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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통닭거리, 착한 성장을 기다리며

수원 통닭거리, 착한 성장을 기다리며

등록일 : 2015-01-05 10:28:06 |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양극화 현상, 이대론 안 돼

“사장님~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아이가 자꾸 보채서....”
“우리 치킨 주문한 것 맞지요. 아, 그런데 언제 나올 런지. 기다리면서 일단 생맥주 한 잔 하시자고요. 사장님 우리 똥집하고 닭발 먼저 좀 주세요”

을미년 새해 첫 주말이던 4일 오후5시, 수원의 명소 통닭거리 중심에 있는 한 통닭집, 이미 3층 규모의 좌석은 인파로 꽉 들어찼지만 입구는 여전히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테이블에 사람이 빠질 때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잽싸게 들어섰다. 지근거리에 있는 두서너 집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닭들이 뜨거운 기름을 품고 있는 가마솥으로 들어갔다. 

그와는 달리 우리가 ‘수원통닭거리’라 칭하는 메인도로에서 살짝 벗어난 통닭집 몇 곳은 한산함을 넘어 쓸쓸함마저 풍기며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년 새해맞이 타종식 때에 정말 바빴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제야타종식이 있기 전 아들까지 나오라하고, 생닭도 평상시보다 꽤 많이 준비했는데.... 너무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사람들이 여기까지 몰려오지 않아 준비한 식재료 반도 소비를 하지 못했어요.”
갑작스런 한파에 사람들이 적게 나오기도 했지만 그나마 큰 곳은 이름값 때문인지 타격이 적었다. 그러나 소규모 닭집들은 대목의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한통닭집 사장의 볼멘소리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들렸다.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성장만을 위한 성장 지양할 때

그 어느 해보다도 절망의 소리가 드높았던 갑오년을 떠나보내고 새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암울하다는 소식이 주를 이뤘다. 대안책으로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성장만을 위한 성장은 지양하고, 부(富)의 쏠림현상을 타결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과 문화발전, 환경보존 등 다양한 가치를 함께 성장(2015.1.3 조선일보 ‘자본주의가 갈 길’ 일부 인용)시키는 지속가능한 성장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약자와 빈자 모두를 아우르는 성장, ‘착한 성장’이라는 것이 어디 쉬운 말인가. 지속가능한 성장단계로서 자본주의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데 내가 살고 있는 이웃, 우리사회를 촘촘히 둘러보지만 결코 쉬워보이지 않는다. 수원 통닭거리만 봐도 대번 드러나듯이.

영업의 비밀은 한 끗 차이?

거대공룡에 해당하는 치킨 집과 소규모로 운영하는 치킨 집을 단순 비교해보자. 물론 사업의 비밀이 있는 만큼 고객의 입장에서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을 따져보기로 한다. 운영체계, 영업의 차이점인가, 아니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맛의 차이인가. 한 장소에서 3시간이상 눌러앉아 지켜봤다. 과연 그들이 모두 ‘윈-윈’하는 착한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요원한 일일까.


-케이스 1 
원조이자 맛 집으로 입소문을 타고 체인점까지 보유하고 있는 점포들이다. 수원통닭거리의 대명사 A통닭, B통닭, C통닭, D통닭 저마다 최대 면적율을 자랑하며 주말엔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선 인파로 빈 좌석은 찾기 힘들다. 
모임장소로 선택된 A통닭집, 테이블 두 개를 합하기까지 옆과 앞, 뒤를 둘러보며 눈치싸움을 벌인 끝에 겨우 합석이 가능했다.

치킨 종류는 두 가지, 양념과 후라이드 뿐이다. 여느 프랜차이즈 다양한 품목에 비해 초라하지만 맛이 월등하고 양이 푸짐하다. 또한 가격이 2~3천원 저렴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보통 가족단위는 음료수와 치킨, 중년 아저씨들은 소주와 치킨, 연인들과 젊은 친구들은 '치맥' 이른바 치킨과 맥주가 주를 이뤘다. 
이들 대부분은 치킨 맛을 보기위해 찾은 고객들이라 치킨만 다 먹으면(먹다 남은 것은 모두 포장해 감) 일어선다. 영업성공의 열쇠와도 같은 불문율, 비교적 좌석 회전율이 빨라 매출에 도움을 준다. 직원들 서비스도 규모에 비해 나쁘지 않다. 

-케이스 2
E통닭, 올해로 3년째, 딸랑 테이블 7개를 보유하고 있는 통닭거리 외곽 점포, 면적이 넓지 않아 직원도 없이 부부가 운영해 나간다. 남편과 아내가 번갈아가며 닭 튀기고 나르고 청소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큰 규모로 영업을 확장하려해도 인건비와 월세 등 매출 총이익을 고려할 때 오히려 소규모로 운영하는 것이 더 이익이란 생각에 퍼뜩 옮기기도 쉽지 않다. 이들 부부처럼 인근 소규모 닭 집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 가족들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작은 점포의 강점이라면 닭 튀기는 기름이 깨끗하고 또한, 치킨이외의 품목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바쁘지 않으니 서비스도 탁월해 단골고객이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치킨만 먹고 조속히 가는 큰 규모의 점포에 비해 주류(酒流)가 우선이라 좌석 회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한 달 영업 순이익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규모면에서 볼 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경쟁을 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작은 점포와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만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해법제시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 드셔 보세요, 새로 개발한 메뉴, 골뱅이 무침인데 맛 평가 좀 해 주세요!”
오직 양념맛과 후라이드 맛 통닭만을 취급했던 F통닭집, 시판 전 신 메뉴라며 두 접시를 내놓았다. 순간 모두가 지금까지 먹고 있던 치킨을 내려놓고 골뱅이 무침으로 손이 옮겨졌다. 이곳이 통닭집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새콤달콤하고도 강한 매운 맛에 이끌렸다. 

지금도 남부러울 것 없이 장사가 잘되는데,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점포를 리모델링하고 신 메뉴 개발에 나서는 오너의 혁신적 발상이 위대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의 집념이 어쩐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 끝에 있는 소규모 통닭 집 사장의 탄식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희망찬 새해, 사회적 책임이 있는 착한 성장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