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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의 칸 ===/◇인물.기관.단체.회사.조직.기타

[2013 인물] 국내① -연합뉴스

[2013 인물] 국내① -연합뉴스

기사 나도 한마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임기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외교 지평을 넓혔고 북한에 원칙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와 함께 복지 재원 확보와 일자리 창출 등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6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문제를 계기로 다시 정치 중심권에 들어섰고 최근에는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헌정사상 최초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는 현역 의원으로 기록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북한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처형돼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졌다.

경제 분야에서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했고,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되는 등 명암이 교차했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일본 안마업소 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불명예 사퇴를 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이석채 KT 회장, 채동욱 검찰총장 등도 논란 속에 물러났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입에도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이두식 홍익대 회화과 교수, 박노수 화백, 연극배우 강태기, 홍근수 목사, 소설가 최인호, 박철수 감독 등 문화종교계 인사가 세상을 떠났고, 박창신 신부는 시국미사 발언으로 하반기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가수 조용필, 프로야구 선수 류현진, 골프선수 박인비, 축구 스타 손흥민 등은 국내외에서 대중문화와 스포츠계를 빛냈다.

◇ 정치·외교·안보

▲ 박근혜 대통령 =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 2월25일 제18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2007년 대선 도전에 실패한 이후 5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승리,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올랐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부녀(父女)가 모두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취임 후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4대 국정기조로 삼고 분야별 세부 국정과제를 설정해 국정에 매진해왔다.

또 외교적으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한 차분하고 원칙적인 대응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증가하는 복지 수요와 이를 위한 재원확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취임 첫해 내내 인사 난맥상에 시달려야 했다.

▲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 10·30 경기 화성갑 보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현역의원 가운데 최다선인 7선 의원으로 여의도에 귀환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사건'과 2008년 '친박연대 고액헌금 사건' 등으로 두 차례나 형사처벌을 받았고, 공천과정에서 일부 당내 소장파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여의도 재입성에 성공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 캠프의 상임고문을 지낸 '거물급'이자 친박(친 박근혜계) 원로그룹의 핵심 인사다. 특히 18대 총선을 앞두고는 친박연대를 출범시켜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을 주도한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국회 재입성 후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더 큰 역할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특히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과 관련한 행보가 주목된다. 무소속으로 활동에 제약이 있는 국회의장보다는 당 대표를 염두에 두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 새누리당 친박(친 박근혜계)의 좌장으로 4·24 재선거(부산 영도)를 통해 5선 의원으로 여의도에 재입성했다.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하위 25% 배제' 원칙으로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백의종군 선언으로 불출마를 선택했던 그가 금의환향한 것이다.

한때 친박 좌장으로 통했지만 2010년 '세종시 정국' 때 박근혜 대통령의 세종시 원안고수와 달리 일부 독립기관을 세종시로 옮기는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박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사실상 결별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정권창출의 일등공신 반열에 올랐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은 국회 재입성 이후 당내 구심점으로 떠오르며 차기 당권 주자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 의원은 당내 '근현대역사교실'과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퓨처라이프포럼' 등의 모임을 잇따라 만들어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 민주당 문재인 의원 =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공식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한 행보를 보였으나, 6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문제가 다시 부상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는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던 중, 긴급 성명을 통해 대화록 원본과 녹음테이프, 회담 준비 자료 등을 모두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여야는 성명을 계기로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열람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는 '친노' 세력의 재결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미(未)이관됐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성명 발표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적잖은 상처를 입었으며, 이와 관련해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간담회를 열고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으며,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를 출간해 "지난 대선은 공정성과 정당성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등 활동폭을 조금씩 넓히고 있다.

▲ 무소속 안철수 의원 = 지난 대선 이후 미국에서 칩거하다 3월에 귀국, 4·28 재보궐선거에서 노원병에 출마, 당선하며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6월에는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출범시키고 새정치를 선보이겠다고 선언하며 세력화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야심차게 영입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직에서 사퇴하고, 다른 인재영입 작업에 대해서도 '이삭줍기'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며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화록 정국에서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자 일부에서는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국가기관 선거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을 제안하며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새정치추진위원회를 만들며 창당 행보를 본격화함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주목받고 있다.

지방선거 전에 얼마나 새롭고 영향력 있는 인물을 영입할지가 관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민주당 김한길 대표 = 5·4 전당대회를 통해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취임 후 당사를 10분의 1 규모로 축소 이전하고 전당원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는 등 혁신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논란이 거세지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마저 파행하자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마련하고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정국이 풀리지 않자 천막에서 노숙투쟁을 벌였으며, 이후 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안,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를 포함한 3자회담을 성사시켰다. 다만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사과나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등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원내외 병행투쟁으로 야당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분투했으나, 이를 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 측에 야권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 헌정사상 최초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는 현역 의원으로 기록되며 정국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대리투표 사태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올해 8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종북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정원의 체포동의안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 5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회합에 참여해 '비상시국에 연대조직을 빨리 꾸릴 것 ', '레이더기지나 전기시설 등 주요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 등을 회원들에게 전달했다.

결국 국회는 9월4일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켰으며 이 의원은 수원구치소에 수감돼 현재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이 의원 체포 후에도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됐으며 11월 정부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 최윤희 합참의장 =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군 출신으로서 합참의장에 올랐다.

비 육군 출신이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 된 것은 1993년 합참의장을 지낸 이양호 전 국방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해군사관학교 31기로 해군 작전사령부 작전처장, 5전단장, 해군참모차장을 거쳐 2011년부터 해군참모총장을 맡아오면서 정책 및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해군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어려움을 겪던 해군을 안정시켰고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을 통해 해상 방위태세를 강화시킨 것이 합참의장 발탁 배경으로 꼽혔다.

지난 10월 16일 취임식 때는 "적이 도발한다면 응징 능력을 사용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북한에 대해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 북한

▲ 장성택(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12월 12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에서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지난 40여 년간 북한 정권의 '2인자'로 군림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비서의 남편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1970년대 초부터 그의 집권 기간 내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1970년대 초반과 2004년에 사생활과 분파행동 등을 이유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매번 재기에 성공했다.

2009년에는 김정은 체제의 산파역할을 했고, 김정은 정권 출범 후에는 어린 최고지도자의 후견인으로서 주요 정책과 인사를 주도하며 막후 실세의 지위를 굳혔다.

2002년 신의주 행정특구를 직접 나서서 지휘했던 장 부위원장은 최근 경제개발구 등 경제개방 정책을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 등을 이유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출당·제명된 지 나흘 만에 사형되면서 북한사에 '반역자'로 남게 됐다.

▲ 최룡해(인민군 총정치국장) = 김정일 체제에서 정치적 부침을 겪었지만, 집권 2년차를 맞는 김정은 정권에서는 군부의 최고 실세로 자리 잡았다.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에 불과했던 그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공식 출범한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비서,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권력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한 작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군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 요직을 모두 꿰차며 군부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5월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방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형식의 대화'를 원한다는 북측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숙청됨에 따라 북한 권부 내에서 최고 실세로 독주가 예상되고 있다.

장 부위원장과 양대 축을 형성했던 최 총정치국장은 정책적으로 장 부위원장과 갈등하며 사실상 이번 숙청의 배후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경제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사임한 손경식 회장의 후임으로 8월 대한상공회의소 임시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임됐다.

세계 경제 불황이 지속되고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내 최대 종합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아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SK·한화·CJ·태광그룹 등 대기업 오너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고조되는 재벌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사람을 중시하는 '인재 경영', '소통 경영'으로 재계에 잘 알려진 박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정부와 기업 간의 소통과 기업들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을 포함해 4명의 상의 회장을 배출하게 됐다.

박 회장에 앞서 선친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전문경영인으로 두산그룹 총수가 된 고 정수창 전 회장, 형인 박용성 전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각각 활동했다.

▲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부적절한 기업어음(CP) 발행과 계열사간 자금거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시 12회로 검사 생활을 하다가 이양구 동양 창업주의 맏사위가 되면서 기업인으로 변신, 2001년 현 회장의 동서인 담철곤 회장의 오리온 그룹과 분리되면서 시멘트, 금융 사업을 중심으로 동양그룹을 이끌어왔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현 회장은 계열사의 기업어음 만기도래일이 다가오자 지난 9월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거부당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 이재현 CJ그룹 회장 = 박근혜 정부 들어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됐다.

삼성가(家)의 3대 장손이기도 한 이재현 회장은 CJ그룹을 현재의 위치에 올린 창업주이기도 하다.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장남이지만, 이건희 삼성 회장과의 후계 구도에서 밀리며 사실상 제일제당만 받아들고 그룹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이후 CJ그룹은 재계 서열 14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2008년 그룹의 전 자금부장이 살인청부 혐의로 기소돼 그룹의 비자금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 회장의 이름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CJ그룹은 차명 재산이 이병철 선대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세금 1천700억원을 뒤늦게 납부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이 회장이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

하지만 올해 CJ그룹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의 탈세 의혹에 연루되면서 이 회장은 결국 검찰 수사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미갤러리를 통해 이 회장 일가가 해외에서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리거나 거래 내역을 누락하는 수법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 또는 세탁했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

결국 이 회장은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운용하면서 2천78억원의 횡령·배임·탈세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아 구속 기소됐다.

이 회장은 이후 신장 이식 수술을 이유로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아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만성신부전증, 고혈압, 고지혈증과 함께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다. 샤르코-마리-투스는 손과 발의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병이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골목 상권 침해 등을 이유로 유통 업계 총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올해 국감장에 섰다.

정용진 부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1남1녀 중 장남이다.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사학과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1995년 27세의 나이에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했다. 이후 1997년 기획조정실 상무, 2000년 경영지원실 부사장을 거쳐 2006년부터 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정 부회장은 최근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그룹의 주력인 이마트가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결국 올해 국감장에 서게 됐다.

신세계의 상품 공급점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변종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라는 논란과 함께 이마트가 협력 업체의 조리 식품 제조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당초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증인 신청 명단에 포함됐다가 막판에 제외됐었다.

대신 전문 경영진인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가 국감에 출석했다.

그러나 허 대표가 신세계그룹의 불공정 거래 논란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결국 정 부회장이 국감에 서게 됐다.

정 부회장은 국감에서 SSM 의혹을 받는 상품 공급점에 대해 "사업을 일절 중단하겠다"고 밝혔으며, 허 대표에 대해서는 "직원 교육을 잘못시킨 제 책임이 크다"며 사과했다.

정 부회장은 작년 국감 증인으로 불렸으나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을 거부해 결국 재판에서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 남민우(51)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 2000년대 벤처 붐을 이끈 벤처 1세대 대표주자로 6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청년위원회 위원장 임명에 앞서 5월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수행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3월 박 대통령이 정보방송통신 융합 분야 중소벤처기업인 서울 서초동의 `알티캐스트'를 방문할 때 배석하기도 했다.

8월 인터넷 산업 관련 협회들이 회원사들과 협력해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조직한 벤처기업 상생협의체의 초대 운영위원장으로도 선출됐다.

전북 익산 출생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3년 다산네트웍스를 설립한 뒤 국내 통신장비 분야 1위 기업으로 키워내 2010년 벤처기업대상인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로 활동하며 창업콘서트에서 특강을 하는 등 청년의 취업과 창업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벤처기업협회장, 한국네트워크산업회 회장 등도 맡고 있다.

▲ 이참(59) 前 한국관광공사 사장 =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승승장구하며 공공 기관인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올랐으나 11월 일본 안마업소 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자진 사퇴했다.

1986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독일인으로, 1994년 드라마 `딸 부잣집'에 출연하는 등 방송인으로 얼굴을 알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공직에 발을 디뎠다. 문화관광부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 서울시 홍보대사, 기획예산처 혁신 자문위원 등으로 일했다.

그러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됐고 2009년 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돼 귀화 출신으로는 최초로 공공 기관 수장에 올랐다.

후임 사장 임명이 미뤄지면서 모두 4년 3개월 넘게 `최장수 관광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는 기록도 남겼다.

하지만 지난해 설 연휴 일본 방문 당시 도쿄의 성인 업소에 출입했다는 논란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 보건복지·과학·기술

▲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새 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기대속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한 지 200여일만에 기초연금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의견 충돌을 빚고 물러났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 대선공약 입안을 주도했고, 대선후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으로 새 정부의 정책 기틀을 잡았으며, 지난 3월11일 복지부 장관에 임명돼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취임 후 6개월여 동안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 치료에 꼭 필요한 처치와 약제에 2016년까지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 계획',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 체제 개편안 등을 차례대로 내놓았고, 보건·의료 해외 진출 부문에서도 일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복지 공약인 '기초연금'에 발목이 잡혔다. 복지부는 9월 26일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10만~20만원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차등지급한다'는 내용의 기초연금안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복지부 수장이던 진 장관은 청와대와의 논의과정에서 개인적 소신을 이유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깎는 '연계 방식'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장관은 9월 중순 사우디 출장에 앞서 측근들에게 사의를 내비쳤고, 출장중 이 사실이 국내에 보도돼 파문이 일었다. 이후 진 장관은 두 차례의 사의를 정홍원 총리가 모두 반려하고, 업무복귀를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가 청와대와의 갈등, 항명 파동으로 번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0일 사표를 수리했다.

정총리는 당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가 소신과 달랐다면 애초 장관직을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무책임한 사의' 등의 표현으로 진 장관의 행태를 비판했다. 사퇴 후 국회로 복귀한 그는 한동안 대외 노출을 자제하다 최근 복지관련 강연에 나서는 등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 새 정부의 핵심 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수장으로 내정됐다가 낙마했다.

김씨는 지난 2월17일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수장으로 전격 발탁돼 화제를 모았다. 한국계 미국인인데다 알카텔루슨트 벨 연구소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세계 ICT 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서 그동안 하마평에 전혀 오르지 않던 뜻밖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정 직후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 경제가 지속성장해 나가는데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미국 국적 정리작업을 시작하고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에 돌입하는 등 나름대로 고국에서의 새 역할을 펼치기 위한 행보에 돌입했다.

그러나 장관 후보자 내정 이후 시민권 포기 문제와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상근 자문위원 활동 전력, 국내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계속 제기되자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시점에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 관련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꿈이 산산조각났다"면서 내정 보름 만에 전격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김 내정자의 사퇴에 대해 "미래성장 동력과 창조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온 분인데 우리 정치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김 내정자의 사퇴로 새 정부에서 신설된 공룡부처인 미래부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2일만인 4월17일에야 후임 최문기 장관이 취임할 정도로 출범이 지연됐다.

15세 때 미국으로 떠난 이민 1.5세대인 김씨는 주경야독 끝에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메릴랜드대에서 공학박사를 마쳤고 이후 벤처기업 '유리 시스템즈'를 창업해 1998년 루슨트(현 알카텔 루슨트)에 10억달러에 매각하는데 벤처 성공신화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석채 전 KT 회장 = 5년간 국내의 대표적인 통신기업인 KT를 이끌어오다 지난 11월12일 검찰수사를 받는 와중에 사퇴했다. 2009년 취임 후 한차례 연임을 해 2015년 3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었지만 KT 사옥 헐값매각 의혹에 따른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이에 압박을 느끼고 사퇴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직원들의 고통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어 솔로몬왕 앞의 어머니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표적인 이명박 정권의 사람으로 불리는 이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줄곧 사퇴설에 시달려 왔지만 회장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고수해 왔으나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오자 결국 손을 들게된 것. KT는 이 회장의 사퇴에 따라 표현명 사장 직무대행 체제를 가동시키면서 후임 CEO 선출을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회장의 사퇴는 KT가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장이 교체되는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느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민영 거대기업 KT를 이끌면서 이동통신 자회사였던 KTF와의 합병을 추진, KT를 회장 중심 체제로 전환하고 자신의 직함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격했다. 2009년 11월 국내 최초로 아이폰을 도입해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고, 유무선 통합과 탈(脫) 통신을 기치로 내걸어 기업 혁신을 주도하는 한편 계열사를 29개에서 52개로 늘리는 등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재임 기간 LTE 서비스 시작과 함께 이동통신 시장이 활기를 띠었음에도 3개 이통사 가운데 유일하게 부진한 실적을 거두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독단적 경영'과 `자기사람 심기 등 낙하산 인사'와 관련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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