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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정부 늑장 행정 - 표명구 경제부국장

사설/칼럼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정부 늑장 행정 - 표명구 경제부국장
데스크승인 2015.06.11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적절한 때에 처리하지 않은 일이 나중에 커져서 결과적으로 훨씬 큰 힘과 노력을 들여서 처리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보면 그렇다. 메르스가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 보건당국에는 전문가는 물론 매뉴얼 조차 없었다. 초기 대응 부실로 화를 키웠다. 특히 첫번째 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을 공개하지 않는 등 신뢰감 없는 대처로 국민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군도 뚫렸다. 공군에 이어 해군에서도 감염자가 생긴 것이다. 이렇다보니 인터넷과 SNS상에서는 유비통신이 난무하고 수사기관은 수사를 강화한다고 호들갑이다. 원인제공은 정부가 했는데도 불구하고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해외서도 망신살이 뻗쳤다.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발병자가 많아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은 땅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불신으로 가득찬 행정 때문에 국민들은 불안감을 넘어 공포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결국 정부의 늑장대응이 도마위에 올랐다.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난달 20일 이후 12일이 지나서야 관계장관들이 한곳에 모였다. 대통령이 나선 것은 메르스 사태가 터진 지 16일째 였다. 이미 메르스로 2명이 숨졌고 격리 관찰 대상자는 1300명, 자가격리자는 1200명을 넘어선 뒤였다. 첫 확진 환자가 나왔을 때 보건당국이 내놓은 예방 자료는 ‘낙타’를 조심하라는 게 전부 였다. 한마디로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를 표출하는 한편 더 나아가 비아냥 댔다. 뒤늦게 콘트롤타워가 꾸려지고 범정부차원의 본부가 만들어졌지만 정부 내 메르스 대처법이 제각각이어서 국민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교육부는 메르스 감염 예방과 혼란 방지를 위해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휴업을 결정하도록 권고한 데 대해 보건 당국은 “휴업이 의학적으로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발생 15일째인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밤중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의사가 메르스 의심 상태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재건축회의에 참석해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다 격리됐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또 이런 상황들을 정부로부터 전달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박 시장의 긴급 기자회견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박 시장의 발표에 대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적절했다’는 의견이 55.0%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의견(32.8%)보다 22.2%p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12.2%였다. 이재명 성남 시장도 지난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성남시의 메르스 현황을 자세하게 정리해 알렸다. 이어 염태영 수원시장, 김만수 부천시장, 정찬민 용인시장도 동참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양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발병 18일째인 지난 7일에서야 정부는 메르스 발병 및 감염자 경유병원 명단을 전체 공개하고 격리자 스마트폰 위치 추적을 검토키로 하는 등 메르스 퇴치를 위한 초강수 대책을 내놨다. 이어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경기도,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등 4개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메르스 대응을 위한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또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진 판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각 지자체의 보건환경연구원에 부여 했다. 국민들의 공포감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는 조치였지만 ‘만시지탄’에 다름 아니다. 그 다음날 10대(16살 고교생)환자도 발견됐다. 이 때문에 청소년과 어린이의 감염확률은 거의 없다던 기존 발표와 달라 방역당국의 신뢰성이 흔들리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특히 발병병원명단에 공개된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최고수준의 병원중 하나다. 하지만 보건당국이 최초 발병병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병원은 14번 환자에 대해 세균성폐렴치료만 했다. 결국 불과 사흘만에 환자와 의료진, 보호자 등 총 890명(임산부 1명)이 무방비상태로 메르스에 노출되는 대참사를 낳았다. 늑장행정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호미로 막을 것을 포크레인으로 막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표명구 경제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