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 들인 부동산 전자계약, 실적 3건…'유령시스템'
[같은생각 다른느낌]부동산 전자거래 활성화를 막는 5가지 걸림돌
편집자주색다른 시각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은 국토부가 2015년 4년간 154억이 소요되는 ‘부동산거래 통합지원시스템 구축사업’을 착수하면서 그 일환으로 도입됐다. 그리고 지난 2월 서울 서초구에서 처음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시행된 지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용건수은 고작 3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3건 중 1건은 해당 시스템 개발자의 친인척이 이용한 것이고 나머지 2건은 동일인이 이용했다. 올해 1~6월 서초구 주택(아파트·단독·다가구·다세대·연립) 임대차·매매 건수가 1만2233건인 것을 고려하면 수백억원을 들여 거창하게 구축한 시스템치고는 너무 초라한 실적이다. 부동산 전자계약은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종이계약서 없이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를 통해 주택 매매·임대차 계약 체결이 가능하다. 또 확정일자가 자동으로 부여돼 따로 주민센터를 찾을 필요가 없고 부동산 거래가 실거래가로 자동 신고되는 편리함이 있다. 여기에 공인중개사 사진과 신원이 쉽게 확인이 돼 무등록 불법 중개행위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연계된 은행과 법무법인을 이용하면 대출금리를 0.2%포인트 우대받고 등기비용을 30%가량 이상 절약하는 부수혜택도 따른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전자거래 활성화를 어렵게 만드는 여러 걸림돌 때문에 전자거래 시스템이 공인중개사와 일반 국민들의 외면 속에 '유령시스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서초구에 국한된 시범사업이었고 의무사항은 아니었다는 변명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첫째, 거래내역이나 임대차 수입이 속속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매매, 전·월세 등 거래내역이 데이터화되면 개인의 재산정보가 그대로 노출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세금이 늘어나게 된다는 걱정이 앞선다"며 부동산 전자거래를 꺼려하는 이유를 들었다. 또한 부동산 전자거래 시스템은 해킹이나 정보유출의 위험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토부는 부동산 거래를 전자계약으로 하면 계약과정이 투명해지고 안정성이 높아진다고 홍보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국민들의 거부감과 불안감을 극복하기에 역부족이다. 둘째, 부동산 전자계약이 기존의 종이문서에 의한 계약보다 편리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의문이다. 대면접촉과 서면작성에 익숙한 국민들, 특히 노년층의 경우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거래가 불편하고 낯설어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다. 현재는 공인중개사만 이용이 가능해 일반인들이 전자계약 과정을 미리 살펴볼 여지도 없다. 그리고 실제 이용해 본 공인중개사는 "기존 종이계약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계약내용 수정이나 해지시 절차가 번거롭다"며 불편을 호소한다. 또한 "거래단계마다 매도인과 매수인이 스마트폰을 통해 인증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종이계약서 작성보다 불편하다는 불만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단지 전자계약의 편의성만 강조해서는 그 장점을 찾기가 어렵다. 셋째, 전자계약이 대출금리와 등기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등 경제적이라고 하지만 실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공인중개사나 일반 국민들이 얻을 혜택은 유동적이다. 공인중개사들은 이 제도가 확대되면 등기나 대출과정에서 얻었던 중간수수료 수익이 줄고 직거래까지 확대되면 설자리가 좁아질 것을 우려해 적극적인 이용을 꺼려한다. 대출금리와 등기비용이 줄어드는 혜택도 은행이나 법무법인들의 재량사항이라 통신사나 금융기관의 부가서비스처럼 언제 부지불식간에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넷째, 전자계약 시스템이 부동산 거래 자료 수집이라는 정책 목적에만 치중돼 있고 실제 이용자 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데 미흡하다. 현재 전자계약 시스템은 공인중개사에 한해 이용이 가능하다. 법무사와 일반인들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이용가능하게 해달라는 입장인 반면 공인중개사는 독점적 이용권한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는 현재는 도입단계라 공인중개사만 이용가능하나 앞으로는 법무사나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어서 충돌이 예상된다. 다섯째, 시스템 자체를 외면하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공인중개사협회의 자세도 크나큰 걸림돌이다. 공인중개사들은 부동산 중개는 본인들의 전문 업무영역임에도 시스템 구축단계에서 배제됐을 뿐만 아니라 거래 정보 관리를 한국감정원 등 다른 기관에서 독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올해 4월 국토부는 부동산거래 전자계약 시스템 운영관리 업무를 한국감정원에 별도 통보시까지 무제한 위탁한다고 고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토부 담당자는 “이미 30여차례 공인중개사협회와 접촉했으나 실질적인 대안 없이 단지 전자거래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으로 무조건 협회이관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시스템 운영에 불만이 있거나 운영주체를 이관하라고 주장하려면 그에 맞는 근거와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혀야지 단지 수익이 줄거나 존립기반이 흔들린다는 이유만을 거론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최근 1만2600명의 회원을 가진 새대한 공인중개사협회는 부동산거래의 등기시장 선진화와 인터넷환경 구축을 위해 전자계약 시스템에 협조하겠다는 전향적인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국토부가 부동산거래 투명화를 위해 전자계약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음에도 활성화가 어려운 것은 전자계약시스템 개발을 공인중개사나 국민들에 대한 이해나 협조 없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용하는 거래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사전에 조정하지 않고 부동산거래의 적정성, 부동산거래정보 제공 및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데이터 수집이라는 정책편의성만을 앞세운 결과이다. 국토부의 주장대로 ‘편리하고 경제적이고 안전한’ 전자계약 시스템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저절로 이용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몇 년이 지나도 이용자 수는 늘지 않고 '유령시스템'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부동산 전자계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국민이 많다. 아무리 좋은 아파트와 빌딩을 짓고 신도시를 건설해도 입주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듯이 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이는 만큼 일반 국민과 공인중개사의 호응을 얻지 않으면 '유령도시'와 다를 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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