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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지 못해 마누라한테 미운 털이 박혔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내가 좋아 택한 일이고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겁니다.”
행운이 따르고 액운을 물리친다는 말(馬) 편자와의 인연을 20여 년간 붙들고 그의 인생 삼분의 일 넘는 세월을 편자공예작품에 매달려 온 더지엘(TheGL) 이승룡(57) 장인과의 만남은 지난 17일 캘러리 ‘올댓홀슈’(AII That Horseshoe)가 자리한 과천시 막계동에서 이뤄졌다.
주변에 서울대공원과 국립과천과학관이 위치해 있는 작업장을 겸한 갤러리는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지난 2002년 폐가에 가까운 집을 임대해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리모델링해 완공한 갤러리는 회색 세모형 지붕과 전체 벽면을 갈색 원목으로 처리해 고풍스런 옛스럼의 멋을 지니고 있었다.
집착에 가까운 말에 대한 사랑을 대변하듯 수천 개의 편자로 담을 둘러쳤고 대문은 승마 장애물비월에 사용하는 게이트로 대신했다.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무척 개방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판로개척이 쉽지 않아 쉽게 다가서는 사람이 없는 편자공예에 이 대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직장 일로 해외 출장 시 말과 관련된 기념물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둔 후 무슬림 종교 집회용 나팔모양의 혼 스피크를 수출해보기도 하고 반도체사업에도 손을 대봤지만 부침을 거듭해 직원들을 정리하고 문을 닫았지요. 독자적인 사업을 고민하던 중에 예전부터 취미생활로 말이 그려진 우표와 관련된 골동품, 예술품 등 갖가지 제품을 모은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일는지 그만 생계 수단으로 삼아버렸네요.”
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이었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좋고 새 것보다 헌 것이 좋았어요. 사람의 삶에도 흔적이 있듯이 옛 물건들에 묻어나는 자취를 음미하노라면 심취해집니다. 아마도 아버님이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오신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영향도 있겠지만 타고난 성향 탓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갤러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의 소유물인 소구유가 마당 한켠에 자리해 있고 80년 이상된 마차 수레바퀴 4개를 이용한 응접용 탁자가 전시실에 공간에 자리한 것을 보곤 그의 말이 가식이 아님을 느껴진다.
장인의 옛것에 대한 애착은 재즈, 클래식, 가요, 팝 등 LP판 3만장을 모은 것으로도 짐작케 하는데 이들 음악들은 제법 널찍한 갤러리 공간에 은은히 울려 퍼져 70·80세대의 감성을 파고들어 잠시나마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한다.
또 야외용 스피커를 통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베르디의 ‘사계’ 등을 들려줘 산책객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그가 오랜 기간 수집한 전통마구 안장, 토마, 마령, 마상배, 금동, 청동마상, 전통대장간용품, 말 우표, 경주용마차, 마차바퀴 등은 모두 7만6천여 점에 달해 우리나라와 세계의 말 문화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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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돈을 투자해 모은 유물과 기념품들은 계획은 세웠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한 말 테마박물관을 건립하면 전시할 예정입니다. 박물관은 대장간, 조각공원, 야외 카페테리아, 체험학습장도 갖춰 1일 관광코스론 볼거리, 즐길거리를 풍성하게 펼쳐놓을 작정입니다.”
전자제품 부품회사 사장 시절 인도의 한 상점에서 우연히 접한 매력에 끌려 지금까지 수집한 170만개 편자는 박물관 외벽 장식용으로 사용돼 경기도내 또 하나의 명물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그의 편자공예는 그 어떤 기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모든 공정을 오직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순전히 편자란 하나의 이미지에만 매달려 가지를 친 공예품은 브로치, 목걸이, 반지, 휴대용용 장식 고리, 액자, 옷걸이, 카우보이모자, 도어 록, 와인걸이 등 종류가 다양해 지금까지 만든 500여개의 제품이 다소 비좁다는 느낌이 드는 그의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그렇게 세상 빛을 본 제품은 누구나 한번 보는 순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중 네잎클로버와 편자를 접목시킨 작품은 행운이 겹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구상한 제품은 갤러리를 찾아온 방문객이나 지인들에게 선을 보여 반응이 시큰둥하면 더 이상 만들지 않았습니다. 선호도가 높아 상품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시제품을 생산해 본격적인 판매에 나서지요.”
그의 첫 판촉활동은 과천시절 이전에 만들어진 견품을 경기도와 한국마사회, 미국 올스슈 카지노 회장에게 보낸 것으로 시작했으나 반응이 온 것은 마사회 한곳으로 시원치 않았다.
그러나 좌절을 모르는 타고난 기질은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서울경마공원에 기념품점을 개설하고 제주도 말 축제나 부경경마공원, 말 산업 박람회에 작품을 전시하는 등 중단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결과 전직 대통령이나 전 경기도지사, 유명 정치인, 운동선수 등이 그가 만든 편자제품을 지녔고 마주, 조교사, 기수들이 구매에 동참하는 성과를 거둔데 이어 일반 시민들도 아름아름 알고 찾아와 사가고 있다.
“앞으로 지하철 경마공원역에 한국마사회 협조를 받아 전시공간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국내는 말 공예품이 아직 초보단계지만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외국은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한국도 언젠가는 정착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그토록 집착해온 그간의 소회를 묻는 기자의 물음에 “처음엔 그냥 좋아서 했는데 지금은 되돌아가기엔 너무 온 것 같고 결코 실패했다는 생각은 갖지 않는다”며 “외롭고 힘든 세월을 오래 걸어왔지만 언젠가는 가치 있는 일을 해온 인물이란 점을 평가받은 날이 올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오로지 말과 편자에 빠져 돈키호테처럼 살아온 나를 오랫동안 믿고 이해해준 처와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는 말로 그간 마음 고생한 아내를 향한 미안한 감정을 대신했다.
/과천=김진수기자 kjs@ <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