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50조원의 기회] 도시재생 성공 아이콘 수원시
마을 만들기 등 주민 주도 재생사업 통한 역량 축적이 성공비결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2013년 8월 31일 밤 9시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마을.
캄캄함 어둠을 뚫고 승용차와 트럭 등 차량 1천여 대가 차례대로 마을을 빠져나갔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차들은 좁은 골목길을 나온 뒤 인근 장안문 옆 임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멀리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재준 당시 수원시 제2부시장과 김병익 지속가능과장, 임덕순 행궁동 마을해설사는 벅찬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다음날부터 한 달간 행궁동 일대에서 펼쳐진 '생태교통 수원 2013'을 1년여 넘게 준비해온 주역들이다.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세계 최초로 시도한 이 행사의 성공 전제는 마을 주민들의 필수품인 차를 동네 밖으로 내놓는 일이었다.
행궁동에는 2천20여 가구, 4천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가진 차량은 1천500여 대.
차 없이 한 달간 살라는 수원시 요구에 대부분 주민은 "이게 웬 미친 짓이야?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차를 못 타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에 수원시는 가정을 찾아다니며 생태교통 수원 행사와 함께 마을간판 바꾸기, 골목길과 하수도 정비 등과 같은 도시재생을 통해 마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미친놈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라는 욕설뿐이었다.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닫힌 주민들의 마음은 행궁동 주민이자 도시재생사업 활동가인 임덕순 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발 벗고 나서 설득한 끝에 비로소 열리기 시작했다.
행사 시작 3개월 전에 행궁동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매일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소통에 나선 이재준 부시장의 노력도 한몫했다.
공무원·주민활동가의 설득으로 행사 전날 오전까지 차량 500여 대가 동네에서 도보로 8∼10분 떨어진 임시 주차장으로 옮겨졌으나, 나머지 1천여 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시청에서 주민에게 당부한 차량 이동 마감 시간은 이날 자정. 저녁 6시가 넘어도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차들이 약속이나 한 듯 밤 9시가 넘어 주차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 공무원들은 그제야 맥이 탁 풀리며 안심이 됐다.
주민들이 시를 믿고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뜻이었다.
다음날부터 한 달간 행궁동에서는 세계 최초로 주민들이 자동차 없이 비동력 이동수단만으로 실제 생활을 하며 기후변화 문제와 미래 도시모델에 대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했다.
주민들이 자전거와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며 생활하는 동안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행궁동 마을 곳곳을 누비며 주민들과 소통했고, 행궁동 공방거리 매장들이 한지, 규방공예 등 갖가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모처럼 대목을 맞기도 했다.
또 세계 41개국, 98개 도시 대표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생태교통 수원총회가 열려 '지속가능한 생태교통도시를 전 세계에 확산하자'는 내용을 담은 '생태교통 수원총회 선언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한 달간 행궁동을 방문한 내국인과 외국인은 100만 명을 넘었다.
행사 이후 지금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기관, 외국 기관 등 268곳에서 1만1천300여 명이 행궁동을 비롯한 수원시 도시재생사업 지역을 찾아와 벤치마킹했다.
생태교통 수원의 성공에 힘입어 수원시는 2015년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2회 생태교통 페스티벌 개막식, 지난해 9월 대만 가오슝시에서 열린 '세계 항구도시 포럼', 같은 해 10월 에콰도르 키토 유엔 해비타트Ⅲ 회의 등 국제 행사에 잇달아 초청돼 생태교통 수원의 성공 비결을 전수했다.
수원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생태교통 수원이 도시재생 사업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도시재생 뉴딜'이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되면서 수원의 도시재생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새 정부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들이 지난달 23일 '도시재생 뉴딜' 정책 구상을 위해 행궁동을 찾아와 수원시 공무원과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처럼 수원시의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모델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원시와 주민들은 민관이 협치를 바탕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함께 해오면서 도시재생에 대한 역량이 커진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행궁동의 예를 들면 이곳은 1990년대 이후 주변 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대표적인 낙후지역이 됐다.
특히 마을 바로 옆에 있는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각종 규제에 묶여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마을 발전은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수원시와 주민이 도시재생 사업에 눈을 뜨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좁은 골목길의 담벼락에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벽화를 그리면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주민 힘으로 마을을 되살리고자 작가와 시민단체가 함께 철거예정 건물을 '행궁동 커뮤니티아트센터'라는 창작공간으로 조성해 옛 도심에 문화와 예술을 입히는 작업을 했다.
특히 2010년 '수원시 좋은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한 뒤 도시재생 사업이 급속히 성장했다.
관 주도형 지역개발사업에서 벗어나 주민 스스로 마을의 주요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마을마다 특색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 추진됐다.
특히 주민과 시민단체, 예술작가, 전문가가 참여하면서 도시재생사업에 주민 활동가 역할이 커졌다.
수원시에는 900여 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사업마다 20∼30개 주민조직이 활동 중이다.
이처럼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의 역량이 축적되면서 생태교통 수원처럼 주민에게 한 달간 차 없이 살 것을 요구하는 도시재생 사업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었다고 주민들은 평가하고 있다.
17일 생태교통 수원의 성공 주역들이 행궁동에 있는 생태교통 마을 커뮤니티센터에 다시 모여 수원시와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에 대해 조언했다.
이 자리에서 도시계획 전문가인 이재준 전 부시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은 지자체 공모방식보다는 지자체 제안사업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정부 공모사업은 획일적이고, 절차와 과정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지자체에 사업을 맡기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시재생 사업으로 젠트리피케이션도 발생하는데, 이럴 경우 높은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에 있는 주민들을 위한 임대주택단지와 이주상가 조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상욱 수원시 지속가능도시재단 이사장도 "지방분권에 맞춰 국비 50억원 규모의 도시재생 사업은 지자체에 이양하고, 수원시처럼 도시재생사업을 이끌 활동가 등 중간조직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익 수원시 지속가능과장은 지난 4월 LH와의 도시재생 기본업무 협약체결을 예로 들며 "낙후지역의 소규모 정비사업을 시민이 참여하는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하는 방법으로 수원지역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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