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카페는 21세기에 들어와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자전거를 타는 인구와 카페의 증가 속도는 지금도 눈부실 정도로 빠르다. 이 두 가지가 접목돼 탄생한 것이 바로 자전거 카페다. 자전거 라이더를 위한 도심의 쉼터인 자전거 테마 카페를 소개한다.
◇ 비씨커피 스테이션, 자전거 커피 바 정거장
자전거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비씨클레타(Bicicleta)에서 이름을 딴 비씨커피(Bici Coffee) 스테이션은 이재훈(36) 씨가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원남동사거리 모퉁이에 있다. 카페에 앉으면 사거리 건너편으로 창경궁 담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월~금요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이용하기에 알맞다.
비씨커피 스테이션 앞에는 자전거 석 대가 놓여 있다. 이 씨가 최근 구입한 일본 파나소닉 중고 사이클은 매끈하고 날렵한 몸을 테라스에 비스듬히 기댄 채 손님을 맞는다. 컵 6개를 꽂을 수 있는 캐리어가 핸들 앞에 설치된 배달용 사이클은 투박한 느낌에 땀내가 풍겨오는 듯하다.
카페 외벽에 걸어 놓은 미니벨로는 이동식 커피 바를 위해 사용한다. 이 씨는 토, 일요일(간혹 평일)에는 나무로 만든 상자형 트레일러를 미니벨로에 연결해 서울 도심 곳곳을 찾아다니며 커피 바를 운영한다. 트레일러 안에는 핸드 밀(Hand Mill), 캠핑용 버너 등 드립 커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와 재료가 들어 있다. 한강 자전거도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서울 농부의 시장 등 노점 커피 바를 차릴 장소에 도착하면 커피 트레일러 ‘범블비’(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로봇)는 이름에 걸맞게 순식간에 커피 판매대로 변신한다.
이 씨가 2012년 9월 한강변에서 자전거 커피 노점을 시작해 비씨커피 스테이션을 열기까지 가장 큰 영감을 받은 것은 미국 뉴욕의 킥스탠드 커피(Kickstand Coffee)다. 젊은 바리스타들이 자전거에 커피를 접목시킨 이동식 카페로 뉴욕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자전거나 커피도 음악처럼 라이프스타일의 하나라고 봅니다. 비씨커피 스테이션은 스토리가 있고 철학이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합니다.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가면 언젠가 비씨커피의 정거장(스테이션)을 런던, 파리, 취리히에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씨의 자전거 커피 바 장소는 비씨커피 페이스북(www.facebook.com/BiciCoffee)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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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씨커피 스테이션은 자전거 이동 커피 바의 차고지 내지는 베이스캠프에 해당된다. 카페765는 라이더뿐만 아니라 일반 손님도 많이 찾아온다. 카페 앞에 비치된 미니벨로는 무료 시승이 가능하다. |
◇ 카페765,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지척
카페765는 지난해 6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문을 열었다. 카페 이름에는 별다른 뜻이 없다. 주인장 김종상(30), 배진희(29) 커플의 성과 이름 획수가 7획, 6·5획으로 동일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카페765가 자리한 마포구 성지3길 일대는 저층 연립주택과 작은 사무실이 많은 지역으로 규모와 화려함으로 무장한 일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기에는 입지 조건이 좋지 않다. 하지만 자전거 카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강 자전거도로 상수 나들목에서 5분 거리다.
“원래 초콜릿 공방이 있던 자리입니다. 현재 사는 곳은 도봉동이지만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가깝다는 점을 고려해 여기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김 씨는 카페765를 열기 전 자전거 판매업체에서 일했다. 미니벨로 매장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며 사내 자전거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퇴사 후에는 페이스북 자전거 동호회 ‘잔차당’에 가입해 주말이면 북악 스카이웨이를 오르곤 했다. 카페 개업 후에는 시간 여유가 없어 라이딩을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카페765는 연중무휴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된다. 단 목요일은 오후 2시에 문을 닫는다. 이용객은 평일 50여 명, 주말 80여 명이다. 전체 손님 중 30%는 자전거 라이더로 20~30대 남성이 대부분이다. 개업 초기에는 일반 손님보다 자전거 라이더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동호회에서 김 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던 지인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단체로 카페765를 찾았다. 광고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소문을 통해 한강 자전거도로 인근의 가볼 만한 쉼터로 자리 잡았다.
“초반에 자전거 타는 분들이 많이 놀러 와 그분들에게 혜택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헬멧을 쓰고 오면 500원, 흰색 저지 하의를 입고 오면 1천 원을 할인해 주고 있습니다.”
라이더를 위한 혜택과 서비스는 할인뿐만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치는 경우에 필요한 응급약품이 비치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타이어 공기 주입 펌프와 펑크 수리를 위한 패치도 상시 구비돼 있다. 미니벨로 매장 근무 경력을 활용해 간단한 수리는 김 씨가 도와주기도 한다.
카페765 앞에는 시승용 자전거도 비치돼 있다. 유명 브랜드 자전거 수입·판매업체인 산바다스포츠가 제공한 미니벨로(브롬튼, 스트라이다) 두 대를 시승해 볼 수 있다. 또 자전거 액세서리도 구입할 수 있는데 가격은 손목 밴드 8천 원대, 물통 1만 원대, 라이트 2만 원대다.
카페765는 해가 지면 작은 극장으로 변한다. 카페 한쪽 벽면을 스크린 삼아 빔 프로젝터로 자전거 대회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시간 여유가 있는 라이더라면 커피와 함께 단호박 타르트, 호두 파이, 브라우니, 스콘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시켜 놓고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카페765는 지난 6월 7일 개최된 카페 그란폰도(Cafe Granfondo) 행사에 참가했다. 카페 그란폰도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서울 시내 5개 자전거 카페를 돌며 스탬프를 받으면 완주가 인정되는 비경쟁 이벤트다. 완주자에게는 무료 음료 쿠폰과 함께 경품 추첨 기회가 제공됐다. 올해 카페 그란폰도에는 카페765를 비롯해 벨로마노, 벨로라떼, 다두, 러프커피 등이 참가했다. 상당수 라이더들이 5개 자전거 카페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카페765를 출발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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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로마노 내부 벽면에는 클래식 자전거들이 전시돼 있다. 이탈리아 장인(匠人)이 만든 도금 자전거도 만날 수 있다. |
◇ 벨로마노, 자전거 카페의 원류
벨로마노(Velo Mano)는 자전거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벨로(Velo)와 손, 도움 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마노(Mano)의 합성어다. 서천우(39) 씨가 2010년 4월 문을 열었다.
현존하는 자전거 테마 카페 중 가장 오래된 벨로마노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다. 한강 자전거도로와 이어진 광진교 북단에서 지척이다. 카페 앞 도로 건너편에는 광진구민체육센터가 자리해 있다.
서 씨는 벨로마노를 열기 전부터 자전거와 인연이 깊었다. 경륜장이 올림픽공원에서 광명시로 이전하기 전 경륜정보잡지에서 일했다.
“국내 최대 미니벨로 동호회인 ‘내 마음 속의 미니벨로’에서도 2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사실, 자전거 카페는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동호회는 자전거만 타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딘가 찾아가서 먹거나 쉬기도 하는데 당시만 해도 서울에는 자전거를 타고 마땅히 갈 만한 데가 없었습니다.”
서 씨는 벨로마노 창업 후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중단했다. 동호회는 비상업적인 성격의 모임인데 자칫 카페 홍보를 위해 동호회에 들어왔다는 시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벨로마노는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점차 자전거 라이더들 사이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카페 운영 초기에는 전체 이용객의 10%에 불과했던 라이더 비율이 지금은 90%를 넘는다. 토·일요일에는 하루 150~200명의 라이더가 찾아온다. 자전거 타기에 좋은 시기인 5월부터 10월까지는 평일에도 30~40명이 벨로마노를 찾는다. 카페 이름처럼 자전거 라이더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 점이 호평을 받았다. 카페에 기본 공구가 비치돼 있어 타이어 펑크 수리 등 간단한 정비가 가능하다. 또 헬멧 착용 시 500원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땅콩빙수(6천 원)는 여름철 벨로마노에서 인기가 가장 높은 메뉴다. 한 손님이 중국의 어느 호텔에서 맛본 후 서 씨에게 메뉴로 만들어볼 것을 권유해 탄생했다. 행주산성 잔치국수, 미사리 초계국수와 함께 한강 자전거도로 권역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별미로 통한다. 겨울에는 와인에 향신료를 넣어 펄펄 끓인 뱅쇼(7천 원)가 땅콩빙수의 자리를 대신한다. 신고 업종 형태가 일반음식점이라 맥주도 판매되는데 사고 예방을 위해 1인당 최대 330㎖짜리 두 병까지만 마실 수 있다.
벨로마노에선 자전거 관련 용품의 판매 대행도 이뤄진다. 미니벨로 라이더를 위한 헬멧, 자전거 부품을 이용해 만든 액세서리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또 라이더들이 사용하지 않는 자전거 용품을 교환, 판매할 수 있는 벼룩시장도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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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로라떼는 복층 구조로 1층은 카페 주방과 자전거 수리·판매를 위한 공간이고 2층은 쉼터 겸 회의 공간이다. |
◇ 벨로라떼, 헬멧 무료 제공
자전거와 우유 탄 커피를 각각 의미하는 벨로와 라떼를 결합한 자전거 카페 겸 매장인 벨로라떼는 이규원(28) 씨가 지난해 2월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열었다.
벨로라떼 출입구에는 A4 용지에 인쇄된 안내문이 하나 게시돼 있다. ‘헬멧을 쓰지 않은 라이더의 자전거는 정비하지 않습니다. 헬멧을 가지지 않은 분께는 자전거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헬멧을 쓴 모든 분들께는 음료를 10% 할인해 드립니다.(하략)’ 헬멧 착용이 자전거 라이딩의 필수 요건으로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주인장 이 씨의 마음이 담긴 게시문이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처음 타기 시작했을 때부터 헬멧을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헬멧 안 쓰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헬멧을 쓰지 않으면 펌프조차 빌려주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욕을 엄청 먹었습니다. 자전거를 차별한다고 욕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사실은 자전거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 헬멧을 썼나, 안 썼나를 구분할 뿐입니다. 10만 원짜리를 타나 1천만 원짜리를 타나 사고가 나면 다치는 것은 똑같습니다. 헬멧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넘어져 보면 압니다.”
벨로라떼는 헬멧 미착용 라이더들과의 마찰을 상쇄하기 위한 방편으로 헬멧 무료 제공 사업을 벌이고 있다. 벨로라떼가 위치한 길음동을 비롯해 인근 종암동, 돈암동, 월곡동, 정릉동 지역 주민이 자전거를 타고 와 신분증을 제시하면 하루 2명씩 헬멧을 무료로 나눠준다. 또 관내 소방서, 군부대, 경찰서를 찾아가 필요한 수량만큼 헬멧을 전달했다. 현재까지 무료로 나눠준 헬멧이 300여 개에 달한다.
이 씨는 산악자전거, 사이클, 하이브리드, 미니벨로 등 모든 종류의 자전거를 섭렵한 마니아 출신이다. 국내 유명 자전거도로는 빠짐없이 순례했다. 벨로라떼 개업 전에는 중랑구 면목동에서 3년 동안 자전거 매장을 운영했다. 벨로라떼에 대한 아이디어는 2011년 두 달 동안 미국을 여행하면서 얻었다고 한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북부의 뉴욕까지 약 3천㎞ 구간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만났던 자전거 카페 겸 매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동네 사람들이 자전거에 음식을 싣고 와 매장 안에서 대화하며 즐기는, 지역민을 위한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벨로라떼 역시 단순한 카페보다는 자전거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합니다. 자전거 타는 동네 분들이 언제라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죠. 특히 젊은 층이 술집이나 유흥문화로 이탈하지 않고 자전거를 통해 지역사회의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벨로라떼는 자전거 카페 겸 매장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자전거와 부품을 판매하고 자전거 수리도 이뤄진다. 장갑, 고글 등 패션 용품을 비롯해 자전거에 연결하는 유모차, 트레일러도 구입할 수 있다. 자전거 시승도 가능하다. 최근 산악자전거와 미니벨로를 제치고 대세로 떠오른 사이클 12대를 구비해 놓았다.
벨로라떼는 한강, 남산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자전거 라이딩 코스인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가깝다. 북악 스카이웨이 아리랑고개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다. 연중무휴이며 월~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요일과 주중 휴일은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