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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의 시시각각] 박근혜,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

[이상일의 시시각각] 박근혜,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2012.02.09 00:00 / 수정 2012.02.09 00:02
이상일
논설위원
“눈물은 슬픔의 말 없는 언어”라고 볼테르(18세기 프랑스 사상가)가 말했던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7일 지역구(대구시 달성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역주민과 만나서,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세 번 비쳤다. 14년간 정을 줬던 지역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 위원장에게 대구 달성군은 특별한 곳이다. 1998년 4·2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다. 박근혜는 문경-예천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경은 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3년간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짙은 곳이어서 박근혜의 낙승이 예상됐다. 그런데 당에서 느닷없이 달성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해 2월 대통령에 취임한 DJ(김대중)가 동진(東進)정책으로 영남을 공략하겠다며 달성 출신 후보(엄삼탁)를 내세웠는데 한나라당에선 대적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 시절 당 사무부총장이었던 김영일 전 의원은 이렇게 회고한다(김 전 의원은 친박계를 한 적이 없는 인물이다). “박근혜는 ‘당의 뜻에 따르겠다’며 군말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전혀 연고가 없고, 떨어질 가능성이 큰 곳으로 가는데도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길을 택하는 걸 보고 박정희의 딸답다고 생각했다.”

 박근혜는 선거운동기간 허리춤에 찼던 만보계 눈금이 매일 10만 보를 넘겨 다시 0에서 시작할 정도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낯선 곳 달성을 정치적 고향으로 만들었다. 당시 그가 실패했다면, 그래서 DJ의 동진정책이 성공했다면 영남의 정치지도는 지금과 달랐을지 모른다. 그런 달성이기에 박 위원장은 이별의 눈물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눈물은 새 출발을 의미한다.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이란 당명이 확정된 시점에 맞춰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건 당과 함께 자신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한 때문일 것이다.

 박 위원장은 지역구를 떠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더 큰 정치를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했다. 그러니 그가 지휘하는 당 쇄신 작업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쇄신이 곧 ‘더 큰 정치’를 뜻하는 건 아니다. 어떤 쇄신이냐에 따라 ‘대도(大道) 정치’가 될 수도, ‘협량 정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쇄신의 핵은 공천이다. 박 위원장도 “용을 그리는 걸 쇄신 작업이라고 한다면 공천 작업은 마지막 눈을 그려 넣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했다. 그는 “친이명박·친박근혜는 없다”며 시스템에 의한 공정한 공천을 하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그럼에도 친이계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비상상황을 명분으로 반대세력을 몰아내면 안 된다”는 보도자료를 돌리기도 했다.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에 친이계다운 친이계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박 위원장은 ‘더 큰 정치’의 진수를 공천에서 보여줘야 한다. 4년 전 당한 ‘친박 학살 공천’의 보복 같다는 인상을 주면 그걸로 총선은 끝장날 수 있고, 박 위원장 눈에선 회한의 눈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공천에선 지도자의 면모가 드러나고 국민은 그걸 평가한다. 4년 전 공천 때 이명박 대통령이 들었던 평판을 기억하는가. 이번엔 박 위원장이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공천을 시스템으로 한다고 해서 그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런 그에겐 딜레마가 있다. 쇄신다운 쇄신을 하려면 현역의원 대폭 물갈이가 불가피하다. 국민도 그걸 원하고 있다. 그런데 당엔 친이계가 많다. 쇄신을 하자니 보복으로 비칠 수 있고, 보복이란 말에 신경 쓰자니 쇄신이 쉽지 않은 구조다. 이 틀에서 박 위원장은 정치적 연금술을 발휘해야 한다. 갈채를 받을 수 있는 공천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친박이 먼저 희생해야 한다. 당의 혜택을 오래 누린 친박 중진부터 초야(草野)에 묻히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한다. 어글리(ugly·추한) 한나라당의 간판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다음 그 속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박 위원장을 친박이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