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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빌려준 부동산, 소유권은 실제 주인에"

"이름만 빌려준 부동산, 소유권은 실제 주인에"

대법, 명의신탁 실소유주 인정 기존판례 유지



"부동산 실명제 어겼다 해서
재산권 박탈 국민관념 어긋나"

"해외에 없는 부끄러운 유산
명의신탁 근절을" 소수의견도

  • 송광섭, 진영화 기자
  • 입력 : 2019.06.20 17:33:19 수정 : 2019.06.21 09:42:52

 

 

 

대법원이 20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부동산을 등기하는 이른바 `명의신탁 부동산`의 소유권이 명의를 빌려준 사람(명의수탁자)이 아닌 실제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명의신탁자)에게 있다는 기존 판례를 다시 확인했다. 2002년 부동산 명의신탁 인정 판례 이후 17년 만에 판례 변경 여부가 관심을 모았지만 변경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이날 부동산 명의신탁자 A씨가 명의수탁자 B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에 따르면 A씨 남편은 1998년 농지를 취득한 뒤 농지법 위반 문제가 발생하자 B씨의 남편 명의로 소유권을 등기했다.

 

A씨는 2009년 남편이 사망한 뒤 농지를 상속받았고 2012년 B씨의 남편까지 사망하자 B씨를 상대로 명의신탁된 농지의 소유권 등기를 이전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앞선 1·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부동산 명의신탁을 민법상의 `불법원인급여`로 볼 수 있는지다. 불법원인급여는 범죄를 위해 재산이나 노동을 제공하는 일을 말한다. 도박이나 밀수 등 불법행위에 쓰이는 사실을 알고 자금을 빌려주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에는 채권자는 반환을 청구할 수 없고, 채무자도 갚을 의무가 없다. 즉, 부동산 명의신탁이 불법원인급여로 인정된다면 부동산의 실제 소유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60·사법연수원 15기) 등 9명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으로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했단 이유만으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부동산실명법에서 명의신탁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불법원인급여로 인정해 부동산에 관한 권리까지 박탈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명의신탁약정을 체결하고 협조한 명의수탁자의 불법성도 작지 않은데 불법원인급여 규정을 적용해 명의수탁자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귀속시키는 일도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명의신탁을 금지하겠다고 명의신탁자의 부동산에 대한 재산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는 없다"며 "부동산실명법을 제정한 입법자의 의사도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반면 박상옥(62·11기), 조희대(62·13기), 김선수(58·17기), 김상환(53·20기) 대법관은 "부동산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한 사법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기존 판례에 따라 유효성이 인정되기 시작한 부동산 명의신탁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돼 시행됐는데도 대법원은 계속해서 명의신탁자의 명의신탁 부동산에 관한 반환청구 등의 권리행사를 대부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여전히 명의신탁약정은 횡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명의신탁의 불법성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형성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 "불법원인급여를 통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자를 제재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러한 조치가 부동산실명법의 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어서 이를 적용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2002년 9월 전합 판결을 통해 "부동산실명법에 따라 명의신탁 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은 명의신탁자에게 귀속된다"고 판시했다. 이후 학계 등에선 "불법을 저질러놓고선 이러한 행위가 무효라며 부동산 소유권을 되찾겠다고 하는 것은 불법원인급여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판례 변경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2월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 의견을 들었다. 당시 원고 측은 "헌법상 재산권과 사적자치 원칙이 보장돼 있고, 부동산실명법 위반은 벌금 등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명의신탁 부동산의 소유권은 원 소유자에게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광섭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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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신탁 부동산#소유권 분쟁#판례 변경 여부#재산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