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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거리의 파수꾼인가, 사생활 침해범인가

블랙박스…거리의 파수꾼인가, 사생활 침해범인가

구민주 kmj@joongboo.com 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얼굴·차량번호 식별 360도 촬영…차량내외 음성 녹음까지 가능
#회사원 김모(23)씨는 최근 자신의 차량을 고의로 파손한 범인을 찾기위해 블랙박스를 틀어보다가 보지말아야 할 영상을 보고 말았다. 카메라에 촬영된 여자친구의 은밀한(?)사생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급한 용무가 있다며 빌려간 자신의 차량에서 여자친구가 다른 남성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이 블랙박스 영상과 음성으로 녹화된 것이다. 이를 빌미로 두 연인은 말다툼 끝에 서로 폭행해 경찰까지 출동했다. 김씨는 결국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주부 최모(51)씨는 택시를 이용할때 가급적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다. 지난달 중순께 택시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지갑을 택시내부를 촬영하는 블랙박스의 도움으로 되찾았지만, 그후 최씨는 택시에 탑승할 때마다 자신을 지켜보는 것만같은 블랙박스가 부담스러워 최대한 언행과 행동을 자제한다.

차량용 블랙박스가 보급화되면서 여러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각종 범죄에서 블랙박스가 결정적 영상자료 증거를 제시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순기능도 발휘하고 있지만 사생활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9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2006년부터 국내에 보급된 블랙박스는 초창기 장착차량이 6만5천여대에 불과했으나 2012년 150만대를 넘어 지난해 말 기준 누적판매량이 269만여대까지 증가했다. 6년새 무려 40배가 늘어났다. 집계되지 않은 차량까지 포함하면 600만대 이상에 달한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카메라 화질도 풀 FD급으로 대폭 좋아져 얼굴이나 차량번호판 등까지 자세하게 식별이 가능하고 차량 전·후를 비롯해 양쪽 측면까지 360도 사방 촬영이 가능해 사생활 침해 우려가 더욱 높아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에선 블랙박스 사용범위를 제재할 규정은 없다. 지난해 국회에서 ‘자동차회사가 차량에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대신 이를 차량운전자가 교통사고 조사 및 범죄예방 목적 이외에 이용할 수 없도록 금지한다’는 교통안전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올바른 목적으로 블랙박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차량운전자들이 교통사고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블랙박스를 설치하기 때문에 이를 법적으로 설치할 수 없도록 제재할 수는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당초 정해진 용도에 맞춰 블랙박스를 사용하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민주기자/kmj@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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