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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어떤 대안공간의 폐관을 바라보며 -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어떤 대안공간의 폐관을 바라보며 -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1990년대 말부터 한국사회에는 대안학교, 대안교육 등 ‘대안’이란 용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안’이란 기존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대체 수단 또는 극단적으로는 기존제도를 거부하는 별도의 시스템을 지칭한다. 서구에서의 ‘대안(Alternative)’ 개념은 68 학생운동 이후 기존의 가치관이나 제도혁신을 위한 청년 세대들의 정신적 소산이기도 하다. 한국 미술계에도 90년대 말 대안적 성격을 지향하는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국전 등 기존의 공모전이나 상업주의적 기성 미술제도로는 수용될 수 없는 신진작가들의 변화된 창작활동을 수용코자 하였다. 좀 더 실험적 성향의 작가들을 발굴,지원하기 위해 제도권의 미술관이나 상업 화랑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인 비영리적 실험공간들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에서도 대안공간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였다. 정부는 이 대안공간들의 비영리성과 공공성을 감안하여 지원을 강화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2000년도 이후 전국적으로 다양한 대안공간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대안공간들은 운영상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태생적으로 비영리성을 유지하며 자구적 운영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고, 그간 정부의 지원금에 대한 의존성이 검증된 데 반해 정부의 지원이 줄어가고 있다. 또한, 대안공간들이 어느덧 자신들이 넘어서려 했던 제도의 일부가 되어 버려 대안의 차별화가 쉽지 않다는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최근 수원 행궁동 소재의 대안공간 ‘눈’의 폐관 소식이 알려지며 많은 작가들과 관계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눈’은 지난 15년간 사비를 들여 공간을 운영하며, 신진작가 발굴과 그들에 대한 창작발표 공간지원을 수행해 왔다. 공공이 감당해야 할 부분을 사적 공간에서 공공성을 유지하며 수원과 경기지역의 문화적 가치와 창의성을 높여왔다. ‘눈’은 대안성의 차별화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진작가 발굴은 물론, 원도심인 행궁동의 도시재생을 위한 벽화골목 조성, 국제 레지던시 운영 등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갔다. 이로 인해 정부의 전국 대안공간 평가에 있어 늘 수위를 차지하고 2011년에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후발 대안공간들이나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는 많은 관계자들이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행궁동을 수원의 랜드마크가 되게 하였다. ‘눈’은 그동안 힘든 여건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공간을 꾸려왔지만 이제 그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보다 운영자를 더 좌절시킨 것은 주변의 몰이해, 그로 인한 자존감의 실추로 보인다. 

행궁동은 수원의 심장이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새로운 대안적 문화를 창출해낼 수 있는 명소로서 화성과 함께 국제 경쟁력도 가지고 있다. 근자에 도시마다 문화예술을 통한 구도심 재생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눈’과 같은 성공적 사례는 별반 없다. 그동안 ‘눈’이 기여한 사회적 역할과 공공적 가치는 절대 간과될 수 없는 일이다. 그 종언을 막을 수 있는 공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나 공공영역에서의 민간에 대한 지원이란 지원금만을 의미하지 않고 세제혜택과 같은 간접지원이나 민간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기반여건들을 조성해주는 일이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재정 지원보다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시민적 이해와 그들의 활동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격려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운영자는 이제 조용히 본업인 작가로 돌아가 창작에만 몰두하겠단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지 ‘눈’의 역사와 정신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의 대표적 문화공간이 문을 닫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문화시민 우리 모두의 수치이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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