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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공무원들 장사 한번 해보라, 오죽하면 내가 머리 밀었겠나"

정치인·공무원들 장사 한번 해보라, 오죽하면 내가 머리 밀었겠나"


용인=임경업 기자

입력 : 2018.08.11 03:06

횟집 운영 원상우씨 "자영업 현실 너무 몰라" 최저임금 인상 울분

최저임금 인상에 항의하는 뜻으로 머리카락을 깎은 원상우씨는 10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자신의 횟집에서 “정부가 제발 어려운 자영업자의 형편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 최저임금 인상에 항의하는 뜻으로 머리카락을 깎은 원상우씨는 10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자신의 횟집에서 “정부가 제발 어려운 자영업자의 형편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그놈의 장사가 뭐라고 제 딸이 머리카락을 빡빡 깎은 모습까지 봐야 하나요."

10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횟집 '서해회바다'. 김진숙(66)씨는 딸 원상우(41)씨의 1㎝가 채 되지 않는 짧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 가게는 어머니와 딸, 아버지 원후봉(67)씨 세 가족이 16년째 운영해온 곳이다. 지난 6일 딸 원씨는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앞에서 열린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 삭발식에서 어깨까지 내려왔던 머리카락을 이발기로 밀었다. 8350원, 2년 사이 29%가 오른 최저임금에 대해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며 "우리처럼 어려운 자영업자의 형편을 알리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씨는 작년 5월 림프종 암 진단을 받고 5개월의 항암 치료 끝에 회복했다. 그리고 채 두 달을 쉬지 못하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올해 7530원으로 오른 최저임금을 종업원에게 지급할 능력이 되지 않아 직원 1명을 내보낸 탓에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원후봉씨는 지난해 어깨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지만 아침부터 가게 앞에서 고추 포대를 나르고 있었다.

"난감합니다. 우리도 가게가 잘 되면 직원들 임금을 더 주고 싶은데 가게는 어렵고 최저임금이 또 오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우리 가족 세 명은 어머니가 암으로 받은 보험금 500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올해는 빚까지 져야 합니다."

지난 9일 이 가게의 하루 매상은 90만원이었다. 원상우씨는 "하루 매상이 50만원이 안 되는 날도 태반"이라며 "여름 회 장사가 안 된다고 하지만 하루 매상이 150만원은 나와야 이익이 남는다"고 했다. 가게는 70평 규모로 건물 1층과 2층을 모두 쓰고 있다. 월 임대료는 400만원이다. 그나마 건물 주인이 불경기를 감안해 500만원이었던 임대료를 올해 100만원 깎아준 것이다.

원씨는 "홀 서빙 직원 2명은 각각 월급 230만원, 주방 직원은 월 3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며 "인건비로 월 800만원, 임대료로 400만원, 전기료와 갈수록 오르는 활어값과 야채값을 고려하면 이번 달도 적자가 뻔하다"고 했다. 서빙 직원의 월급 230만원은 작년 220만원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10만원 오른 것이다.

가족은 원가(原價)를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4층 건물 옥상엔 원씨 가족이 가꾼 텃밭에서 상추와 깻잎·고추가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 김씨는 "매일 새벽 6시에 나와 물을 주고 가꾸고 있다"며 "야채값이라도 줄이기 위해 3년 전 텃밭을 가꿨다"고 말했다. 활어값도 광어 1㎏가 지난해 1만5000원에서 올해는 2만2000원, 우럭 1㎏는 1만원에서 1만8000원으로 올랐다. 김씨는 "활어와 야채값은 자연의 뜻이지만 임금은 사람이 정하는 것인데 매정하게 계속 오른다"고 했다.

'2층짜리 횟집이 무슨 푸념이냐'는 시선도 가족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딸 원씨는 "10년 전 가게를 2층으로 확장한 이유도 주차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했다. 용인·기흥은 차를 타고 오는 손님이 대부분인데 가게를 1층만 사용하면 주차를 4대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2층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2층은 사실상 창고로 쓴다.

아버지 원씨는 "지금 내게 남은 건 아픈 아내와 경기도 부천의 오래된 주택 하나뿐"이라고 했다. "가게가 어려운 건 '장사를 못하는 사장 탓'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고추도 직접 말려서 갈고, 김치도 직접 담갔어요. 그런데도 안 되더군요."

딸 원씨는 "정치인·공무원 모두 거리로 나와 장사를 해봐야 어려운 사정을 안다"며 "제발 업종·규모별 임금 차등화라도 해 어려운 가게가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가족은 장사를 접기 위해 3개월 전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았지만 가게를 사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버지 원씨가 "인생 사는 게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을 어쩌겠나"라고 했다.



※ 이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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