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아일랜드가 북아일랜드를 놓고 분쟁 중이던 1981년. 영국에 수감 중이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들이 마거릿 대처 내각에 자신들을 일반 범죄자가 아닌 정치범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1·2차 200여 일간 단식이 진행된 끝에 10여 명이 숨졌다. 사망자의 단식 기간은 46~73일로 제각각이었다. 곡기를 자발적으로 끊는 행위, 단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주로 다이어트 수단이다. 하지만 정치적·종교적 목적 달성을 위한 투쟁 방식이기도 하다. 보통 물과 소금 정도만 섭취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상대방을 압박해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극단적 방법이다 보니 권력자보다는 재소자나 체제 저항세력 등이 많이 사용한다. 인도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는 75세 나이로 옥중에서 3주나 단식을 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도 야당 지도자나 약자들이 저항 무기로 단식을 많이 이용했다. 한국 역사의 중요한 고비에서 단식이 돌파구가 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대표적 인물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5공화국 시절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그는 5월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정치범 석방,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에 들어갔다. 전두환 정권이 해외에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하자 김 전 대통령은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시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23일간 버텼다고 한다. 그는 단식투쟁으로 '가택연금 해제'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평민당 총재였던 1990년 내각제 반대, 지방자치제 시행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그의 단식은 지방자치시대를 앞당기는 전환점이 됐다. 세월호 참사로 딸 유민 양을 잃은 김영오 씨는 진상 규명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간 단식투쟁을 했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동조단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내걸고 지난달 26일 단식에 돌입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7일째인 지난 2일 단식을 중단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대야투쟁 방법으로 단식을 선택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국정감사를 외면한 새누리당과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한 여론은 차갑다. 공개 장소가 아닌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단식을 진행한 데 대해서도 비우호적인 시선이 많다. '정 국회의장 사퇴'라는 대의명분도 이루지 못했다. 이 대표는 "이정현이 하는 건 쇼가 아니다"고 했지만 그의 단식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채 악수(惡手)로 끝나버린 느낌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