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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평양사람, 여자아이스하키팀 -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수원, 평양사람, 여자아이스하키팀 -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김준혁 2018년 01월 31일 수요일
          
  

 

1799년(정조 23) 5월 2일 조선 400여년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평양 사람 이응거(李膺擧)가 한성판윤으로 임명된 것이다. 평양은 조선 건국 이래 소외된 지역이었고, 평양사람들이비록 문과에 급제하였다 하더라도 변변한 관직을 얻지 못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평양 사람 이응거가 한양 사람들을 다스리는 한성 판윤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파격적인 일이 아니었던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지역은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하여 세조에 의해 완전히 반역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함경도 영흥 출신인 이성계는 평양을 기반으로 하는 서북지역의 무사들의 지지에 의해 조선을 건국하고 국왕의 지위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서북지역 사람들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특출한 무예 실력이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탈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징옥과 이시애 등 서북지역 무사들이 자신들의 영웅인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폐위한 뒤 국왕이 된 세조에 대항하자 세조는 더더욱 서북지역 사람들을 배척하였다. 세조는 서북지역 무사들의 무과 진출을 금지하게 하였고, 이러한 세조의 지시는 마침내 성종대에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명시되고 말았다. 서북지역 무사들의 무과 시험 금지가 법제화된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글을 보면 세조에 의해 배척된 이후 서북지역 무사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해도 칼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서북지역 전체에 대한 지역차별이 국가 안위에 엄청난 손해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정조는 비록 선대 국왕들이 결정해 놓았던 정책이라 하더라도 파격적으로 개혁하기로 하였다. 정조는 즉위 3달 뒤인 1776년 6월 20일에 서북지역 무사들의 무과 금지를 전면 철폐하였다. 이로써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무사들이 무과 시험에 합격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참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무과에 합격한 서북지역 무사들을 자신이 만든 친위군영 장용영에 합류하게 하였다. 정조는 장용영대장 유효원으로 하여금 서북지방의 무사를 특별히 선발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서북지역은 원래 상무의 땅으로 뛰어난 무사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대거 등용하라는 것이었다. 서북지역 무사들은 다른 지역의 무사들에 비해 능력이 뛰어났다. 쇠로 만든 화살인 철전을 쏘는 무과시험에서 영남지역 무사들은 120보를 쏠 때 서북지역 무사들은 무려 200보를 쏘았다. 그만큼 무예 능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정조는 서북지역 무사들을 자신의 친위도시 수원으로 내려 보냈다. 정조는 수원지역에 조선의 최강 군대인 장용영 외영을 주둔하게 하였다. 정조는 자신이 상왕(上王)이 되어 평생을 머물며 개혁정치를 할 수원에 화성을 쌓고 당대 최고의 무사들을 배치하였다. 이곳에 평양 일대의 서북지역 무사들이 대거 내려와 주둔한 것이다. 그래서 수원은 평양 사람들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수원은 기존의 수원 사람, 한양 사람, 그리고 전라, 충청, 경상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함께 서북지역 사람들까지 찾아 온 개방과 교류의 터전이 되었다. 그속에서 강인한 무사들의 훈련으로 강력한 상무(尙武)도시로 발전한 것이다.

최근 수원시에서 여자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한다고 선언하였다. 참으로 잘된 일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남북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들의 우려도 존재했다. 예전과 달리 우리 사회는 공동체를 위한 자기 희생보다 개인의 성취와 발전을 중요시하는 시대로 변하였다. 그래서 그간 노력한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과의 단일화로 인하여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있어 단일화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올림픽이 갖는 평화의 진정성과 IOC의 노력, 그리고 평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또 다른 의지들이 남북단일팀을 강화하고 현재 남북단일팀의 선수들 즐겁게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면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수원시청 소속의 실업팀 선수들이 될 것이다. 정조시대 수원이 평양무사들을 포용하며 남북 지역의 반목을 허물고 새로운 소통과 화합을 공간으로 발전되었듯이 이제 수원시 여자아이스하키팀은 남북화해의 실천을 계승한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만들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기대가 크다. 이번 일요일에 진행되는 첫 번째 남북단일팀의 평가전을 응원하러 가야겠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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