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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삶] 내 인생, 기억할만한 봄살이 - 이해균 해움미술관장

[문화와삶] 내 인생, 기억할만한 봄살이 - 이해균 해움미술관장

이해균

기사입력 2020.05.07 19:29

최종수정 2020.05.07 19:29

코로나19, 국회의원선거 등으로 어수선 했던 나날들이 낙화처럼 흩날려 갔다. 올해처럼 허무하게 지나간 봄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이슈 없는 삶은 기다림 없는 사랑처럼 허탈하다. 좋은 일은 기대와 설렘으로, 나쁜 일은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태평성세란 말이 있듯이 이제 국가 지도자의 빛나는 리더십 아래 나라가 부강하고 평온한 시절이 도래했으면 좋겠다. 나의 편이 아니라고 미워하거나 나의 편이라고 무관심 하지 않는, 따뜻이 손잡고 가는 공생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참다운 인생이리라. 새로이 힘을 낼 때이다. 한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문화센터도 재 개강 할 것이다. 그동안 SNS에 기대어 간간이 소통하던 것마저도 많이 지처 있는 수강생들의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 그동안 원치 않는 기회에 몰입한 새로운 작업들을 모아 전시회도 열어야 한다. 더욱 작품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자동적으로 실천한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이다. 올해의 목표였던 전시를 열수 있게 된 것은 위기가 곧 기회인 상식이 유효 했다. 학창 시절 이후 내 인생의 가장 긴 방학 동안 간간이 지인들과의 꽃바람 산책은 물리치지 않았다. 늦게 까지 꽂을 피워내는 광교저수지 벚꽃 길도 걸었고, 물향기 수목원과 한택 식물원도 가 보았다. 가장 느낌 좋았던 한택식물원은 가는 길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일 년에 운이 좋아야 한번 볼 수 있었던 산과 들의 연둣빛 봄 물결은 폐부를 청결히 씻어줬다. 매번 문화센터의 수강생들이 함께 하는데 대부분 70이 넘은 퇴직자들이다. 모두가 현역이었을 때는 화려한 이력을 가지셨던 분들이다. 한의원 원장님, 고위공직자 출신, 대기업 중역임원 등 모두가 여유 있는 예비역들이시다. 학창시절 럭비부, 아이스하키부 등의 주전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주말마다 라이딩, 섹스폰 연주, 댄스, 수영, 골프, 등 잠시도 쉬지 않는 그야말로 ‘내 나이가 어때서’란 수식어를 달고 사시는 분들이시다. 일 년에 한번 보는 신록을 그들은 잘해야 스무 번 쯤 보면 끝 일거라고 아쉬워하신다. 우리는 점심때쯤 백암에 도착했고 함께 그 유명하다는 백암 순댓집을 찾았다. 백암 막걸리 한잔을 곁들인 순대와 오소리감투는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식물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식물도 다양했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거대한 바오바브 나무도 있었고 부겐빌라, 라일락, 수선화, 영산홍, 튤립 등이 화려하게 자기 색을 강화하고 있었다. 산자락 꽃 정원을 산책하는데 노년의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않게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으며 나름 수컷의 사회성을 드러내고 있어 멋져보였다. 수목원 휴게실에서 커피한잔을 나누며 담소하는 자리엔 벌써 다음 스케치 나들이를 도모하고 있었다. 노년은 더 이상 후퇴 할 길이 없다. 아내와 싸웠을 때도 갈 곳이 없고 친구는 하나둘 사라지거나 병을 앓고 있어 술 한 잔 나눌 사람도 메말라 있다. 그러므로 아까운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사용하여야할 것이다. 짧은 봄날이 가기 전에 목적 없는 여행도, 형식 없는 만남도 지속해야할 이유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청춘예찬은 신록처럼 싱그러웠다. 배냇머리처럼 고운 버들잎을 바라보며 돌아오는 길에 문득 틴에이저 시절에 만난 시 한편이 떠올랐다.

전송하면서 살고 싶네/ 죽은 친구는 조용히 찾아와/ 봄날의 물속에서/ 귓속말로 속살거리지/ 죽고 사는 것은 물소리 같다/그럴까, 봄날도 벌써 어둡고/ 그 친구들 허전한 웃음 끝을/ 몰래 배우네. -마종기 ‘연가’중에서

이해균 해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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