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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05/ 06/ 07

[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05/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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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05

[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06

[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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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05

 

얼마전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라는 곳에서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특별시와 광역시에 속한 구청장을 선출직에서 임명직으로 바꾸고 구의회를 없애는
방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제 주변을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반응이 대체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매우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낳을 확률이 큽니다.
첫번째로 민주주의의 원리인 국민주권주의의 후퇴입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편하게 소통되는 사회가 아니어서 그렇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우리 실생활에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던 시절을 잠깐만 회상을 해 보죠. 경찰서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왜냐? 경찰이 사람을 때렸습니다. 이것은 일제시대 경찰들에게 조선인을 때릴 수 있도록
조치를 한 이후 7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일제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경찰은 국민을 마구잡이로 때렸습니다. 특히 범인으로 의심받은 사람은 빤스만 입혀놓고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마포자루로 맞았습니다. 실감이 안나시면 '살인의 추억'영화를
생각하십시오. 그 장면은 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경찰서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경찰이 때릴 것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민주화가 된
이후로 나라가 개판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한번 가서 뒈지게 맞아봐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게 될거야'

경찰의 구타와 민주주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단순합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법에 의하지 않은 어떤
권리침해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감히 경찰이 국민을 법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하지 못하며 만일 그랬다가는 오히려 법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게 바로 경찰의
폭력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자치의 발전계획은 이런 원리로
볼때 국민주권주의를 거꾸로 돌리는 것입니다. 특히 특별시나 광역시의 자치구와 의회를
폐지한다는 것은 명백한 헌법위반입니다. 국민주권주의를 실현하는 길은 가급적 모든
제도를 동원해서 국민들이 정책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언로를 여는
것입니다. 자치구의 임명직 전환은 이런 원칙에 반대되는 행위입니다.
이번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내세운 이유는 '비효율'입니다. 지나가는 국민에게 물어보십시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저는 단언컨데 국회가 1위가
나오고 2위는 청와대가 나올겁니다.

작년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의 참정권의 평등성을 위해 선거구제를 고치라고 판결했습니다.
어느 국회의원은 30만명의 대표로 선출되는데 어떤 국회의원은 6만명의 대표로 선출된다면
대도시 국민이 가진 참정권이 평등적인 면에서 침해된다고 본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인구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의원을 선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정 반대의 논리에 의해
틀린 판결이기도 합니다. 인구에 의해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지만 또하나는 지역대표로도
의원을 뽑아야 합니다.

미국은 인구비례에 의해 하원을 선출하고 지역비례에 의해 상원을 선출합니다.
상원의원은 한 주에서 무조건 2명을 뽑으니 102명이 정원이지만 하원의원은 인구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의원을 배정합니다. 그래서 인구비례에 의한 대표권과 지역비례에 의한
대표권을 공동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정책결정을 인구비례로만 한다면 도시에 유리한 정책만이 입안되고 인구가 적은
농어촌이나 작은 도시의 대표권은 상실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국회를
양원제로 바꿔야 합니다. 특히 통일을 대비한다면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인구가 적은 북한이 인구비례에 의한 선거에 동의할까요? 저들도 바보는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통일이후의 국가구성에서 양원제는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 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그걸 미리 만들어 훈련하는 것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필요한 일이지요.

<0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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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 06

 

지방자치 제도의 가능성은 여러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주 써서
유명해진 말이지요. 이재명 성남시장이 이 서양속담을 쓴 이유를 살펴보면 지방자치의
가능성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통인 중앙정부가 제대로 그 기능을 하지 못하면 꼬리격인 지방정부가 더 혁신하는
모습으로 시민생활과 직결된 정책들을 제대로 성공시켜서 국가개혁의 동력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실 성남시뿐만 아니라 여러 꼬리들이 몸통을 흔드는 정책을 만들고
당당히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수원시, 광주 광산구, 노원구, 성북구 등 일일히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지역에서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하고 무엇보다 '돈'보다는 '사람'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현장행정을 펼치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수원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장실개선'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국가에서 주도하는 화장실 개선운동이 여러차례 시도되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 국가적 이슈를 자치단체가 나선 것이지요. 당시 많은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을 거의 폭풍처럼 몰아붙인 심재덕 시장의 뚝심으로 대한민국의 화장실이 변했습니다.
세계의 화장실이 확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방자치의 가능성입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가 세계를 변화시킨 위대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6년 수원시의회 임승태 의원은 '차고지증명제'조례를 발의하여 통과시켰습니다.
이 내용은 단순합니다. 차고지를 증명하지 않으면 차를 살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례는 경기도의 저지와 대법원의 판결로 무효화 되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오늘 많은 학자들이 그 당시에 '차고지증명제'를 도입했어야 우리나라의 차량증가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고 개탄합니다. 중앙정부가 '누가 너더러 그런 거를 하랬어?' 이런 식으로
지방을 무시했던 것에 비해 지금의 중앙정부는 이미 그 시기를 놓쳐버린 차고지
증명제를 아쉬워합니다.

이제 비실비실한 몸통보다 튼실한 꼬리들이 국민 생활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자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지금의 지방자치를 '몸통'의 경직된
시각으로 '유연한 꼬리'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지방자치의 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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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호의 혼자생각] 지방자치 07

 

6편에서는 지방자치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말 그대로 지방자치는 국가도 하기 어려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유연성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역의 실정에 맞는 정책을 입안해서 성공시키지만 그것이 전파되는
과정은 약간의 변화가 됩니다. 그 지역의 현실에 맞게 고치면서 전파되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국가적 정책은 그런 차별을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이 지방자치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지방자치가 잘되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인데 지방자치라는 제도가 민주주의의 발전없이는 제대로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이 문제는 현실에서
쉽게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 지방자치를 규정하고 49년에 지방자치법을 만들었지만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52년 전쟁중에 지방자치 선거를 실시하게 됩니다.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웬 뚱딴지같은 지방선거를 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1950년대의 우리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950년대 우리나라 인구의 90%는 농민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해방이후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남한의 농민들의 열망이 대단했던 것이죠.
북한에서 토지를 무상몰수 무상분배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당시의 사회구조에서
핵폭발 정도의 위력을 갖는 조치입니다. 인구의 90%가 농민이고 농민의 60~70%가
소작농이었는데 그 소작농에게 땅이 생기는 조치를 취한 것이 바로 북한의 토지개혁입니다.

소작농에게 평생 소원은 내 땅 한평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농민, 소작농에게 북한의 토지개혁은 '열광' 그 자체였을 겁니다.
이런 열기로 인해 친일파가 주도하던 이승만 정권도 어쩔 수 없이 토지개혁이
아닌 농지개혁을 유상몰수 유상분배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북한이 점령한 지역에서도 이러한 토지개혁이 단행되었고
마을마다 '인민위원회'라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이게 바로 북한식 지방자치제도였던 겁니다.
(이게 실질적인 지방자치기구라는데 저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런 제도에서 몇달을
살다가 다시 국군과 유엔군이 치고 올라오면서 각종 부역자 색출 등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하게 된 것입니다. 오죽 민심이 사나왔으면 전쟁중에 지방선거를 치렀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동반자입니다. 실제로 국가권력이
독점이었을때와 형식적이나마 민주화가 이루어진 시점을 비교하면 지방자치가 언제
활성화되었고 언제 억압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결론은 아주 자명합니다.
유신헌법에서 지방자치를 '통일 이후'로 무기한 연기한 것과 4.19 이후에 지방자치가
전면실시되었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매우 중요한 키 포인트가 바로 지방자치의
발전이고 시민의 참여입니다. 아직 '참견'과 '참여'의 의미가 헛갈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속도로 대한민국의 지방자치가 발전한다면 국가 경쟁력에서도 큰 변화를 갖게
될 것입니다.

지방자치를 하면서 왜 자꾸 '민주주의'얘기를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지방자치 05편>을 읽어보십시오. 민주주의가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경찰서의 변화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0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