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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예술인을 만나다] 이수진 맥간공예가

[경기 예술인을 만나다] 이수진 맥간공예가반복 속에 깃든 ‘새로운 재미’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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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16    저작권자 © 경기일보
  ▲ 나무판은 종잇장처럼 얇게 펴진 보리줄기가 하나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일종의 캔버스다. 나무판도 그 색과 결, 광택 등이 고르게 나도록 수 차례의 붓칠을 겪는다. 특히 광택이 나도록 하는 코팅작업은 정확한 온도와 습도가 갖춰진 공간에서 하루에 한 번씩 6~7회에 걸쳐 이뤄진다. 이 작업때문에 외출도 쉽지 않다. 전형민기자  
  ▲ 나무판은 종잇장처럼 얇게 펴진 보리줄기가 하나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일종의 캔버스다. 나무판도 그 색과 결, 광택 등이 고르게 나도록 수 차례의 붓칠을 겪는다. 특히 광택이 나도록 하는 코팅작업은 정확한 온도와 습도가 갖춰진 공간에서 하루에 한 번씩 6~7회에 걸쳐 이뤄진다. 이 작업때문에 외출도 쉽지 않다. 전형민기자  

참 여물다. 작은 체구의 마냥 여리기만 할 것 같은 여자의 손이 그렇다.

그 손끝에서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기고 속이 텅 빈 채 버려진 보릿대도 영근다. 예술작품이 된다.

여자와 보리, 누가 더 먼저 여문 것인지 지나온 20년 세월에 흐릿해졌다. 분명한 것은 여자는 보리와 함께하는 더 단단한 미래를 꿈꾼다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외길 인생을 걸어 온 문화예술인을 만나 재미있게 사는 법을 들여다봤다.

‘맥간공예(麥稈工藝)’의 전통을 잇는 이수진(43) 수석 전수자는 오늘도 보릿대를 손에 잡고 있다.

지난 1993년 첫 만남부터 2015년 지금까지, 보리와 동고동락한 세월이 23년째다. 꽃같은 20, 30대 청춘을 오롯이 쏟았다.

“정말, 젊은 시절 논 적이 없었요. 친구들도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올인했죠. 그만두고 싶을 때에는 ‘과연 이것을 손에서 놓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문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죠.”

긴 시간 맥간공예를 전수하는 것이 힘들고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의 답이다.

말끝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한은 아니다.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도 모르는 맥간공예를 배우고 알리기 위해 달려온 자신을 향한 감탄사에 가깝다.
 

  ▲ 이수진 수석 전수자는 양의 해를 맞아 양 이미지가 그려진 맥간공예 소품을 들고 독자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 이수진 수석 전수자는 양의 해를 맞아 양 이미지가 그려진 맥간공예 소품을 들고 독자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삼성반도체에 근무했던 이 전수자는 맥간공예 동호회에서 취미삼아 보리 줄기를 만지다가 그 매력에 퇴사를 감행했다. 93년부터 본격적으로 맥간공예 창시자인 백송 이상수씨를 스승으로 모시며 맥간공예연구원(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전문강사이자 공예가로 활동해 왔다.

그를 새로운 길로 이끈 맥간공예는 보릿대를 모자이크 기법과 목칠공예기법을 결합해 만드는 독특한 예술장르다. 백송 이상수 선생이 1983년 종이 제조기법에 대한 첫 실용신안을 딴 이래 지금까지 총 7종의 실용신안 등록을 마쳤다.

주재료는 보릿대다. 겨울의 언 땅에서 싹을 틔우고 추위를 견디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6월에 결실을 모두 털어낸 후 남은, 마르고 속 텅빈 보릿대. 이 때 쓸 수 있는 부분은 둘째, 셋째 마디뿐이다.

계약 재배한 보릿대가 5월말쯤 박스채 배달돼 오면 단단히 밀봉해 난로를 피울 수 있는 건조한 겨울이 오기를 기다린다. 보릿대를 바짝 말려야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사용하기까지는 수 차례의 공정이 또 필요하다. 일단 반년 이상 기다려 개봉한 박스 안 보릿대를 모두 삶아 그늘에 건조시키고 바짝 마르기까지 2~3일에 한 번씩 체크한다. 바짝 마른 보릿대는 전수자들의 손을 거쳐 종이처럼 얇게 펴지고, 접착지가 붙고, 빨간색과 초록색 등의 색지로 명암이 생긴다.

디자인 도안은 그야말로 작가적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과정이다. 기술품이 아닌 예술작품이 되는 순간이다. 보릿대를 붙일 도안에는 하나의 큰 이미지를 모자이크처럼 수 십, 수 백개의 조각으로 나눈 선을 그리고 보릿대의 결을 살리는 방향까지 세밀하게 표시한다.
 

  ▲ 백송 이상수(왼쪽에서 세번째)와 예맥회 회원들이 작품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백송 이상수(왼쪽에서 세번째)와 예맥회 회원들이 작품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보릿대의 결 붙이는 방향을 달리하면 작품이 완성된 후 어디에서 보든 입체감이 들게 하는 거죠. 보릿대에 색지를 붙이는데, 그림 그릴 때 명암과 색채를 조절하기 위해 색을 혼합하고 덧칠하는 작업과 같아요.”

길고 정교한 작업이 끝난 보릿대는 액자와 교자상 등 다양한 형태의 나무판에서 예술작품으로서의 자태를 뽐낸다.

이 전수자는 이 모든 과정을 전수받으며 맥간공예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스승의 문하생으로 꾸려진 ‘예맥회’의 대표를 맡아 전시를 열고 맥간공예의 멋을 알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현재 예맥회는 수원, 안산, 서울 강서, 천안, 청주, 음성 등에 지부를 두고 회원 32명이 활동 중이다.

또 자신의 제자들과 뜻을 모아 작품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는 ‘보리사모전’을 매년 열어 나누는 삶을 그려나간다.

이 같은 열정에 전수받은 지 꼭 20년이 되는 해(2012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시상하는 ‘제32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에서 전통부문 특별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해 미술경영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맥간공예를 좀 더 체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자신을 다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전통공예에 비해 역사가 짧은 맥간공예를 전수받고 명맥을 잇는 일이 녹록지만은 않다.

“예맥회 전성기에는 전국에 더 많은 지부를 중심으로 회원이 활동했다. 하지만 회원 대부분이 주부여서 육아를 병행하다가 쉽게 그만두기 일쑤다. (나도)힘들게 애를 키우면서 해왔는데…, 안타깝다. 맥간공예가 발전하려면 회원들이 끈기있게 뿌리를 내려야 하고, 결국 내 숙제다.”

어린 딸을 어려서부터 어린이집과 학원에 맡기며 뒤따른 무거운 자책감에도 지켜온 맥간공예다. 때문에 중도 포기한 주부 이수자들에 대한 아쉬움은 더 크다. 그의 스승 역시 그 마음을 잘 안다. 이 전수자에게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 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이수진은)한 마디로 열심히 하는, 고마운 제자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약이 있는데 그 과정을 공백없이 이어온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젠 사명감이 생긴 것 같다. 가장 아끼는 ‘착한’ 제자가 어떤 풍파와 시련을 겪을 지 모르니 좀 더 강인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백송 이상수)

스승도 아는 힘겨운 외길 인생을 걸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너무 오래돼 모르겠다”며 그는 웃으며 말했다.

“확실한 것은 질리지 않는다는 거에요. 같은 재료에 반복적인 작업 방식이지만 디자인과 완성된 작품은 항상 새롭죠. 새로운 것만큼 설레고 즐거운 것은 없잖아요.”

10년 후, 반복되는 작업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고 만드는 그녀의 여문 손끝이 그려진다.

류설아기자
 

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