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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그 많은 공기업 빚 누가 늘렸나

 

생생확대경]그 많은 공기업 빚 누가 늘렸나

입력시간 | 2013.12.17 09:09 | 김정민 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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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모래성 깃대 쓰러트리기 놀이’(정확한 놀이 명칭은 모르겠다)를 해봤을 것이다. 모래를 쌓은 뒤 깃대를 꽂고 순서대로 자기 쪽으로 모래를 끌어모으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다. 마지막에 깃대를 쓰러트리는 사람이 진다.

공기업 부실은 이 깃대 쓰러트리기(정확하게는 쓰러트리지 않기) 놀이와 닮았다.

조세재정연구원이 분석한 지난 15년간(1997~2012년) 공공기관별 부채 증가액을 보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123조4000억원으로 공기업 전체에서 1위다. 이어 한국전력(65조7000억원)·예금보험공사(45조9000억원)·한국가스공사(28조5000억원)·한국도로공사(19조7000억원)·한국철도시설공단(17조3000억원)·한국석유공사(15조9000억원조)·한국철도공사(14조3000억원) 등 순이다.

수백 조원이 넘는 부실이 방만 경영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LH가 ‘영구임대→국민임대→보금자리→행복주택’으로 이어지는 역대 정부의 공공주택 정책을 수행하다 빚더미에 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한국전력도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을 수십 년간 감내하면서 부채를 키웠다. 또 석유공사를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들은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도맡아 하다 빚더미에 앉았다.

경제대통령을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암초에 발목이 잡히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기 부양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모래성의 모래들을 깃대가 쓰러지기 직전 수준까지 긁어갔다. (2008년 290조원이던 295개 공기업 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493조원으로 늘었다.)

앙상한 모래성을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는 황당했을 게다. 최근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내놓고 현재 220%인 공기업 전체의 부채 비율을 임기 내에 200%까지 줄인다는 목표 아래, 공기업별로 자구 계획을 받아 이행 실적이 미진한 공기업에 대해선 사장 해임권고, 보수 동결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겨울 문턱에서 갑작스레 심한 통증을 호소해 응급실로 실려갔던 기자의 모친은 한 달 가까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병명을 몰라도 치료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항생제 투여에서부터 물리치료까지, 다양한 조치를 해보고 이 중 효과가 있다 싶은 치료를 반복하면 증상은 호전된다. 단, 환자가 그동안 겪는 고통과 비용, 시간은 계산 밖이다.

이번 대책이 그 짝이다. 최근 정정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스크린 경륜장 폐쇄를 결정했다. 이곳은 연간 27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공단의 주 수익원 중 하나다.

‘자기 밥그릇을 차버리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진 것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압력에 시달린 문화체육관광부가 폐쇄를 종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송파구는 구청장을 비롯해 지역구인 ‘갑·을·병’ 의원이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이 중에서도 송파구 갑의 박인숙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를 담당하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다.

정 이사장 또한 새누리당과 인연이 깊다. 군 장성 출신인 그는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뉴라이트 안보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2007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선대위 국방특위 특별보좌역으로 활동했다.

이처럼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무책임하게 공기업 경영에 개입해온 정부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조직의 미래보다는 정권에 충성한 공기업 사장들이 500조원짜리 빚더미를 만들어낸 주범이다.

공기업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지만 정권 말이면 제자리거나 오히려 악화돼 있기 일쑤였다. 정확한 진단 없이 치료부터 강행하는 한 공기업의 위기는 영원히 현재 진행형이다. X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