희망은 역시 헛된 꿈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감사하면 읍소할 때와 같이 인사하고 방역하고 출근차를 향해 허리라도 굽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매일 그러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최소한 당선 후 일주일이라도, 흉내라도 내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싶다.

국민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고자 했지만 어떻게 그들은 한 결 같이 본인이 주인이 되었다는 착각에 주인행세를 하려는 것일까.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뽑아도 요구조건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가 주인의식이다. 곳간을 맡기니 주인의식으로 지키고 발전시키고 키워나가라는 임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또 그만큼의 대가를 정확하게 지급하는 조건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뽑은 사람이 도둑임을 알면서도 채용하는 바보 같은 주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우리는 그 동안 그 바보 같은 주인역할을 아무 소리도 못하고 견디고 지내와 버렸다. 우리는 주인의 권리를 포기 한 적도 방치한 적도 없었고 그들을 믿어주고 응원해 준 죄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 회사도 마찬가지다. 직원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업무에 최선을 다하며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 회사가 거두는 이익을 키워나가는 것이 본연의 업무인 것이다. 커다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구내식당을 통한 양질의 식사까지 제공하는 것은 주인행세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것이다.

최근, 사회의 거리두기와 외출제한 등의 제약이 주어진 탓에 모든 것이 마비되듯 어렵지 않은 곳이 없다. 심지어 개구쟁이들이 단골집인 떡볶이 집마저 손님이 없는 상태다 보니 여기저기 한 숨만 가득해지는 고통을 나누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더 걱정이 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번에 선출한 그들이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인지 주인행세를 하는 도둑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기대와 걱정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유현덕 한국캘리그라피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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