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여러가지의 칸 ===/◇인물.기관.단체.회사.조직.기타

2013 국내·국제 주요인물

 

2013 국내·국제 주요인물
데스크승인 2013.12.15  | 최종수정 : 2013년 12월 15일 (일) 11:31:04   

<2013 인물> 국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임기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외교 지평을 넓혔고 북한에 원칙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와 함께 복지 재원 확보와 일자리 창출 등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6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문제를 계기로 다시 정치 중심권에 들어섰고 최근에는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헌정사상 최초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는 현역 의원으로 기록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북한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처형돼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졌다.

 경제 분야에서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했고,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되는 등 명암이 교차했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일본 안마업소 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불명예 사퇴를 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이석채 KT 회장, 채동욱 검찰총장 등도 논란 속에 물러났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입에도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이두식 홍익대 회화과 교수, 박노수 화백, 연극배우 강태기, 홍근수 목사, 소설가 최인호, 박철수 감독 등 문화종교계 인사가 세상을 떠났고, 박창신 신부는 시국미사 발언으로 하반기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가수 조용필, 프로야구 선수 류현진, 골프선수 박인비, 축구 스타 손흥민 등은 국내외에서 대중문화와 스포츠계를 빛냈다.

 

 ◇ 정치·외교·안보

 ▲ 박근혜 대통령 =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 2월25일 제18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2007년 대선 도전에 실패한 이후 5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승리,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올랐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부녀(父女)가 모두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취임 후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4대 국정기조로 삼고 분야별 세부 국정과제를 설정해 국정에 매진해왔다.

 또 외교적으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한 차분하고 원칙적인 대응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증가하는 복지 수요와 이를 위한 재원확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취임 첫해 내내 인사 난맥상에 시달려야 했다.

 ▲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 10·30 경기 화성갑 보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현역의원 가운데 최다선인 7선 의원으로 여의도에 귀환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사건'과 2008년 '친박연대 고액헌금 사건' 등으로 두차례나 형사처벌을 받았고, 공천과정에서 일부 당내 소장파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여의도 재입성에 성공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 캠프의 상임고문을 지낸 '거물급'이자 친박(친 박근혜계) 원로그룹의 핵심 인사다. 특히 18대 총선을 앞두고는 친박연대를 출범시켜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을 주도한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국회 재입성 후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더 큰 역할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특히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과 관련한 행보가 주목된다. 무소속으로 활동에 제약이 있는 국회의장보다는 당 대표를 염두에 두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 새누리당 친박(친 박근혜계)의 좌장으로 4·24 재선거(부산 영도)를 통해 5선 의원으로 여의도에 재입성했다.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하위 25% 배제' 원칙으로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백의종군 선언으로 불출마를 선택했던 그가 금의환향한 것이다.

 한때 친박 좌장으로 통했지만 2010년 '세종시 정국' 때 박근혜 대통령의 세종시원안고수와 달리 일부 독립기관을 세종시로 옮기는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박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사실상 결별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정권창출의 일등공신 반열에 올랐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은 국회 재입성 이후 당내 구심점으로 떠오르며 차기 당권 주자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 의원은 당내 '근현대역사교실'과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퓨처라이프포럼' 등의 모임을 잇따라 만들어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 민주당 문재인 의원 =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공식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한 행보를 보였으나, 6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문제가 다시부상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는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던 중, 긴급 성명을 통해 대화록 원본과 녹음테이프, 회담 준비 자료 등을 모두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여야는 성명을 계기로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열람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는 '친노' 세력의 재결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미(未)이관됐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성명 발표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적잖은 상처를 입었으며, 이와 관련해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출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간담회를 열고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으며,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를 출간해 "지난 대선은 공정성과 정당성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등 활동폭을 조금씩 넓히고 있다.

 ▲ 무소속 안철수 의원 = 지난 대선 이후 미국에서 칩거하다 3월에 귀국, 4·28재보궐선거에서 노원병에 출마, 당선하며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6월에는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출범시키고 새정치를 선보이겠다고 선언하며 세력화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야심차게 영입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직에서 사퇴하고, 다른 인재영입 작업에 대해서도 '이삭줍기'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며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화록 정국에서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자 일부에서는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국가기관 선거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을 제안하며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새정치추진위원회를 만들며 창당 행보를 본격화함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주목받고 있다.

 지방선거 전에 얼마나 새롭고 영향력 있는 인물을 영입할지가 관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민주당 김한길 대표 = 5·4 전당대회를 통해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취임 후 당사를 10분의 1 규모로 축소 이전하고 전당원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는 등 혁신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논란이 거세지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마저 파행하자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마련하고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정국이 풀리지 않자 천막에서 노숙투쟁을 벌였으며, 이후 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안,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를 포함한 3자회담을 성사시켰다. 다만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사과나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등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원내외 병행투쟁으로 야당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분투했으나, 이를 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 측에 야권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 헌정사상 최초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는 현역 의원으로 기록되며 정국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대리투표 사태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발언 등으로물의를 빚었으며, 올해 8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종북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정원의 체포동의안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 5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회합에 참여해 '비상시국에 연대조직을 빨리 꾸릴 것 ', '레이더기지나 전기시설 등 주요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 등을 회원들에게 전달했다.

 결국 국회는 9월4일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켰으며 이 의원은 수원구치소에 수감돼 현재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이 의원 체포 후에도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됐으며 11월 정부는헌정사상 처음으로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 최윤희 합참의장 =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군 출신으로서 합참의장에 올랐다.

 비 육군 출신이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 된 것은 1993년 합참의장을 지낸 이양호 전 국방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해군사관학교 31기로 해군 작전사령부 작전처장, 5전단장, 해군참모차장을 거쳐2011년부터 해군참모총장을 맡아오면서 정책 및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해군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어려움을 겪던 해군을 안정시켰고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을 통해 해상 방위태세를 강화시킨 것이 합참의장 발탁 배경으로 꼽혔다.

 지난 10월 16일 취임식 때는 "적이 도발한다면 응징 능력을 사용할 강한 의지를가지고 있다"며 북한에 대해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 북한

 ▲ 장성택(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12월 12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에서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지난 40여 년간 북한 정권의 '2인자'로군림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비서의 남편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1970년대 초부터 그의 집권 기간 내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1970년대 초반과 2004년에 사생활과 분파행동 등을 이유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매번 재기에 성공했다.

 2009년에는 김정은 체제의 산파역할을 했고, 김정은 정권 출범 후에는 어린 최고지도자의 후견인으로서 주요 정책과 인사를 주도하며 막후 실세의 지위를 굳혔다.

 2002년 신의주 행정특구를 직접 나서서 지휘했던 장 부위원장은 최근 경제개발구 등 경제개방 정책을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 등을 이유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출당·제명된 지 나흘 만에 사형되면서 북한사에 '반역자'로 남게 됐다.

 ▲ 최룡해(인민군 총정치국장) = 김정일 체제에서 정치적 부침을 겪었지만, 집권 2년차를 맞는 김정은 정권에서는 군부의 최고 실세로 자리 잡았다.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에 불과했던 그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공식 출범한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비서,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권력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한 작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군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 요직을 모두 꿰차며 군부 2인자로자리매김했다.

 지난 5월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방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형식의 대화'를 원한다는 북측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숙청됨에 따라 북한 권부 내에서 최고 실세로 독주가 예상되고 있다.

 장 부위원장과 양대 축을 형성했던 최 총정치국장은 정책적으로 장 부위원장과 갈등하며 사실상 이번 숙청의 배후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경제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사임한 손경식 회장의 후임으로 8월 대한상공회의소 임시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임됐다.

 세계 경제 불황이 지속되고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내 최대 종합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아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SK·한화·CJ·태광그룹 등 대기업 오너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고조되는 재벌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사람을 중시하는 '인재 경영', '소통 경영'으로 재계에 잘 알려진 박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정부와 기업 간의 소통과 기업들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을 포함해 4명의 상의 회장을 배출하게 됐다.

 박 회장에 앞서 선친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전문경영인으로 두산그룹 총수가 된 고 정수창 전 회장, 형인 박용성 전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각각 활동했다.

 ▲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부적절한 기업어음(CP) 발행과 계열사간 자금거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시 12회로 검사 생활을 하다가 이양구 동양 창업

주의 맏사위가 되면서 기업인으로 변신, 2001년 현 회장의 동서인 담철곤 회장의 오리온 그룹과 분리되면서 시멘트, 금융 사업을 중심으로 동양그룹을 이끌어

왔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현 회장은 계열사의 기업어음 만기도래일이 다가오자 지난 9월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거부당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 이재현 CJ그룹 회장 = 박근혜 정부 들어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됐다.

 삼성가(家)의 3대 장손이기도 한 이재현 회장은 CJ그룹을 현재의 위치에 올린 창업주이기도 하다.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장남이지만, 이건희 삼성 회장과의 후계 구도에서 밀리며 사실상 제일제당만 받아들고 그룹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이후 CJ그룹은 재계 서열 14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2008년 그룹의 전 자금부장이 살인청부 혐의로 기소돼 그룹의 비자금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 회장의 이름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CJ그룹은 차명 재산이 이병철 선대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세금 1천700억원을 뒤늦게 납부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이 회장이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

 하지만 올해 CJ그룹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의 탈세 의혹에 연루되면서 이 회장은 결국 검찰 수사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미갤러리를 통해 이 회장 일가가 해외에서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리거나 거래 내역을 누락하는 수법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 또는 세탁했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

 결국 이 회장은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운용하면서 2천78억원의 횡령·배임·탈세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아 구속 기소됐다.

 이 회장은 이후 신장 이식 수술을 이유로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아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만성신부전증, 고혈압, 고지혈증과 함께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다. 샤르코-마리-투스는 손과 발의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병이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골목 상권 침해 등을 이유로 유통 업계 총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올해 국감장에 섰다.

 정용진 부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1남1녀 중 장남이다.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사학과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1995년 27세의 나이에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했다. 이후 1997년 기획조정실 상무, 2000년 경영지원실 부사장을 거쳐 2006년부터 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정 부회장은 최근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그룹의 주력인 이마트가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결국 올해 국감장에 서게 됐다.

 신세계의 상품 공급점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변종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라는논란과 함께 이마트가 협력 업체의 조리 식품 제조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당초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증인 신청 명단에 포함됐다가 막판에 제외됐었다.

 대신 전문 경영진인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가 국감에 출석했다.

 그러나 허 대표가 신세계그룹의 불공정 거래 논란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결국 정 부회장이 국감에 서게 됐다.

 정 부회장은 국감에서 SSM 의혹을 받는 상품 공급점에 대해 "사업을 일절 중단하겠다"고 밝혔으며, 허 대표에 대해서는 "직원 교육을 잘못시킨 제 책임이 크다"며사과했다.

 정 부회장은 작년 국감 증인으로 불렸으나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을 거부해 결국 재판에서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 남민우(51)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 2000년대 벤처 붐을 이끈 벤처1세대 대표주자로 6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청년위원회 위원장 임명에 앞서 5월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수행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3월 박 대통령이 정보방송통신 융합 분야 중소벤처기업인 서울 서초동의 '알티캐스트'를 방문할 때 배석하기도 했다.

 8월 인터넷 산업 관련 협회들이 회원사들과 협력해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조직한 벤처기업 상생협의체의 초대 운영위원장으로도 선출됐다.

 전북 익산 출생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3년 다산네트웍스를 설립한 뒤 국내 통신장비 분야 1위 기업으로 키워내 2010년 벤처기업대상인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로 활동하며 창업콘서트에서 특강을 하는 등 청년의 취업과 창업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벤처기업협회장, 한국네트워크산업회 회장 등도 맡고 있다.

 ▲ 이참(59) 前 한국관광공사 사장 =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승승장구하며 공공 기관인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올랐으나 11월 일본 안마업소 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자진 사퇴했다.

 1986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독일인으로, 1994년 드라마 '딸 부잣집'에 출연하는 등 방송인으로 얼굴을 알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공직에 발을 디뎠다. 문화관광부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 서울시 홍보대사, 기획예산처 혁신 자문위원 등으로 일했다.

 그러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됐고 2009년 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돼 귀화 출신으로는 최초로 공공 기관 수장에 올랐다.

 후임 사장 임명이 미뤄지면서 모두 4년 3개월 넘게 '최장수 관광공사 사장'으로재직하는 기록도 남겼다.

 하지만 지난해 설 연휴 일본 방문 당시 도쿄의 성인 업소에 출입했다는 논란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 보건복지·과학·기술

 ▲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새 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기대속에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취임한 지 200여일만에 기초연금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의견 충돌을 빚고 물러났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 대선공약 입안을 주도했고, 대선후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으로 새 정부의 정책 기틀을 잡았으며, 지난 3월11일 복지부 장관에 임명돼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취임 후 6개월여 동안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 치료에 꼭 필요한 처치와 약제에 2016년까지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4대 중증질환 보장강화 계획',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 체제 개편안 등을 차례대로 내놓았고, 보건·의료 해외 진출 부문에서도 일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복지 공약인 '기초연금'에 발목이 잡혔다. 복지부는 9월 26일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10만~20만원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차등지급한다'는 내용의 기초연금안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복지부 수장이던 진 장관은 청와대와의 논의과정에서 개인적 소신을 이유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깎는 '연계 방식'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장관은 9월 중순 사우디 출장에 앞서 측근들에게 사의를 내비쳤고, 출장중 이 사실이 국내에 보도돼 파문이 일었다. 이후 진 장관은 두 차례의 사의를 정홍원 총리가 모두 반려하고, 업무복귀를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가 청와대와의 갈등, 항명 파동으로 번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0일 사표를 수리했다.

 정총리는 당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가 소신과 달랐다면 애초 장관직을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무책임한 사의' 등의 표현으로 진 장관의 행태를 비판했다. 사퇴 후 국회로 복귀한 그는 한동안 대외 노출을 자제하다 최근 복지관련 강연에 나서는 등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 새 정부의 핵심 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수장으로 내정됐다가 낙마했다.

 김씨는 지난 2월17일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수장으로전격 발탁돼 화제를 모았다. 한국계 미국인인데다 알카텔루슨트 벨 연구소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세계 ICT 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서 그동안 하마평에 전혀 오르지 않던 뜻밖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정 직후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 경제가 지속성장해 나가는데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미국 국적 정리작업을 시작하고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에 돌입하는 등 나름대로 고국에서의 새 역할을 펼치기 위한 행보에 돌입했다.

 그러나 장관 후보자 내정 이후 시민권 포기 문제와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상근 자문위원 활동 전력, 국내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계속 제기되자 "국가의 운명과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시점에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 관련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꿈이 산산조각났다"면서 내정 보름 만에 전격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김 내정자의 사퇴에 대해 "미래성장 동력과 창조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온 분인데 우리 정치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김 내정자의 사퇴로 새 정부에서 신설된 공룡부처인 미래부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2일만인 4월17일에야 후임 최문기 장관이 취임할 정도로 출범이 지연됐다.

 15세 때 미국으로 떠난 이민 1.5세대인 김씨는 주경야독 끝에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메릴랜드대에서 공학박사를 마쳤고 이후 벤처기업 '유리 시스템즈'를 창업해 1998년 루슨트(현 알카텔 루슨트)에 10억달러에 매각하는데 벤처 성공신화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석채 전 KT 회장 = 5년간 국내의 대표적인 통신기업인 KT를 이끌어오다 지난 11월12일 검찰수사를 받는 와중에 사퇴했다. 2009년 취임 후 한차례 연임을 해 2015년 3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었지만 KT 사옥 헐값매각 의혹에 따른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이에 압박을 느끼고 사퇴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직원들의 고통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어 솔로몬왕 앞의 어머니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표적인 이명박 정권의 사람으로 불리는 이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줄곧 사퇴설에 시달려 왔지만 회장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고수해 왔으나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오자 결국 손을 들게된 것. KT는 이 회장의 사퇴에 따라 표현명 사장직무대행 체제를 가동시키면서 후임 CEO 선출을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회장의 사퇴는 KT가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장이 교체되는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느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민영 거대기업 KT를 이끌면서 이동통신 자회사였던 KTF와의 합병을 추진, KT를 회장 중심 체제로 전환하고 자신의 직함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격했다. 2009년 11월 국내 최초로 아이폰을 도입해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고, 유무선 통합과 탈(脫) 통신을 기치로 내걸어 기업 혁신을 주도하는 한편 계열사를 29개에서 52개로 늘리는 등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재임 기간 LTE 서비스 시작과 함께 이동통신 시장이 활기를 띠었음에도 3개 이통사 가운데 유일하게 부진한 실적을 거두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독단적 경영'과 '자기사람 심기 등 낙하산 인사'와 관련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 사회

 ▲ 채동욱 전 검찰총장 = 박근혜 정부 첫 검찰총장으로 낙점돼 지난 4월 4일 제39대 검찰총장직에 올랐다.

 지난해 잇단 검사 비리와 검란 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검찰 조직을 과감한 개혁과 결단력으로 안정 궤도에 올렸다.

 대검 수사기획관 등을 지낸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였지만 정치권과 여론의 요구를 받아들여 막강한 검찰권의 상징이자 정치적 편향 논란의 진원지인 대검중수부를 폐지했다.

 국가정보원 대선·선거 개입 의혹, CJ 비자금 의혹, 원전비리 수사, 4대강 입찰담합 의혹,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까지 사정 중추기관으로서검찰 본연의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했다.

 그러나 채 총장은 취임 6개월 만인 지난 9월 '혼외아들 의혹'이 제기되면서 결국 중도 낙마했다.

 채 총장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의혹 해소를 위해 자신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자 "검찰총장이 조사 대상자가 되어서는 정상적으로 검찰을 지휘할 수 없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결국 9월 30일 퇴임했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수사 등으로 인해 청와대와 여권 내에서 채 총장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결국 '찍어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 윤석열 여주지청장 = 윤석열(53·사법연수원 23기) 여주지청장은 지난 4월 국가정보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기소하는 등 성과를 냈던 윤 지청장은 그러나 수사 6개월만인 지난 10월 검찰 지휘부와의 갈등 끝에 수사팀에서 전격 배제됐다.

 갈등은 지난 6월 처음 외부로 드러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 및 선거법 위반 적용을 두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지휘부와 충돌을 빚었다.

 

 이어 지난 10월에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지휘라인의 정식 결재를 받지 않고 국정원 직원 체포영장을 청구·집행하고, 공소장 변경 신청을 감행했다가 수사팀에서 빠지게 됐다.

 이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윤 지청장이 "국정원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검찰 내분 사태는 만천하에 공개됐다.

 업무 배제 이후 길태기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대검 감찰본부의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윤 지청장과 수사팀 부팀장을 맡았던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의 징계를 법무부에 청구했다.

 윤 지청장은 그간 업무 처리에 빈틈이 없고 평소 소신이 뚜렷해 검찰 내에서 권력형 비리 수사를 주로 맡는 특수통 라인의 적자(嫡子)로 인정받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재직할 당시 윤 지청장은 중수부에 근무하면서 현대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등을 수사한 바 있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은 2013년 내내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 중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이 있었다.

 원 전 원장은 퇴임 이후 인터넷 여론조작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여러 건의 고소·고발을 당했다.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원 전 원장을 출국금지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작업'을 확인한 검찰은 공직선거법 적용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결국 선거법 위반의 공소시효를 닷새 남긴 6월 14일 원 전 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원 전 원장은 구속영장 청구를 가까스로 피했지만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지 한 달도 안돼 개인비리로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됐다.

 그는 7월 10일 건설업자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검찰은 국정원 댓글 사건의 재판에서 두 차례 원 전 원장의 공소장을 변경해 121만여건의 트위터 글을 게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추가했다.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은 트윗을 모두 합하면 국정원 직원들이 남긴 트윗이 2천200만건에 이른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수사 내내 부실·축소·은폐 수사 논란에 휘말렸다.

 수사 기간에 경찰 지휘부와 마찰을 거듭했던 권은희 과장(39·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례적으로 수사 중 전보발령을 받았고 지난 4월 18일 경찰 수뇌부의 은폐·축소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권 과장의 폭로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의 공방은 뜨거워졌다. 시민단체들은 매주 도심에서 규탄 집회를, 일선 경찰은 사과 릴레이를,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국정원과 경찰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국회 국정조사와 국정감사에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권 과장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수사의 최고정점에 있었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해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권 과장은 사법연수원 33기 출신으로 변호사 생활을 하다 2005년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 영화감독 김조광수씨와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씨 = 지난 9월 7일 공개적으로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 유명인의 동성결혼이란 점에서 금기시됐던 동성결혼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진보 진영에서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향한 큰 발걸음이라며 반겼지만 동성애 반대론자들로부터는 많은 비판을 받는 등 상반된 평가가 쏟아졌다.

 이 커플은 12월 7일 서대문구청에 등기우편으로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아직 국내에 합법적인 동성 커플이 없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구청 측은 혼인은 양성 간의 결합임을 전제로 한 헌법 36조1항을 근거로 이들의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조광수 커플은 구청이 끝내 수리를 거부하면 법원에 이의신청을 내는 등 소송을 불사하겠다며 반발했다. 진보적인 시민단체들도 헌법소원을 검토하는 등 이들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 문화예술·연예·종교·학술

 ▲ 이두식 홍익대 회화과 교수 = 한국 추상화의 대가 이두식 홍익대 회화과 교수가 2월23일 경기 구리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1947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0년대 말 본격적으로 화단에 진출한 이후 40여 년간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이어왔다.

 그는 밝고 역동적이면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운이 넘치는 추상화 작업으로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긴 적·청·황·백·흑의 화려한 오방색을 캔버스 위에 뿌린 듯한 '잔칫날' 연작은 고인이 20년 넘게 추구해온 대표작이기도 하다.

 1984년부터 모교인 홍대 회화과 교수로 29년간 후학을 양성하면서 홍대 학생처장과 박물관장, 미술대학장을 지내는 등 교육자이자 미술행정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 한국 미술계 거장 박노수 화백 = 한국 미술계 거장으로 꼽히는 남정(藍丁) 박노수 화백이 2월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27년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이자 해방 후 한국화 1세대 작가로 꼽힌다.

 그는 당시 일반적이었던 도제식 교육에서 벗어나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화단에 입문했다.

 1955년 당시 최고 권위의 미술전람회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선소운(仙簫韻)'이라는 작품으로 수묵채색화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외롭게 홀로 가는 작가의 길은 험하고 고독하다는 의미의 '고예독왕(孤詣獨往)'이라는 말을 새겨온 고인은 기존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개성적인 표현의 길을 개척하고자 매진했다.

 해방 이후 문인화가들이 채색을 배제하고 먹을 사용할 때에도 고인은 먹과 채색을 적절히 합하고 개성적인 구도와 표현 방식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 연극배우 강태기 = 탤런트 겸 연극배우 강태기 씨가 3월 12일 인천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63세.

 서울연극학교를 졸업한 그는 극단 실험극장 단원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으며 1976년 TBC 공채탤런트 6기로 입사해 배우로도 활약했다.

 그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1975년 연극 '에쿠우스'에서 예민한 감성을 지닌 청년 '알런'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다.

 그는 이 작품으로 그 해 백상연극영화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쥐기도 했으며, 이후재공연에서도 여러 차례 같은 역으로 분하며 '에쿠우스'의 흥행을 이끌었다. 이 작품은 국내 최초로 관객 1만 명을 돌파하는 등의 기록을 세웠다.

 TV, 영화, 연극 등 5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그는 연극배우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서 힘을 쏟기도 했다.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배우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경제적으로 척박한 환경에 있는 연극인의 복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관광부장관표창(2004), 아태문화예술대상 우수연극인상(2005), 국제문화예술대상 우수연극인상(2006)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 발레리나 강수진 =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46) 씨가 12월 31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최태지 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의 후임에 내정됐다.

 강씨는 자신이 수석무용수로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의 활동 등을 마무리한 뒤 조만간 귀국해 임명 절차를 밟는다.

 198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만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입단한 강씨는 이후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에 선정됐고 2007년 최고 장인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독일 '캄머탠저린'(궁정무용가) 칭호를 받는 등 세계무대를 누볐다.

 무용계에서는 강씨가 세계무대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 인적 네트워크 등을 한국발레계가 흡수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대체로 그의 고국행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 박창신 신부 = 천주교 전주교구 원로신부.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11월22일 시국미사 강론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발언으로 파문이 일었다.

 1973년 사제 서품을 받은 박 신부는 39년간 익산, 정읍, 전주 성당 등에서 사제로 부역하다 2012년 8월 은퇴했다. 문정현·규현 형제 신부와 함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대표적 신부로 꼽힌다.

 1980년 6월에는 5·18 광주의 실상을 알리던 도중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당시 익산 여산성당 주임신부였던 그는 가톨릭 전주교구사제단이 발표한 '전두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인물을 나눠주다 습격을 받았다.

 '미제 사건'으로 끝난 당시 테러로 지금도 한쪽 다리를 전다.

 1995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북연합 공동의장이던 박 신부는 '자주대오' 사건으로구속된 대학생들의 석방을 촉구했고, 1997년에는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전북대책위' 상임대표도 맡았다.

 박 신부는 평소 미사 강론에서 "선을 행하도록 명령받은 사제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사명이 있다"고 강조해 왔다.

 ▲ 홍근수 목사 =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평생을 바친 인물로 10월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홍 목사는 1937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신대와 시카고 루터신학교에서 신학과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 문익환 목사의 추천으로 1987년부터 2003년까지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맡았다. 1991년 홍 목사가 안기부에 구속된 사건은 기독교인들이 사회선교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1994년 문규현 신부와 함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창립해 오랫동안 상임대표를 맡아 활동하면서 평화통일과 민중 운동에 앞장섰다.

 매향리폭격장폐쇄투쟁 범국민대책위 공동의장, 불평등한 한미소파개정 국민행동공동대표, 효순미선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전국민중연대 상임공동대표, 평택미군기지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 자승 스님 =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에 이어 34대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자승 스님은 10월10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치러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임기 4년의 차기 원장에 다시 선출됐다. 311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과반인 179표를 얻었다.

 자승 스님은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이후 총무원장 가운데 첫 연임 기록을 세웠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총무원 총무부장, 중앙종회 의장 등을 거쳤으며, 조계종 종책모임 불교광장의 추대를 받았다.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2012년 백양사 승려 도박 사태 등으로 도덕성 논란이 일면서 일부에서 불출마 요구를 받아왔지만 이를 극복하고 연임에 성공했다.

 ▲ 가수 조용필 =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은 '가왕'(歌王) 조용필(63)이 10년 만에 발표한 19집 '헬로'(Hello)가 선풍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난 4월 발매된 19집 수록곡 '헬로'와 '바운스'(Bounce)가 중견 가수의 곡으로는 이례적으로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고 음반 매장에는 조용필의 앨범을 사기 위해 팬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발매 한 달여 만에 앨범 판매량은 20만 장을 돌파했고 조용필은 '바운스'로 23년 만에 지상파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 1위도 석권했다. 또 조용필의 성공은 후배 가수들에게도 영향을 줘 올해는 이승철, 신승훈 등의 중견 가수들이 잇달아 새 앨범을내고 활동했다.

 그 결과 19집은 조용필이 자신의 음악 틀을 탈피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사운드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도전과 혁신의 성공 모델로 주목받았다.

 특히 조용필 현상이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도 확산하면서 세대 통합이란 측면에서 평가받았다.

 국내에서의 반향은 일본에도 퍼져 나갔다. 1980년대 일본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큰 사랑을 받은 그는 1998년 일본 10개 도시 순회공연 이후 15년 만에 현지에서 앨범을 내고 공연을 펼쳤다.

 ▲ 소설가 최인호 = '별들의 고향'을 비롯한 무수한 히트작을 내면서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애칭으로 불려온 소설가 최인호가 9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68세.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고인은 서울고 2학년이던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나그네' 등 발표하는작품마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가 쓴 작품들은 소설로서의 인기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청년문화의 대변자'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고인은 사상계 신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차례로 받으며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양쪽에서 두루 평가받았다.

 1987년에는 가톨릭에 귀의해 '잃어버린 왕국'과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등역사와 종교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집중적으로 내놨다.

 2008년 침샘 부근에 암이 발병하는 등 개인적으로 시련을 겪지만 그 와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집필해 2011년에는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펴냈다.

 투병 중에도 묵상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비롯해 '최인호의 인연' '천국에서 온 편지' 등을 낼 만큼 집필과 출간을 꾸준히 했다.

 ▲ 박철수 감독 = '학생부군신위'(1996)로 유명한 박철수 감독이 지난 2월 19일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고인은 저예산으로 많은 작품을 만들며 당당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현했으며, 늘 파격적인 소재와 이야기로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75년 신필름 연출부에 들어가 본격적인 감독수업을 받고 이경태, 설태호, 신상옥의 조감독을 거쳐 1979년 '골목대장'으로 영화감독에 데뷔했다.

 특히 대종상 작품상을 받은 '어미'(1985)를 통해 감각적인 화면과 충격적인 성매매의 사회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오늘 여자'(1985), '서울 에비타'(1988), '테레사의 연인'(1991) 등 진지한 철학을 녹인 작품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다큐멘터리 '학생부군신위'로 각종 영화제에서 잇달아 상을 받았다.

 ▲ 곽정환 서울극장 회장 = 영화제작자·감독이자 극장업자로 '충무로의 대부'로 군림한 곽정환 서울극장 회장이 지난 11월 8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1960년 합동영화사를 설립한 이래 1979년부터 서울극장을 운영하며 멀티플렉스 체인이 생기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영화 배급의 큰 손으로 충무로를 쥐락펴락했다.

 또 합동영화사에서 100여 편의 영화를 기획, 제작하며 한국 영화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직접 감독으로도 나서 '쥐띠부인'(1972), '야간비행'(1973), '이중섭'(1974), '가고파'(1984), '이브의 체험'(1985), '무거운 새'(1994) 등을 연출했다.

 고인은 영화제작자협회 회장, 전국극장연합회 회장, 서울시극장협의회 회장 등도 역임했다.

 ◇ 스포츠

 ▲ 류현진 = 메이저리그 마운드 위에서 한국 야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입성 첫해에 14승8패 방어율 3.00을 기록하며 미국도 인정하는 '에이스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메이저리그 첫 등판이던 4월3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6⅓이닝 10피안타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던 류현진은 두 번째로 나선 4월8일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 6⅓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첫 승을 거뒀다.

 2003년 4경기 만에 선발승을 거둔 서재응을 넘어서는 한국 투수 최단 등판 첫 선발승이었다.

 류현진은 11번째 등판한 5월29일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2피안타 무실점의 완봉승을 거뒀다.

 메이저리그 한국인 최단 기간 완봉승이자, 1995년 노모 히데오의 아시아 기록과타이다.

 류현진은 꾸준히 승수를 쌓았고, 8월3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한국인 신인 최초로10승을 채웠다.

 팀내 다승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친 류현진은 포스트시즌에서도 3선발 역할을 했고, 10월15일 세인트루이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선발승을 기록했다.

 류현진은 타자로도 58타수 12안타(2루타 3개·3루타 1개) 타율 0.207 5타점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 박인비 =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MVP 격인'올해의 선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LPGA 투어 상금왕과 최저 타수상(베어 트로피)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올해의 선수상'과 상금왕 2연패를 달성해 여자 골프를 대표하는 인물로 우뚝 섰다.

 특히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까지 3개의 메이저대회를 석권,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 이후 63년 만에 '개막 후 메이저대회 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이후 브리티시여자오픈과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캘린더 그랜드슬램'(한 해 4개의 메이저대회를 우승)에도 도전했으나 아쉽게 무산됐다.

 하지만 올 시즌 메이저대회 3승을 포함해 LPGA 투어에서 6승을 거둬 2001·2002년 박세리가 남긴 한국 선수 시즌 최다 우승 기록(5승)을 갈아치우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4월15일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이후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는 2010∼2011년 25주간 1위에 오른 신지애를 뛰어넘는 '한국인 최장' 기록(12월 10일 현재 35주)이다.

 ▲ 손흥민 =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뛰는 공격수 손흥민(21)은 11월 9일 함부르크와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한국 축구사에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손흥민의 해트트릭은 지금까지 유럽 빅리그 무대에 진출한 한국 선수 가운데 정규리그에서 처음 달성한 대기록이다.

 198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한 차범근 전 수원 삼성 감독은 물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뛴 선배 선수들도 해트트릭을 작성하지 못했다.

 손흥민은 이미 지난 시즌 함부르크에서 활약할 당시 뛰어난 골 결정력으로 독일언론으로부터 손흥민의 성(姓)인 '손(son)'과 '돌풍을 일으키는'이라는 뜻의 '센세이셔널(sensational)'을 합쳐 '손세이셔널'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2013-2014 시즌을 앞두고 1천만 유로(약 144억원)의 높은 이적료로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은 정규리그 개막전에서 골 맛을 보더니 해트트릭을 포함해 정규리그 15라운드까지 7골(2도움)을 쏟아냈다.

 특히 2013-2014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2도움)와 독일축구협회(DFB) 포칼(2골 1도움)에서 달성한 공격포인트까지 합치면 이번 시즌에만 9골 5도움의 '고공비행'을 펼쳐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공격수로 입지를 다졌다.



<2013 인물> 국제

 2013년 국제사회에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거나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힘쓴 인물들이 주목을 받았다.

 동북아에서는 지난해 새롭게 권력을 차지한 지도자들이 대외적으로 강경 정책을 펼치며 입지를 넓혔다.

 반면 전 인류의 숭상을 받거나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대거 타계하며 한 시대를 마감했다.

 권력자들이 정권 교체나 추문으로 인해 영원히 유지할 것 같던 권좌에서 수직 추락하기도 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 = 제266대 교황. '빈자의 성자'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라 즉위명을 정했다.

 사상 첫 예수회(Jesuits) 출신 교황이자 미주 출신 교황이다. 비유럽권에서 1천282년만이기도 하다.

 건강상 이유로 스스로 물러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지난 3월 콘클라베에서 선출됐다. 당시 유력 후보군에 들어 있지 않았으나 교회 개혁 과제를 해결할인물로 깜짝 선택됐다.

 소탈하고 겸손한 행보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신자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릴 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있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하는 등 현대자본주의를 강력 비판하고 동성결혼 등 사회적 갈등 현안에 진보적 목소리를 내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 시진핑(習近平) = 중국 국가주석. 지난해 공산당 총서기로 임명되며 중국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데 이어 지난 3월 국가주석으로 선출돼 공식적으로 당·정·군3대 권력을 장악했다.

 안에서는 개혁과 강력한 중앙집중 지도체제를 추진하고 밖으로는 중국의 국제적위상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 행보에 나섰다.

 주석 취임 직후 러시아를 방문해 관계를 공고히 한 데 이어 아프리카를 찾아 자원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6월에는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새로운 대국관계를 선언했다. 양국 정상이 노타이 차림으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큰 관심을 모았다. 같은 달에는 박근혜 대통령과도 회담했다.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순방에 동행하며 패션외교 등으로 기존 영부인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와 동중국해를 두고 영토 갈등 관계인 일본, 필리핀 등에 강경 대응을 했으며 방공구역 설정으로 동북아 지역 긴장을 한층 고조시켰다.

 ▲ 하산 로하니 = 중도 온건 노선을 표방하는 제11대 이란 대통령. 지난 6월 대선에서 중도-개혁 연대의 지지에 힘입어 압승을 거뒀다.

 취임 후 서방을 상대로 적극적 유화 정책을 펼쳐 핵문제 해결과 국제사회 경제 지원을 끌어냈다.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길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15분간 역사적 전화 통화를 하며 대외 관계개선의 물꼬를 텄다. 11월에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소위 'P5+1'와 핵협상을 타결했다. 저농축 우라늄만 생산ㆍ보유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경제제재 조치 일부를 해제하는 내용이다.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터번을 벗고 등산을 가는 모습을 공개하는 등 대내외 소통에 적극적이다. 다만 강경파의 반발을 잘 다스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에드워드 스노든 =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미 국가안보국(NSA) 등 서방 정보당국의 광범위한 개인정보 감시·수집 행위를 폭로해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NSA에 근무하던 중 정보수집 활동의 정당성에 회의를 품고 관련 내용이 담긴 방대한 분량의 기밀문서를 빼내 영국 가디언지와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 6월 홍콩에서 '거사'를 치른 뒤 미국의 체포망을 피해 모스크바로 은신해 8월 1년 임시망명 허가를 받았다.

 스노든 폭로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개인정보 감시,수집 실태와 IT기업들의 정보 제공 활동이 드러났다. 미국이 독일 등 우방을 상대로 스파이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나며 미국과 유럽간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기도 했다.

 

 ▲ 말랄라 유사프자이 =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파키스탄 10대 여성 인권 운동가.

 2012년 하굣길에 탈레반 무장대원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았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영국에 거주하며 유엔에서 연설하는 등 여성 교육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1세 때인 2009년 영국 BBC에 파키스탄 탈레반의 잔혹 행위를 폭로한 이후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올해 각종 인권상을 휩쓸었으며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 2013년 노벨 평화상 수상 단체. 지난 8월 시리아 내전에서 대규모 독가스 학살이 터진 이후 화학무기 전면폐기라는 외교적 해법을 끌어내는 중심 역할을 맡아 서구와 시리아의 전면전 방지를 도왔다.

 1993년 체결된 화학무기 금지협약(CWC)의 이행을 위해 1997년 창설됐으며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가 있다. 현재 미국, 러시아, 시리아 등 189개국이 CWC에 가입한 상태다.

 

 ▲ 앙겔라 메르켈 = 독일 총리. 9월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 연합이 압승을 거두며 3연임에 성공했다.

 세계금융위기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무난히 넘기면서 당파를 초월한 국가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채 위기국에 긴축 압박을 가하면서도 유로존을 깨지 않고, 독일 납세자들에게도 큰 부담을 지우지 않는 등 세심하고 신중한 위기관리 능력이 인정을 받았다.

 2005년 총리직에 오를 당시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독일 총리 등의 기록을 세웠다.

 우파 정치인이지만 사회적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다.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원전 신봉자였지만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상황이 달라지자 원전 폐기를 전격 결정하는 등 순발력 있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돋보인다.



 ▲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후보 =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중도좌파 후보. 11월 대선 1차 투표에서 보수 우파 후보인 에벨린 마테이를 상대로 압도적 우세를 보였으나 과반을 얻지 못해 결선 투표를 앞두고 있다.

 바첼레트는 2006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대통령을 지냈고 이후 유엔 여성기구(UN Women) 대표를 맡았다가 대선 출마를 위해 최근 사임했다.

 집권 기간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높은 지지를 받았다.

 아버지(알베르토 바첼레트)는 독재자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당시 아옌데 전 대통령 편에 섰다가 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옥사했다. 반면 상대 후보 마테이는 부친이 피노체트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인물이어서 이번 대선은 피노체트 군사정권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있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 일본 총리. 정치 명문가 출신의 대표적 우익 정치인으로 경제 부흥에 대한 여망을 업고 작년 말 집권했다.

 올해 초에 대대적 금융 완화를 통해 경제 재건을 꾀하는 아베노믹스를 발표해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외교, 안보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우경화 속도를 높인 데 이어 국민 알권리 침해 논란이 있는 비밀보호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민심을 잃고 있다.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헌법해석 변경을 추진해 주변국들의 거센 반발을유발하고 역내 구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특히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겠다'는 등의 '수정주의 역사관'으로 한일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두고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 넬슨 만델라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대통령이자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철폐 투쟁의 상징. 12월 95세를 일기로 타계,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을 마감했다.

 이제는 집권당이 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고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백인 대통령 F. W. 데 클레르크와 함께 1993년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로 첫 흑인 대통령이 됐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한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보듬는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했다.

 사망 후 추모식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세계 100개국 수반과 정상급 인사가 참여했다.

 ▲ 우고 차베스 =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14년간 집권했으나 암 투병 끝에 지난3월 5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기반으로 번 돈으로 대중영합주의 정책을 밀어붙여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나 중산층은 등을 돌리는 등 평가가 엇갈린다.

 대외적으로는 중남미의 '반미 대표주자'를 자임했다. 역내 국가들에 국제 시세보다 싸게 원유를 공급하며 경제적 버팀목 역할을 했다.

 미국을 향한 원색적 비난을 비롯해 거침없는 언동으로 세계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곤 했다.

 ▲ 마거릿 대처 = 전 영국 총리. 지난 4월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영국은 물론 유럽 전체에서 첫 여성 총리였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간 재임하면서 민영화와 사회복지 지출 삭감 등 과감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해 '철(鐵)의 여인'으로 불렸다.

 장기 불황에 빠진 영국 경제를 강력한 지도력으로 회생시켰다고 평가되나, 노동조합을 탄압했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미국과 협력해 냉전 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 보응우옌잡(Vo Nguyen Giap) = 베트남의 '전쟁영웅' 장군. 20세기 열강들의 공세를 물리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해 베트남 해방·통일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지난 10월 노환으로 별세했다.

 1954년 라오스 접경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대승해 식민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세계 최강 전력을 갖춘 미국과 싸워 이겼고 1979년 중국의 침공도 막아냈다.

 '생존하는 20세기 최고의 명장', '붉은 나폴레옹'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 무함마드 무르시 = 지난 7월 축출된 이집트의 전 대통령.

 이집트 최대 이슬람조직인 무슬림형제단 출신으로, 지난해 60년 만의 자유민주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고 이슬람주의 정책을 펴다가 자유·세속주의 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개입으로 집권 1년 만에 권좌에서 쫓겨났다.

 무르시 축출 이후 이집트에서는 국론 분열과 유혈사태 등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 전 이란 대통령. 지난 8월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신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임기 8년 동안 각종 친서민 정책을 펼쳤으나 강경 일변도의 대외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했다. 서방 제재로 인해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국내에서도 지지 기반을 대거 상실했다.

 로하니 신정부가 지난 11월 서방과 핵협상 타결에 성공하면서 그의 강경 노선은더욱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온다.

 

 ▲ 스티브 발머 =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CEO). 올해 8월 "1년 내에 물러나겠다"며 은퇴 선언을 했다. 최근 차기 CEO 선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에게서 지난 2000년 CEO직을 물려받은 뒤 14년간 MS를 이끌었다.

 발머가 취임할 당시 MS는 세계 최강의 정보기술(IT) 업체였으나, 최근 들어 데스크톱·랩톱 컴퓨터보다 모바일 기기를 선호하는 쪽으로 시장 환경이 바뀌면서 과거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고 평가된다.

 

 ▲ 보시라이(薄熙來) = 전 중국 충칭(重慶) 서기. 중국의 8대 혁명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 아들로 중국의 핵심 지도자 그룹인 태자당(太子黨)의 선두 주자였다. 한 때 중국 신좌파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으나 처절히 몰락했다.

 그러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독살 추문과 최측근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망명시도를 계기로 개인 비리가 드러났다.

 9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과 정치권리 종신 박탈, 개인재산 몰수 등 중벌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상소심에서도 패소해 형이 확정됐다.

 부패 혐의를 벗으려고 자신의 외도 사실을 고백하는가 하면, 왕리쥔이 구카이라이를 연모했다고 폭로하는 등 재판 과정의 '폭탄발언'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 전 이탈리아 총리. 끊이지 않는 성추문과 비리 의혹에도 3번이나 총리로 재임했으나 결국 상원의원직과 면책권을 박탈당하며 정치인 생명에 결정타를 맞았다.

 방송사인 미디어셋의 세금 횡령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8월 실형이 확정됐다.

 일명 '붕가붕가파티'에서 미성년자 성매매를 한 혐의와 직권남용 등의 죄목으로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1심에서는 7년형과 평생 공직진출 금지 판결을 받았다. 연합

[관련기사]
한눈에 보는 2013 국내·국제 10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